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러시아 이야기

러시아 역사의 시작

구름위 2014. 9. 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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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러시아 초원의 그리스-이란 문화(BC 7세기 ~ AD 2세기)

 

러시아 역사는 흔히 북방의 노르만인이 러시아 땅에 출현하여 키예프 러시아를 세웠다고 전해지는 9세기로부터 시작한다. 그 전 시대를 말해주는 러시아의 문헌이 없고, 다른 나라의 사료에도 러시아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거나 매우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러시아의 태동에 관한 역사는 특정한 목적하에 각색된 전설이나 수수께끼와도 같은 이야기로 전해져왔다. 그러한 '전설'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12세기 초에 한 수도사에 의해 쓰인 〈원초 연대기-지나간 세월의 이야기〉의 기록이다. 그에 따르면 노르만 족의 일파인 바랴기가 슬라브인들의 요청에 의해 러시아 땅에 내려와 키예프 루시를 건설했고, 그로부터 러시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의 고고학과 언어학은 적어도 70만 년 전부터 흑해로 흘러드는 드네프르 · 돈 · 드네스트르 강과 카프카스 지방, 볼가 강 유역, 시베리아 남부지방에서 인류의 발자취를 찾아냈고, BC 4000~3000년경에 이미 몇몇 지역에서 신석기와 토기를 사용하는 농경문화가 형성됐음을 밝혀냈다.

 

그와 아울러, BC 2000년경부터 당시 선진 문화권을 형성했던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가까운 쪽으로부터 청동기문명이 도입되고 이어 철기문명이 들어오면서 당시 서유럽 지역과 비슷한 발전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적어도 남러시아 지역은 당시의 수준으로 볼 때 결코 캄캄한 미개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최근에 와서 그동안 잊혀졌던 고대 러시아 세계의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빛을 본 것이 스키타이 문명이고, 그 뒤를 이어 새롭게 조명되는 것이 아르메니아 지방의 강성한 노예제 국가였던 우라르투 왕국과, 흑해 북안의 킴메르인 국가, 여러 개의 그리스 식민시와 보스포루스 왕국, 중앙아시아의 호라즘 왕국 등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미가 깊은 것은 러시아사의 주역인 옛 슬라브인들의 생활모습과 그 역사적 자리매김일 것이다.

 

러시아사의 첫 장면에서는 이란계 유목민과 그리스 식민시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고대 남러시아의 그리스-이란 문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비록 러시아인의 역사는 아닐지라도 거기서 러시아사의 기본 토대를 이루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BC 1000년경 흑해 북안의 비옥한 초원지대에 킴메르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들이 기록상 러시아의 대지에 최초로 그 이름을 나타내는 민족이다. 농경민족이었던 이들은 철제 도구를 가지고 이 땅에 들어와 토착민들 위에 서서 약 3세기 동안 남러시아를 지배했다.

 

이어 BC 7세기경 이란계의 유목민 스키타이인이 말을 타고 들어와 킴메르인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제우스와 드네프르 강의 딸의 후손임을 자처한 이들 스키타이인은 매우 용맹스러운 민족이었다. 이들은 안장을 얹은 말을 타고 활과 단검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기동성과 전격전으로 남러시아의 초원을 휩쓸었다. 당시 강국이었던 페르시아까지도 이들을 당하지 못했다.

 

스키타이인은 서쪽으로 다뉴브 강에서 동쪽으로 돈 강과 카프카스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강력한 군사국가를 세우고 약 400년 동안 남러시아를 안정적으로 지배했다. 이들의 지배하에서 남러시아의 토착문화가 다양한 외래문화와 접촉하며 발전해갔고, 초원지대의 북부에서는 농업이 계속 번창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스키타이 동물 양식'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문화가 창조됐다. 유목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소재에 그리스 미술의 영향이 가미되어 창조된 이 청동제 · 금은제 공예품들은 특유의 생기가 넘친다. 스키타이의 옛 무덤에서는 그밖에도 청동제검 세 날개 청동 화살촉, 창, 활과 화살, 갑옷, 투구 등의 무기, 재갈 등의 마구 등이 출토되어 당시 스키타이인의 활동상을 보여준다.

 

 

스키타이의 황금제 빗
 
빗머리에 장식된 전사들은 호전적인 유목민인 스키타이인으로, BC 7세기경 러시아에 정착, 발달된 철기문명으로 강력한 국가를 세웠다.
 
BC 300년경 강력한 스키타이 국가도 같은 이란계의 사르마트인들에게 무너졌다. 갑옷과 투구, 창과 긴 칼을 쓰는 중무장의 기병대를 가진 사르마트인이 스키타이의 경기병대를 무찔렀던 것이다. 이들은 신속히 스키타이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후 남러시아의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는 동서 교역로를 개척했다. 사르마트의 여러 부족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당시의 지도에 종종 나타나는 알란 족이다. 이들은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해 유럽 전역이 로마 군병의 발 아래 무릎을 꿇었을 때에도, 그 세력권 밖에 서서 AD 200년경까지 약 500년 동안 남러시아를 지배했다.

 

흑해 북안과 러시아의 초원지대에 그리스-이란 문화가 발전한 것은 바로 스키타이-사르마트 시대였다. 먼저 스키타이인과 사르마트인들에 의해 이란 문화의 요소들이 표출됐다. 언어와 관습과 종교와 전쟁 중시 사상, 독특한 장식미술, 힘 있는 공예기술 등이 그것이다. 그 바탕에 풍요로운 그리스 식민시들을 통해서 그리스 문명이 전해지면서 독특한 문화가 창출됐다.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와 발칸 반도를 거쳐 BC 7세기 중반부터 흑해 북안에 자리 잡고 상업을 발달시켰다. 유명한 식민시로는 일찍이 헤르도토스가 잠시 기거하면서 이 지역에 관한 귀중한 사료를 후세에 전해준 도시 올비아, 크림 반도에 있던 케르소네소스, 아조프 해와 흑해를 잇는 케르치 해협의 판티카파에움과 파나고리아 등이다. 이들은 남러시아의 곡물을 그리스 세계로 수입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교역에 종사했다. BC 5세기경 케르치 해협에 있던 그리스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보스포루스 왕국이 건설되었다.

 

흑해 북안을 차지하고 있던 그리스 식민시들과 내륙의 초원지대를 지배하던 스키타이인과 사르마트인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공존하는 길을 택했다. 교역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상호간의 결혼, 문화 침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그 결과 높은 수준의 문화적 ·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졌다. 그 실례의 하나가 보스포루스 왕국이다.

 

오늘날 모스크바의 역사박물관이나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전시실을 잠깐만 둘러보면, 당시 남러시아에서 꽃피었던 고대 그리스-이란 문화의 영광스런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남러시아 역사의 이 한 장면에서부터 러시아사의 한 특징을 이루는 동과 서로부터의 문화적 침투와 그 토착화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