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월 21일 국공내전에서의 패전이 임박하자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蔣介石)은 패배의 책임을 지고 일단 '하야'를 합니다. 공석이 된 총통직을 부총통 이종인(李宗仁)이 '대리'하게 되었지만, 장개석이 계속 국민당 총재직을 유지함으로서 실권은 여전히 장개석이 쥐고 있는 상황이었지요(국민당의 정부체제는 소련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당권우위의 체제였음). 이미 1948년부터 장개석은 패전을 예감하고 대만을 최후보루로 삼으려는 구상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948년 말 수도 남경(南京)의 공장시설들을 대만으로 운반하려 시도한 것 외에 하야 직후엔 장남 장경국(蔣經國)을 상해(上海)로 파견해 공군으로 하여금 신속히 비행장을 수리, 건설토록 독려하였습니다. 이 비행장을 통해 대만으로 공수한 것은 군대는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