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명 정원 빅토리호 1만4000명 태우고 ‘기적의 탈출’
- <24> 흥남철수작전과 그 후
군인·피난민 20만여 명 흥남부두로
강추위 뚫고 지상최대의 철수작전
“우린 걸어갈 테니 피난민 태워달라”
1군단장 김백일 장군 간곡한 부탁
이틀 항해 동안 아기 5명 태어나
1955년 라루 선장에게 을지무공훈장
1950년 12월 19일 피난민들이 남한으로 피난하기 위해 미 해군 수송선 LST로 들어가고 있다. 부두에는 탄약 등 장비가 그대로 쌓여 있다. |
흥남철수작전은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1일)의 연장선에서
진행됐다. 장진호 전투는 미 10군단 예하 1해병사단이 1950년 10월 26일 원산에 상륙,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江界)를 점령하기 위해
11월 16일 함경남도 개마고원 밑에 있는 장진호 남쪽 하갈우리를 점령하고, 서북 방향으로 북진해 11월 27일 유담리까지 진출했을 때, 중공군
9병단 예하 12개 사단의 기습공격을 받고 그중 7개 사단이 미 해병사단을 포위해오자 시행한 대탈출작전을 말한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에 폭설까지 겹쳐 동상으로 죽은 병사가 전투로 죽은 수보다 많았다. 그러나 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공중으로 탈출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을 통해 탈출을 시도한 끝에 부대를 함흥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킬 수 있었다. 철수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미
10군단을 비롯해 국군3사단, 수도사단 등 10만여 명이 포위망에서 벗어났고, 유엔군 철수계획에 따라 해로를 통해 부산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극적인 철수작전
유엔군이 철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유를 찾아
나선 피난민이 순식간에 흥남부두로 몰려들었다. 군인 10만5000명, 피난민 10만 명 등 모두 20만5000명이 몰린 흥남부두는 통제 불가능
상태였다. 이들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7함대가 동원되고 항공모함 7척, 전함 1척, 순양함 2척, 구축함 7척, 로켓포함 3척 등 해·공군
화력이 집중 지원돼 중공군의 접근을 제압한 가운데 철수가 이뤄졌다.
12월 12일부터 시작된 철군 규모는 미군과 국군병력
10만5000명, 차량 1만7000여 대, 군수품 35만 톤이었다.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지상 최대의 철수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은 난감했다. 철수에 사용될 배 125척을 지원받았으나 피난민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배가 모자라 아몬드 장군이 고민하고 있을 때,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은 한국군은 중공군과 싸우며 걸어갈 테니 피난민을 모두
태워달라고 부탁했고, 통역관 현봉학(玄鳳學) 박사도 아몬드 장군에게 애원했다. 12월 23일, 피난민 구조를 위한 배는 7600톤급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1척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레너드 라루 선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정원은 60명인데 승무원 48명이 타고 있었다. 화물을
다 내려놔도 2500명 이상은 탈 수 없는데 부두에는 아직도 수많은 인파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봉학 박사는 한
사람이라도 더 태워야 한다고 설득했고 선장은 결심했다. 모든 화물을 바다에 던지고 피난민도 몸만 태웠다. 남자들은 앉지 못하게 하고 모두 서서
가도록 했다. 그리하여 최대 인원 1만4000명을 태웠다. 이틀간 항해하는 동안에 배 안에서 기적이 또 일어났다. 신생아 5명이 태어난 것이다.
미군들은 아기 이름을 김치1, 2, 3, 4, 5로 지었다.
항해 중인 미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SS Meredith Victory) 호. |
빅토리호 라루 선장, 신부로 변신
이 기적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배에서
태어난 다섯 아기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또 빅토리호와 라루 선장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전쟁과 역사’라는 책을
쓰면서 두 가지 사실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그 결과 김치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한국에, 둘은 미국 LA에 살고 두 사람은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김치 5’ 이경필(66) 씨는 지금 거제 장승포에서 애완용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너는
피난길에 미군 배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흥남철수를 잘 알고 있고, 학생들에게 6·25의 참상을 강의하며 지낸다. 아버지
이석호 씨는 피난 후 거제에 정착해 평화사진관을 차렸고 어머니는 부둣가에서 평화상회를 운영했다. 이경필 씨도 병원 이름을 평화가축병원이라고
지었다. 전쟁의 상처를 씻고 이 땅에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그는 지금 (사)흥남철수작전 기념사업회 거제지회장을 맡고
있다.
한편 거제도에서 피난민을 하선시킨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는 일단 미국 시애틀로 철수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1955년 12월 라루 선장을 찾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고, 승무원 전원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미국 정부에서는 1960년
8월 메리디스 빅토리호를 역사상 가장 인도적인 구출작전을 한 ‘기적의 배’로 선포하고 ‘용감한 배(Gallant Ship)’라고 이름 붙였다.
이 배는 베트남전에도 참전(1966년 10월)하고 71년 3월 퇴역했다.
그후 1993년 8월 첸코 인터내셔널사에 고철용으로
매각됐고, 중국으로 예인돼 10월 해체됐다. 7600톤의 작은 배에 1만4000명을 태운 기적은 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한편 흥남에서 탁월한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해 피난민 1만4000명을 구한 라루 선장은 빅토리호에서 임무를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살았다. 가톨릭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가 된 것이다. 그는 수사가 된 후 47년 동안 세상 밖으로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2001년 10월 14일 87세로 생을 마쳤다.
'전쟁..... > 한국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년간 협상 ‘지지부진’… 美, 군사비 4배로 늘어나 (0) | 2017.01.07 |
---|---|
자유 수호, 178만 美영웅 ‘숭고한 헌신’ (0) | 2017.01.07 |
펜 대신 총’ 든 영웅들 “조국 수호” 외치며 포화 속으로 (0) | 2017.01.07 |
함락-탈환-함락-탈환…11일 대혈투 끝 대역전승 (0) | 2017.01.07 |
더 밀리면 끝”… 피로 지켜낸 240㎞ ‘워커라인’ (0) | 2017.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