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파병의 빛과 그림자 “평양성 탈환, 명군이 죽인 자의 절반은 조선인” 1593년 1월6일부터 벌어진 평양성 전투를 묘사한 그림. 이 전투에서 명군은 남병과 그들의 장기인 화포, 화기를 이용하여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조선은 일방적인 수세에서 벗어나 반격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국.. 전쟁...../임진왜란 2013.06.20
수군의 빛나는 전과 이순신, 멸망위기의 조선을 구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당시 이순신은 조선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준비된 장수’였다. 그는 임진년에 벌어진 해전에서 10전 10승을 거둠으로써 일본 수군의 서해 진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그의 위업 덕분에 멸망 직전까지 내몰렸던 조선은 부활의 실.. 전쟁...../임진왜란 2013.06.20
의병의 봉기 왕자 잡혀가자…“일본군의 심장을 구워먹었다” 대구 망우당 공원에 있는 곽재우의 상. 곽재우는 임진왜란 당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의 서진을 차단하여 궁극에는 전라도를 지켜내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신출귀몰한 작전을 통해 연승을 거둠으로써 당시 조선 사람들에.. 전쟁...../임진왜란 2013.06.20
명군 참전의 속내 충격적 평양성 참패…압록강을 사수하라 석성(石星): 임진왜란 당시 명의 병부상서 석성. 조선이 원병을 요청하여 명 조정에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조선에 군대를 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애첩이 조선인 역관 홍순언에게 입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석성의 마음.. 전쟁...../임진왜란 2013.06.20
선조의 의주 파천 경복궁에 불붙인 건 일본군이 아니었다 1593년 9월 선조가 내린 한글 교서이다. 일본군에게 잡혀간 조선 백성들에게 탈출하여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일본군에게 잡힌 것이 백성들의 본의가 아닌 이상 모두 용서하여 편히 살게 하겠다는 것, 일본군과 관련된 정보를 알아 오거나 .. 전쟁...../임진왜란 2013.06.20
일본의 침략 200년 만의 전쟁, 풍문만 듣고도 무너졌다 임진왜란 발발 직후 동래성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동래부 순절도(東萊府殉節圖). 숙종 연간에 그린 것을 1760년(영조 36) 변박이 다시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군이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하자 송상현.. 전쟁...../임진왜란 2013.06.20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 “나는 태양의 아들…조선의 국왕이여 알현하라” 선승(禪僧)처럼 그려져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를 만났던 조선 통신사 일행은 그의 모습이 볼품없었다고 폄하하면서도 그의 눈빛만큼은 아주 매서웠다고 평가한 바 있다. ‘태양의 아들’을 자처하면서 대륙 정복의 망상을 펼치려 .. 전쟁...../임진왜란 2013.06.20
전쟁의 불씨 뎃포 vs 무뎃포, 일본의 패권을 바꾸다 1575년 나가시노 전투 모습을 그린 병풍도. 화면의 중앙 왼편에 조총 부대를 배치한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이 장애물을 설치한 뒤 적을 응시하고 있다. 가운데 오른쪽의 다케다의 병력은 기마대가 돌격하는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 전쟁...../임진왜란 2013.06.20
한·일·중의 시선 왜구난동이냐, 조선정벌이냐, 항왜원조냐 이완용이 통감 이또 히로부미 앞에서 굴욕적으로 도장을 찍는 장면을 하늘에서 신공황후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내려다보고 있다. 임진왜란이 조선 침략과 병탄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근거로 부활하고 있는 장면이다. (한상일·한정선 저, 『.. 전쟁...../임진왜란 2013.06.20
조선 초기의 한일관계(2) 조선은 ‘외교의 힘’으로 왜구 막았지만… 19세기 초에 그려진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일부. 조선후기 조-일 교섭의 창구였던 동래에서 동래부사가 일본 사절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모습. 조선은 15세기 초, 왜구들을 평화적인 통교자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을 .. 전쟁...../임진왜란 201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