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
볼리비아는 인종의 구성 면에서 원주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다. 볼리비아는 독립 전에는 알토 페루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처음에는 페루 부왕령 소속이었으나 1776년 라플라타 부왕령이 생기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관할권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1824년 12월에 볼리바르의 지원을 받은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 장군이 아야쿠초 전투에서 승리한 후, 1825년 8월 추키사카에서 정식으로 볼리비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볼리비아 의회는 볼리비아의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볼리바르에게 국부 및 보호자 칭호를 부여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나라 이름도 볼리바르를 기념하여 '볼리비아'로 정했다. 또한 독립을 선언했던 곳인 추키사카의 명칭도 아야쿠초 전투의 영웅인 수크레 장군을 기념하여 수크레로 바꿨다. 볼리비아의 독립 후 시몬 볼리바르는 1826년 5월 25일 수도 라파스에서 "오늘로 진정한 볼리비아가 탄생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선출되었던 볼리바르가 그란 콜롬비아로 귀국하면서 수크레 장군이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볼리비아인은 그란 콜롬비아에 합병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외국인인 볼리바르와 수크레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이에 수크레 대통령은 영국인과 포토시 광산의 일부를 매각해서 예산을 확충하여 이들의 반감을 완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출신의 이방인 대통령 수크레의 이러한 노력은, 볼리비아 출신 태생 카우디요들의 야망으로 인해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1828년 수크레 대통령은 안드레스 데 산타크루스 장군이 일으킨 군사반란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 후 볼리비아에서는 무지하고 권력욕으로 가득한 카우디요들 간의 무력투쟁과 빈번한 헌법 개정, 수많은 군사 쿠데타, 정치적 암살 등으로 혼란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태평양 전쟁
이렇게 혼란한 가운데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초석산지의 경제적 이권을 둘러싸고 볼리비아와 칠레 사이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 이 아타카마 사막 지역은 원래 볼리비아의 소유였는데, 칠레인이 초석광산 개발을 위해 이곳으로 이주했다. 이로 인해서 칠레 북부 도시 안토파가스타 시의 경우 볼리비아인의 수는 1,200명에 불과한 데 비해 칠레인은 약 6,500명에 달했다.
1866년에 볼리비아의 멜가레호 대통령은 칠레와 조약을 맺어 남위 24도를 경계로 볼리비아와 국경선을 설정했다. 동시에 양국은 23도와 25도 사이에서는 양국의 모든 기업이 광산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초석에서 얻어지는 이윤을 동등하게 분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볼리비아 측에 매우 불리한 것이어서 볼리비아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결국 그 불만은 반란으로 이어져 1871년 멜가레호 대통령이 물러나야만 했다. 그 후 볼리비아는 극도의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1873년에 집권한 아돌포 바이비안 대통령은 페루와 비밀리에 군사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칠레에게 페루와 볼리비아 양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해주었다. 칠레는 외교사절을 볼리비아에 파견하여 화해하려 했으나 볼리비아는 이를 거부했다.
1875년 볼리비아 정부는 멜가레호 대통령이 맺었던 칠레와의 조약을 무효화하는 대신, 부족한 재정난 해소를 위해 칠레의 광산회사들에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 조치에 칠레의 광산회사들은 1874년에 볼리비아가 25년간 세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자신들과 합의한 사실을 들어 세금 납부를 거부했다. 그러나 볼리비아 정부는 칠레의 광산회사들에게 세금의 납부를 계속 강요했다. 이에 대부분이 영국 소유였던 광산회사들은 칠레 정부에 불만을 쏟아냈다.
결국 칠레가 1879년 안토파가스타 시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칠레는 볼리비아와 페루에 전쟁을 선포했는데, 이것이 바로 '태평양 전쟁'이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재앙 - 전쟁의 패배
칠레의 선전포고로 위기를 느낀 페루는, 1873년에 볼리비아와 맺은 비밀 군사동맹을 근거로 볼리비아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자 칠레는 페루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이키케를 점령한 후, 볼리비아군을 격퇴시키면서 북진했다. 칠레군은 타크나와 아리카 지역을 점령하고 페루의 카야오 항을 봉쇄했다. 이어서 칠레는 1881년 리마를 점령하여 가르시아 칼데론이 주도하는 괴뢰정부를 수립, 태평양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이 끝나고 칠레는 페루와 안콘 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페루는 칠레에 타라파카를 양도하고, 타크나와 아리카 지역을 칠레 측이 10년 동안 통치한 후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최종적으로 주민들이 국가를 선택하도록 했다. 그 후 이들 두 지역의 귀속문제는 1929년에 맺은 협정에 의해 아리카는 칠레가, 타크나는 페루가 소유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초석광산이 있던 남부의 넓은 땅을 칠레에 빼앗기고 말았다. 또 볼리비아는 1884년에 칠레와 체결한 협정으로 태평양 연안의 땅을 잃고 해양으로의 진출구를 상실한 내륙국가가 되었다.
한편 칠레는 영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방대한 안토파가스타 주를 점유함으로써 19세기 말부터 엄청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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