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문명(1)
문화의 만화경
"이 기념물들은 열대림 한복판에 엄숙하고도 조용히 서 있다. 조각품은 뛰어나고 장식도 다양해서 다른 사람들의 것과 너무나 다르다. 상형문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데, 그 내용을 전혀 해독할 수 없어 그 용도나 사용 목적, 역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기념물들 자체에 대해서 어떤 의견도 제시할 생각이 없다. 그것을 바라보노라면 내 상상력이 힘겨울 정도다"
또한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는 "마야문명이 존재했던 신세계 전체는 흥미로운 고대문화의 발생지역이 아니다. 즉,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체가 없는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마야문명의 경이로움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마야문명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열대림 속에서 완벽한 문자체계, 매우 정확한 천문학, 수학 그리고 달력을 개발한 아메리카 문명이었다. 또한 마야문명은 무수한 실로 짜였으면서도 그 위에 여러 가지 색채가 미묘하게 혼합되어 또 다른 변종이 나타났던 일종의 '문화의 만화경'이었다.
도시국가들의 집합
마야문명은 대부분이 열대 저지대인 멕시코 남부 유카탄반도 일대와 과테말라, 벨리세,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서부 등을 포함한 지역에서 꽃피운 문명이다. 이 마야문명은 아스텍이나 잉카처럼 제국의 형태가 아닌 개별 도시국가의 형태로 존재했다. 즉, 마야 제국이라는 말보다는 도시국가들의 집합이라는 표현이 옳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마야문명은 대개 네 시기로 구분한다.
첫째, 형성기(기원전 6~서기 4세기경)로써 이 시기에는 과테말라 고지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마야인이 농사를 지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해나갔다. 하지만 올멕과 테오티와칸 문명의 영향 때문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명을 만들지는 못했다.
둘째, 고전기(서기 4~10세기)로써 외부의 문화적 영향에서 벗어난 시기였다. 일명 '구(舊)마야'라고도 하는데, 이 기간에는 인구 증가에 따른 경제적인 활동이 매우 활발했고 건축, 회화, 조각, 도자기, 천문학, 수학 등이 최고 수준이었다. 이 시기에는 과테말라의 티칼, 멕시코의 치첸이트사와 팔렝케, 온두라스의 코판 등과 같은 많은 도시국가가 있었다. 특히 고전기의 정점이었던 7세기 후반에 티칼, 팔렝케, 코판과 같은 도시가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여 어느 정도 정치적인 통일을 이루었지만, 각 도시국가들은 자신들만의 관습과 제도를 유지해나갔다. 그러나 10세기에 들어서 마야인은 대도시를 떠나버렸고, 궁궐, 신전, 피라미드와 같은 축조물은 점차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그 원인으로는 농토의 부족, 전염병, 지배계급인 제사장들에 대한 평민들의 반란, 외적 침입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원인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구마야가 붕괴된 이후 신(新)마야는 약 50년의 기간이 흐른 뒤에 나타났다.
과테말라 티칼에 있는 마야 유적지.
넷째, 쇠퇴기(13세기~1525년, 1541년)로써 이 시기에는 마야판이 유카탄 북부를 거의 정복하면서 세 도시의 동맹은 깨지고, 마야판이 총 12개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15세기 중엽까지 이 지역의 맹주로 군림했다. 그러나 1450년경 신마야의 주요 구성원인 마야족과 이차족 간에 전쟁이 발생해 마야판의 주민이 모두 죽었으며 도시는 파괴되었다.
이러한 각 도시국가들의 내란과 전쟁으로 인해 마야문명은 거의 붕괴되었고, 결국 1525년에 과테말라 지역이, 1541년에는 유카탄 지역이 스페인에 정복당했다.
마야인의 성서 《포폴 부》
《포폴 부(Popol Vuh)》는 마야 문학의 정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폴 부》는 키체족('키체'는 마야어로 '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다)이 자신들의 우주관과 신앙을 기록한 자료다. 키체족은 16세기까지 과테말라 내륙에서 번성했던 마야족의 일파다. 1554년에 쓰인 원문은 없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포폴 부》의 사본은 도미니크회 수사로서 과테말라의 치치카스테낭고 교구에 부임했던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신부가 1701~1703년 사이에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이다.
《포폴 부》는 주제에 따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장은 바다와 하늘에서 세상과 피조물이 창조되는 과정을, 두 번째 장에는 두 쌍의 쌍둥이가 쌓아 올렸던 신화적 업적들을, 세 번째 장은 옥수수에서 기원한 인간을, 마지막 네 번째 장에서는 키체족의 역사와 키체 왕국의 각 지파와 가문을 묘사하고 있다.
《포폴 부》의 창조신화는 땅이 만들어지기 전의 고요하고 광활한 바다와 하늘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도, 한 마리의 짐승도, 새도, 게도, 한 그루의 나무도, 한 덩어리의 돌멩이도, 한 개의 구덩이도, 협곡도, 초원도, 숲도 없었다. 다만 하늘이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땅의 모습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단지 하늘 아래 바다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한 덩어리로 모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미세한 떨림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 아래는 온통 검고 적막할 뿐이었다.
그들은 그저 꽥꽥거리고 짹짹거리고 으르렁대기만 했다. 모두 제각각 다른 소리로 떠드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창조자들은 진흙을 가지고 1명의 인간을 빚었다. 이 피조물은 말을 하긴 했으나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았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몸 또한 너무 약한데다 대충 빚어졌기 때문에 이 인간은 곧 부서지고 말았다.
신들은 이런 인간은 살아남지도 번성하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창조자들은 점쟁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점쟁이들은 인간은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괘를 내놓았다. 이를 듣자마자 창조자들은 "그렇게 이루어져라"고 말했고, 즉시 세상은 나무 인간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 나무 인간은 사람처럼 보고 말하고 번식했으나 아무 표정없는 얼굴을 지닌 존재일 뿐, 정신과 이해력이 부족했고 창조자들을 섬기지도 않았다. 결국 창조자들은 송진(松津)으로 된 비를 내렸고 사나운 악령들이 나무 인간들을 부숴버리게 했다. 대홍수와 나무 인간들의 파괴가 있은 후, 세상에는 다시 인간의 그림자가 사라지게 되었다. 여전히 신들은 자신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기도를 드리고 제물을 바칠 존재를 만들지 못했다.
쿠크마츠와 우라칸은 자신들을 숭배할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서 여우, 코요테, 앵무새, 까마귀에게 산에서 노란 옥수수와 흰 옥수수를 가져오도록 했다. 그리고 그 옥수수를 갈아서 4명의 인간을 만들었다. 이전의 나무 인간과는 달리 옥수수 인간들은 지식과 지혜를 지니고 있었으며 창조자들을 알아보고 감사드릴 줄도 알았다. 하지만 쿠크마츠와 우라칸은 곤혹스러웠다. 이 옥수수로 만든 인간들은 땅끝에서 우주 끝까지 어디든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신들과 너무도 닮은 것이었다. 이에 신들은 이들의 능력을 빼앗기로 했다. 신들은 가벼운 안개를 뿌려 인간의 눈을 흐리게 해서 가까운 것만 잘 보이게 했다. 창조자들은 인간들에게 전지전능한 힘을 부여하는 대신 4명의 아름다운 부인을 만들어 짝을 지어주었다. 키체족의 첫 번째 혈통은 이 네 부부에서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마야인은 자신들을 '옥수수의 후예'라고 불렀다. |
2014/04/2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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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2)
쿠츠테엘
마야문명은 수많은 도시국가가 각기 다른 명칭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아스텍이나 잉카처럼 제국을 형성하지 않았다. 마야인은 문화나 경제, 기술적인 면에서 거의 동일한 수준을 영위하고 있었으나 생활방식은 동일하지 않았고, 언어 역시 많은 방언이 존재했기 때문에 부족끼리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생활방식이나 언어 면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마야사회를 형성하는 기본단위로써 '쿠츠테엘(Cuchteel)'이라는 대가족으로 이루어진 촌락구조가 존재했다. 이는 친족관계를 중심으로 한 토지를 경작, 그리고 상호부조와 협동을 통한 자립적 경제활동을 하는 단위였다. 이 쿠츠테엘은 독자적인 의사결정권을 유지하면서 동맹의 형태로 더 큰 정치단위를 구성했는데, 쿠츠테엘의 연합체인 바타빌(Batabil)과 연방제적 부족국가의 형태를 가지는 쿠츠카발(Cuchcabal)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바타빌이나 쿠츠카발은 쿠츠테엘에서 하기 힘든 대규모 장거리 무역, 종교의식 등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대행기관의 성격일 뿐, 권력의 중앙집중적인 성격이나 강력한 대표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처럼 마야문명이 중앙집권적인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마야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몇 개의 부족국가(쿠츠카발)가 아닌 수많은 독립적인 씨족단위들과 일일이 싸워야 했다.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
마야인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과 관련된 신들을 숭배했다. 대표적인 신으로는 태양의 신, 달의 신, 물의 신, 땅의 신, 옥수수의 신 등이 있었다. 태양의 신은 사팔뜨기의 커다란 눈에 T자 형태의 이 하나를 가진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달의 신은 태양신의 부인으로서, 모든 동식물의 탄생, 성장 그리고 사람들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 신은 또한 물과 연관이 있어서 사람들은 이 신이 호수나 지하 샘에 산다고 믿기도 했다. 물의 신은 착(Chac)이라고 하며, 길게 늘어진 코에 이가 하나만 있거나 아주 없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유카탄 지역에서는 건물 전면의 장식으로 이 신의 모습을 많이 이용한다. 땅의 신은 뼈만 남은 초췌한 모습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얼굴을 가졌으며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일을 관장했다. 인간 창조의 재료가 된 식물인 옥수수의 신은 젊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긴 형태의 머리는 옥수수 열매를 연상케 했다. 이렇게 복잡한 형상을 띠고 있는 신들은 마야인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신들에 대한 의례를 시작하기 전이나 의례를 하는 도중에는 음식에 대한 금기와 성의 금욕이 엄격하게 준수되었다. 그리고 귀, 뺨, 입술, 혀, 성기의 일부에 상처를 내 자신의 심신을 정화하고 그 피를 신에게 바치는 자기희생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또한 인신공양도 행해졌는데 사람보다는 점차 동물을 사용했다. 이 인신공양은 아스텍 제국에서처럼 빈번히 행해지지는 않았다.
365.2422일과 365.2420일
마야인은 세상의 모든 질서, 자연의 이치, 시간의 흐름을 관장하는 신들의 뜻을 알기 위해서 천문학과 수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이는 마야인이 20진법을 사용했고 정확한 달력을 제작해 사용한 데서 알 수 있다.
마야인은 인류가 사용해온 어느 달력보다도 더 정확하게 1년의 실제 길이를 파악했다. 1년의 실제 길이는 365.2422일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은 365.2425일인 반면에 마야인의 달력에서의 1년은 365.2420일로 마야인의 달력이 더 정확하다.
이렇게 정확성을 보여주는 마야인의 달력 중 260일 주기의 '촐킨(tzolkin)'이라 부르는 제례력(祭禮曆)이 있다. 이 달력은 13개의 숫자와 20개의 이름을 조합해서 만든 260일의 달력이다. 마야인은 이 달력으로 제례의식의 날짜를 잡고 태어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또 점을 쳤다. 또 다른 달력으로는 '하압(haab)'이라고 하는 태양력이 있는데, 20일을 1개월로 하여 18개월로 나누고, 여기에 5일의 흉일을 합쳐서 1년을 365일로 계산했다. 360일에는 20개의 문자나 상징적인 이름을 붙였지만, 나머지 5일에는 불길한 액운이 깃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 태양력은 단독으로 사용되지는 않았고 농사나 행정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 데 제례력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처럼 마야인이 정확한 달력을 사용하게 된 것은 '시간을 셀 수 있는 힘을 지닌 자는 곧 신들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시간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생존과 파멸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고,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속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이러한 정확한 달력을 통해서 시간을 지배하려 했던 것이다.
공놀이
마야인은 이 세상은 신이 사는 '하늘의 세계'와 인간이 사는 '땅 위의 세계' 그리고 인간에게 병을 주고 죽음을 주는 악신이 사는 '지하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중에서 땅 위의 세계가 밝음의 세계이자 긍정적인 힘이 지배하는 세계라면, 지하의 세계는 악신이 사는 어둠의 세계이자 부정적인 힘이 우세한 세계였다. 이 두 세계는 공놀이라는 시합을 통해 힘을 겨루었는데, 이는 빛과 어둠의 투쟁, 삶과 죽음의 투쟁을 의미했다. 이 시합에서 어둠의 세계가 밝음의 세계에 진다는 것은, 새벽과 아침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고 반드시 온다는 것을 뜻했다.
실제로 메소아메리카 전역에는 많은 구기(球技)장이 있다. 특히 유카탄 지역의 치첸이트사에는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구기장이 있는데, 이 구기장에는 I자 모양의 150미터짜리 경기장이 있고 양쪽 끝에는 조그만 신전이 있다. 주경기장 양쪽에는 높은 축대가 있고 양쪽 벽 높은 곳에는 링이 달려 있다. 벽 아래쪽에 있는 부조물에는 구기에 관한 의식이 묘사되어 있는데 승자가 패자를 희생의식에 바치는 장면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경기장에서 행하는 공놀이 시합은 흔히 미래를 점치는 일종의 의식이면서 정치적인 도구였으며 오락을 겸한 행사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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