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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들 인디오는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구름위 2014. 8. 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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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스 신부와 비토리아 신부의 절규

 

'야만'을 고발한다!

 

정복자들이 신대륙의 원주민에게 행했던 '야만'에 대해 일부 스페인 성직자들은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만약 스페인 왕실이 참다운 복음화를 원한다면 십자가와 칼이 함께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비록 많은 성직자가 스페인 정복자들의 이익을 대변했지만, 이처럼 착취당하는 원주민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던 성직자도 있었다.

 

바스코 데 키로가,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가톨릭'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야만스런 정복행위를 만천하에 고발했다.

 

원주민의 권익 보호

 

바스코 데 키로가는 "여기가 신세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데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합당한 이유와 명분이 있다. 진정 여기는 신세계다. 그것은 여기가 새롭게 발견되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이 태초의 황금시대의 세계,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황금시대는 우리의 악행과 무지막지한 탐욕으로 인해서 철기시대, 아니 그보다 더 못한 시대로 전락하고 말았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의 원칙, 즉 재산의 공유, 하루 6시간의 노동, 사치의 추방, 노동의 결실에 대한 평등한 분배 등을 멕시코 원주민의 공동체에 적용, 스페인 정복자들의 이익과 원주민 공동체의 이익을 서로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다.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신부도 원주민의 인권 옹호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1539년 살라망카 대학에서 학생들을 향해,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신대륙에서 원주민을 어떤 식으로 취급하고 또 어떤 식으로 원주민에게 대접받는지 직접 눈으로 보라고 절규했다. '원주민들은 사회라는 것이 탄생하기 이전의 인간이기 때문에, 유럽의 문명인이 그들을 정복하고 또 문명화의 목적에 적절히 사용하기 위해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한 철학자 세풀베다의 주장에 대해서, 비토리아 신부는 "도대체 이들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또 정복자들은 자연을 파괴한 범죄자로 죄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유럽의 모든 국가는 자연을 파괴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원주민을 정복할 도덕적 권리는 없다"라고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자행했던 원주민에 대한 착취를 비난했다. 그는 또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미 문명이 존재하고 있던 땅을 '발견'했다고 하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도미니크회의 성직자인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는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원주민을 학대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1511년, 에스파뇰라 섬에서 행한 설교에서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당신들은 자기 땅에서 평화롭게 사는 원주민에게 그토록 천인공노할 전쟁을 벌여왔습니까?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까? 그들은 이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까?"라는 말로 원주민을 가혹하게 착취하던 스페인 정복자들의 잔인한 행위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나는 이 섬의 황야에서 부르짖는 예수의 목소리입니다··· 이 목소리는 당신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죄악 속에 있고, 또 그 속에서 살다가 죽을 것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이 순진한 사람들을 잔혹하게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권리와 법으로 이 원주민들을 처참한 노예로 만들었습니까? 도대체 무슨 권리로 자기 땅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사는 이들과 가증스러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까? 이런 상태라면 당신들은 무어인이나 터키인처럼 더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몬테시노스의 이 예언자적 고백은 산토도밍고(지금의 쿠바)의 식민지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신들은 모두 영원한 죄를 범했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한 몬테시노스의 설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참다운 교회의 건설을 위한 시금석이 되었다. 그의 이 기념비적인 설교는 정복자들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 활동 중이었던 가톨릭 성직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정의를 향한 최초의 외침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
그는 식민지 체제의 불평등과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평생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였다. 그의 투쟁은 후에 원주민 노예제 폐지와 엥코미엔다의 세습을 금지했던 '신법'이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페인 정복자들의 '야만'에 대한 비판의 불을 댕긴 사람은, 바로 콜럼버스와 거의 동시대인이었던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였다. 라스카사스 신부는 살라망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신대륙에 왔다. 그는 1510년, 사제에 서품된 뒤에도 계속 부를 축적하는 등 다른 정복자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라스카사스 신부는 몬테시노스 신부가 원주민의 운명에 관해서 던졌던 "이들은 인간이 아니란 말이요? 그들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까?"라는 질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식민지 체제의 불평등과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원주민에게 저지르는 수많은 범죄행위를 고발했다. 원주민도 스페인 왕의 신민(臣民)이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하고, 그들은 지적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으며, 가톨릭 신앙 안에서 자애롭게 교화되어야 한다고 신대륙과 구대륙 양측을 오가며 끊임없이 주장했다. "설사 그들이 이교(異敎)의 신앙을 지녔다고 해서 그들을 인간의 종(種)에서 제외시켜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이교도이기 때문에 그들을 개종시킬 명분이 더 있는 것 아닌가?"라고 라스카사스 신부는 되물었다.

 

바야돌리드 대논쟁

 

라스카사스 신부가 원주민을 옹호하는 입장에 대해서 스페인 정복자들과 대다수의 신학자는 강하게 반발했다. 스페인의 식민정책을 둘러싼 2개 노선의 대립은, 카를로스 1세의 지시로 1550년에 열린 바야돌리드 궁정 토론회에서 본격화되었다.

 

그중에서도 라스카사스 신부와 세풀베다의 논전은 유명하다. 스콜라 철학자 후안 히메네스 데 세풀베다는 군사적 정복이야말로 원주민을 가톨릭교도로 바꾸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원주민은 인간의 형상만 하고 있을 뿐 결코 인간이 아닌 문화적 야만인이라는 점과, 이들이 선진 유럽 문명에 복속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원주민을 옹호하는 라스카사스의 저술은 '이단적이고 악마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그동안 원주민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왔던 라스카사스 신부는, 식민지에서 스페인의 국왕이 해야 할 일은 스페인의 정신을 신대륙의 식민지에 심는 것이고, 원주민의 토지 소유권 역시 '자연법과 국제법'에 따라 존중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또한 정복 이전의 원주민 사회가 관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질서를 가진 공동체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논쟁은 후에 카를로스 1세가 라스카사스 신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엥코미엔다 제도 개혁의 바탕이 되는 '신법(新法)'을 1542년에 공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신법은 원주민 노예제를 폐지하고, 원성이 자자했던 엥코미엔다 제도의 세습을 금지시켰다.

 

쿠바의 시인이자 혁명가인 호세 마르티와 칠레의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 등은, 이렇게 치열하게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던 라스카사스 신부의 생애를 '원주민 노예제에 맞선 고독한 투쟁의 과정'이라고 칭송했다.

출처 : 성호 콘덴서
글쓴이 : 베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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