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전역의 패배는 그야말로 결정타였습니다. 해방군은 기동성과 화력에서 절대 열세였음에도, 장개석의 "절대사수"명령에다 내부의 첩자들로 인해 퇴로가 차단되어 국민당군은 조직적인 철수를 하지 못한채 대부분이 포위섬멸되었고 양자강 이남으로 철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극소수의 부대들과 패잔병들뿐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사실상 승패는 결정납니다. 국민당군은 200만명을 상실하여 양자강 이북의 모든 영역에서 소멸됩니다. 뿌리부터 와해직전에 놓이죠. 남은 병력은 서안과 사천에 주둔한 호종남의 30만명과 화중과 화남에 주둔한 백숭희군 60만명 등 100만정도에 불과했고 상해에서 신강까지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해방군은 대량의 포로를 고스란히 내편으로 편입시킴으로서 400만명으로 늘어나 숫적으로 완전히 압도합니다. 또한 많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