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 27

100년전의 한국에 가다 20,21-일본, 대한제국을 단돈 3000만엔에 사들이다..‘병탄’ 주역들의 행로

20. 일본, 대한제국을 단돈 3000만엔에 사들이다 한상일 | 최종편집 2009.12.23 00:02:36 20. 이토의 죽음과 병탄단행 한국병탄을 위해 일본 정부가 기다리던 ‘적당한 시기’가 드디어 도래했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Harbin)에서의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토가 강조하..

100년전의 한국에 가다 17,18,19..송병준, 일본 수상과 '한국 병합' 가격 흥정..한국병탄에 투입된 경비는 3천만원뿐

17. 송병준, 일본 수상과 '한국 병합' 가격 흥정 한상일 | 최종편집 2009.11.25 13:14:17 17. 우치다 료헤이와 '反이토' 캠페인 일본 정계-언론계 "특단조치 필요한 시기 다가온다" 헤이그 사건이후 일본에서도 통감부의 유화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졌다. 겐요샤(玄洋社)나 고쿠류카이(黑龍..

100년전의 한국에 가다 13,14,15,16-왜놈정부가 꾸민 '천벌 받을 짓'..행정-사법권 장악, 군대 해체까지.."주권 완전 상실"

13. 병탄의 건널목 (1) 고종의 양위 한상일 | 최종편집 2009.10.31 06:56:07 일본 강경론자들, 이토의 점진정책 비판 을사강제조약이 병탄을 위한 구체적 행동의 첫 단계였다면, 고종의 양위와 이어서 강제로 조인된 정미7조약은 병탄의 기반을 완수한 단계라 할 수 있다. 이토는 통감으로 부임한..

100년전의 한국에 가다 9,10,11,12-'통감'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병탄의 주구 '일진회'

9. '통감' 이토 히로부미 한상일 | 최종편집 2009.09.29 10:00:28 한국 왕래 22차례..통감직 3년반 1906년 2월 1일 한국통감부가 문을 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2월 20일 도쿄를 출발하여 이세(伊勢)신궁을 참배하고, 28일 시모노세키에서 군함[和泉]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3월 1일 부산에 도착하여 ..

100년전의 한국에 가다 4,5,6,7,8-정한론과 병탄의 첨병들 그리고 매국노..을사강제조약

4. 병탄의 첨병(A) 한상일 | 최종편집 2009.09.11 16:20:04 "국내의 패배를 대륙 웅비로 풀자" A. 대륙낭인(大陸浪人)과 한국 정한론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서남전쟁(1877)에 참여했으나 패배했다. 그러나 그 패배가 그들이 품고 있는 한반도 지배와 대륙웅비의 꿈까지 빼앗아 가지는 못했다. ..

100년전의 한국에 가다 1,2,3..정한론-‘병탄’ 프로젝트의 출발점

1. '잠자는 나라'의 운명 한상일 | 최종편집 2009.08.27 10:17:22 연재를 시작하면서 8월은 우리 민족사에 뜻 깊은 달이다. 해방과 망국(亡國)이 8월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방의 날을 늘 기리고 있다. 그러나 망국의 날은 기억조차 잘 못하고 있다. 지난날의 아픔을 다시 들추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