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기와 일반 공노비의 차이
여성 관노비의 경우 일반 노비에서 관기로의 전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 것 같다. 노비의 인격권이 인정되지 않은데다가 성 접대가 용인되었기 때문에, 여자 노비의 ‘보직’을 관기로 바꾸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거나 혹은 다른 사정이 있어서 관기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 일반 노비로 전환될 수도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관노비와 관기가 쉽게 구분되지 않았다. 관기가 일반인들 속에 섞여 살았기 때문이다. 《배비장전》의 배 비장은 애랑이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까지 찾아갔다. 애랑이의 집은 일반 주거 지역에 있었다. 《춘향전》에서도 성춘향 모녀는 일반인들이 사는 곳에 거주했다. 숙종 때 정승인 김우항(金宇杭, 1649~1723)의 사례에서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김우항은 송시열(宋時烈, 1607~89)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그를 변호한 인물이다. 1681년 대과에 합격하기 전에 그는 평안도 강계부사(종3품)인 이종사촌에게 돈을 꾸러 갔다가 푸대접을 받고 한밤중에 쫓겨났다. 객지에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노잣돈마저 다 떨어졌다.
그때 마침 퇴근길의 관기가 나타나서 자신을 소개한 뒤, 좀 전에 관청에서 당신이 당한 푸대접을 목격했노라면서 “첩의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함께 가주시기를 감히 청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우항의 사정을 짐작하고, 자기 집에서 재워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처럼 관기들은 자기 집을 갖고 일반인들과 함께 생활했다.
관기 역시 일반 노비처럼 남자를 만나 살림을 꾸릴 수 있었다. 《배비장전》에서 배 비장과 애랑이가 한방에 있었을 때 밖에 있던 방자가 남편 흉내를 낸 데서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관기 신분의 성춘향 역시 이몽룡과 결혼을 하지 않았는가. 《어수신화》에서 본부도사를 접대한 관기 역시 머리를 틀어 올린 기혼녀였다. “지아비가 있는 것 같은데, 후환이 없을까?”라는 본부도사의 질문에 대해 방자는 “혹간 지아비가 있기는 하지만, 감히 노여워하지는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음속으로야 분했겠지만, 법으로 정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이 참았을 것이다.
관기는 노비 신분이었기에 관기를 그만둔다 해도 노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점은 《춘향전》에서도 나타난다. 성춘향의 명성을 알고 있었던 변 사또는 남원에 부임하자마자 관기들부터 소집했다. 50명의 관기를 소집한 변 사또는 누가 춘향인지 확인하기 위해, 호장(수석 아전)에게 관기들의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 “팔월 보름날 추석날에 빛깔 고와라, 추월이!” 하는 식의 멋들어진 소개가 계속되었음에도 춘향이 거명되지 않자, 변 사또는 “저 많은 기생을 그렇게 부르다가는 며칠이 걸리겠다. 빨리 불러라”고 재촉했다.
호장이 이번에는 좀더 간단하게 “그윽하게 거문고 타네, 탄금이!” 하는 식으로 부르는데도 춘향의 이름이 나오지 않자, 변 사또는 “갑갑하다, 한 번에 네다섯씩 이름만 불러라”고 다시 주문했다. 호장이 이번에는 “홍도, 행화, 앵앵이, 국화” 하고 여러 명을 묶어서 불렀지만, 춘향이는 역시 나오지 않았다. 한참 듣다가 ‘향’ 자가 나오기에 변 사또가 엉덩이를 들썩했지만, 그 ‘향’은 춘향이가 아니라 매향이었다. 아무리 불러도 춘향이 나오지 않자, 결국 변 사또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너희 중에 누가 춘향이냐?”
행수 기생의 답변에 변 사또는 노발대발했다. 춘향이가 관기 명단에 없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이몽룡과 혼인한 후에 명단에서 삭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관기 명단에서 이름이 빠졌음에도 변 사또의 명령으로 춘향을 소환했다. 관기 명단에서는 빠졌지만 여전히 관노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관기는 일반인들과 함께 거주하고 남편을 둘 수 있었으며 일반 노비로 전환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여느 관노비와 같았으나, 성적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했다는 점에서는 일반 관노비와는 달랐다.
만약 관기가 관료의 첩이 됐을 경우, 태어난 자녀는 양인일까 노비일까? 서얼 문제를 다루는 다음 장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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