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왕령(副王領)
레케리미엔토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에게 레케리미엔토(Requerimiento, 명령, 통고)를 읽어주었다. 이는 원주민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하기 전에 스페인 왕에게 평화적으로 복속당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거부할 것인지를 원주민에게 강요하는 문서였다. 이 문서에는 "당신들(원주민들)이 진심으로 스페인 군주와 정복자들에게 의무사항을 이행한다면 사랑으로 영접하겠다. 하지만 만약 이를 이행치 않거나 악의적으로 지체한다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당신들과 전쟁을 해서, 당신들과 그 가족을 노예로 삼고 때로는 이들을 팔아버릴 것이다"라는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그런데 정복전쟁의 현장에서는 이 레케리미엔토가 제대로 읽혀지지도 않았고, 읽혀질 경우에도 원주민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 동틀 녘이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원주민이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읽혀졌기 때문에 이는 거의 유명무실했다. 이렇게 희극적인 정복행위를 통해서 신대륙을 정복했던 초기의 정복자들은, 그들이 정복한 땅에서 거의 무한대의 권한을 누렸다. 정복과정에서 세운 기여도에 따라 토지나 관직 등을 분배받았고, 자신이 원하는 직책을 국왕에게 통보만 하면 거의 그대로 인정받았다.
정복자들은 자기들을 도와서 정복을 수행한 자들에게 포상을 내렸고, 그들을 주요 직책에 임명했으며, 정복지 내에서는 스페인 국왕의 간섭 없이 독자적인 식민사업을 행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정복지의 군사적 책임자인 동시에 행정적, 사법적 책임자였다. 이러한 지위는 거의 종신직이었으며, 또한 스페인 왕실과는 별도로 식민지에서 상당한 권한을 누렸다.
그러나 스페인 왕실은 신대륙에서 이렇게 무한대의 권한을 누리는 정복자들이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강력한 봉건귀족으로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스페인 왕실은 이를 막기 위해 스페인 본국의 중앙통제정책을 실시했다. 먼저 스페인 본국에 식민지 지배를 위한 관청들을 설립했고, 신대륙에는 스페인 본국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통제했다.
스페인 본국에 설치된 식민 관청
식민지가 점차 확대되면서 스페인 왕실은 식민지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통제를 위해 통상원을 설립했다. 1503년에 세비야에 세워진 이 기구는 신대륙과 관련된 행정, 사법적 기능뿐만 아니라 교육, 학술적인 역할까지 맡았다. 행정적 기능으로는 신대륙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출입국 관리, 출입 선박의 등록 및 허가, 교역상품에 대한 세관 업무, 그리고 신대륙에서 국왕에게 바치는 '킨토레알(quinto real, 5분의 1세)'에 대한 관리 등이 있었다. 사법적 기능으로는 신대륙과의 교역에 관련된 모든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소 역할이 있었다. 교육 및 학술적 기능으로는 세계 최초의 항해학교 설치 및 운용, 선원의 교육, 그리고 해도나 항해일지 등 항해관련 책자를 발간하는 등의 업무가 있었다. 이 통상원은 1717년에 카디스로 이전했다가 1790년에 폐지되었다.
또 다른 기구로는 1509년에 창설된 인디아스 심의회가 있었는데, 이 심의회는 경제를 제외한 식민지의 모든 업무를 감독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통상원보다 상위에 있었던 이 기구는 행정기관의 청원, 법률, 형사, 민사 소송, 왕을 위한 자문 등 식민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다루었다. 이 기구는 식민지의 주요 관리나 교회의 고위직을 임명하는 권한과 함께 식민지의 하급 법원에서 상소를 받아 재판하는 사법권 등, 사실상 왕을 대신해 신대륙과 관련된 중요 업무를 모두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신대륙에서 인디아스 심의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심의회의 영향은 점차 축소되어갔다.
식민통치제도
스페인 왕실은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기 위해 스페인 본국뿐만 아니라 신대륙 현지에 여러 제도를 실시했다. 그 중 대표적인 제도로 부왕령(副王領, Virreinato)과 아우디엔시아(Audiencia)가 있었다.
부왕령은 16, 17세기 초에 가장 번성했던 지역인 멕시코와 리마에 설치되었다. 스페인 왕실은 1535년 파나마를 경계로 현재의 멕시코에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을 설치하여 멕시코에서 파나마까지를, 1530년에는 페루지역에 페루 부왕령을 설치하여 파나마 이남 지역을 부왕의 통제하에 두게 했다. 이로써 스페인 본국은 식민지에서의 중앙집권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 부왕령을 통치하는 부왕(副王, virrey)은 행정의 최고직으로서 식민지에서 왕의 권한을 대행했다. 그는 왕을 대리한 실질적인 행정 책임자였고 최상층에 속하는 귀족이었다. 그가 위임받은 권한은 컸지만 관할지역이 너무 넓었기 때문에 권력이 행사되는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부왕의 임기는 6~7년 정도였는데 대체로 귀족 작위를 가지고 있는 스페인 본토인(페닌술라르, peninsular)들이 맡았다. 이들은 왕의 신임과 자신의 직책을 이용하여 하위직을 가족과 친지에게 배분하기도 했다. 부왕은 식민지에서 획득되는 모든 재화를 관장하는 감독관이었으며, 관할 아우디엔시아의 의장도 겸했다. 그는 또한 성직자 및 관리 임명권 등을 가짐으로써 식민지에서는 거의 왕과 같은 지위를 누렸다. "부왕은 식민지에서 왕의 명성과 힘을 대신했다. 그의 권위는 시가지에 세워진 개선문, 사법관들과 성직자들의 품위 있는 의상행렬, 축하연, 그리고 가장행렬로 이어지는 화려한 환영식으로 입증된다"라는 말에서 부왕의 권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 후 식민지의 영역이 더 확대되어감에 따라 이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페루 부왕령의 일부였던 현재의 콜롬비아 지역을 분리해 1718년 그곳에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을 설치했다. 1776년에는 현재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지역에 네 번째 부왕령인 라플라타 부왕령을 설치했다.
부왕령과 함께 식민지에서 아우디엔시아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었다. 아우디엔시아는 신대륙의 방대한 영토에서 최상급 재판소의 기능을 수행했고, 일정한 정치적, 행정적 기능도 갖고 있었다. 관할 영역 내에서 최고 법원 역할을 했던 아우디엔시아는 주로 형사, 민사 사건의 심리, 하급심에서 올라온 사건의 최종심 역할을 수행했다. 이 아우디엔시아의 장(長)은 부왕이 맡았고, 구성원으로는 판사 역할을 했던 오이도르(Oidor, 듣는 사람)가 있었다. 이 오이도르들은 부왕이나 총독들의 불법적이거나 억압적인 행위를 감찰하고 그들의 전횡을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신대륙 최초의 아우디엔시아가 1511년 산토도밍고에 설립된 이래, 파나마, 멕시코, 리마, 과테말라, 과달라하라, 산타페 데 보고타, 차르카스, 키토, 산티아고 데 칠레 등 18세기 말까지 모두 14개나 되었다.
이 아우디엔시아 아래에 도시를 다스리는 시의회인 카빌도(Cabildo)가 있었다. 이 시의회는 회계, 세금 징수, 도량형 측정과 공증 업무를 맡을 관리의 임용과 치안, 보건, 사법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스페인 왕실은 식민지의 중추신경이었던 카빌도가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수많은 포고령을 통해 시의회 의원들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일하지 못하게 했고 정기적인 검열을 받도록 했다. 이 카빌도는 도시에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도시의 유력인사들이 참여하여 공개적으로 논의했는데, 후에는 왕실에서 직접 대표자를 파견함으로 인해 주민들의 대표성이 결여되어 카빌도의 권한이 많이 약화되었다.
16~18세기 부왕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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