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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선원들의 삶

구름위 2014. 11. 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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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선원들의 삶

 

---------------목차----------------

1. 들어가기 앞서

2. 대항해시대의 역사

3. 대항해시대

4. 대항해시대 선원들의 삶

5. 대항해시대, 그 숨은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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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앞서

  

  대항해시대를 낭만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KOEI의 대항해시대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렇지만 대항해를 가능하게 했던 선원들의 삶은 정작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숨은 주역인 선원들의 삶을 알아봅시다.

 

2. 대양항해의 역사

 

 최초의 대양항해는 페니키아 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페니키아 인들은 가장 먼저 선단을 지구상에 띄웠던 문명이다. 이들은 지중해 동부 연안과 발트해를 무대로 상업에 종사하였다. 이후 페니키아 인들은 이집트 왕 네코의 주문에 따라 이집트인들에게 자신들의 선단을 빌려주었다. 그들의 선단은 홍해를 떠나 희망봉을 돌았고,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여 나일강에 도착하는 2년간의 아프리카 대륙 일주 항해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마케도니아군의 인도양 항해, 로마군의 대서양 항해, 노르만의 북해, 북극해 항해, 중국에서도 정화의 남방원정 등이 있었다. 

 

3. 대항해시대

 

  1) 직접적 배경 :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이슬람교도들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유럽세계의 어떤 방식으로든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실한 기독교도 유럽인들은 이슬람 세계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올라 동방세계와 동맹을 맺어 이슬람 세계를 멸망시키려 했고, 어떤 유럽인들은 이슬람을 통해 동방과의 교역을 독점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에 불만이 많았다. 마르코폴로 같은 상인들은 이슬람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 하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은 동방에 호기심을 품었고, 향료에 대한 집착은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불붙이는 기폭제가 되었다.

  

 2)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대항해시대를 이끌었던 중요한 요인이 있다면 이탈리아 북부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일 것이다. 종교적으로 신이 중요시 되던 시대에 반기를 든 이 운동은 고대 그리스 로마, 헬레니즘의 철학자들의 인본주의 사상은 물론이고 이오니아와 알렉산드리아의 과학자들의 저서들이 유명해지게 만들었다. 사장되었던 고대의 기하학과 천문학, 지리학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지구가 구형이라는 지구구형설과 그리스의 브리타니아 항해기 등의 책들은 탐험가들이 스폰서에게 신항로 개척의 필요성을 선전하고,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선원들을 독려하는 큰 학문적 무기였다.

 

  3) 대항해시대의 전개 : 나침반을 활용한 방위파악, 기하학과 천문학을 통한 정확한 경도-위도 시스템, 지리학적인 지식을 동원한 해도작성 등은 대양에서도 배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외에도 역풍에서도 항해할 수 있는 태킹 항법의 개발과 선박의 지속적인 개량을 통한 내항성의 확보 등은 더 이상 대양항해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대양항해를 통해서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고자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선원을 지원하였다. 일 년에 수천, 수만 대의 배들이 대양을 항해하는 대항해시대가 막이 오른 것이다.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정복하고 그들을 착취하였다. 신대륙에서 강탈한 막대한 물산과 동방 향료 교역의 이익은 대항해에 더욱 더 많은 투자를 불러왔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지구반대편에도 대규모의 함대를 파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지구반대편의 동양세계를 침략할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4. 대항해시대 선원의 삶

 

  대항해시대를 이끈 주역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희망봉을 돈 바스코 다 가마,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이 외에도 영국의 유명한 해적이었던 드레이크 제독 등등....... 이들의 모험심,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과 추진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항해는 선원들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돛을 펴는 일부터, 닻을 올리는 일부터, 배는 선원들이 있음으로 해서 움직인다. 푸른 바다와 멋진 범선, 매력 넘치는 선장들에 대한 낭만은 지금도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곤 한다. 그렇지만 대항해시대의 선원들의 삶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고 한다.

 

Ⅰ. 선원들의 환경

 

 1) 대양의 배 : 강이나 호수, 잔잔한 내해가 아니라 대양을 항해해야 했기 때문에 대항해시대의 선원들은 심한 흔들거림에 항상 시달려야 했다. 또, 대항해시대의 배들은 노를 주동력으로 하는 갤리선이 아닌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이 대다수였다. 선원들은 갑판 밑의 선실에서 그물 침대에 매달려 잠을 청하다가도 바람의 세기와 풍향이 바뀌면 돛대를 펴거나 말아야 했고, 돛대를 고쳐 메야 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선원들은 수면부족으로 인한 마비 증세에 늘 시달려야 했다.

 

 2) 기후와 선원 : 선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연적인 요인이 있다면 기후이다. 살이 에이는 북극해의 추위에서 적도 부근의 푹푹 찌는 기후를 넘나드는 항해의 특성상 선원들은 녹초가 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들 선원들은 티셔츠와 바지 한 장만으로 모든 바다를 항해했다고 한다. 바닷물에 절여진 옷과 살갗, 그 위로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과 푹푹 찌는 습기는 선원들의 넋을 빼놓았다.

  

 3) 식량사정 : 냉장보관을 할 수 없었던 당시에 신선한 고기와 야채는 배에서 꿈도 꿀 수 없는 음식이었다. 선원들의 주식은 소금에 절인 딱딱한 고기와 말린 콩을 끓인 스프였다. 소금에 절인 고기는 너무 딱딱해서 송곳니가 부러질 정도였고, 말린 콩은 푹푹 끓여내기 때문에 영양소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이것조차도 개인 배급이 아니라 단체 배급이었기 때문에 식사시간만 되면 선원들은 서로 큰 고기를 차지하느라 전쟁이었다. 이 과정에 서로를 다치게 한다면 그 선원은 채찍질에 처해졌다. 그리고 배에서는 절제된 식생활이 강요되었다. 왜냐하면 대양을 항해하는 것은 중간에 기항하여 보급품을 받기 난감한 상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만약 무풍지대를 만나 배가 꼼짝없이 묶인다면 어찌 되겠는가?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짜낸 것이 닭이나 염소 등의 가축들을 갑판에 키우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큰 파도가 갑판을 덮치면 닭이나 염소 등은 익사하기 마련이었고, 이런 날이면 선원들은 죽은 동물들을 먹어치워야 했다. 

 

 4) 식수사정 : 식량보다도 배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식수였다. 식량과 식수들은 배의 하저에 보관하는데 이것들을 인력으로 돌리는 펌프로 끌어올렸다. 식수는 선수루의 갑판에 비치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떠먹게 했는데, 그 양이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이 식수도 나무통에 보관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만 항해하면 곤충들이 생겨났다. 물을 담는 통을 제작하는 제작자들은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방충이 되는 물통을 만들어 내려고 했지만 금속 통이 보급되기 전까지 ‘진짜 방충’인 식수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육지나 섬에 상륙해서 식수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오염된 식수를 섭취할 경우 함대가 몰살당하는 경우가 있었고, 원주민들이 독을 푸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정말 급할 때가 아니면 배의 보급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였다.

 

  5) 엄격한 규율 : 고립된 환경은 선원들의 삶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립되었기 때문에 사정은 열악했다. 그러나 배는 사람이 없이는 움직이질 못했고, 나아가야했다. 따라서 엄격한 규율이 잡혀 있었고 엽기적인 형벌이 거의 매일 이뤄졌다. 예를 들어서 더 큰 고기를 잡기 위해 경쟁하다가 다른 동료를 다치게 한 경우라면 가차 없이 채찍이 떨어졌다. 채찍질은 배에서 받는 형벌 중에 가장 가볍고 보편적인 형벌이었다. 식량이나 식수에 손을 댄 사람은 돛대에 두 손을 못으로 박아 서서히 굶겨죽였다. 혹여 동료 선원을 죽였다면 ‘배 밑으로 돌리기’ 형벌에 처해졌다. 이 형벌은 가장 엽기적인 형벌중 하나로 흔들리는 배의 하저에 선원을 묶어놓아 배의 벽면과 못, 짐통에 치이게 만들어 죽게 만드는 형벌이다. 또, 선상반란은 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중 하나였다. 반란에 동참한 사람들은 돛 활대에 줄을 매달아 목을 매어 죽이던가,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 물론 흡연 또한 엄격히 규제되었는데 선상화재는 방지하기 위함이다.

 

  Ⅱ. 질병

 

  1) 괴혈병 : 괴혈병은 비타민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병이다. 배에서는 소금에 절인 고기와 말린 콩 스프가 전부였으므로 파괴되기 쉬운 비타민의 섭취는 불가능했다. 일단 괴혈병에 걸리면 몸이 축 쳐지고, 잇몸이 마르기 시작한다. 이어 무기력증, 감기, 열병, 근육통을 동반하기 시작하고, 부실해진 잇몸 때문에 모든 이들이 빠진다. 그리고 몇 주 뒤에는 폐렴이나 신장 질병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 환자들에게 신선한 야채나 과일만 먹여준다면 이런 증세는 씻은 듯이 나아버린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유럽의 각국은 항로의 중간에 있는 섬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요새화시킨 뒤 야채를 경작하는 농장을 경영했다.

 

  2) 장티푸스와 이질 : 아무리 소금에 절여진 고기나 치즈라고 해도 열대지방의 환경 하에서는 화학적 변질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수백만 마리의 병원균이 선원들의 식품에 번식했다. 보통은 복통정도로 끝나지만 심각한 경우는 이질로 이어졌다. 설사를 동반하는 이 병은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오염된 식수로 발생하는 장티푸스는 17세기와 18세기의 배 대부분에서 창궐했는데, 함대를 전멸시키기도 했다.

 

  3) 말라리아 : 열대의 항구에 배가 정박하면 선상의 불빛을 향해 수백, 수천의 모기들과 곤충들이 달려들었다. 이들 모기들과 곤충들은 치명적인 질병인 ‘말라리아’를 전염시켰다.

 

  3) 알코올 중독 : 식량과 식수 외에 선원들에게 지급된 식료품이 있다면 ‘술’일 것이다. 가장 보편적으로 보급된 것은 럼주로 물이 부족한 경우에는 식수를 대신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남아도는 자국산 와인을 소비하기 위해 럼주와 식수대신 포도주를 지급하기도 했지만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이들 알코올은 열대에서도 어떠한 병균과 곤충들의 침입도 받지 않았지만, 알코올을 무한정 마시고 배의 고된 일과와 환경을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 술은 선원들의 유일한 위로인 동시에, 독이었다.

 

  Ⅲ. 전투상황

 

  1) 원주민 : 보급품이 떨어진 경우라면 배는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섬이나 육지에 기항해야 했다. 그렇지만 원주민들 대다수는 이들 이방인들을 도와주었지만, 소수는 그렇지 않았다. 선원들은 열대의 환경에서도 모직으로 된 무게가 4~5kg이나 되는 두꺼운 옷을 입고 무거운 총을 들고 우림을 헤쳐 나가면서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였다.

 

  2) 해적 : 해상무역이 발달할수록 창궐하는 것은 해적이다. 각국의 해군은 해적으로부터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함을 호위로 붙이거나 해상 초계, 해적 소굴에 대한 토벌을 실시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해적들을 박멸하기란 불가능 했다. 어떤 경우는 해적들이 초계함을 역습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각 상선들은 자기만의 무장을 실시해야 했다. 선원들은 칼과 창 같은 냉병기는 물론이고 대포와 총 등의 화기도 능숙하게 다루었다. 그렇지만 그 시대의 대포들은 으레 폭발하기 마련이었고 그럴 때면 선원 십 수 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죽었다.

 

  3) 의사 : 배의 하저, 즉 물에 잠겨있는 흘수선 아래에는 의사의 공간이 있다. 썩어가는 치즈 냄새와 고인 바닷물의 짠내가 진동하는 뱃바닥 구석에 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촛불 하나에 의존하여 의사들은 전투 도중에 부상당한 선원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총알이 관통 했다던가 파편이 박힌 경우에는 럼주로 소독을 하고 살을 봉합했다. 그렇지만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는 럼주를 진창 먹인 뒤에 환자를 잡아놓고 불에 달군 톱으로 능숙하게 환부를 절단하고 붕대로 감싼다. 능숙한 의사들은 이와같은 과정을 단 몇 분 내에 해낼 수 있었다.

 

  Ⅳ. 선원들의 믿음

 

  이러한 절망적인 환경 속에 선원들은 온갖 신앙을 배에 끌어왔다. 그 중에는 바다 괴물에 대한 것이 주목할 만 하다. 배를 부순다는 크라켄, 배를 못 움직이게 한다는 빨판상어가 그것이다. 그리고 배를 채로 잡아먹는다는 거대한 바다뱀 전설도 있었다. 이 외에도 선원들을 유혹한다는 오디세이아의 세이렌을 믿는 선원들, 인어에 대한 전설들이 널리 믿어졌다. 독실한 칼뱅주의자나 가톨릭교도들도 이들 괴물은 물론, 폭풍우를 피하게 하고, 질병을 막아준다는 부적이나 비방 같은 것을 기꺼이 사용했다.

 

  5. 대항해시대, 그 숨은 주역들

   

  르네상스가 인간의 재발견과 세계의 지평을 열었다면 대항해시대는 그것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대항해를 통해 유럽인들은 더욱 더 발전된 기술과 이론을 습득했으며 이것은 활발한 기술 발달을 촉진시켰다. 이들 기술들은 다른 문명을 제압하는데 사용되었고 결국 세계는 유럽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신대륙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사람들은 조국을 잃고 식민지의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이들의 희생 하에 유럽에서는 자본주의가 태동했고,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세계가 탄생하였다. 이렇게 보면 대항해시대는 세계사의 여러 흐름에 불과했던 유럽세계를 세계의 중심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흐름이다.

  유럽이 이렇게 일어서는데 큰 일조를 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성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고 덕분에 여러 자연과학에 대한 이론이 확립되었고 과학적인 항해를 가능케 하였다. 그렇지만 그런 사고만으로는 이런 대업을 달성할 수 없었다. 실천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용감한 모험 정신으로 무장한 선장들 외에도, 그들 밑에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뎌가며 목숨을 걸고 항해를 했던 선원들이 있었다.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가 유럽 세계를 세계의 중심으로 이끌었다면, 대항해시대를 이끈 것은 이들 선원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배 이야기 - 인간은 어떻게 7대양을 항해했을까?』, 핸드릭 빌렘 반 룬, 이덕열 역, 아이필드, 2006년

『유럽의 대항해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