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아메리카....

축구전쟁

구름위 2014. 9. 19. 16:16
728x90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나는 축구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축구는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와 종교 이상의 존재다.
 
대규모 농민봉기

 

19세기에 일어난 농민들의 대규모 유혈봉기 후, 엘살바도르의 대지주들을 비롯한 보수적 지배계층은 소위 '14가문'을 형성해서 국가의 정치, 경제적 권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보호하고 토지 없는 농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사병(私兵)을 육성했다. 그 후 1913~1927년 사이 한 지주 가문인 멜렌데스 가문이 엘살바도르를 13년간 폐쇄적인 방식으로 통치했다.

 

1925년에 엘살바도르 공산당이 창당되어 노조운동이 급진화되었고, 1930년에는 노동자, 농민들이 임금인상과 생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1931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아라우호가 학생, 노동자 및 농민의 지지로 당선되어 공산당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농민과 노동자들의 과격한 시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군부와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에 의해서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어 부통령이었던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악마' 막시밀리아노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 대통령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에르난데스는 1944년까지 13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그는 사람의 목숨을 일개 곤충의 목숨보다 더 가볍게 여겨, 1932년 대규모의 농민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해 약 2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이때 봉기를 주도한 지도자들 중에서 파라분도 마르티가 있었다. 그는 1920년에 추방되어 1925년 과테말라에서 중미 사회당을 창당한 후 입국하여, 지역노조동맹에 활동하다 다시 추방되었다. 그는 후에 석방되어 니카라과에서 산디노군과 합류하여 1929년 산디노와 같이 멕시코로 망명했지만, 산디노와의 이념적 차이로 결별했다. 그는 1932년 국내에서 봉기를 시도하다 체포되어 살해되었다.

 

1935년에 재선된 에르난데스는 노동조합, 공산당, 농민집단의 결사체를 모두 금지했다. '악마'라고 불리기도 했던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1944년 학생과 노동자, 군인이 주축이 된 총파업으로 인해서 사임했다.

 

로메로 대주교

 

1944년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가 사임한 후 군사정부의 통치는 계속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민족화해당(PCN)을 기반으로 한 군사정부가 다른 정당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허용했다. 이로 인해 기독민주당(PDC)의 지도자였던 두아르테가 군사정부의 강력한 도전자로 부상했으나, 부정선거로 인해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족화해당의 몰리나 후보에게 패했다.

 

몰리나는 집권 후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반공을 기치로 법과 질서를 강요했다. 이에 기독민주당의 지도자 두아르테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바로 진압되고 투옥되어 기독민주당은 거의 와해되었다. 이 사건 이후 좌익성격의 대중적인 조직체가 결성되어 군사정부에 지속적으로 대항했다. 그러자 1975년부터 우익의 테러 집단 역시 활동을 시작하여 정치적인 혼란만 계속되었다. 1980년 군부는 부정선거로 당선된 카를로스 움베르토 로메로 장군을 축출하고 중도파 개혁주의자 두아르테를 새로 조직된 혁명위원회의 의장으로 임명했다. 두아르테는 민주적 해결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력을 받아 엘살바도르에서 새로운 헌법의 제정을 위한 선거를 실시했다.

 

이때 "평화적 수단이 고갈되면 결국 반란만이 길이다"라는 주장을 폈던 대주교 아르눌포 로메로가 1980년 시내의 한 성당에서 강론 중 군부의 지령을 받은 암살단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로메로 대주교는 원래 보수주의자였으나 군부의 잔혹한 철권통치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진보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그는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대주교로 전국에 라디오 중계된 미사강론을 통해, 독점적 경제 구조와 인권 침해에 대한 자국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다음은 로메로 대주교의 강론 중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과두제입니다. 단 몇 명의 사람들만이 엄청난 혜택을 누리면서 나머지 민중들의 싼 노동력을 착취해가며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 요구합니다. 그리고 명령합니다. 제발 탄압하지 마시오!"


이에 대해서 엘살바도르 군부는 "신부를 죽여 애국자가 되자"라는 살벌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로메로 대주교의 암살로 인해서 엘살바도르의 정국은 정부군의 게릴라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재개되는 등 또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온두라스와의 축구전쟁

 

1970년에 멕시코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중앙아메리카 6개국이 예선전을 치렀다. 1969년 6월 온두라스에서 벌어진 예선 1차전은 온두라스가 엘살바도르를 1대 0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1주일 후 엘살바도르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는 엘살바도르가 3대 0으로 이겼다. 승부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이 경기장에서 흥분한 양국 관중들이 난투극을 벌였고, 수많은 온두라스 응원단이 구타를 당하고 쫓겨났다. 이 소식을 접한 온두라스 국민은 흥분하여 당시 온두라스에 살고 있던 엘살바도르인에게 살인, 약탈 등의 보복을 가하고 그들을 국경 밖으로 내쫓았다.

 

당시 엘살바도르는 국토에 비해 인구가 많아, 처음에는 온두라스 국경지역에서 많은 엘살바도르인이 정착해 살다가 그 수가 점차 늘어 30만 명의 엘살바도르인이 온두라스로 이주하여 이 지역의 상권을 장악하거나 소농으로 성공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들 엘살바도르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온두라스 정부는, 이를 빌미로 이들에게 30일 이내에 온두라스에서 떠나라고 명령하고 이민정책을 폐지하면서 국경을 봉쇄했다.

 

이에 엘살바도르는 1969년 7월 선전포고를 하고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를 점령했다. 전쟁은 엘살바도르의 일방적인 우세로 전개되었으나 '미주기구(OAS)'의 개입과 중재로 5일 만에 끝났다. 이 과정에서 5일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2,000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온두라스는 엘살바도르의 상품수입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와 단교를 선언하고 세계인권위원회에 온두라스의 만행을 규탄하고 제소하기도 했다.

 

이 전쟁으로 직업이나 농지를 소유하지 않은 엘살바도르인은 그 다음해부터 온두라스로 이민을 갈 수 없었다. 이는 농지는 적고 인구가 많은 엘살바도르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또 양국 간의 전쟁으로 중미 5개국에 의해 1962년 출범된 '중미공동시장(CACM)1)'이 침체되었다. 중미공동시장은 유럽공동시장의 성공을 모델로 하여 이 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경제 공동체였다. 이 공동체의 결성은 19세기 초 '중앙아메리카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달성한 후 지금의 5개국으로 나눠진 뒤, 다시 하나의 국가로 합쳐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서 통합의 꿈은 무산되었다.

 

마지막 승부를 가릴 3차전은 예정대로 제3국인 멕시코 시에서 삼엄한 경비 아래 열려 엘살바도르가 이겼다.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

 

1980년 11월에 좌익세력, 기독민주당원 등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2)은, 군사평의회가 헌법을 정지시키고 비상계엄으로 통치하는 것에 반발, 1981년 1월부터 총공세를 시작했다. 이들은 1983년에는 전 국토의 3분의 1을 장악했다.

 

그 후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은 무장투쟁과 평화협상을 병행하면서 계속 세력을 확대해나갔다. 1989년 선거에서 당선된 국민공화동맹(ARENA)의 알프레도 크리스티아니는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과 평화 협상을 재개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1990년 4월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은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인정하고 군부가 개편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해서, 내전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정부와 협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2년, 12년간 지속된 내전의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각주
1 중미공동시장(CACM): Central American Common Market
2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 Frente Farabundo Martí para la Liberación Nacional

'역사 ,세계사 >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러운 전쟁   (0) 2014.09.19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들》   (0) 2014.09.19
산디니스타 민족해방 전선   (0) 2014.09.19
비바 칠레  (0) 2014.09.19
차코전쟁  (0) 2014.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