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베트남 전쟁사

[베트남] 햄버거힐의 서전, Dak To 1967 (4)

구름위 2013. 11. 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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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힐의 서전, Dac To 1967(4)

-닥토 전투, FSB 16지역의 전투-

-173공수여단 503연대 2대대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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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편 정도면 어느 정도 미 173공수여단의
닥 토 지역 전투를 종료할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이후 2편까지 이 세편이 가장 격렬한 시기입니다.

이 나머지 세 편에서 173공수여단 병사 200 여명이
전사합니다. 부상자는 그 두배 이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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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1967년 가을 미군은 월맹군이 닥 토 지역에서 점차
활동이 늘어나면서 모종의 일을 획책하고 있음을 간파.
병력을 이동시키면서 대처하기 시작한다.

2. 이 지역은 미군 보병사단 4사단이 관할지역인데, 휘하에
173공수여단이 기동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열이 어느
정도 보강되자 미군 지휘부는 선제공격을 당하기 전에 먼저
기동대 격인 173공수여단에 닥 토 서쪽의 800고지 군으로
가서 수색섬멸작전을 수행하라고 명령한다.

3. 그런데 그곳에 이미 6개월전부터 월맹군이 숨어 들어와
물자축척. 참호와 벙커, 터널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와서 준비하고 있던
월맹군은 사단급이었지만, 실제 엄격한 것으로 완편으로
보면 2개 연대에 조금 안되는 월맹군들이었다.

4. 결국 173공수여단의 2개 대대는 총체적인 혼돈과
단단히 준비되고 구축된 월맹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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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힐의 서전, Dac To 1967(4)


-닥토 전투, FSB 16지역의 전투-

-173공수여단 503연대 2대대의 전투-


4대대의 전투가 지속되자 173공수여단의 2대대는
닥 토지역의 800고지 군에서 Kontum쪽에 가까운
고지에 FSB 16를 구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FSB: 랜딩존을 포함한 화력지원지점)

(Fire Base: 베트남에서 이러한 근거지가 없는 지역에서의
작전이 실행되면, 미군은 Fire Base를 만드는데 일종의
거점을 의미한다. 일단 Fire Base를 만들 랜딩까지 유효한
고지 정상부근에 포사격과 공중폭격으로 정상을 평탄하게
만든다.

그 다음 랜딩을 시작한다. 그리고 선발대가 좀 더 참호를
구축하고 화점을 구성하고 랜딩존을 청소한다. 이어서 병력과
물자가 랜딩을 하는데, 이 장소는 거점이 되어 80밀리급의
박격포진지를 만들고 포병관측소 및 전투지휘소를 구성한다.
그 거점을 중심으로 점차 본대의 랜딩을 유도하여 작전을
지속한다. 작전이 끝나면 완전 철수한다.)


이 FSB 16을 바탕으로 이 지역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대급의 월맹군을 수색섬멸하라는 취지였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닥 토에 있는 미 육군 특전단 A 캠프를
공격하는 병력으로 알려져 있었다.

<작전 1단계>

1967년 11월 11일,

503연대 B와 D중대,
전술지휘소,
81밀리 박격포반,
그리고 173여단 공병소대가
캄보디아 국경 3마일 지점에 설치된
Fire Base 16 정상에 헬기로 랜딩했다.

당시 적의 징후는 없었다. 다음날, 503연대 2대대의 나머지
병력 A-C중대와 4.2인치 박격포소대가 다시 랜딩했다. D중대와
전술지휘소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고 A중대는 서쪽능선에
수색섬멸작전을 시작했다.


12일 오전 9시 30분, 173공수여단 503연대 2대대 A중대의
정찰분대가 분대장의 지휘아래 능선 위쪽으로 정찰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이 진행하던 중 좌측 20미터 지점에서 강력한
자동화기와 소화기의 사격을 받았다. 정찰분대는 분대장은
총에 맞은 상태로 정찰소대장인 해리슨 중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적이 사방에서 저희를 향해 쏘고 있습니다. 로저."

그러자 정찰소대장은 소대와 같이 진출하다가 다시 강력한
사격을 받는다. 이후 A중대장 마이클 킬리 대위는 2소대를
보내어 정찰소대를 지원하라고 지시하였으나 다시 강력한
사격을 받고 고착되었다. 이후 월맹군의 사격은 점차
줄어들고 산발적이 되었다.

(이들은 다른 곳에서 전편들에 기술한 4대대의 똑같은
상황. 월맹군이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압박해 들어오는
현상에 놀라고 있었다)

A중대장 킬리 대위는 후미에 있던 3소대를 전면으로 이동시키면서
능선의 왼쪽에 밀어붙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들이 중대지역을
벗어나서 몇 미터 가지 않아 바로 월맹군의 무반동총사격을 받았다.
이어서 수류탄과 자동화기, 소총의 맹렬한 사격을 받았다. 도저히
고개도 들 수 없는 다양한 화기들의 벌집 같은 사격을 받았다.

"도대체 어디서 쏘고 있는 거야?"

"아무래도 참호를 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육안으로는 거의 안보입니다."

A중대는 사방에서 전면적으로 사격을 받고 있었고, 보기에
월맹군은 능선에 벙커와 깊은 참호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중대장은 자신들이 월맹군의 한복판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히 무전기를 켜서 지원을 요청한다. 이미
중대원 2명이 이 무반동총의 사격으로 전사한 상태였다.
이때 B중대가 A중대를 돕고 부상자들을 후송하려고
접근하고 있었다.

A중대가 병력을 정리하여 후퇴할 때에 B중대는 방어선 20미터
근방의 대나무 숲에서 포복하고 있던 월맹군을 발견하여 바로
사격을 가했다. B중대장 제임스 로건 대위는 A와 B중대 사이에
월맹군이 있으므로 중대간에 오발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를 주었다.  

그러나 사격을 받은 월맹군은 마치 코웃음을 치듯이 자동화기
소화기 B-40로켓을 이용하여 B중대의 방어선을 15미터 정도
밀어붙였다.

당시 보통의 173공수여단 대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1. '월맹군이 왜 쏘고 도망가지 않지?
왜 위치이동도 없이 계속 쏘는 걸까.....'

2. '닥 토는 우리 주둔지인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왜 정면대결을 하려는 걸까...'


C중대는 B중대를 지원하여 소대규모의 월맹군과 45분간 사격전을
벌였다. 이때 두 중대는 81밀리 박격포와 90밀리 무반동총으로
월맹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B중대의 M-60기관총 하나가 이때
로켓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그리고 173공수여단 2대대원들은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실탄보유가 급속도로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가 지고 있었다. 중대장들은 계속 실탄을 보급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월맹군의 화력에 밀리고
있었으므로 대구경화기의 탄도 빨리 보내달라고 하고 있었다.

월맹군은 미군의 방어선에 밤새도록 60밀리 박격포를 쏘았다.
2대대원들은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 박격포의 폭발
섬광을 참고점으로 월맹군의 저격수들도 야간저격을 가해왔고
야간이라고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밤새 고함이 오고갔다.



날이 새자 미군은 전술항공지원과 포병을 이용해서 3개 중대
구역부근에 월맹군이 있을만한 곳에 집중 포격-폭격했다.
미군의 4.2인치 박격포도 포격에 동참했다. 오후 2시 30분,
접전은 중단되었고 3개 중대는 합류하여 교전지역에서
빠지라는 명령을 받았다.

여단 본부는 4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더불어 정말로
여단 전투중대 전체가 돈좌되어 개박살이 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고 있던 것이었다.


A와 B중대는 랜딩존으로 가는 길을 월맹군으로부터 차단하려고
하였으나 독도법에 문제가 생겨서 서로가 한동안 엇갈린 뒤에
합류했다. 이들은 길을 뚫기 위하여 만도로 정글을 치면서
독도법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수풀에서 언제 월맹군이
튀어나와 쏠지 아마도 장담할 수 없었다.

병사들은 걸을만한 넓은 지역이 나와도 저격수에게
안보이는 수풀 쪽으로 바짝 붙어서 이동했다.

"어서 이동로를 개척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돼....."

오후 5시 30분, B중대 2소대는 방향을 전환하여 C중대가 있는
서쪽의 둔덕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중상자들을 헬기로
후송했다. 11월 12일 당시,

A중대는 3명 전사, 21명 부상이었으나,
별도의 3명에 부상자는 후송되지 않았다.
B중대는 1명 전사, 11명 부상이었고
C중대는 8명 부상.
D중대는 1명부상이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나은 편이었다.



<작전 2단계>

치열한 지역에서 나왔지만 다시 작전은 계속 되었다. 당시
병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탄약도 탄약이지만 물이었다.
물을 전혀 구할 수 없는 지역이었고 수통을 3개씩 달고 간
병사들도 이미 물이 떨어져 입이 크랙커처럼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에 C중대는 B중대가 교전을 벌인 지역으로 다시
들어가서 수색했다. 거기서 그들은 4명의 월맹군 전사자와
3정의 AK-47, 1정의 RPD기관총, SKS 1정, 중국산 무반동총 1정,
수류탄 10발, 방독면 하나와 소화기 탄약 등을 발견했다.

"놈들이 일단 빠져나갔습니다!"

오후 3시 55분, B중대는 본대와 떨어져서 물을 구하려던 월맹군
1명을 포로로 잡았다. 부상당한 월맹군은 C중대 지역으로 데려온
뒤 헬기로 이송시켰다. C중대장 카프만 대위는 포로로부터 접전을
벌인 월맹군이 2개중대 규모라는 것을 들었다.

포로는 월맹군 174연대 4대대 소속이었다.

A와 B중대는 오후 7시 30분, 고대하고 고대하던
물과 탄약을 재보급 받았다. 그리고 밤에는 전투가 없었다.



1967년 11월 13일 새벽 4시 30분, A와 B중대는 연합으로
원형방어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보다 서쪽의 200미터 지점에는
C중대와 D중대가 최초 랜딩지점인 FSB 16에 남아있었다. 이때
12발의 박격포탄이 떨어졌으나 부상자는 없었다.

A중대와 C중대는 당시 장소에서 앞으로 정찰을 이른 아침에 내보냈다.
C중대는 4구의 월맹군 시체를 목격했다, A중대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전 8시 30분, A와 B중대는 3일간의 재보급품을 받기 위하여
다른 중대가 있던 FSB 16로 돌아왔다. 오전 8시 18분, 전술항공에서
500파운드의 네이팜탄을 투하했고 11시와 11시 30분에도 폭격이
있었다. 중박격포와 포병도 적이 발견된 능선에 계속 포격을 했다.



11월 13일, 작전이 다시 전개되어 2개 중대가 FSB 16에서 북쪽으로
나갔다. 그들은 계곡을 내려가서 다음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서쪽으로 턴하여 고지의 능선으로 진출했다. 그곳은
A중대가 12일 여러 방향에서 사격을 받았던 곳이었다.

당시 대원들은 완전군장에 실탄 400발 이상을 마구 쑤셔넣어 휴대했고,
유탄발사기 사수는 고폭탄 30발, 샷건을 소지한 대원은 40발의 탄환을
휴대하고 있었다. M-60은 2천 발을 휴대하고 있었다. 수류탄은 각자
2발씩을 가지고 있었고, 붉은 색을 제외한 연막탄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당시 붉은색 연막탄은 '적의 위치'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불필요한 오인사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만약에 잘못
붉은색 연막을 깠다가는 아군에게 벌집이 된다. 적에게
사격을 유도하더라도, 아군의 오폭방지를 위하여 병사들은
최대한 앞으로 나가서 던지고 뒤로 목숨을 걸고 뛰어와야
했다. 미군 전폭기가 떴을 때는 두려워서 적색연막을 손도
못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병사들은 연막탄 외에 소이탄도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소대
당 12발의 크레모어가 있었다.


B중대 화기소대는 화력지원지점에 남아있었고 2소대는 당시
90밀리 무반동총에 20발의 산포탄과 2발의 고폭탄을 휴대하고
있었다. FSB 16에서는 베이스를 지키기 위하여 2대의 50캘리버
기관총과 여러 대의 M-60이 부대 진출지점에 지원사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한 5대의 81밀리 박격포. 4.2인치 박격포 4대가 지원포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멀리 닥토 쪽의 319포병 A포대에서는 175밀리
포와 8인치 자주포 155밀리 자주포, 105밀리 포가 지원을 위해
무전기를 직통으로 개방하고 있었다.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어제와 같지 않은 상황으로 유도해서 계속
지역을 훑어! 이것은 수색섬멸작적이다.....'



B중대는 계곡 북쪽으로 따라가다가 다음 능선의 정상에 도달한
뒤에 서쪽으로 턴해서 300미터 정도 능선의 상부를 따라서 이동했다.
그때 선도소대는 5갤런의 최루가스 파우더 깡통으로 발견했다.
5개의 Cluster Bomb Unit도 같이 발견되었다. CS 개스파우더는
미국산이었다.

대대장은 B중대에게 방독면을 쓰라고 지시한 뒤에 개스파우더를
월맹군이 쓰기 전에 사방에 뿌려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때가 오후
3시쯤이었다. 중대는 다시 상부능선으로 이동했다.

최루가스 깡통을 150미터 정도 지났을 때 B중대장 로건 대위는
중대를 정지시키고 위치를 무전으로 알렸다. 그리고 야간방어를
준비했다. A중대와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나 그곳은 능선의
서쪽에 아주 좁은 곳으로 2개 중대를 가리기에 알맞지 않은
장소였다.


<전투의 가열>

로건 대위는 2소대장 필립 보딘 중위에게 서쪽 200미터까지
정찰을 하라고 지시했다. 더 좋은 곳이 없나 살피기 위해서였다.
보딘 중위는 정찰을 나가서 보다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고 전해왔다.


그런데 장소를 살피던 보딘 중위의 대원 중에 하나가 능선의 북쪽
아래에 벙커가 두 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딘 중위는 이 사실을
알리고 일대를 더 수색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시간에 A중대는 B중대의 뒤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2소대의
포인트맨이 목격한 벙커를 향해 북쪽 아래로 접근했다. 그때
포인트맨은 무언가 빛나는 것을 보고 바로 엎드렸다. 그리고
이어서 월맹군 저격수 2명의 총알이 날아오고 시작했다.


그러나 보딘 중위는 무전으로 북서쪽에서 저격이 날아오고
있으며, 자신의 첨병을 구출하겠다고 보고했다. 오후 3시
57분이었다. 진출하던 보딘 중위는 벙커가 공포스러운
위치에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벙커를 90밀리 무반동총으로 때려주십시요. 중대장님!"

로건 대위는 허락을 했고 그에게 오른쪽 측면을 경계하라고
하고 3소대를 그 왼쪽에 진출시켰다. 1소대는 후미를 맡았다.
A중대는 후미의 이 1소대에 근접해왔다.


그러나 이때,
월맹군의 일제사격이 날아왔고
부대는 둘로 갈라지게 된다.


사수인 찰스 마샬 상병이 먼저 90밀리 무반동총 산탄으로
벙커에 대고 쏘았고 그때는 월맹군의 사격이 점차 줄어든
상태였다. 부사수인 지미 타이스 상병은 90밀리탄을
재장전하고 사수에게 back blast area(후폭풍)를 경고했다.

"발사할 때 구령을 해줘. 내가 못 듣잖아."

그러나 이미 그 순간 탄은 발사되었고 로스 상병은
군장을 벗고 있다가 후폭풍이 머리를 통과했다......

"오, 하느님, 이런 개 같은......"

로스 상병은 4-5미터 뒤로 날아가 그대로
피범벅이 된 상태로 의식불명되었다.


격렬한 사격전으로 보딘 중위는 이미 총알 두 방을 맞았고
그의 무전병이 총에 맞아 전사했다. 이후 무전기가 고장난
2소대는 교신이 불가능했다. 중대의 무전기들도 일부 파손되어
교신을 서로간에 되지 않게 되었다. 중국산 수류탄이 날아드는
가운데 마샬 상병은 계속 무반동총을 자신이 장전하여 사격했다.

"다 죽여버리겠어. 개새끼들....."

그러나 탄은 떨어져갔고 마지막 탄이 밖에 남지 않자,
무반동총반원들은 무반동총구를 벙커가 아닌 사격이
날아오는 쪽으로 돌리고 최후의 산탄을 발포했다.

마샬 상병은 기어다니면서 부대원들이 휴대한 예비탄약중
90밀리 2발을 회수했으나 부대가 흩어져 더 이상 탄을
구할 수가 없었다. 2발을 사격하고 나자 이들은 소총으로
전환하였다.

사수인 마샬 상병은 후폭풍에 쓰러진 로이스 상병의 M-16을 잡았다.
마샬 상병은 누워 있던 로스 상병 옆에서 사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AK-47은 근거리로 사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방향을
뒤로 돌아서 계속 총을 쏘았다. 상황은 점차 혼전이 되었고 다른
무반동총반원들은 전체상황을 알지 못했다.


부상당한 보딘 중위는 간격을 좁혀서 방어막을 형성하라고
소리치고 있었고, 기관총 사수인 웨인 머레이 상병과
부사수는 월맹군을 향해서 맹렬히 사격했다. 무반동총반원인
마샬과 타이스 상병 등은 근처의 쓰러진 통나무로 기어갔다.

타이스 상병은 바닦에 놓여진 90밀리 포를 돌아보았지만 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포를 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이후 무반동총은월맹군의 저격수의 사격으로
손상을 입었다. 사격은 점차 가중되었고 월맹군은 10-15미터까지
접근했다. 알 수 없는 베트남어들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반원들은 통나무 옆에서 대응사격을 했다. 윌리 사이먼스 상병은
당시 1명의 월맹군을 눈으로 목격하고 사격을 했으나 놓쳤다.
그래서 수류탄을 던지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총알이 날아와
미간에 맞았고 전사했다. 기관총사수인 머레이 상병은 가슴에
맞았고 마샬 상병이 응급조치를 하려고 했으나 전사했다.



B-40 로켓이 근접탄으로 떨어지는 동안 월맹군은 위쪽으로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하고
있었다. 거리는 가까웠다. 로켓은 미공수부대원들에게 치명적
이었다. 월맹군은 드디어 능선에 몸을 들어냈고 보딘 중위와
타이스 상병 마샬상병은 격렬히 사격하여 선두의 월맹군 몇
명을 사살했고 이후 월맹군은 약간 후퇴했다.


이때 중대장 로건 대위가 본부인원을 데리고 20미터 정도 위로
올라갔고 측면에 있던 3소대도 같은 방향으로 이동해오고 있었다.
보딘 중위는 이들을 향해서 부상자들을 끌어내 달라고 소리쳤다.

"개새끼들이 우리 소대를 박살내고 있어~~~~~!!"

2소대가 전투를 벌인 곳은 대나무들이 많고 수풀이 많아서 미군
부상자를 한눈에 발견하기는 힘들었고 보이는 대로 뒤로 끌어냈다.
대부분은 뒤로 끌어냈다. 능선의 정상부근은 높은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가시거리는 5미터 정도로 짧았다.

사격은 그야말로 point-blank range(?)였다.

중대장 로건 대위는 2소대의 전투가 시작되면서 무전으로
교신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대위는 앞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누군가 2소대에서 이리로 좀 와!!"

그러자 2소대원 한 명이 빠르게 뛰어내려왔다.

"소대장은 움직일 수 없나?"

"무리 중간에 끼었고 현재 세발을 맞은 상태입니다."


사격전은 점차 가중되었고 혼전이었다. 2소대는 사상자가 늘어났고
월맹군은 B중대 전체의 오른쪽 측면으로 접근했다. 이 상황에서
보딘 중위는 부상당한 몸을 질질 끌고 내려와서 지시를 받았다.

로건 대위는 중위에게 부상자와 전사자를 모두 끌고 나올 수 있는가를
물었다. 보딘 중위는 yes라고 말했고 중대장은 3소대장 맥디비트
중위에게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로건 중위는 이들이 후퇴작전을
하는 동안 1소대가 엄호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때,

월맹군이 능선으로 올라와 B중대의 오른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 한 무리가 갑자기 대화를 나누던 중대장과 소대장
그룹에 고함을 치면서 뛰어들어 사격을 가했다. 소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중대본부인원들은 공포와 전율을 느끼면서 흩어지면서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2명의 무전병이 전사하고, 의무병이 전사했으며 보딘 중위는 다시
네번째 총알을 맞았으며, 중대장도 총상을 입었다. 로건 대위는
본부인원에게 부상자를 끌고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이 혼란의
상황에서 포병의 전방관측병들이 중대와 분리되면서 포격지원이
한동안 되지 못했다.


로건 대위는 한 무전기를 잡아 후퇴를 지휘하면서 본인도 10미터 정도
후퇴를 했다. 2소대와 3소대 모두 접근해오는 월맹군으로 인해서 후퇴를
하지도 못하고 고착되고 있었다. 사격전은 보이는 대로 적을 향해서 쏘는
상황이 되었고 2소대는 부상자들을 후송할 수가 없었다.


부상당한 2소대장을 대신해서 윌리엄스 하사가 긴급히 소대지휘권을
인수받았으나 지휘권을 발휘할만한 아무런 조건이 되지 못했다.
병력이 분산되고 누구나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건 대위는 3소대에게 2소대보다 자신들이 먼저 퇴각하라고 명령했다.
3소대마저 박살이 나면 중대의 건제가 무너질 지경이었다. 당시 2소대는
대부분이 죽거나 부상당한 상태였다. 보기에는 후퇴도 불가능해 보였다.

로건 대위는 결국 1소대에게 월맹군에 대하여 측면 반격을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그로 인해서 공간이 확보되면 2소대원들을 수습하려고 했다.
로건 대위는 후미로 접근하고 있는 A중대에게 1개 소대를 빨리 전방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자신의 1소대를 보강해서 동쪽을 보강하려고 했던
것이다.

B중대에 포병관측병이 분산된 것을 안 A중대장은 병력과 함께 자신
중대의 포병관측장교인 Busenlehner중위를 B중대 지휘소로 보냈다.

"중위, 당신이 B중대를 살려야 돼!"

포병장교는 무전기를 짊어지고 지도와 장비를 들고 뛰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 중대가 합류된 것은 오후 4시 55분이었다. B중대
1소대는 반격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그로 인해서 많은 수의 2소대
전사자와 부상자를 수습할 수 있었다. 토마스 레밍턴 중위가 지휘하는
A중대의 2소대는 이 반격에 증원군으로 동참하여 B중대의 1-3소대를
보강해 주었다.

이 반격으로 부상당하지 않은 B중대 1소대장 폴 길렌워터 중위와
그의 무전병, 존스 상병들을 구해 올수 있었다. 로건 대위는
무전기로 대대전술지휘소를 불렀다.

"우리 좌표에서 서쪽과 북쪽의 500미터 구간 안에
적의 증강을 막을 수 있게 블로킹을 해주기 바란다.
어떤 형태의 포격도 상관없다. 지급을 요한다. 로저."  


B중대장은 당시 견고하게 방어선을 형성하는 것과 포병의
효과적인 포격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A중대장이 보낸
포병관측장교는 결국 B중대장 로건 대위와 만났고 포병장교는
바로 4.2인치 박격포를 유도해서 방어구역전반에 포격을 시작했다.

부상자와 전사자는 후방으로 빼냈다. 이 당시 전술항공지원과
건쉽지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는 점차 근접전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포병와 항공지원은 바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점차 월맹군과 미군이 뒤섞이고 있었다.



전투는 근거리에서 자동화기에 의한 맨투맨 상황으로 이어졌다.
대나무들은 아주 두꺼웠고 미군들은 M-16으로는 그 두꺼운
대나무들을 관통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오, 염병할 M-1이 필요해!"

대나무는 엄폐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월맹군은 알고 있었다.
근접전으로 인해서 미군과 월맹군의 시체는 같은 장소에 나란히
놓여있곤 했다. 수색중에 6명의 미군이 동쪽외곽의 통나무 근처에
죽어 있었는데 바로 옆 서쪽에는 월맹군 시체 4구가 있었다.

2명의 월맹군 시체도 목격되었는데, 한 월맹군 장교는 미군이 죽은
그 통나무 옆에서  M-16 손잡이를 쥔 채 죽어 있었다. (마지막에
서로 총을 빼앗고 빼앗기면서 사투를 벌인 것으로 추측)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나 오히려 월맹군의 사격은 점차 강도가
더해져만 갔다. 그들은 미군의 방어선을 뚫어 관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 미군이 총체적인 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대원들의 탄약은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고, 누구 탄이 없냐고
묻는 고함이 여기저기서 오갔으나 탄약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총 실탄 400이라고 해도 만약 자동으로 놓고 쏴대면
아마 20분도 못 쏠 거다. 영화에서 나오는 가까이 올 때
까지 쏘지 말라는 장면들은 틀린 장면이 아닐 것이다)


오후 5시 30분, 로건 대위는 비상 탄약재보급을 요청했다.

"탄약이 필요하다. 우선보급. 우선보급. 탄약. 탄약...."

그러자 한시간 뒤인 헬기 두 대가 오후 6시 45분에 날아왔다.
두 개의 중대의 중간에 폭격으로 인한 큰 크레이터가 있었는데
그곳을 드롭존으로 정했다. 거의 어두워졌고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B중대장은 후레쉬라이트로 첫 번째 헬기를 유도했다.

그러나 헬기는 이미 공중에서 여러 차례 총탄에 관통 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탄약을 타켓에 떨어트렸다. 두 번째 헬기도 보급품을 투하하고는
총격을 받은 헬기를 에스코트하면서 닥토로 다시 날아갔다. B중대장은
당시 중상자 8명에 대한 후송을 요청했는데, 헬기의 랜딩은 불가능하고
바스켓에 달아 헬기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제안했다.


의무헬기는 오후 8시에 날아왔다. 그러나 월맹군의 기다렸다는 듯한
맹렬한 대공사격에 헬기 승무원 2명이 그 총격에 맞아 쓰러졌다.

"우리 헬기가 벌집이 되고 있다. 지금 두 명이 쓰러졌다. 오버."

그러자 눈물을 머금고 로건 대위는 후송을 취소시켰고 헬기는 다시
돌아갔다.

대신 수푸키 건쉽이 날아와서 한시간 반 동안 북에서 서로 능선에
대하여 기총사격을 실시했다. 중대는 자신들의 위치를 하얀색
연막으로 지시했는데, 날이 맑아서 헬기는 그것을 식별할 수
있었다. 이후 수푸키 건쉽은 교대하면서 밤새도록 날아와서
지원사격을 해주었다.

야간에 월맹군이 미군을 탐침하는 동안 A-B중대는 부상자를 구하려고
시도했다. 새벽 5시 펀더버크 하사와 스트로크스 상병 등 몇 명의
부상자를 방어구역 안으로 간신히 끌어왔고 이 도중에도 월맹군은
사격을 가해왔다. 전사자와 부상자에 대한 아주 위험한 상태에서의
구조였다. 밤 동안 월맹군과 미군은 수류탄과 자동화기사격으로
계속 전투를 벌였다.

교전이 중단된 것은 해가 뜨기 직전인 오전 6시 30분이었다.

FSB 16에서도 초저녁에 3회의 작은 접전이 월맹군과 있었다.

14일 오전 8시,
A와 B중대는 후퇴하여 동쪽 400미터 지점에 실종자와 전사자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이들을 찾아 커다란 폭격 크레이터 부근에
경계구역으로 만들고 부상자와 후송자를 헬기로 후송했다.

13-14일 동안 B중대는 21명이 전사하고
17명이 부상당했으며, A중대는 3명의 부상자가 났다.


아침에 공중폭격이 시작되는 동안 포병은 월맹군 거점에 박격포와 함께
포격을 퍼부었다. 오후 3시, FSB 16를 나선 D중대는 A와 B중대를 만났다.
이들 세 개 중대는 다시 청소작전을 시작했고 전투지역이었던 수백 미터의
구간에서 적의 징후는 없었다. 이 3개 소대는 인근에서 원형방어진으로
밤을 보냈다. 전에 A와 B중대가 야간방어를 했던 지점이었다.


34명의 월맹군 시체가 확인되었으며, 이중 소화기로 죽은 병사는 20명,
2명은 82밀리 박격포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주변에는 셀 수 없을
만한 피자국이 남아 있었다. 모든 미군 실종자는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90밀리 무반동총과 기타 장비는 회수되었다.

아마도 월맹군은 은익할 수 있는 전우들의 시체는 어느 정도 끌고
가거나 부상자는 데리고 간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증거해 주고 싶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11월 15일 아침,  A와 B중대는 고지에 대하여 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D중대는 랜딩존을 확보하고 있었고 두 개 중대는 12-13일
동안 전투를 벌인 지역에 대하여 수색을 실시했다.

이때 A중대는 당시 월맹군 3명을 발견하여 한 명을 사살하고,
한 명은 부상을 입혔으며 한 명은 포로로 잡았다. D중대도
포로 한 명을 잡았다. A중대는 13구의 월맹군 시체를 목격했다.



<마지막 두 편 정도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