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옛 우리 이야기

노비와 양인의 역학관계

구름위 2014. 9. 2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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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와 양인의 역학관계

 

 

이번 장에서 우리는 비교적 힘 있는 노비들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웬만한 양반보다도 더한 ‘파워’를 과시했다. 오늘날 소위 ‘귀족 노동자’란 게 있듯이, 조선시대에도 ‘귀족 노비’란 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반 노비들의 상당수는 양인들보다 열악한 처지일 수밖에 없었다. 주인과 노비의 관계뿐 아니라 양인과 노비 사이에도 신분상의 수직관계가 존재했다. 이 점은 양인과 노비가 싸우다가 관아에 끌려갔을 때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10대 청소년 두 명이 싸우다가 치안센터(파출소)에 끌려갔다고 가정해보자. 둘 중 한 명은 학생이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다면, 경찰관들은 아무래도 학생에게 유리한 처분을 내리기 쉽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는 한, 경찰관들이 학생을 피해자로 간주할 확률이 높다. 요즘은 덜하겠지만, 예전에는 대학교 학생증이 파출소에서 면죄부처럼 작용하던 때도 있었다. 형법에서는 학생이든 아니든 차별을 두지 않지만, 법률 실무에서는 이처럼 차별이 공공연히 일어난다.

 

조선시대에는 노비와 양인 사이에 그런 차별이 존재했다. 법률에서도 그런 차별을 아예 명문화했다. 《대명률직해》 권20에 양천상구(良賤相毆)라는 항목이 있다. 양인과 천민 사이에 구타가 발생했을 경우에 관한 규정이다. 양천상구 네 글자 중에서 ‘서로 상(相)’ 자를 보고 이 항목이 쌍방 폭행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한문이나 중국어 문장에서 ‘상’은 서로의 행위를 가리킬 때도 많지만 일방 행위를 가리킬 때도 많다. 이 경우는 후자다. 양천상구 항목은 두 사람 사이에 주인-노비 관계가 없을 때 적용되었다.

 

이에 따르면, 노비가 양인 즉 일반인을 구타한 경우에는 일반인이 일반인을 폭행한 경우보다 처벌의 등급을 하나 더 올려서 가중 처벌했다. 만약 폭행당한 양인이 불구가 되거나 치료 불가능이 되면, 가해자인 노비를 교수형에 처했다. 양인이 죽은 경우에는 참수형에 처했다. 그러나 양인이 노비를 구타한 경우에는 반대였다. 일반인이 일반인을 구타한 경우보다 한 등급 경감해서 처벌했다. 상해나 살인의 결과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재미있는 것은, 폭행을 가한 양인이 노비주와 소공친(小功親)1)등의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뼈가 부러지는 정도의 부상이 아니면 처벌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가까운 친척이 거느린 노비를 뼈가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패주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랬으니, 노비는 자기 주인뿐 아니라 일반 양인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설령 양인 쪽에서 원인을 제공했더라도, 일단 관아에 끌려가면 불리한 건 노비였다. 노비가 양인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사형까지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 형사 처분을 면한다 해도, 손해배상을 하느라 막대한 재산상 손실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운명을 걸 만한 일이 아니라면, 노비는 양인과 싸워서는 안 되었다. ‘가급적’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무조건’ 싸우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노비와 양인 간의 법적 우열은, 빙판이 된 강을 건너는 수레꾼과 봇짐장수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 두 사람 중 물에 빠질 확률이 높은 쪽은 무거운 수레를 끄는 수레꾼이다. 그러므로 수레꾼은 살얼음을 디디는 심정으로 강을 건너야 한다. 노비의 법률생활도 그러했다.

 

노비와 양인 간의 법적 우열은 이들의 경제적 우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남과의 분쟁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노비도 살다 보면, 자기 주인은 물론 주변 양인들에게 한번쯤은 언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노비는 잘못하면 전 재산을 순식간에 날릴 수도 있었다. 이런 법적 열세는 노비의 재산축적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노비와 양인 간의 법적 우열을 정한 목적은 양인들이 예뻐서가 아니었다. 그저 양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만도 아니었다. 이것은 노비주와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비를 법적 열세에 두어야만 이들을 한층 더 쉽게 부릴 수 있었다. 또한 노비를 일반 양인보다 불리하게 만들어야만 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주인에게 한층 더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각주
1 어느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 그 사람을 위해 5개월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 친척. 할아버지의 남자 형제나 육촌 형제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