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러시아 이야기

거센 동풍 러시아

구름위 2014. 9. 1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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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이민족의 남러시아 지배(AD 4세기 ~ 9세기)

 

슬라브의 우상
고대 러시아의 토착종교가 나타나 있는 이 오벨리스크의 맨 꼭대기 상은 하늘의 신, 가운데는 조그만 인간, 맨 아래는 저승에 사는 악마의 좌상이다. 높이 2.8m
 
러시아의 대지는 크게 북의 삼림과 남의 초원으로 나뉜다. 북의 삼림지대는 나무는 풍부하지만 대륙성의 혹한 기후를 보이는데다 토지가 척박해 농사 짓기에 좋은 땅이 아니다. 그에 반해 남의 초원지대는 기후도 비교적 온화하고 땅도 기름진 흑토(체르노젬)여서 소출이 좋다. 이 드넓은 대초원이 흑해 북안에서 저 멀리 몽골 고원까지 장애물 하나 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본디 삼림지대의 숲이나 늪에서 모진 노동에 시달리던 슬라브인들은 언제나 남쪽의 광활한 대초원에 강하게 끌리고 있었다. 대초원은 기름질뿐만 아니라 경관 또한 아름다웠다. 소설가 고골리는 그의 〈대장 불리바〉에서 대초원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 무렵 러시아 남부는 온통 푸른 잎으로 덮인 처녀지였다. 야생의 잡초가 끝없이 물결치는 토지는 한 번도 쟁기로 찍힌 일이 없다. 그곳에 숨어 사는 말떼들이 높이 자란 풀들을 짓밟으며 지나간 자국이 군데군데 보일 뿐이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눈이 닿는 데는 온통 빛나는 녹색의 대양처럼 반짝이며 일곱 가지 색깔의 꽃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저녁이 되면 대초원은 전혀 새로운 곳이 된다. 갖가지 색깔로 빛나던 대초원이 마지막 태양 빛에 싸여 조금씩 어두워가고, 식물들의 향기가 짙어간다. 꽃이란 꽃, 풀이란 풀이 온통 향기를 내뿜어 대초원 전역이 야성적이면서도 그윽한 내음 속에 파묻힌다. 낮의 음악이 물러가고 다른 음악이 들린다. 얼룩무늬 마모트가 구멍에서 나와 뒷다리로 서서 내는 휘파람 소리가 대초원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귀뚜라미 날개 소리가 차츰 다른 소리를 덮는다."


슬라브인들이 이 대초원에 정착하여 경작을 하려고 한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그들은 몇 번이나 시도했다. 그러나 대초원은 꿈의 대지임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했다. 탁 트인데다가 풀이 무성했기 때문에 사나운 유목민들이 쉼 없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러시아의 대초원이 슬라브인의 삶의 터전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실제로 키예프 러시아가 강성했던 11세기 전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남러시아 초원지대의 주인은 아시아계 유목민족이었다. 따라서 러시아의 역사에서 슬라브인을 등장시키기에 앞서 이들의 얘기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역시 넓은 의미의 러시아 세계를 이루는 구성원들일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이동이 미친 파급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상에 기록을 남긴 것만 해도 적어도 여덟 차례, 아시아계의 유목민들이 남러시아에 몰려왔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최초의 유목민족으로서 BC 700년경에 스키타이인이 동쪽으로부터 들이닥쳤고 뒤를 이어 사르마트인이 들어와 AD 200년경까지 남러시아를 지배했음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다.

 

사르마트인의 지배는 동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내려온 게르만계의 고트 족에 의해 분쇄됐다. 이들은 남러시아에서 서고트 족과 동고트 족으로 갈라졌고, 이중 동고트 족이 흑해에서 발트 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우고 370년경까지 러시아를 지배했다.

 

고트 족의 시대는 다시 동쪽에서 온 훈 족의 침입으로 끝났다. 훈 족의 이동은 유럽의 역사에 대파란을 몰고 왔다. 흉노족의 일파인 훈 족은 372년경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서진을 시작, 러시아의 광막한 초원지대를 거침없이 내달려 동고트 족을 박살내고 단숨에 서유럽 깊숙이까지 쳐들어갔다. 작은 눈에 넓적한 어깨, 짧은 다리를 가진 그들은 말 등에서 밥 먹고 잠을 잤으며 그 용맹을 따를 자가 없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훈 족은 5세기 초 아틸라의 지도하에 다뉴브 강 북안을 근거지로 하여 북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로마의 심장부까지도 위협했던 제국은 그러나, 451년 프랑스 서부의 살롱 전투에서 패하고 2년 후 아틸라 왕이 죽으면서 붕괴하고 만다.

 

훈 족의 침입과 그들에게 밀려난 동고트 족의 이동으로 유럽 전역에 '게르만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그와 함께 로마가 멸망하면서 고대세계가 붕괴하고 유럽이 중세로 접어들었다. 슬라브인이 동 · 서 · 남의 세 족속으로 갈라지는 것도 이때였다.

 

남러시아를 내습한 다음 파도는 아바르인이었다. 몸집이 크고 전투능력이 탁월하여 잔인한 짓을 예사로 한 아바르인은, 558년 러시아의 초원에 들어와 100여 년간 남러시아를 지배했다. 한창 성할 때에는 비잔틴 제국까지 크게 위협했으나 이들의 지배가 종식된 후 그 국가는 거의 흔적도 없이 붕괴되고 말았다. 유동적이고, 정치적으로 미숙하며, 문화적으로 허약한 유목민들의 공통된 운명이었다.

 

그 후 7세기 남러시아 볼가 유역에 새로운 세력이 하나 등장하니, 바로 하자르 국이다. 7세기 중엽부터 10세기 초까지 볼가 유역과 북카프카스 지방을 지배한 하자르인들은 이전의 훈 족이나 아바르인과는 달리 약탈이나 살육을 삼가고 정주생활을 하면서 상업과 농업을 발전시켰다.

 

9세기 들어 지배층은 유태교로 개종했으나, 종교에 관용을 보여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 밖의 이교도들이 국가 내에 공존했다. 하자르의 상업은 크게 확대되어 동으로는 중국에서부터 서로는 에스파냐에까지 그 힘이 미쳤다. 강력한 하자르 국은 씨족사회 단계에 있던 슬라브 농경 목축민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 동슬라브의 몇몇 부족이 하자르에 조공을 바치는 관계가 되었다.

 

이어 하자르가 아랍 제국에 밀려 힘을 잃은 후 페체네크인과 폴로베츠인이 차례로 초원지대에 등장하여 슬라브인들을 위협했고, 마지막으로 몽골족이 초원의 지배자로 등장하여 러시아인에게 이른바 '타타르의 멍에'를 씌웠다.

 

러시아인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 대외적인 위협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경계심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옛 러시아인들은 오랫동안 동쪽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왔다. 언제 또 무서운 적이 폭풍처럼 덮쳐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훗날 그들은 서유럽에 대해서도 같은 두려움을 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