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팽창
봉건사회의 몰락과 절대왕정의 출현
15세기를 전후해서 유럽 각국은 대규모 영토를 소유한 영주(領主), 귀족과 성직자, 직업군인, 상인, 가내 수공업자 그리고 자유민 및 농노(農奴)로 구성된 봉건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동방의 문물이 전해지고 해외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부를 축적한 중산계급(또는 신흥도시민 계급)의 영향력은 커졌다. 반면, 중세 봉건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영주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축소되면서 봉건제도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봉건제도의 몰락과 함께 출현한 절대왕정체제는 바다 너머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강력한 왕권의 지원을 받은 중산계급은 새로운 무역로의 개척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중세 말까지 유럽인은 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는데, 13세기 말에 마르코 폴로(1254~1321년)가 《동방견문록(The Travels of Marco Polo, 또는 Le Livre des Merveilles)》을 펴내면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팡구는 대륙에서 1,500마일 떨어진 동쪽 공해 가운데에 있는 아주 큰 섬이다. 그곳 사람들은 피부색이 희고 예절이 바르며 우상을 숭배하고, 어느 나라 군주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독립국을 이루면서 자신들의 국왕을 받들고 있다. 도처에서 황금이 산출되므로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막대한 황금을 소유하고 있다. 대륙에서 이 나라에 들어간 상인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막대한 양의 이 황금은 아직 한 번도 나라 밖으로 반출된 적이 없다. 이와 같은 막대한 황금이 이 나라에 현존하는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다.
1400년경만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드넓은 바다를 계속 항해해나가면 배가 결국 낭떠러지로 추락한다든가, 펄펄 끓는 바다가 삼켜버린다든가, 아프리카 남부로 가면 작열하는 태양열에 백인이 흑인으로 변한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모든 유럽 국가가 해외 무역로 개척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미신이나 환상이 되고 말았다. 유럽인이 유럽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무역로를 개척하여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려 했던 이유는 크게 경제적 동기, 종교적 동기, 그리고 정치적 동기가 있다.
먼저, 경제적 동기로는 유럽인은 향신료, 보석, 금, 은 등과 같이 유럽에서 수요가 많은 동방의 생산물을 구하기 위해 기존의 무역로가 아닌 새로운 동방 무역로의 개척이 필요했다. 기존의 무역로에는 장기여행에서 오는 위험, 경비의 과중함, 중간 지역에서 지불하는 세의 부담 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둘째, 종교적 동기로는 가톨릭을 전파할 수 있는 새로운 지역이 필요했다. 15세기 중엽을 전후로 근동지방에서 오스만 투르크족의 세력 팽창과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인해, 유럽인이 가톨릭 전도에 대한 열망을 더욱 더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적 동기로는 오스만 투르크족에 의한 동방 무역로 단절과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교도의 추방으로 인한 영토의 통일, 그리고 포르투갈의 근대국가로의 발전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동기로 인해서 스페인을 비롯한 신흥군주 국가들이 해외의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다. 이들이 해외의 식민지를 확대하는 데 필요한 외부적인 조건들 역시 성숙해 있었다. 즉, 지리에 대한 지식 확대 및 항해술의 발달, 대범선의 건조와 나침반의 사용 등 중세의 편견을 깨고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유럽인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암흑의 바다는 이제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신대륙과의 교역을 위한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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