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패전속 승리학 / 슈바르츠 토벌작전

구름위 2013. 9. 26. 13:36
728x90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인 1941년 봄, 독일을 비롯한 추축 동맹국들은 전격적으로 유고슬라비아를 침공, 11일 만에 항복을 받아내고 영토를 분할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추축 동맹군 세력은 티토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계열 저항세력들의 조직적 테러에 시달리게 된다.

1943년 1월 독일군은 이들 저항세력을 궤멸시키기 위해 9개 사단이 투입된 ‘바이스’(백색)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3단계에 걸친 작전은 마지막 단계에서 파르티잔 병력들이 네레트바 강을 넘어 몬테네그로 방향으로 포위망을 뚫으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파르티잔 전력은 1943년의 짧은 봄 동안 16개 여단 1만8000명 수준으로 회복됐다.

독일군은 북아프리카의 패배가 분명해지면서 연합군이 곧 그리스에 상륙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스 방어를 위해서는 발칸 반도 보급로의 안전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이에 독일은 저항세력에 다시 한번 결정타를 날리고자 즉시 토벌작전 ‘슈바르츠’(흑색) 작전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전례 없는 철저한 보안을 통해 12개 사단 12만7000명의 병력을 비밀리에 집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5월 15일 기습적으로 작전이 개시되자 티토와 파르티잔 지도부는 크게 당황했다. 추축 동맹군은 단 5일 만에 타라 강과 피바 강 사이의 두르미토르 산악지대에 걸쳐 포위망을 완성하고 서서히 조여들기 시작했다.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사단들의 맹공으로 티토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고, 파르티잔 병력들은 수체스카 강 방면으로 몰렸다.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적 공군의 끊임없는 폭격을 받으며 쫓기는 파르티잔 병력들은 전멸을 모면하기 위해 포위망을 뚫으려는 시도를 계속 벌였다. 포위망의 취약점을 찾기 위해 병력을 남북 2개 집단으로 분리한 파르티잔들은 4주에 걸친 치열한 산악전 결과 북서쪽 포위망을 담당한 118엽병(경보병)사단과 크로아티아인으로 편성된 369보병사단 전선에서 약점을 발견했다. 북부집단은 혈투 끝에 6월 10일 아침에 수체스카 강 전선에서 돌파구를 마련했고, 티토는 14일까지 이 좁은 탈출로를 따라 동부 보스니아로 퇴각했다.

반면 남부집단과 후비대로 묶여 있던 3개 여단과 중앙 야전병원의 2000여 명의 부상자는 탈출에 실패했고, 이들은 모두 몰살당했다. 이 작전에서 2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추축 동맹군에 비해 파르티잔 전력은 9000명에 이르는 심각한 전술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주도면밀했고 치열했던 이 작전에서도 저항세력 지도부와 핵심 전력이 생존함으로써 양측 모두에게 게릴라전의 핵심적인 시사점들이 도출됐다. 1943년 봄의 전투를 치러내며 파르티잔들은 포위망에 걸려들기 전에 효과적으로 이를 회피하는 경계체계와 돌파 전술을 체득했다.

독일군으로서도 저항 의지가 높은 대게릴라 작전에서 넓게 울타리를 치고 토끼몰이 식으로 벌이는 토벌 방식이 험준한 산악지대의 비정규전에서는 최선의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대게릴라전을 위해서는 입체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 것. 강대국들이 날로 격화되는 비정규전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슈바르츠 작전과 같은 발칸의 토벌작전들은 여전히 중요한 전례로서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