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문명 이전의 남아메리카 문명들
나스카 라인.
나스카 문명은 페루 남부의 이카 강과 나스카 강 연안을 중심으로 번영했다. 이 문명은 기원전 700년경에 피스코 부근에서 발생했던 파라카스 문명의 기술과 전통을 이어받아 자신들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그들은 하나의 토기에 무려 11종류나 되는 색을 사용해서 물고기, 새, 곤충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정교하게 묘사해 자신들만의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해안에서는 많은 양을 구할 수 없었던 알파카 털을 사용해서 다양한 형태의 직조기술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그들이 산악지역과 교류했음을 의미한다.
나스카 문명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한 것은 일명 '나스카 라인'이라고 하는 사막 위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들이었다. 1930년에 개설된 리마와 아레키파 간의 노선을 비행하던 항공기 조종사들이 나스카 사막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하학적 도형을 발견했다. 이 도형들은 대략 기원전 900년경부터 서기 800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그림들은 단순히 막대기와 두 손을 사용해서 사막 표면의 검은 돌들을 걷어내고, 약 30센티미터 깊이로 파서 그 속에 있는 밝은 색깔의 흙이 드러나 보이도록 한 다음, 걷어낸 돌들을 옆에 둑처럼 쌓아놓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이 선들은 총 18가지로써 새, 원숭이, 거미 등과 같은 동물들, 인간의 모습, 100개가 넘는 기하학적 도형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도형들의 직선거리는 4미터에서부터 10킬로미터에 이른다. 이 나스카 라인은 비가 오지 않는 이 지역의 기후 덕분에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이 선들의 용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외계인이 와서 그렸다는 설도 있으나, 이 도형들이 나스카의 도자기나 직물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히려 안데스문명의 오랜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나스카 문명은 주변의 다양한 문화들과 비교하여 상당히 독창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한 예로 여자의 자궁과 같은 모습인 원형무덤 속에 면이나 야마의 가죽으로 말아져 있는 시신이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의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독특한 무덤의 양식을 들 수 있다. 부장품으로 남아 있는 도자기는 여러 가지 색을 넣은 화려한 것이 많고 일부 무덤에서는 뇌수술을 한 유골이 나오기도 했다.
고전기 안데스문명의 꽃 - 티아우아나코 문명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의 티티카카 호수 남쪽 20킬로미터 지점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 문명은, 서기 600년에 인근 나스카 문명과 모체 문명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티아우아나코'라는 이름은 이곳 원주민 말인 아이마라어로 '가운데 있는 돌'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자 우주의 근본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들의 돌조각 기술은 안데스 지역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는데, 이는 큰 돌을 정확히 맞추어 쌓는 잉카의 전형적인 건축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높이 2.75미터, 무게 10톤의 태양의 문이나, 가로 30미터, 세로 25미터, 지름 1.7미터를 파서 돌로 쌓고 벽면에는 100개의 석상이 조각되어 있는 엘 템플레테,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높이 7.3미터, 폭 1.2미터, 무게가 17톤이나 되는 모놀리토 상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들은 또한 100톤에 달하는 석재를 정확하게 절단했다. 돌과 돌 사이에는 I자형의 홈을 연결부에 만들고 거기에 구리를 박아 넣거나 또는 녹여 넣거나 해서 이를 꺾쇠 구실로 활용하는 기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500년 이상 지난 후세에 잉카 최고 지도자의 한 명이었던 파차쿠텍 유팡키가 이곳의 건축물들을 보고 감동을 받아, 당시 잉카의 수도인 쿠스코에 이와 똑같은 건물을 만들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정도로 티아우아나코는 건축이나 도시계획 면에서 안데스문명의 모범이 되었다. 아울러 계단식 농법과 인공적인 관개수로를 이용한 농사방법도 이 티아우아나코 문명 시기에 발전했다.
흙벽돌의 문명 - 치무 문명
치무 문명은 서기 1,200년경에 페루 북부의 해안지대에서 모체 문명을 계승하여 탄생했다. '치무'라는 말은 모체 골짜기의 옛 이름인 '치모'에서 유래했다. 이 치무 문명의 수도는 지금의 트루히요 시 근교에 해당하는 찬찬으로서, 흙벽돌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이 도시는 해안가 사막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건물이 모두 진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많은 건축물이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높고 튼튼한 담은 남아 있다.
엄격한 신분체계를 유지하고 있던 치무 문명은 상당한 수준의 금속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청동 합금 기술이 발달하여 곡괭이, 칼 같은 농기구와 장신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후에 잉카인이 이들 금속기술의 장인(匠人)들을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로 데려갔다고 한다. 이들은 또한 직조기술이 발달하여 염색한 천에다 무늬를 넣고 레이스를 달아 화려한 문양의 직물을 생산했다. 또한 발달된 도로망 덕분에 인근 부족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치무 문명은 1450년경에는 그 영역을 리마에서 카라바요까지 확장했으며, 교류의 범위를 에콰도르와 안데스 산악지역까지 넓혀 나갔다. 하지만 1461년 북부 해안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했던 잉카제국에게 정복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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