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속 승리학/중.월 전쟁 1950년대 이래 공산 진영의 맹주 소련과 중국은 노선 차이로 대립각을 세우며 잦은 충돌을 벌여 왔다. 75년 중국과 마주한 북베트남(월맹)이 인도차이나 공산화를 이뤄 내자 소련은 베트남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며 중국 고립을 획책했다. 중국은 거꾸로 미국과의 화해를 추진하고 캄..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패전속 승리학 / 포클랜드 전쟁 1976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아르헨티나는 계속된 경제 침체와 정치 불안으로 위기를 맞았다. 81년 대통령 직무대행에 취임한 갈티에리 중장은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같은 민족주의적 이벤트로 민심을 돌려놓을 기회를 모색했다. 이에 칠레와의 영토 분쟁과는 별도로 포클랜드..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패전속 승리학 / 브루네떼 전투 1936년 2월 스페인에는 범 좌익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됐다. 이에 반대하는 우익 진영이 7월 17일에 전직 참모총장 프랑코 장군 지휘 하에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다. 우파 반란군이 기선 장악에 실패하고, 좌파 공화군도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서 내전은 장기전으로 치달..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패전속 승리학 / 1차 체첸전쟁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함께 체첸공화국에도 민족주의 열풍이 몰아닥쳤다. 이곳은 예로부터 체첸인들이 오스만투르크와 제정 러시아를 상대로 끈질기게 저항하며 민족적 자긍심을 높여 온 지역이었다. 91년 10월 체첸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두다예프는 93년 독립을 선언하고 비 체첸..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패전속 승리학 / 할흐 강 전투 일본의 괴뢰국가 만주국은 1932년 건국 이래 몽골과 잦은 국경 분쟁에 시달렸다. 노몬한 일대의 국경선도 모호해 만주국은 할흐 강을, 몽골은 그 동쪽 약 20㎞에 위치한 구릉 지대를 국경으로 주장했다. 1939년 5월 11, 12일에 양측의 심화된 긴장은 국경수비대의 충돌로 이어졌다. 이에 후견..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패전속 승리학 / 봉천전투 러일전쟁은 대한제국이 끝내 일본의 마수에 넘어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한편으로 20세기 전쟁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는 의의도 매우 큰 전쟁이었다. 이 격렬했던 전쟁의 최고조에 벌어진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 바로 봉천(奉天)전투였다. 1905년 1월, 일본군은 뤼순을 ..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패전속 승리학 / 유틀란트 해전 독일은 20세기 초부터 영국의 해양 패권에 도전하고자 의욕적으로 함대 건설에 매진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엽인 1916년까지도 독일 해군은 18척의 전함을 확보, 33척의 전함을 가진 영국 해군에 비해 확연하게 열세였다. 1916년 5월 독일 해군은 히퍼의 순양전함대가 영국 선더랜드 ..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패전속 승리학 / 슈바르츠 토벌작전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1년 봄, 독일을 비롯한 추축 동맹국들은 전격적으로 유고슬라비아를 침공, 11일 만에 항복을 받아내고 영토를 분할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추축 동맹군 세력은 티토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계열 저항세력들의 조직적 테러에 시달리게 된다. 1943년 1월 독일군은..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근대전과 현대전의 교차선, 크림전쟁 나폴레옹 전쟁 이후 약 40년간 유럽은 큰 전쟁없이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다.... 이는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으로 너무도 참혹했던 전쟁을 동시에 경험한 유럽의 각 군주들이 도발을 자제한것이 이유. 그러나 문제는 다른곳에서 발생했다. 이미 나폴레옹 전쟁때부터 대규모 군대를 ..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
화학전의 시작 이프르전투 독가스가 발명되고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세기말 부터였다. 하지만 1899년 헤이그 조약에서 독가스 사용은 명확하게 금지되었다. 따라서 그 어떤 이유나 상황속에서도 독가스의 사용은 국제법 위반행위였다.] 하지만 1차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은 동쪽의 러시아와 서쪽의 프랑스로부.. 전쟁...../전쟁이야기 2013.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