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어떤사회 였을까(1)??

27.몽고의 역참제도

구름위 2023. 4. 1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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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의 역참제도

13세기 중엽이었다. 마치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중앙아시아 초원의 한 모퉁이에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바다에 거센 풍랑이 일듯, 초원에는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휘몰아쳤다. 말발굽 소리는 점점 커져 거대한 기마군단이 되었다. 기마군단은 척박한 중앙아시아 고원에 흩어진 부족들을 차례로 ‘접수’하고, 일사불란하게 대륙을 휩쓸었다. 그리하여 유라시아 대륙에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하였다.

기마군단의 리더로 초원의 황제가 된 칭기즈칸. 그가 정복한 땅은 무려 777만 평방 킬로미터였다. 원 세조 쿠빌라이 대에 이르러 정복지는 더욱 확장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아시아와 유럽, 태평양과 대서양을 하나로 이어버렸다. 200만 명도 안 되는 유목민이 1억 인구를 150여 년에 걸쳐 통치하였던 것이다.

중세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목민이 이처럼 사상 초유의 대 제국을 건설하게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역사가는 유목민족 특유의 기동성과 잔혹함, 투지 등에서 그 대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 금나라나 호라즘 같은 대국을 공략하는 데 기동성과 투지만으로 충분했을까?

                          ▲ 말타기 경주에 참가한 몽골인들이 승마 기술을 겨루고 있다. /조선일보DB

 


이런 의문을 놓고 일부 연구가들은 원 제국 특유의 ‘역참제도’에 주목한다. 몽골제국의 정복자들은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사방 백리 간격으로 역참을 설치하여 정보 소통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렇게 설치된 수천 개의 역과 역은 광활한 대지를 하나의 그물코로 묶었다. 위대한 칸의 전령들은 역과 역 사이를 가장 빠른 말을 타고 달렸다. 그리하여 칸의 명령이나 보고사항을 신속하게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적보다 정보전에서 월등히 앞섰다는 논리다.

그런데 역참제도는 이미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에 이미 역참이 있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500개 이상의 역참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유독 몽골제국의 역참제도가 대제국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논리는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일까?

정답은 바로 역참의 운영원리 차이에 있었다. 고대 중국을 비롯한 농경국가의 역참은 중앙과 각 지방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거미줄 형태로 설치되었다. 그것은 중앙 집중 원리에 충실한 ‘선(線)의 체계’였다. 반면 몽골제국의 역참은 도로가 없는 초원과 사막에 바둑판처럼 설치된 ‘점(點)의 체계’로 구축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몽골제국의 역참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참 시스템은 전쟁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전달경로가 바뀌었다. 뜻밖의 장애물이 생겨도 피해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수신자가 이동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안 되었다. 거대한 네트워크 자체가 언제든지 이동 중이라는 전제에서 운영되었다.

상황 변화에 순발력 있게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은, 광대역을 촘촘한 점으로 얽어놓은 오늘날의 초고속 인터넷 망과 같은 원리로 운영되었다. 그러한 ‘프로토콜’ 방식의 역참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몽골제국은 이미 13세기에 정보화 혁명을 이루었다. 그리고 비약적으로 발달된 정보네트워크의 기반 위에 대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였던 것이다.

신석기 시대 농업혁명, 근대 산업혁명과 더불어 정보혁명을 인류의 세 번째 혁명이라고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보화 사회는 인류의 운명을 새로운 세계로 끌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빛의 속도로 정보가 전달되는, ‘동시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중세 몽골식 ‘점의 체계’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통신이 열어놓은 그 세계에서 말이다.

몽골제국의 프로토콜 정보망은 당시 중세인들에게 두 가지 의미를 가져왔다. 우선 그것을 지배한 초원의 정복자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줬다. 그리고 주변의 피정복민에게는 더 많은 ‘공포’를 전달해주었다. 그렇다면 거대한 세계체제(world system)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복자의 전리품’일까, 아니면 피정복민을 떨게 하는 ‘공포’일까?

이제 우리는 정보화 사회로 인하여 빚어지는 여러가지 철학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