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ge of Exploration(발견의 시대=대항해시대) :
개요 :
유럽 인들이 대양항해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항로와 아프리카 남단을 경유하여 동방으로 가는 항로, 태평양 항로 등을 발견하고, 선박으로 세계를 일주하는 등(마젤란) 다양한 발견을 이룩하여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한 시대를 의미합니다.
엄밀한 학술 용어나 연대기적 용어가 아닌 만큼, 명확한 정의는 없으나, 대체로 항해왕, 엔리케 왕자를 주축으로 한 포르투갈의 15세기 초중반 해외진출(세우타 점령, 탕헤르 공성)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후 크리스토발 콜롬부스의 유럽-서인도 제도 간 신항로 발견 및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의 아프리카 회항,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가 이루어진 15세기 말~16세기 초반에 정점에 달하였고, 스페인 정복자들(Conquistadores)에 의한 스페인 식민 제국 건설,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각각, East India Company와 Verenigde Oost-indiche Compagnie) 설립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후, 유럽은 대항해시대에 이른바, '발견'된 땅들을 식민지로 삼는 땅따먹기에 혈안이 되어, 근대 제국(주의)시대가 열립니다.
참고로 대항해시대니 대탐험이니 신항로 개척이니.. 이런 명칭은 다 침략자이자 가해자인 유럽인이 미화하려고 붙인 명칭일 뿐이고 아메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와 다른 여러 지역의 피해 국가 입장에서는 그냥 침략과 학살, 그리고 침략을 위한 발판 개척일 뿐입니다... 어떻게 미화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대항해시대 개막의 배경 :
포르투갈 (Portugal) :
대항해시대 전까지만 해도, 포르투갈의 지리적 위치인 대서양 연안은 지중해, 북해, 발트해 등 유럽의 주요 해상무역권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농사가 잘 지어지는 것도 아니니, 결국 상업말고는 달리 먹고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포르투갈은 유럽 그 어느 나라보다도 상업 부르주아지 세력이 강성했는데, 이는 포르투갈 왕위계승전쟁에서 전통귀족세력이 지지한 카스티야가 패하고, 상업 부르주아지 세력이 후원한 아비스 왕조가 들어섰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업 부르주아지 세력에 의해 탄생한 아비스 왕조는 자연스레 상업지향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해왕, 엔리케 왕자가 특별히 바다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국내 내부적으로 바다로 나아가야 할 정치적·경제적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허나, 당시 포르투갈의 국력으로는 카스티야, 아라곤등 쟁쟁한 국가들을 제치고 지브롤터 너머, 유럽 대륙 안쪽으로 나아가기가 벅찼기 때문에, 결국 포르투갈이 제대로 손을 대 볼 수 있었던 곳은 대서양과 아프리카 뿐이었습니다.
에스파냐(Espana, Spain) :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달리 서지중해를 접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지중해 해상무역권 쟁탈에 일찌감치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아라곤 왕국인데(그 당시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 내륙 쪽의 카스티야 왕국과 서 지중해 연안의 아라곤 왕국이 결혼으로 연합한 느슨한 형태의 연합국가 였습니다), 아라곤은 발레아레스 제도를 점령하고, 이를 발판으로 지중해 각지로 뻗어나가 (비잔틴의 영향력에서 거의 벗어난)아테네 공국을 접수(!)하더니, 시칠리아와 나폴리 왕국의 왕위까지 장악하여, 지중해에 아라곤 해상국가를 완성시킵니다. 서 지중해를 사실상 자신의 나와바리로 만든 아라곤은 베네치아, 제노바와 함께 지중해 3대 세력으로 거듭나려고 했으나 갑자기, 오스만 제국이 나타납니다.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비잔티움 제국을 사실상 멸망시키고, 그 직후 아테네 공국까지 꿀꺽하며 아라곤의 동지중해 무역을 차단시켰습니다. 이후 오스만 세력은 중부 지중해로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유럽 지중해 국가들의 해상무역권은 완전 날아가 버렸습니다...오스만 제국의 후원을 받은 북부 아프리카 연안의 해적들이 서유럽 해군과 대등한 규모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스만에 적대적이고 베네치아 등 상업국가에 협조적이던 맘루크 왕조까지 오스만에게 박살난 이후에는 아예 동지중해를 비롯한 해상 패권 자체가 오스만으로 넘어가 버립니다.
해상 무역으로 먹고살던 아라곤과 카스티야의 국가통합으로 탄생한 스페인으로서는 이것이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나 당장 오스만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라곤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해양 부르주아지 세력은, 왕가에 지속적으로 빼앗긴 지중해를 되찾던가, 아니면 이를 대신할 새로운 무역루트를 개척하게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시점에 이미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기 때문에, 스페인의 상업 부르주아지들은 포르투갈에 뒤쳐질지 모른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에 따라 상인들을 중심으로 스페인도 신항로 개척을 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대양항해의 기술력 :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럽인들에게 원양항해 혹은 대양항해는 이때가 최초였습니다. 원양항해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은 전무했고, 대양 자체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아니 그 대양에 워낙이나 관심이 없었기에, 한동안은, 이미 예전에 아이슬란드를 거쳐 아메리카에 왔던 바이킹(빈란트 개척)들을 제외하고, 대양이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과거 이슬람과의 교류를 통해 전래된 중국의 나침반, 아스트롤라베, 쿼드런트 같은 각종 측정기구들은 태양과 별의 위치보다도 더 정확하게 방위를 알 수 있게 해주었으며, 또한 유럽인들은 예전에 그리스인들이 인도인들과 예멘, 오만인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무슬림들의 (인도양에서 쓰던)원양항해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변방에 위치해, 먹고 살려면 바깥으로 나아가야 했던 포르투갈은 이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고, 포르투갈의 1세기에 걸친 서아프리카 항해로 어느 정도 대양 항해를 위한 항해술과 해도 제작능력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초적인 원양항해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때마침, 오스만 제국의 등장으로 동방 무역이 차단되자, 항해술은 급속도로 발달, 캐럭(Carrack)과 캐러벨(Caravel)같은 본격적인 대양항해용 선박들이 등장하였습니다. 후에 이는 다시 갤리온 선(Galleon)으로 발달하여, 어느새 유럽인들의 대양항해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합니다. 정리하자면 수요에 따라 기술이 발전한다는 말처럼, 유럽의 변방이었던 포르투갈은 번영을 위해 원양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고, 이는 후에 발전할 원양항해술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실크로드를 부활시키려 하거나, 밀무역을 시도하는 등 오스만 제국에 의해 차단된 동방무역을 다시 살리려고 발악을 하던 유럽인들도 차츰 포르투갈을 따라 원양항해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덕분에 대항해시대가 찾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향신료 :
대항해시대의 발생 원인 중 하나로 향신료를 꼽기도 하는데, 비록 중반 이후부터는 너도나도 향신료 무역에 뛰어들어 수요보다 공급이 배로 급증해서, 시들해지긴 했지만 대항해시대를 열게 만든 결정적 원인 중 하나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향신료가 고가의 사치품 취급을 받았던 이유는 당시 유럽의 향신료 무역은 인도-아라비아 해, 홍해-베네치아를 거치는 독점에 독점을 거듭한 중개무역 형태로만 공급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항해시대 이전부터 동방의 향신료는 귀중품으로 취급받는 고가의 물건이었습니다. 이랬던 향신료가 오스만 제국 성립 이후, 단순히 비싼 사치품에서=>아예 구할 수 없는 물건으로 바뀌어버렸고, 이에 '돌아서 인도에 가면 그 비싸고 구하지도 못하는 향신료를 거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인드에서 (포르투갈이)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국왕, 귀족을 비롯한 수많은 투자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만한 요소가 되었고 덕분에 많은 탐험가들이 신항로 개척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향신료는 대항해시대 자체를 열게 만든 기폭제 중 하나의 역할이었으며, 대항해시대 중반부터는 개척된 항로를 바탕으로 무역이 과열되어,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에, 향신료는 예전의 메리트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 이후부터는 새로 유럽인들의 시각에 들어오게 된 아메리카 대륙의 금, 은, 아프리카의 상아, 노예와 같은 것들이 향신료의 지위를 대신하였습니다.
연표 :
1415년 : 포르투갈, 지브롤터 해협 건너 북아프리카 거점 세우타 함락
1418년 : 포르투갈, 아프리카 항해 시작
1420년 : 포르투갈, 마데이라 제도 발견
1427년 : 포르투갈, 대서양으로 나아가다 아조레스 제도 발견
1444년 : 포르투갈, 카보베르데 발견. 아프리카 최서단 일대까지 진출
1462년 : 포르투갈, 지금의 시에라리온 지역까지 남하
1488년 :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 발견
1492년 : 스페인의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바하마(서인도 제도)에 상륙.
1493년 : 콜럼버스의 제2차 항해
1498년 :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 콜럼버스의 제3차 항해
1500년 : 포르투갈의 카브랄, 브라질을 발견
1502년 : 콜럼버스의 제4차 항해
1508년 : 포르투갈, 디우(인도) 앞바다에서 이슬람 연합함대 격파
1510년 : 포르투갈, 고아(인도)를 함락하고 식민지배 시작
1511년 : 포르투갈, 말라카를 함락하고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 마련
1519년 : 스페인의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시작
1520년 : 마젤란 선단이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고 태평양 진입
1521년 : 태평양을 횡단한 마젤란 선단이 괌과 필리핀을 발견하나 마젤란은 세부 섬에서 사망
1522년 : 마젤란 선단이 스페인으로 귀환하여 세계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 종료
1538년 : 오스만 제국, 포르투갈령 디우(인도)를 포위공격하나 보급 문제로 퇴각
1565년 : 스페인, 필리핀 식민지화 시작
1572년 : 스페인, 잉카 제국을 멸망시키고 중남미 식민통치 시작
1595년 : 네덜란드, 동남아시아 향료 제도 진출
1600년 :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대항해시대 합류
1602년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설립
1604년 : 프랑스, 동인도회사 설립
1642년 : 네덜란드의 아벌 타스만, 뉴질랜드를 발견
경과 및 쇠퇴 :
대항해시대는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혹은 크리스포발 콜롬부스가 바하마에 상륙하여, 카리브 지역 탐험을 마치고, 몇 명의 원주민들을 납치하여(!) 본국으로 돌아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열리게 됩니다. 원주민들의 존재를 확인한 유럽인들은 (신화정도로 여겼던)미지의 신대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새로운 대륙과 새로운 항로의 등장은 그들의 인식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국가 단위로 행해진 탐사가 열띠게 벌어졌고, 이는 곧 국가 간의 충돌을 야기했으며 이를 중재하기 위해 '토르데시야스 조약'(교황이 신대륙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역을 분할(!)해준 것을 의미합니다.)같은 것들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신대륙인 아메리카와 함께 유럽인들의 원래 목적이었던 인도로의 항로 개발도 충실히 이루어져 바스쿠 다 가마는 1498년,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 도달하였고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는 더 나아가 말라카(싱가포르 근처의 도시)까지 정복하여 동남아시아의 교두보까지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련의 성과로 무역의 판도는 마침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후 지속된 탐험으로 드디어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이 인도가 아닌 또다른 대륙임이 알려지게 되었고,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아메리카와 인도가 다른 지역임이 알려지고 향신료 원산지인 인도와 동남아시아로의 진출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유럽인들은 '그렇다면 아메리카와 인도 사이에 또 뭐가 있단 말인가?'하는 궁금증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태평양이며, 태평양의 발견과 함께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이끄는 함대는 최초로 세계일주를 마치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한세기 정도가 더 흐르고 나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네덜란드 인에 의해 유럽에 알려집니다.
여기까지가 대항해시대 동안 항해를 통해 이루어진 발견의 전부이며, 뒤이어는 내륙 탐험 및 정복의 역사가 주를 이룹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코르데즈와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의 정복자(Conquistador)들에 의해 잉카 제국, 아즈텍 제국, 마야 문명(마야 문명은 스페인 인들이 신대륙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멸망해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등이 멸망하고 라틴 아메리카는 브라질을 제외하고(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모두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빠르게 눈을 대양으로 돌린 덕분에 이를 바탕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머쥐자, 북해의 영국과 네덜란드는 너무 배가 아팠던지라 이에 동참했습니다. 당연히 이 둘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양자 간의 합의만 이뤄졌을 뿐인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간단히 무시해버렸고 몇 차례의 분쟁과 전쟁을 걸쳐 앞선 두 나라가 얻어낸 영토와 이권을 어느 정도 뺐어오는데 성공합니다. 이들은 해상 무역과 거점 확보를 총괄하는 동인도 회사를 각각 설치하여 본격적인 범세계적 무역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양쪽 모두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다 벌어진 충돌에서 영국이 승리, 대영제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대항해시대는 수십 년에 걸친 탐험과 개척, 정복 끝에 유럽인들이 지구상의 거의 대부분의 문명들을 발견하여 더 이상 새롭게 찾아나갈 곳이 없어지자 자연스레 끝나게 됩니다. 이쯤되자 거의 유럽에서 먹고 살만한 나라들은 대부분 대양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대항해시대 당시 신대륙과 일본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간 막대한 은으로 인한 가격 혁명과 이로 인한 신흥 자본 세력의 대두, 봉건 세력의 몰락과 함께 유럽은 제국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걷게 됩니다
'시사.상식 > 시사.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양구의 에너지톡톡 ③여섯번째 대멸종을 알리는 전주곡 ④기후변화,그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현실 (0) | 2015.10.05 |
---|---|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① 석유 가격에 숨겨진 비밀 ② 석유 시대의 종말?! (0) | 2015.10.05 |
대항해시대 선원들의 삶 (0) | 2014.11.04 |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을 확인한 비투스 베링 (0) | 2014.11.04 |
야구용어 (0) | 2014.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