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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서울 한복판에서 능지처참형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과는 거리가 먼 잔혹한 형벌제도 서울 한복판에서 능지처참형 "너는 금부의 국문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아느냐?" 그 말 한 마디에 박 치의의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금부에서 국문이 시작되면 역모나 강도사건의 범인은 먼저 곤장을 쳐서 반죽음을 만든 다음 주리를 트는 것으로 이어진다. 두 다리를 한데 묶고 그 사이에 두 개의 주릿대를 넣어 비트는 방식이다. 그다음에는 커다란 태로 사정없이 등을 두들기는 태배형이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판자 위에 날카로운 사기조각을 얹고 그 위에 무릎을 끓게 한 다음 다시 그 위에 판자를 깔아 무거운 바위덩어리를 올려 굴리다가 다시 나장 여러 명이 올라가 흔들어 대는 압슬형, 나중에는 죄인을 여러 명 묶어 놓고 여러 명이 장으로 아무 곳이나 마구 때리는 난장..

14.정조 암살미수사건(1777년)

정조 암살미수사건(1777년) 즉위하기 전에 정순왕후와 숙의 문씨 등의 왕실세력과 홍인한.정후겸 등의 척신 세력으로부터 여러 차례 곤란을 겪었던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이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감행하였다. 홍인한과 정후겸을 귀양보내고, 문숙의의 착호를 삭탈하고 사저로 쫓아냈다. 그리고 문숙의의 동생 문성국과 그의 어미를 노비로 만들었다. 대비인 정순왕후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동생 김구주 일파를 숙청하였다. 뿐만 아니라 척신들과 결탁하여 부당하게 정치에 끼어든 환관들도 대대적으로 개편하였다. 정조의 이러한 조치는 그와 반대편에 있었던 여러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였다.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가담하고 세손으로 있던 정조를 핍박했던 이들은 특히 그러하였다. 이들로서는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

13.끊임없이 이어진 역모와 반역

인조반정(1623년) 1623년(인조 1년)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 종(후의 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이다.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당론의 폐해를 통감하고 이를 초월하여 좋은 정치를 해보려고 애썼으나, 자신이 대북파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당론을 초월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원익·이항복·이덕형 등 명망 높은 인사를 조정의 요직에 앉혀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였으나, 이이첨·정인홍 등 대북파의 무고로 친형 임해군과 이모제 영창대군을 죽였으며, 또 계모인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패륜을 자행하였다. 이와 같이 광해군의 실정이 계속되어 기강이 문란해지자 서인 이귀 · 김자점 · 김류 · 이괄 등은 반정을 모의, 1623년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모든 계..

12.조선의 대표적인 반역, 반정을 살펴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이징옥의 난(1453년) 이징옥(?∼1453)의 본관은 양산으로, 중추원지사 전생의 아들이다. 어렸을 때 호랑이를 산 채로 잡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용감하였다. 세종 초에는 김종서를 따라 북변에 종군하여 1424년에는 경원진 첨절제사가 되어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1436년 회령부판사로서 여진족의 추장을 살해하였으며, 이 해 경흥도호부판사에 올랐다. 1449년 중추원지사로 승진하였으며, 1450년 세종 때 북방 6진 개척에 크게 공헌했다 하여 김종서의 후임으로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었다. 그런데 1453년 정권을 획득한 세조가 이징옥이 김종서계의 인물임을 꺼려서 이징옥을 파직하고 그 후임에 박호문을 임명, 함길도에 보냈다. 이징옥은 박호문에게 자리를 인계하고 호위병력 약간을 거느리고 서울로 가는 ..

11.끊임없이 이어진 역모와 반역

끊임없이 이어진 역모와 반역 조선의 대표적인 반역, 반정을 살펴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1차 왕자의 난(1392년) 태조 재임 시절 1차 왕자의 난은 1392년 8월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왕자들 간의 싸움으로 '방석의 난', '정도전의 난', '무인정사의 난'으로도 불린다. 이 난은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정도전 일파를 방원 일파가 타도하고 권력을 차지한 사건이지만 이복 형제간의 왕위 쟁탈전을 위한 골육상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시발점으로 조선은 오백년 내내 끊임없이 반정과 반역이 일어났고 주도자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형벌로 3족을 멸하는 등 대명률을 따른 형벌로 좁은 나라에서 잔혹하기 그지없는 형벌로 다스렸다. 그것은 어쩌면 이성계 자신이 쿠테타로 고려 왕실을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점에서 도덕성..

10.동학군의 요구 12개 조항에 담긴 조선의 실체

역모로 시작해서 역모로 끝난 조선 오백 년 동학군의 요구 12개 조항에 담긴 조선의 실체 조선에서 역모사건으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온 것은 선조 때의 정여립 사건이고 광해군 때 영창대군 역모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조작된 사건이었다. 영의정 정철은 정여립 사건을 지휘하여 실질적으로 반대파 동인 1천여 명을 처단했다. 선조는 한참 세월이 지나서야 "내가 정철에게 속았구나"라며 한탄했다. 영창대군 사건 때는 궁 안팎에서 무차별적으로 관련자들이 끌려가고 고문을 받고 옥에 가둘 공간이 없어 죄상이 좀 작은 자들은 석방시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노비들도 고문당하고 여자도 아니도 노인도 고문당하여 매일 죽어나가는 사람이 즐비했고 철물거리에는 나마다 끔직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여립은 지금 뛰어난 사상가로 추..

9.역모로 시작해서 역모로 끝난 조선 오백 년(1)

역모로 시작해서 역모로 끝난 조선 오백 년 1천 회가 넘는 역모 고변 조선을 거론할 때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많은 역모사건이다. 왕을 몰아내고 새 정권을 수립해야겠다는 무력 음모가 역모인데, 우리 현대사에서도 군부 쿠테타가 두 번이나 있었으니 조선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백 년을 이어 이렇게 줄줄이 역모가 발생했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흔했던 것이 아니다. '워낙 왕이 황음무도해서'라는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복수심에서, 권력에서 밀려난 무리들이 일으킨 반정이 대부분이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은 권력에서 밀렸고 핍박받던 서인들이 반격을 한 것이며 반란의 명분이 망해가던 명나라에 대한 사대대명주의 하나뿐 다른 ..

노비..가격

우리 나라의 전통 사회는 곧 신분제 사회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각기 다른 사회적 특권과 제약을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신분 계층이 상하로 연결되어 신분의 위계 체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구조는 크게 보아 귀족·양인·천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천인의 대표적 존재가 노비였다. 고대의 노비 우리 나라의 노비제가 어느 때부터 존재했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고조선의 법률에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집의 노비로 삼는다.”고 하였으며, 부여의 법률에 “살인자의 가족은 노비로 삼는다.”고 했다. 또한, 20년경 중국 사람 1,500명이 한지(韓地)에 벌목하러 왔다가 잡혀서 노비가 되었다는 기록도 전한다. 이것으로 볼 때 원시공동체 사회가 해체되면서, 특히 철기 문화의 전래로 생산력의 증대, 정치 권력의 심화와 함께..

8.진상품 : 말, 황금안장, 종이...처녀, 고자

진상품 : 말, 황금안장, 종이...처녀, 고자 시간이 좀 지나면서 중국으로 보내는 사절들이 점차 관행화되었다. 사절단의 행차는 정사, 부사, 서장관, 종사관, 통사, 위원 등 관속 40여 명 외에 수행하는 비장, 역관 등 수십 명이 따르고 그 외에 가마꾼, 마부, 군졸 등 하속이 있어야 하니 전체 규모는 수백 명이나 되었다. 정기적으로 매년 4번씩 가고 그 외에 제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어서 연중 쉬지 않고 가지만 가장 인기가 없는 것이 동지 사절단이었다. 동짓날 전후 간다고 해서 동지 사절단인데 날씨가 추워 서로 가지 않으려 했다. 공물로는 조선의 특산물인 인삼, 호피, 수달피, 화문석, 종이, 모시, 명주, 금 등을 가져가고 중국에서도 약간의 답례품을 주기 때문에 오고가는 깅이 모두 번잡하기 짝이..

7.오백 년간 정신마저 철두철미하게 중국의 식민지

오백 년간 정신마저 철두철미하게 중국의 식민지 중국이 끌고간 공녀들에 대한 침묵 일제는 우리나라를 36년간 식민지로 삼았다. 거기에 대한 연구는 엄청나게 많다. 지금도 일제 36년의 영향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이고 일제가 만들어 놓은 역사 왜곡이라든지 정치, 사회 등 각 부분에서도 많은 일제 잔존 관습들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런데 순서가 좀 뒤바뀐 것이 하나 있다. 36년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친일청산 작업도 실시되었고 친일파 명단이나 사전도 만들고 극일을 위해 집념을 가지고 매달리면서도 오백 년 동안 실질적으로 조선을 지배했던 중국에 대해서는 한마디 비판도 없고 연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끌고간 정신대 여성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비분강개하면서도 중국이 오백 년 동안 끌고간 수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