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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스페인의 전쟁

구름위 2014. 9. 1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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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스페인의 전쟁

 

스페인과 쿠바

 

쿠바는 빼어난 경관, 온화한 기후, 농사에 적당한 토질, 그리고 니켈, 망간, 크롬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섬이다. 1511년에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쿠바를 강제로 점령하여 식민지배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그들은 농업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혹독하게 착취했다. 원주민들은 이에 대항해서 1528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대부분 처형당했다. 게다가 1530년, 유럽에서 들어온 전염병으로 인해 원주민이 거의 전멸했다.

 

노동력을 상실한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궁여지책으로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흑인노예들을 사탕수수와 담배 재배에 투입했다. 흑인노예들은 17,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나, 스페인 정복자들의 가혹한 탄압으로 노예해방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의 영향이 이곳에도 파급되어 1812년에 대규모의 흑인 반란이 일어났다. 그 후 노예제도 폐지, 노동력의 착취 금지와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1868년에 최초의 무장반란이 일어나, 이후 1878년까지 쿠바의 독립전쟁은 10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이처럼 쿠바 독립의 열기에 두려움을 느낀 스페인 정부는 '산후안 조약'을 체결, 공화제 헌법을 공포하고 정치, 경제의 개혁과 노예해방을 약속해 일단 전쟁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독립전쟁의 열기가 식자, 스페인 정부는 '산후안 조약'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1895년, 호세 마르티를 중심으로 쿠바에서 제2차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쿠바혁명당을 결성한 그는 쿠바 민중에게 독립, 자유, 평등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호세 마르티의 혁명사상은 민중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수많은 민중이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1895년 7월, 드디어 쿠바혁명군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냈고 쿠바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혁명군을 이끌었던 호세 마르티는 스페인군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죽고 나자 스페인은 쿠바인의 독립운동에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고, 수많은 쿠바인을 죽였다.

 

메인호의 폭발

 


미국 선박 메인호의 폭발을 다룬 기사.
1898년 뉴욕 저널에 실린 '메인호의 폭발은 적의 소행이었다'라는 제목으로 미국 국민들의 반(反)스페인 감정을 부추겼다. 이를 빌미로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쿠바와 푸에르토 리코, 필리핀과 괌을 얻었다.
 
1898년 초 해질 무렵, 쿠바의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의 6,000톤급 순양함 메인호에서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연달아서 또 한 차례 폭음이 울려 퍼졌고 거대한 메인호는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로 인해 2명의 장교와 258명의 사병이 죽거나 다쳤다. 메인호는 쿠바에서 설탕 농장이나 담배 재배, 또는 큰 광산을 경영하는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목적으로 미국정부에서 파견한 전함(戰艦)이었다.

 

미국정부는 즉각 사고 원인을 조사했으나, 이미 파괴되어 물속에 잠겨버린 선박을 조사하는 일은 쉽지 않아서 명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 신문들은 그 사고가 스페인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심증 기사를 발표하여 국민의 반(反)스페인 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달빛 아래의 피크닉 -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

 

이로 인해서 미국인 사이에서는 스페인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갔다. 그리고 그럴듯한 전쟁의 명분을 제시했다. 즉, 먼저 독립을 쟁취한 나라인 미국이 쿠바 공화국의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쿠바를 미국의 영토에 아예 합병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도 나왔다.

 

1898년 4월에 미국은 스페인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쿠바에서 군대를 철수할 것과 쿠바의 독립을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스페인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군대를 출동시켰다. 미국에게는 '달빛 아래의 피크닉'이었던 스페인과의 전쟁은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은 미국의 일방적인 강압에 의해 쿠바에 대한 주권 포기, 미국에 푸에르토리코 양도, 마닐라의 미국 점령 인정 등의 내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러한 강화조건이 1898년 12월의 '파리평화조약'에서 그대로 추인되었다. 이로써 설탕 및 담배 원료의 공급지로서, 유망한 자본 투자 대상지역으로서, 그리고 긴요한 군사기지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던 쿠바 섬에 대한 무려 400년에 걸친 스페인 통치는 막을 내렸다. 이와 함께 스페인은 태평양의 마지막 보루였던 필리핀과 괌도 상실했다.

 

1898년

 

1898년은 라틴아메리카 정복자로서의 스페인이 완전한 종말을 맞이한 역사적인 해였다. 신대륙 발견 이래 라틴아메리카 식민지는 스페인 국부의 원천이자 국가 발전의 기반이었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식민지들은 스페인의 영향력에서 이탈해갔고, 마침내 1898년에는 스페인 제국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아메리카와 태평양의 마지막 식민지 보루로 지켜왔던 쿠바와 필리핀을 상실했다. 이들 양 식민지의 상실로 스페인은 국가 존립의 기반이 위태로워졌을 뿐 아니라 국민의 사기도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스페인의 국민의식을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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