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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구름위 2014. 9. 1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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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경제통합

 

1차 산품 위주의 수출

 

19세기 후반 들어 세계경제는 유럽,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는데 이는 라틴아메리카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선진 공업국의 공산품들이 수입되고 라틴아메리카의 1차 산품들이 수출되는 교역구조가 형성되어갔다. 또한 영국과 미국, 프랑스의 자본들이 라틴아메리카 주요국들에 집중 투자되면서, 라틴아메리카는 1차 산품의 생산 및 수출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자본의 유입과 함께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이 증가해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유럽의 대규모 이민 유입과 철도건설에 힘입어 곡물과 쇠고기가 유럽으로 대거 수출되어, 1차 산품 수출의 증가로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멕시코는 광산개발, 석유산업 등을 중심으로 성장해나갔으며, 브라질과 콜롬비아는 커피, 칠레는 초석, 페루는 설탕과 면화, 쿠바 및 카리브 해 지역은 설탕과 바나나 등을 각각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1차 산품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수출입 동향에 따라 수출품 가격의 변동 폭이 커지고 국내 투자가 좌우되는 등의 취약점을 보였다. 이러한 경제구조는 고용을 창출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고, 1차 세계대전으로 세계경제가 쇠퇴하고 보호주의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수출의 감소를 초래했다. 이는 역시 외환 보유의 감소로 이어져 신규 차관의 도입마저 어렵게 했다.

 

수입대체산업화와 '잃어버린 10년'

 

라틴아메리카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 어려워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 새로운 경제정책이 필요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수입 대상국들이 군수산업에 치중함으로써, 그들로부터의 공산품 수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945년 이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1차 산품 수출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간재나 자본재를 수입함으로써 국가의 공업화를 도모하는 '수입대체산업화(ISI)1)'를 도입했다. 이는 수입에 의존해오던 공산품을 국내 산업화를 통해 자체적으로 대체 생산하고자 한 전략이다. 초기에는 식료품, 담배, 음료, 섬유산업 같은 비내구성 경소비재 산업 등에 집중하여, 몇몇 소비재 수입의 감소와 기계공업의 육성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55년 이후 이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1955년까지 라틴아메리카의 연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2% 수준을 기록하다가 그 이후에는 격감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이 전력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선 정부가 각종 보조금 및 배타적인 관세 정책을 통해 국내산업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국내 공산품들의 국제 경쟁력이 취약해진 점이었다. 또한 국내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이들 제품을 해외에 수출해야 했지만, 품질이 매우 낮아서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이 불가능했다. 이는 결국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초래하여, 이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외채를 들여와야만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통화 증발 현상에 따른 심각한 인플레이션 현상, 기술과 자본의 높은 대외 의존도 등도 이 정책의 큰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국가의 재정적자 보전을 위해서, 1960~1970년대에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도입되었다. 이는 1980년대 외채위기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당시에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적 지위는 중위권에서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더욱 심해진 빈부격차 등으로 인해서 1980년대에 라틴아메리카는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외채위기

 

 


시시각각 바뀌는 아이스크림 값.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금융가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한 행상이, 1980년대 외채위기로 인해서 폭등하는 물가를 뒤쫓아 20여 분 간격으로 가격표를 바꿔 써 붙이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외채위기 원인은,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에 이어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행하기 위해 들여온 대규모의 해외자본이었다. 1979년과 1982년의 오일쇼크로 고유가 시대를 맞이한 산유국들은,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를 산업부문에 투자하지 않고 미국 및 유럽 등지의 은행에 예치시켰다. 그러나 산유국들은 이 넘쳐나는 오일달러를 당시 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한 제3세계에 저금리로 빌려주었고, 또 이들은 값싼 오일달러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기존 외채의 원리금 상환을 위해 신규 외채에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국제금리의 급속한 상승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외채 총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설상가상으로 고율의 이자를 쫓아서, 혹은 라틴아메리카 경제에 대한 불신감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로부터의 외화유출 현상이 일어났다. 또한 고금리 때문에 세계경제가 침체되고 이로 인해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됨에 따라, 주로 원자재 수출에 의존했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수출 소득이 감소되었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한 서방의 채권은행들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신규 차관을 중지했고, 라틴아메리카는 기존 외채의 원리금 상환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자금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외채위기가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자유주의 개혁과 불평등의 심화와 확대

 

이러한 외채위기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대다수의 나라에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 외채위기였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과의 외채협상 과정에서, 외채의 탕감이나 신규차관을 얻기 위해 IMF가 부과하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체제의 개혁이었다. IMF가 라틴아메리카에 요구한 조건은 긴축을 통한 재정적자 감소, 경상수지 개선, 민영화를 통한 공공부문 축소, 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개방화, 탈규제화를 통한 투자환경 개선, 인플레이션 억제 등이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이르러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통해 무역수지 개선, 재정적자 축소, 기업의 효율성과 국제 경쟁력 향상, 외국자본의 유입을 위한 투자 환경 개선, 인플레이션의 극복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외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기도 전에 많은 전략산업이 다국적 기업의 소유가 되었고, 내수산업은 홍수처럼 밀려오는 외국상품의 파도 속에 묻혀버렸다. 라틴아메리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감소되어 마이너스 성장이 되었고, 외채에 대한 이자 지불 및 외국기업의 이익금 송금으로 인해서 국내 총생산의 4%에 해당하는 외화가 유출되었다. 그야말로 '물건 팔아서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실업률이 급증했고 대다수 임금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구매력이 급속히 하락했다. 이는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하여, 역사적으로 극심한 소득분배의 구조적 불평등을 겪어온 라틴아메리카에 불평등 구조를 더욱 심화, 확대시켰다.

 

경제통합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으로 인해서 라틴아메리카 각국은 국내시장의 포화상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역내 국가들끼리의 경제통합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라틴아메리카 자유무역연합2)'이 출범함으로써 경제통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역시 중미 지역에서 1963년에는 중미공동시장(CACM)3)이 정식으로 출범했고, 1969년에는 안데스 국가들이 LAFTA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무역공조체제를 만들어 갔다. 이 시기의 경제통합은 수입대체산업화를 강화하면서 이를 지역 수준까지 높일 것을 목적으로 한 보호주의적 성격을 지닌 지역공동체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의 이러한 경제통합은 일단 지역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면서 라틴아메리카 제국의 연대를 확인했다는 점에는 부분적인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취약한 경쟁력 때문에 점차 퇴조했다. 1960년대 말에는 '안데스 공동체(CAN)4)'와 '카리브 공동시장(Caricom)5)'이 설립되었다. 1969년에 LAFTA의 틀 속에 설립된 '안데스 협정(Andean Pact)'이 안데스 공동체(CAN)의 전신이며, '카리브 공동시장(Caricom)'과 더불어 '안데스 공동체(CAN)'는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주축이 되었다.

 

그 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LAFTA에 대체할 새로운 통합기구를 모색하게 되었고, 1980년에 LAFTA는 '라틴아메리카 통합기구6)'로 개편되었다. LAIA는 회원국 간의 경제발전 수준의 격차를 등한시했던 LAFTA의 경직되고 비효율적인 운영체제를 수정, 보완하고자 했다. 이에 회원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다원주의, 다자간 협의체제 원칙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처럼 1980년대 들어서면서 LAIA의 발족을 시작으로 역내 경제통합을 다시 시도했지만, 1982년의 외채위기로 이러한 경제통합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러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외채위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 사회주의 체제의 와해 등 국제환경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경제통합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중에는 안데스 그룹이 있는데, 1989년 11월에 안데스 협정 당사국인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 5개국이 통합을 가속화하고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기 위하여 공동 노력을 경주할 것을 합의했다. 이를 통해서 안데스 5개국은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 대외개방을 통한 경쟁력과 생산성 증대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회원국 내부의 무역 불균형과 페루의 잠정 탈퇴 등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1995년 1월 1일자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 Mercado Común del Cono Sur)'이 탄생했다. 메르코수르는 지역 내 관세 철폐와 무역 자유화를 목적으로 하여, 1991년에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의 4개국의 관세동맹으로 회원국가 간의 관세를 철폐하고, 회원국가 이외의 국가와의 무역에 있어서도 공통의 관세율을 적용한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연합(EU)과 같은 공동시장을 지향하고 있으며, 역내 인구 2억 명, 국내총생산(GDP) 1조 달러 규모로 미주지역에서는 NAFTA 다음 가는 규모다. 메르코수르는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경제 협력체이자 관세동맹으로서 세계의 유력시장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녔고, 회원국 간의 상호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메르코수르는 회원국 가운데 경제규모가 가장 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양국 간의 교역이 전체 교역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메르코수르는 회원국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문제나 사회적 불균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합의가 전혀 없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2006년에 베네수엘라가 회원국이 되면서 메르코수르는 라틴아메리카 전체 총생산의 54%에서 73.8%(약 1조 달러)를 차지하게 되었고, 시장규모도 2억 5,000만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로써 메르코수르는 단순한 경제협력체만이 아닌 정치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제 공동체가 되었다.

 

각주
1 수입대체산업화(ISI): 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2 라틴아메리카 자유무역연합: LAFTA, Latin American Free Trade Association, 또는 ALALC, Asociación Latioamericana de Libre Comercio
3 중미공동시장(CACM): Central American Common Market
4 안데스 공동체(CAN): Comunidad Andina
5 카리브 공동시장(Caricom): Caribbean Common Market
6 라틴아메리카 통합기구: LAIA, Latin American Integration Association, 또는 ALADI, Asiociación Latinoamericana de Integra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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