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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① 석유 가격에 숨겨진 비밀 ② 석유 시대의 종말?!

구름위 2015. 10. 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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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19세기 초와 20세기 초에 비견할 만한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질 ‘대전환의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21세기 거대한 전환을 이끌 새로운 에너지, 고도의 기술 문명과 지구 환경 모두를 뒷받침해주는 에너지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그 답을 과학과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프레시안》의 과학·환경 담당 기자인 강양구 기자의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이 7월 23일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석유 고갈, 기후 변화, 핵 발전, 재생 에너지 등의 에너지 문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가진 에너지 문제에 대한 여러 오해와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값싼 석유 시대?


다시 값싼 석유 시대가 온 것일까? 국제 석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미국 서부 텍사스유(WTI, West Texas Intermediate)의 가격만 놓고 보면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지난 10년간의 가격 변동 추이를 살폈더니 유가는 2008년 7월 14일에 배럴당 145.16달러로 정점을 찍고서 2015년 7월 22일 현재 50.36달러까지 떨어졌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일이 유가를 예측하는 일이다. 더 바보 같은 일은 하루에도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이런 유가의 변화를 놓고서 에너지 정책을 설계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석유는 에너지 자원이기도 하지만, 시장에서 사고파는, 심지어 투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10년간의 석유 가격 변화(WTI 기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2008년 7월에 정점을 찍었던 유가는 불과 6개월 만인 2009년 2월 16일 35.38달러로 하락했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을 할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에 맞먹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자산 가치가 곤두박질쳤고, 석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나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시장에 엄청난 규모의 돈을 푸는 등 위기를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유가는 2년 만에 다시 113.93달러(2011년 4월 29일)까지 치솟았다. 그러다 4년 만에 다시 43.46달러로 떨어졌다(2015년 3월 17일). 이처럼 석유 가격은 여러 이유로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단순히 석유가 싸졌다고 해서 앞으로도 에너지 자원으로서 석유를 둘러싼 사정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단견이다. 석유가 ‘유한한’ 지하자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결국 석유는 언젠가는 고갈되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석유 시대의 종말’을 얘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skeeze/pixabay



 


석유인 듯 석유 아닌 석유


기왕 유가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 몇 년간 뉴스의 중심에 선 ‘셰일 오일’ 얘기도 해 보자. 왜냐하면, 셰일 오일 즉 셰일 석유야말로 유가가 만들어 낸 석유이기 때문이다. 사실 셰일 오일 혹은 셰일 가스는 새로운 게 아니다. 예전에도 퇴적암의 한 종류인 혈암, 즉 셰일(shale) 안에 석유나 천연가스가 포함된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도무지 수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석유나 천연가스를 캐내는 과정은 매장 지역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 시작한다. 석유나 천연가스는 땅속에 고여 있는 동안 높은 압력을 받았던 터라서, 이렇게 구멍을 뚫어 주기만 해도 지상으로 치솟기 마련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2008년)는 이런 석유 시추 과정을 인상적으로 보여 준다. 아들과 함께 미국 서부를 돌아다니며 금을 캐는 광부인 대니얼 플레인뷰(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우물처럼 판 구덩이에서 석유가 솟아나는 행운을 겪는다. 땅으로부터 솟는 석유는 영화 제목에서 말했듯, ‘검은 피’처럼 보인다.

그런데 셰일에 포함된 석유나 가스는 달랐다. 이들은 한곳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셰일에서 석유나 가스를 캐려면 시추공을 수 킬로미터 깊이로 뚫고 들어가 셰일을 깨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새어 나오는 석유나 가스를 다시 지상으로 뽑아 올리는 복잡한 작업이 뒤따른다.

당연히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려면 많은 돈과 더 중요한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유가가 쌀 때는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를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유가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셰일에서 석유나 가스를 비싸게 캐내도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절묘하게도 1998년에 미국의 조지 미첼이 셰일에 포함된 석유나 가스를 캐내는 수압 파쇄법(hydraulic fracking)을 고안했다. 이 방법은 셰일 층까지 구멍을 뚫고서 모래와 화학 물질이 첨가된 물을 높은 압력으로 분사해 셰일 암반을 깨트린 다음에 그 안에 갇힌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이 방법을 통해서 2000년대 중반부터, 그러니까 유가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하자 미국이 주도적으로 셰일에서 가스, 그리고 나중엔 석유를 뽑아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셰일 쇼크’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유가가 하락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경제 공황이었다면, 최근의 유가 하락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셰일 쇼크다. 석유 먹는 하마인 미국이 생산한 셰일 오일이 산유국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하던 석유를 대체하면서,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이 늘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석유 가격 변화에 국운이 달린 중동의 산유국들이 이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셰일 쇼크에 놀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가격 하락을 무릅쓰고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중이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위축된 데다, 셰일 석유 때문에 가뜩이나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이 늘어난 마당에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유가 하락을 무릅쓰고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석유 가격을 떨어뜨려야 다시 셰일 오일이 수지가 안 맞는 골칫거리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 통화 기금(IMF)이나 한국은행 등의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의 유가 급락을 놓고서 미국 등의 비전통적인 원유 생산 증가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의 시장 점유율 확보 전략에 따른 공급 요인의 영향이 크다고 평가한다.


에너지 팁팁(TipTip)

☞ 유가, 떨어지는 게 좋을까?

여기서 유가와 경제 사이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자. 최근 세계 경제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환율 전쟁이다. 금리 인하 등의 방법을 통해서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핸드폰이나 자동차 같은 수출 상품의 국제 가격이 떨어져서 중국산이나 독일산과의 시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대신에) 수입 상품의 가격은 오른다. 우리나라처럼 원자재의 상당 부분, 심지어 먹을거리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나라로서는 상당히 곤란한 일이다. 최근의 유가 하락은 바로 이런 부분을 상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즉 최근의 낮은 유가가 환율 전쟁을 받쳐 주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석유 가격이 떨어지면서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석유로 경제를 지탱하던 나라들이 휘청대고 있다. 이 나라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중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만약 이들의 경제가 무너진다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계 경제가 또 한 차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셰일 오일 채굴 설비  Joshua Doubek/wikipedia


 


 

 


셰일 오일의 미래


그렇다면, 셰일 오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저유가로 셰일 오일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사실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2015년 6월 2일)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 미국 내 석유 굴착 시설의 개수는 646곳으로, 지난해 말 1536곳에 비해 58퍼센트가 감소했다.

석유 수출국 기구(OPEC) 12개 회원국은 2015년 6월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현재 하루 3000만 배럴의 생산량을 다음 회의가 열리는 오는 2015년 12월 4일까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저유가를 좀 더 용인하더라도, 이참에 미국 셰일 오일을 더욱더 압박해 석유 시장에서 중동 산유국의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압박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채굴 기술이 배럴당 생산 원가를 낮춘 탓에 중동 산유국과 미국 사이의 ‘유가 전쟁’의 승부는 쉽게 가려지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의 셰일 오일 채굴 건수는 급감했지만 생산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미국 원유 생산량은 5월 중순 기준으로 하루 960만 배럴로 197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오히려 셰일 오일의 문제는 따로 있다. 우선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수 킬로미터 지하에 산, 방부제, 겔화제, 마찰 감소제 등의 화학 물질을 섞은 엄청난 양의 물을 분사하는 과정에서 지하수 오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채굴에 필요한 물, 화학 물질을 운반하는 수많은 트럭이 배출하는 오염 물질을 놓고도 지역 사회의 원성이 자자하다. 교통 혼잡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지진 유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온실 기체 배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셰일에서 석유나 가스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함께 나오는 탄화수소가 대기 중의 온실 기체의 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며 온실 기체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다른 쪽에서는 땅 속에 갇혀 있던 온실 기체를 대기 중으로 내놓는 상황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수압 파쇄법의 주인공인 물의 부족이다. 수압 파쇄법을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시추공 1개에 물 1400만 톤이 들어가는데, 이는 인구 5만 명의 1일 물 소비량과 맞먹는다. 미국 서부나 중국 서부처럼 식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할 물도 부족한 곳에서 석유나 가스를 캐내는 데 과연 이렇게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셰일 오일과 같이 언급되는 오일 샌드(타르 오일)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캐나다 중서부 앨버타 주에서 나오는 오일 샌드는 말 그대로 석유가 끈적끈적 묻어 있는 모래다. 오일 샌드도 유가가 쌀 때는 거들떠보는 이들이 없었다. 모래를 씻어서 석유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돈, 즉 에너지가 들 뿐만 아니라, 부산물로 나오는 오염된 물이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가 오르면서 1875년에 발견되고 나서 거의 100년 넘게 잊혔던 이 오일 샌드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모래에서 뽑아낸 비싼 석유로도 이문을 낳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2008년까지 유가가 한창 오를 때, 캐나다에 돈이 돌았던 것도 바로 이 모래 속에 숨은 석유인 듯 석유 아닌 석유 때문이었다. (전 세계 오일 샌드의 3분의 2가 캐나다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셰일 오일이나 오일 샌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사실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 그리고 오일 샌드는 에너지로서의 가치만 놓고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석유 1리터를 생산하는 데 석유 2리터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든다면 그것이 에너지로서의 의미가 있을까? 셰일 오일, 셰일 가스, 그리고 오일 샌드가 과연 투입된 만큼의 에너지 이상의 가치를 가질까?

물론 이런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캘 수 있는 석유나 가스를 가진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는 횡재한 셈이다. 앞으로 얘기할 석유 고갈 사태가 실제로 닥치더라도 당장은 석유 시대를 지탱할 수 있는 자원이 땅 밑에 비축되어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결국 셰일 오일이나 오일 샌드는 석유 고갈 시대를 대비하는 비상용 자원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곰곰이 따져볼 일이 있다. 애초 환경 규제를 느슨하게 함으로써 셰일 쇼크를 가능케 했던 미국 정부가 새삼 수압 파쇄법의 환경 오염을 언급하고 나섰다. 이런 움직임이 환경 오염에 대한 걱정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오히려 국내의 셰일 오일이나 셰일 가스를 비축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값싼 석유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비상용 자원을 낭비할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PublicDomainPictures/pixabay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2편 「석유 시대의 종말?!」로 이어집니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② 석유 시대의 종말?!

최근 로열 더치 셸의 북극 석유 시추를 반대하는 환경 캠페인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로 손꼽히는 북극마저 파괴해야 할 정도로 석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일까요? 사실 석유 고갈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20세기 초반부터 계속 있었지만,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이 모두 증가하면서 석유 시대의 종말을 둘러싼 낙관론과 비관론의 열띤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21세기 ‘대전환의 시대’에 중요한 화두인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프레시안》의 과학·환경 담당 기자인 강양구 기자와 함께 이야기하는 연재 게시물입니다. 지난 시간의 「석유 가격에 숨겨진 비밀」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석유 고갈론을 둘러싼 독자 여러분의 궁금증과 오해를 말끔히 풀어 주고, 석유 없는 미래에 대한 엇갈리는 전망들을 꼼꼼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과학과 함께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해 한 번 고민해 보는 알찬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왜 석유 고갈 시대를 걱정하는가?


이제 다시 석유 고갈 문제로 돌아가 보자. 석유 고갈 문제가 나올 때마다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가 ‘피크 오일(Peak Oil)’이다. 우선 이 용어의 의미부터 정확히 알아보자.

맥주 한 병에 약 1000억 배럴의 석유를 채운다고 가정하자. 1000억 배럴의 석유는 2014년 말 기준으로 러시아(1032억 배럴), 쿠웨이트(1015억 배럴), 아랍에미리트(978억 배럴)의 매장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영국 석유 회사인 BP(British Petroleum)의 2015년 6월 「세계 에너지 통계 보고서(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를 보면, 이들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로 석유 매장량이 많다.

이렇게 1000억 배럴의 석유가 담긴 맥주가 애초 냉장고에 스물세 병(2조 3000억 배럴)이 있었다. 지난 100년간 우리는 이 스물세 병 가운데 이미 열한 병(1조 1000억 배럴)을 비웠고, 지금 한창 열두 병째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이제 냉장고에는 열한 병이 남아 있다. 이렇게 마셔 버린 맥주가 남아 있는 맥주보다 많아지는 시점이 바로 피크 오일, 즉 석유 생산 정점이다.

그러니 피크 오일은 석유 고갈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열두 병째 맥주를 다 마셔도 냉장고에는 여전히 열한 병의 맥주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석유 생산 정점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의 셸 알레크렛 교수가 2007년 인터뷰 도중에 직접 들려준 것이다. 당시 알레크렛 교수는 맥주 대신 샴페인을 비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왜 석유 고갈 사태를 걱정하는 이들은 목소리를 높여서 피크 오일 타령을 하는 걸까? 이유가 있다.

우선 인류는 놀랍도록 빠르게 석유 1000억 배럴이 든 맥주 한 병을 마셔 버릴 수 있다. 한 해 동안 전 세계가 소비하는 석유량은 현재 기준으로 약 300억 배럴 정도다. 러시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에 매장된 석유는 불과 3년 남짓이면 없어질 정도로 그 소비 속도가 빠른 셈이다. 즉 불과 3년이면 석유 1000억 배럴이 든 맥주 한 병이 동이 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아 있는 맥주 열한 병을 오랫동안 즐기려면 한 사람의 몫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간 맥주를 즐기지 않았던 사람까지 너도나도 맥주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석유를 펑펑 썼던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도 석유 좀 써 보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맥주의 양에 비해서 달라는 사람이 많은 상황인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서로 맥주를 더 마시겠다고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몸싸움에서 다른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힘센 사람이 있다면, 남보다 한두 병 더 맥주를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03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미군이 바그다드로 입성하자마자 점거한 건물이 석유부 청사였다.

다른 이유도 있다. 그동안 마신 맥주 열두 병은 냉장고 문만 열면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남은 맥주 열한 병은 온갖 잡동사니를 헤치고서야 겨우 한 병씩 찾아내 꺼내 마실 수 있는 그런 맥주다. 실제로 석유 생산 정점을 지나면 석유의 공급량은 매년 2~3퍼센트씩 줄어든다.

비유에서 현실로 돌아와서 상황을 다시 정리해 보자. 석유의 매장량은 제한되어 있는데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어진다. 심지어 공급량조차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 없는 삶을 준비하지 못한 세계는 커다란 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상황은 인류가 처음 맞는 상황이다. 인류는 역사상 한 번도 자원 없는 삶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석탄으로, 그리고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은 자원 고갈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 전환은 새로운 연료가 더 효율적이면서도 값도 쌌기 때문에 일어났다. 만약 석유 생산 정점이 근래에 도래한다면 인류는 또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자원 고갈이라는 전대미문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애초 석유 생산 정점은 미국의 지질학자 매리언 킹 허버트가 1956년에 착안했다. 허버트는 석유처럼 특정 지역에 매장된 유한한 지하자원은 처음에는 생산량이 늘어나지만 점점 그 속도가 줄어들다가 정점을 찍고 나서는 오히려 감소하는 종 모양의 곡선(허버트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버트 곡선


허버트는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1970년대 중반에 최고에 이르고 나서 점점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1971년에 정점을 찍고 나서 정확히 허버트 곡선의 궤적을 따라서 감소했다. 이후 많은 허버트의 후예들이 특정 유정이나 각국 석유 생산량의 정점과 하강 시기를 정확하게 짚어냄으로써 이 이론은 더욱더 신뢰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석유 생산 정점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 수 있다. 석유가 나지 않는 한국은 하루에 원유를 약 200만 배럴 이상 수입한다. 가장 큰 유조선이 실어 나를 수 있는 원유의 양이 200만 배럴인 것을 염두에 두면, 매일 초대형 유조선이 한 척씩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유조선이 페르시아 만에서 출발해 한국까지 들어오려면 40일이 걸린다. 그러니 페르시아 만부터 한국까지 바다 위에 초대형 유조선 40대가 길게 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만약에 이런 운송 과정에 차질이 생기면 한국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까? 석유 생산 정점과 같은 석유 공급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어떤 충격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자원 고갈은 인류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경험이다.


에너지 팁팁 

☞ 석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2014년 말 기준으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베네수엘라(2683억 배럴)다. 그 뒤를 사우디아라비아(2670억 배럴), 캐나다(1729억 배럴), 이란(1578억 배럴), 이라크(1500억 배럴)가 잇고 있다. 그 뒤에 러시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미국(485억 배럴), 리비아(484억 배럴)가 있다. 지난 10년 새 셰일 오일, 오일 샌드 덕분에 캐나다, 미국의 순위가 급등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석유는 심각하게 특정 지역에 편중된 자원이다.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이란, 이라크 등 상위 5개국이 세계 석유 매장량의 61.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 미국 등이 포함된 상위 10개국이 차지하는 석유 매장량은 무려 85퍼센트나 된다. 그런데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는 왜 이리 느긋한 걸까?



이 맥주들은 영원할까? haraldheuser/pixabay




“친구, 좀 더 파티를 즐겨도 괜찮다네!”


피크 오일, 석유 생산 정점을 걱정하는 비관론자는 항상 조롱에 시달리곤 했다. 석유 생산 정점을 경고하는 비관론자의 예측이 항상 빗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1960~1970년대에 예측한 석유 생산 정점 전망은 모조리 틀린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이렇게 예측히 번번이 틀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중동 산유국의 국영 기업을 포함한 석유 회사들이 석유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고자 석유 발견 사실을 숨겼다. 1960~1970년대만 하더라도 전 세계의 연간 석유 소비량은 50억 배럴 정도였는데, 실제로 발견된 석유 매장량은 400억 배럴에 이르렀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은폐가 없었다면 석유 가격의 폭락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지난 100년간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석유를 찾고 캐낸 덕분에 신규 발견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바로 2011년 4월 20일, 멕시코 만에서 BP의 채굴선인 딥워터 호라이즌 호가 터지면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다.

사고가 일어난 곳에서 BP는 1.5킬로미터 깊이의 바다 밑에서 5.5킬로미터를 파서 석유를 캐내고 있었다. 해수면을 기준으로 하면 석유를 캐내고자 거의 7킬로미터 아래로 파 들어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석유 회사는 바다 밑으로 7킬로미터를 파 들어가지 않으면 석유를 캐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의 예를 보면서도, 낙관론자의 조롱은 멈추지 않는다. 다시 냉장고 속 맥주 비유로 돌아가 보자.

미국 에너지 정보청(EIA)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 그리고 상당수 에너지 전문가는 냉장고 뒤에 우리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맥주가 수십 병, 적어도 스무 병 이상 존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앞으로 과학 기술이 발전해서 이 맥주, 즉 숨어 있는 맥주를 더 발견하리라고 자신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쯤해서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셰일 쇼크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 낙관론자는 셰일 쇼크나 오일 샌드야말로 냉장고 뒤에 숨어 있는 바로 그 맥주라고 지적한다. 탐사, 채굴 기술 등이 발달하고 금상첨화로 석유 가격까지 오르면 그동안 외면 받았던 다양한 석유 자원이 추가로 개발되어 냉장고에 맥주를 계속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낙관론자들이 자신하는 또 다른 변수도 있다. 인구 성장률은 1960년대 이후부터 감소해 왔으며, 그 추세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세계 인구는 2070년 100억~120억 명(!) 수준에서 정점을 찍고 나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구 감소와 함께 석유 수요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석유 의존도가 점점 하락하는 것도 고려할 대목이다. 1985년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거의 20년 동안 고유가가 지속되었지만, 천연가스로 석유를 대체하는 비율이 계속해서 늘었다. 낙관론자는 여기에 석유 사용의 효율성이 개선되는 것까지 염두에 둔다면, 설사 석유가 점점 고갈되더라도 그 충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말 그대로 낙관한다.

이들의 메시지는 이렇다.

“친구, 좀 더 파티를 즐겨도 괜찮다네!”


딥워터 호라이즌 호 폭발 사진 United States Coast Guard/wikipedia




“결국은 카산드라가 맞았다!”


이런 낙관론자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이 좀 더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우선 인구가 감소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우리 지구가 100억~120억 명의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연재의 말미에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하지만 앞으로의 인구 증가분이 대부분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저개발 지역에 집중되는 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야 석유 맛을 본 이들이 너도 나도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한다면?

실제로 중국, 인도 등 먼저 석유 맛을 본 곳에서 농업에 기반을 둔 라이프 스타일에서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개인 승용차의 강력한 유혹이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 만약 세계 곳곳에서 미국처럼 석유를 펑펑 쓰는 라이프 스타일이 유행한다면 과연 지구가 그 석유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경우를 염두에 두면 인구 감소가 꼭 석유와 같은 에너지 수요 하락으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차는 기름을 많이 먹는 SUV(Sports Utility Vehicle)다.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많아지면 결과적으로 석유 수요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낙관론자들이 대안으로 얘기하는 비전통적인 석유, 즉 셰일 오일이나 오일 샌드 등이 과연 급격히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잡을 정도로 빠르게 공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많은 이들이 셰일 오일의 전 세계 매장량이 많다고 환호하지만, 바로 앞의 연재에서 살펴본 여러 문제들, 예를 들어 물 부족이나 환경 문제 때문에 생산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크다.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알레크렛 교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의 일화로 낙관론자에게 경고했다.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카산드라는 트로이 인에게 무시를 당했습니다. 트로이 인은 뒤늦게야 카산드라가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죠.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성과 아이는 노예가 되고, 트로이는 처참하게 유린되었습니다. 낙관주의자의 이야기는 당장 듣기에는 좋지만 그것이 항상 진실은 아닙니다. 결국은 카산드라가 옳았습니다!”


석유 회사 셸의 원유 시추 시설 ⓒDay Donaldson/flickr




석유 없는 시대를 상상하기


이쯤해서 솔직한 생각을 고백할 때다. 낙관론자의 주장에도 들을 만한 구석이 있다. 분명히 석유 생산 정점을 경고해 온 비관론자가 석유 매장량을 보수적으로 산정한 면이 있다. 실제로 수압 파쇄법과 같은 새로운 채굴 기술과 높은 유가가 가능케 한 셰일 오일처럼 그동안 자원 취급을 못 받던 비전통적인 석유가 앞으로도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실 이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인류가 석유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셰일 오일이나 오일 샌드가 이런 에너지 전환의 다리가 될까? 아니다. 오히려 석유 없는 시대를 상상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역할을 가능성이 크다. (흔히 에너지 전환의 다리로 꼽히는 천연가스도 그런 면이 있는데, 이 얘기는 다음에 해 보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류는 나무가 고갈되어서, 또 석탄이 고갈되어서 석유 시대로 이행한 게 아니다. 인류는 이전 자원의 여러 문제를 보면서, 그것을 극복할 더 좋은 자원을 찾았다.

그렇다면, 석유는 어떤가? (다음 연재에서 확인해 보겠지만) 석유는 기후 변화를 초래할 온실 기체 배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잊을 만하면 생기는 원유 유출 사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환경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정 지역에 편중된 자원인 탓에, 이라크 전쟁처럼 석유가 있는 곳에서는 항상 피 냄새가 났다. (스티븐 개건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대통령을 노리는 배포 큰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 등이 주연한 「시리아나」(2005년)는 석유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영화다.)

그러니 이렇게 여러 문제를 낳는 석유 대신 새로운 자원으로 에너지 전환을 하는 것은 인류의 역량을 확인하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석유의 끝, 세계의 끝? ⓒpeter castleton/flickr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다음 시간에는 3편 「기후 변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석유 자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온실가스와 그로 인한 기후 변화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강양구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으며, 2003년부터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부안 사태, 경부 고속 철도 천성산 터널 갈등,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등에 대한 기사를 썼으며,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언론상, 녹색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1, 2』,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등을 저술했다.


http://sciencebooks.tistory.com/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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