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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출신 유성철 작전국장 “남침 신호탄 내가 쐈다”

구름위 2017. 1. 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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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출신 유성철 작전국장 “남침 신호탄 내가 쐈다”

<5> 남침 공격 신호, 누가?

 고향친구 만나 술 마시다 비밀 털어놔

유, 소련서 출생·교육받은 고려인 3세

김일성 통역 담당하며 남침 계획 관여

휴전 후 숙청 피해 1956년 소련 망명

 

 

기사사진과 설명

6·25전쟁 초기 서울을 침략하는 북한군.


6·25전쟁사를 연구하다 보면 의문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확한 남침시간’은 과연 몇 시며, 또한 당일 최초 공격명령을 내린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남침시간은 지난 회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의문이 풀렸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남침공격 신호’를 알리는 신호탄을 쏜 사람도 증언을 통해서 알게 됐다. 바로 소련군 출신 고려인으로서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특채된 유성철(兪成哲) 중장이다.

그는 소련에서 출생·성장하고 교육받은 고려인 3세로 러시아어에 능통하고 소련군 정찰학교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고위 정보장교였다. 1945년 9월 19일 김일성과 함께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입국해 인민군 창설을 도왔고, 소련 군사고문단에서 남침계획을 수립할 때도 깊이 관여했다. 또 김일성이 만주에서 소련으로 도망해 소련군 제88여단에 들어가 정보교육을 받을 때, 김일성의 통역을 맡아 함께 군 생활을 한 동지였다. 김일성과 친분이 두터웠던 인연도 있었지만, 특히 소련 군사고문단의 통역을 맡아 김일성에게 보고하는 중책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작전국장에 특채됐다.

한편 이보다 먼저 북한에 들어와 김일성 정권 수립에 협조했던 정상진(鄭尙進·91)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소련 태평양함대 소속 ‘정찰부대원’이었는데, 1945년 일본이 패망한 뒤 ‘북한 정권 수립을 도우라’는 명을 받고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들어와 처음에는 원산시 공산당에서 일하다가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이라는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다.

정씨는 “북한 정권 수립 과정과 6·25전쟁 때 고려인이 깊숙이 개입돼 있었다”면서 “고려인 500여 명이 6·25전쟁에 참가했고, 남침 신호를 알리는 신호탄을 쏜 사람도 당시 소련군 소속 고려인 유성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이라고 증언했다.(2009. 6. 20. 조선일보)

정씨와 유성철은 러시아의 연해주에서 함께 자란 고향 친구로 유성철은 정보장교로 입대해 고위직까지 올라갔고, 정씨는 해병대에 들어가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6·25전쟁을 계기로 북한에 들어와 만나게 된 사연을 갖고 있었다. 정씨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1952년에 문화선전성 제1부상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고위직에 있는 사람도 남침 사실을 모르고 6·25전쟁이 북침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씨는 원산에서 김일성을 영접할 때 함께 들어온 유성철이 평양 군부의 고위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오래간만에 친구 유성철을 만나기 위해 총참모부로 찾아갔다. 유성철은 반가워하며 정씨를 평양 시내 술집으로 데리고 가서 둘이 앉아서 술을 마시는데, 불쑥 그가 “이거 처음 하는 말인데 절대 비밀이야” 하면서 “전쟁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 시작한 거야! 공격 신호도 내가 쐈어!”라고 했다. 정씨는 그때 비로소 진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처럼 김일성은 남침계획을 세우면서 고위 측근에게조차 철저하게 숨기고 비밀을 지켰다.

유성철은 김일성의 집권과 남침을 곁에서 도와준 은인이다. 그러나 김일성은 남침에 실패한 후, 소련파들을 차례로 숙청했다. 토사구팽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더욱 심했다. 1956년 유성철은 소련의 도움으로 소련으로 망명해 타슈켄트에 살다가 1995년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북한군의 서울 점령은 28일이지만 이보다 하루 전인 27일 저녁에 이미 서울 진입이 이뤄졌고 그날 저녁 중앙청에서 고위급 만찬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증언했다.

한편 유성철은 김일성과 88여단에서 함께 생활한 인연으로 누구보다 김일성의 사생활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聖柱)고, 첫아들 김정일은 소련에서 낳았으며, 본처 김정숙은 빨치산 시절부터 함께 지낸 동지였다는 것 등이다. 따라서 오늘날 북한에서 백두혈통을 강조하며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난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최근 북한은 제7차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5차 핵실험을 준비하면서 내부 결속과 김정은 우상화에 열을 올린 바 있다. 집권 5년 차를 맞은 김정은은 절대 권력자로 행세하고 있으나 핵 개발로 유엔의 제재를 받으면서 주민생활이 더 궁핍해지자 “먹이지도 못하면서 핵은 무슨 핵인가!”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스로 무너질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한편 정씨는 김일성이 원산항을 통해 입국하는 장면을 재미있게 증언해주었다. 즉 소련군 정치부의 요청을 받고 자기가 직접 원산시 공산당 간부들과 함께 영접하러 나갔는데, 김일성은 배에서 내리면서 영접 나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며 첫인사를 나눴다. 그때 김은 “김성주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 함께 온 다른 10여 명의 사람도 인사를 나누며 배에서 내렸는데 김일성이란 사람은 없었다.

정씨가 정치부에 ‘김일성’이란 자는 없다고 보고하자 ‘김성주’가 있더냐고 물었다. ‘있다’고 했더니 바로 그자가 ‘김일성’이라는 거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매우 놀랐다고 한다.

김일성 장군은 60∼70대 노인인 줄 알았는데 33살밖에 안 된 붉은 군대의 카피탄(대위) 계급장을 단 젊은 장교가 김일성이라니…. 이때 정씨는 ‘김일성은 가짜’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