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아메리카....

신들이 계신 곳 라틴아메리카

구름위 2014. 7. 21. 16:48
728x90

 

 

 

테오티와칸 문명

 

신들의 도시

 

올멕 문명에 이어 서기 2세기경 테오티와칸 문명이, 지금의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멕시코 중부고원 지역에 등장했다. '테오티와칸'이라는 말은 '신(神)들이 계신 곳' 혹은 '신으로 되는 곳'을 의미한다. 전설에 의하면 5개의 태양 중 3개는 이미 사라지고 네 번째 태양이 테오티와칸을 비추다가 죽었는데, 신들에게 경배를 드리던 인간도 모두 죽게 되었다고 한다. 절망에 빠진 신들은 테오티와칸에 모여 의논한 끝에 신들 중 하나는 태양으로, 또 다른 하나는 달로 변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변한 태양과 달이 지금까지 살아서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테오티와칸에는 거대한 규모의 달의 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가 남아 있다. 가장 규모가 큰 피라미드는 밑면이 22제곱미터고 높이는 약 65미터인데, 이를 완성하는 데 연간 약 1만 명이 동원되었고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도시의 총 면적은 20제곱킬로미터며, 전성기인 서기 350~650년경에는 인구가 약 20만 명을 상회했다. 당시에 거대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하고는 유럽의 그 어떤 도시도 인구가 2만 명을 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20만 명의 인구를 거느렸던 테오티와칸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테오티와칸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
전성기에는 20만 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이는 당시 유럽 대부분의 도시가 2만 명을 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제교류의 도시

 

테오티와칸 문명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는 가족이었다. 이 가족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고 이들 마을이 4개의 거대 지역을 형성했다. 이러한 가족-마을-거대 지역의 행정체계 정점에는 왕족이 있었는데, 이들은 권력과 지식을 독점했고 제사장의 특권을 누렸다. 그 아래 계층은 대(大)상인, 군인, 소(小)상인의 순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테오티와칸은 여러 가지 사회계층으로 나누어진 도시사회로서 주변 지역의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특히 테오티와칸은 대규모의 무역을 통해서 주변 부족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북쪽으로는 현재 미국의 남부지역과 남쪽으로는 과테말라와 온두라스를 연결하는 중미지역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많은 도시가 테오티와칸과 교류를 가졌다. 이러한 교류는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생산되는 중요산물인 흑요석과 도자기류 등이 각 지역으로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이들의 토기나 공예품이 멕시코 중남부에 위치한 오악사카의 몬테알반이나 유카탄반도의 페텐과 같은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에서 입증되었다.

 

아울러 태양의 피라미드 뒤편에 있는 주거지역에서 여러 지역의 다양한 특색과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자기와 생활용구가 많이 발견되었다. 이는 테오티와칸 문명이 중미와 북미의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멸망

 

테오티와칸은 메소아메리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서기 650년에서 700년 사이에 급격하게 쇠퇴했다. 쇠퇴의 원인이 외부의 침략 때문인지, 테오티와칸의 내부 문제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외부 침략자들이 도시를 불태우고 노략질을 자행한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침략자들은 제사장 궁궐의 지붕뿐 아니라 신의 모습이 조각된 석주들을 파괴했고 그 석주들을 구덩이에 파묻었다. 달의 피라미드에 있는 계단도 파괴했으며 수많은 보물이나 조각품을 훔쳐가기도 했다.

 

이러한 외부의 침략과 함께 내부적인 분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배층은 신들을 대리하여 절대권력을 가지고 통치했는데, 이는 오히려 지배층에 대한 일반 주민의 반발을 야기하여 결국 테오티와칸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추측도 있다.

 

테오티와칸의 멸망은 주변 부족들에게 연쇄반응을 일으켜 오악사카 지역에 있는 몬테알반의 멸망을 가져왔다.

 

톨텍의 등장

 

테오티와칸 문명이 멸망한 후, 멕시코 중부 고원지역에서는 촐룰라, 호치칼코, 툴라 등 세 도시가 서로 주도권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툴라는 멕시코 분지의 북부와 중앙에서 패권을 장악했는데, 이들이 바로 8세기에서 12세기 말까지 자신들의 문명을 일구었던 톨텍족이다.

 

여러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던 톨텍족은 각 부족마다 독특한 전통과 제례의식을 행했다. 이들이 섬겼던 많은 신 중에서 케찰코아틀이 대표적인 신이다. 이 신은 인간에게 도구를 주었고, 비취를 연마하는 법, 깃털을 엮는 법, 옥수수를 경작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이 신은 후에 톨텍족을 계승한 아스텍 제국의 신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또한 톨텍족은 태양이 인간의 피와 심장으로 유지가 되지 않으면 세상은 멸망한다고 믿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들은 다른 종족과 전쟁을 벌여 포로를 잡아서 그들의 피와 심장을 태양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전쟁에는 종교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적인 목적도 함께 있었다.

 

톨텍족은 옥수수, 카카오, 면화, 콩, 고추, 고구마 등을 경작했으며, 여러 가지 깃털로 방패와 장신구를 멋지게 장식하는 훌륭한 장인이었다. 또한 이들은 축조한 건축물에 다양한 회화나 벽화, 조각 등으로 장식했다.

 

그런데 12세기경 치치멕족이 침입했다. 이에 일부 톨텍인은 툴라를 떠나 멕시코 계곡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새로운 도시국가를 세웠다. 여기에는 톨텍족의 후예뿐만 아니라, 북쪽 대평원 지대에서 이주해왔던 나우아틀어나 오토미어를 사용하는 유목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톨텍족의 또 다른 부류는 푸에블라 계곡의 촐룰라로 이주하거나 마야문명의 세력권인 유카탄반도의 치첸이트사까지 이주하기도 했다.

 

한편 툴라를 정복한 치치멕족은 야만족이었기 때문에 톨텍족의 모든 관습과 종교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1세기 후 이 톨텍-치치멕족은 신흥세력인 아스텍 제국에 패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