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팽창정책
국토회복운동 - 레콩키스타
아프리카 북부에 살고 있던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모로인)이 711년에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했다. 반도에 있던 가톨릭교도들은 반도 북부 아스투리아스의 산악지대까지 쫓겨 갔다. 그 후 가톨릭교도는 718년, 코바동가에서 이슬람교도에게 처음으로 승리하면서 국토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후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 이베리아반도의 가톨릭교도와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용병들, 그리고 프랑스의 수도사들이 힘을 합쳐 이슬람 치하에 있던 반도의 대부분을 재정복(레콩키스타, Reconquista)하기 시작했다.
1469년에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의 결혼으로 두 왕국이 통합되었다. 이는 이베리아반도 내에 있던 다른 가톨릭 왕국들이 힘을 합쳐서 이슬람교도를 반도에서 완전히 축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가톨릭 왕들
이처럼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은, 가톨릭교도의 오랜 숙원이었던 가톨릭교도에 의한 반도의 종교적 통일이 이루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성지 예루살렘을 속히 되찾아주기를 염원하는 의미로,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를 '예루살렘의 왕'에 봉했으며, 후에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가톨릭 왕들(Reyes Católicos)'이라 칭했다.
마데이라 군도와 카나리아 군도
대서양 상에 있는 마데이라 군도는, 1419년과 1420년 두 차례에 걸쳐 원정대를 파견했던 포르투갈에 점령되었다. 마데이라 군도에서 충돌한 적 있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 후 카나리아 군도에서 또다시 대립했다. 마데이라 군도는 포르투갈이 이미 점령한 곳이었지만, 카나리아 군도는 당시에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다. 1478년, 가톨릭 왕들은 카나리아 군도를 점령하기 위해 원정대를 파견했지만, 원주민들의 저항으로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482년, 스페인은 다시 원정대를 파견하여 카나리아 군도를 점령했는데 이는 스페인 최초의 해외 영토가 되었다. 가톨릭 왕들은 재정복 시기에 행했던 관례에 따라 카나리아 군도의 이주민들에게 '레파르티미엔토(Repartimiento)1)'의 권리를 부여하면서 식민사업을 전개해나갔다. 스페인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있었던 이 카나리아 군도를 이용하여 신대륙 항해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명예와 부 그리고 영혼
스페인에서 레콩키스타가 완성되면서 그동안 축적된 힘을 분출할 새로운 기회가 필요했다. 신대륙으로의 진출과 정복은 바로 그 돌파구가 되었다. 신분과 명예를 존중했던 중세 스페인에서 '명예의 추구'와 '부(富)에 대한 욕구'는 이러한 정복의 추진력이 되었다.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을 위한 원정대가 조직되기 전에, 국왕과 원정대장 사이에 정식계약(카피툴라시온, Capitulación)이 체결되었다. 이 계약에 따라서 국왕은 원정대가 정복한 영토를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대신 원정대장과 원정 대원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약속했다.
그런데 신대륙 정복에는 이러한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원인도 있었다. 종교적 열정이 유난히 강했던 스페인은 '정복'이라는 명분 속에서 국가, 교회 그리고 군인이 정복의 주체가 되었다. 이들은 신대륙을 무력으로 식민지화하고 아울러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영혼을 정복했다. 바로 '영혼의 정복'이었다. 이는 스페인의 정복사업이 다른 유럽 열강들의 그것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차이점이기도 했다.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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