허깨비 군사력으로 싸운 임진왜란 조총이라는 것이 쏜다고 다 맞는 것입니까? 정보 부재라는 말이 그토록 잘 들어맞는 전쟁이란 없을 것이다. 왜란 발발 전 대처방안이라는 것이 겨우 통신사를 1회 파견하여 일본 막부와 30분 정도 공식 대면만 하고 왔으니 그런 대면에서 어떻게 전쟁위기 따위를 파악할 수 있으랴. 일본 막부의 관상만 보고 돌아왔서 보고를 올렸으니 어떤 원시국가도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부산에는 일본어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다. 왜관도 있어서 일본인 수백 명이 집단적으로 와서 살았으며 그들은 모두 정보원이나 다름 없었다. 우리 조정이나 관헌들의 동태도 수시로 파악하여 본국에 전하고 있었다. 우리 측에서는 일본 파견 관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대마도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