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베트남 전쟁사

매복작전

구름위 2013. 11. 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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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는 출발 전에…… 다음은 믿고 맡겨라. 쓸데없는 간섭은 금물이다.

1969년 11월경이었다. 나는 중대의 전초진지인 166고지에 올라가 있었다. 오늘은 지난번 수색정찰 때 적의 흔적을 발견한 고지 밑의 교통호에 매복하기로 했다.
이 교통호는 월남인들이 프랑스군과 싸울 당시, 월남 민병대들이 파놓은 교통호였다. 폭3m, 깊이 4m정도로 항공기가 뜨면 대피소로 사용했고, 지상군이 공격하면 일종의 함정으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사각형으로 된 넒은 면적의 외곽에 교통호가 파져있었고, 호는 동서남북으로 연결되어 한쪽면이 500m정도로서 전체 길이는 약 2km정도나 되었다.

우리는 이 지역 일대를 수없이 지나 다녔지만 그 호 안에 들어가 보는 것은 몹시 싫어했다. 그것은 너무 깊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물이 차서 들어가기 곤란했고, 심지어는 바닥에 청독사나 독충이 많았으며, 풀이 양쪽 벽면이나 밑바닥에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보기에도 우중충하고 기분나쁜 곳이었다.

하루는 주간수색을 하다가 사태가 나서 무너진 곳을 이용하여 밑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호 바닥에 사람 다닌 흔적이 많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166고지로 다시 올라와 수색을 함께 나갔던 3소대장 한중위를 불러 매복을 지시했다. 소대를 2개조로 나누어서 조편성을 하고, 사각형의 교통호를 살상지대로 하여 적이 교통호 내로 들어오면 충분히 유인하였다가 교통호 위에서 크레모아와 수류탄으로 적을 격멸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2명을 1개조로 하고 조와 조간을 30m이격했으며, 교통호 위쪽에 크레모아를 설치해서 위에서 아래로 타격하도록 계획했다. 수류탄은 개인당 5발 이상을 휴대시켰다.

한중위가 내려간지 한 시간이 좀 지났을 때였다.

고지에서 교통호 매복지점까지 5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에 1시간 남짓 지난 지금쯤은 병력배치를 하면서 호를 파고, 크레모아를 설치하는 등 매복 준비를 한참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렇게 매복준비 중일 때가 가장 취약한 시간이었다.

별안간 소대장 조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곳에서 총소리 한발이 “땅”하고 났다. 그리고는 또 조용했다. 경계병이 쏘았거나 오발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답답해서 무전기로 물었다. 예측한대로 한중위 역시 경계병을 배치한 곳에서 총소리가 한발 났는데 자기도 지금 무슨 영문인지 전혀 모르니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대답이었다.

이럴 때는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하고 싶은 지시사항이 있으면 간략하게 요점만 전달해야 한다. 지휘관이 서두른다거나 중언부언 말을 많이 하면 절대 안된다. 무전통화 때문에 귀중한 즉각조치 시간을 놓치기 때문이다.

소대장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의 능력을 믿고 조치하기를 기다려야한다. 소대장을 믿기 어려우면 떠나기 전에 예행 연습과정을 통해서 철저하게 사전지도를 해야 한다.

답답한 시간을 얼마나 보냈을까? 산 위에서는 박격포 차단사격과 조명준비를 완료하고 박격포 사격요원들이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소대장으로부터 보고가 왔다. ‘적의 안내를 담당한 첨병이 다가오는 것을 경계근무자가 자기 앞에 올 때까지 기다린 후, 적을 코앞에다 놓고 한발로 심장을 뚫어 사살했으며 시체를 끌어다가 소대장호 옆에 놓고 나뭇가지로 덮어 두었다’라는 보고였다.
이어서 소대장은 매복진지점령 완료보고를 했다. 나는 반드시 그 교통호 속으로 적이 빠르면 30분 정도 후에, 늦으면 내일새벽에 올 터이니 눈 똑바로 뜨고 근무하라고 경고했다.

소대장과 마지막으로 교신한지 한시간도 채되지 않아서 적이 접근한다는 신호가 왔다. 적이 접근하면 기도비닉 유지를 위해 무전기로 말은 하지 않고 무전기 송수화기를 가슴속에서 두 번씩 연속하여 키만 눌러야 했다.

“칙칙, 칙칙, 칙칙……”

산위에 있던 우리들은 긴장과 흥분속에 조명탄사격과 차단사격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했다. 이처럼 결정적 시기에 무전통신은 절대 금물이다. 적이 듣고 도망쳐 버릴 뿐 아니라 소대장과 무전병이 교신 때문에 즉각조치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또한 현장감각이 없는 중대장이 자칫 엉뚱한 지시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상 이 정도 상황이 전개되면 무전병은 아예 무전기를 꺼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그들을 믿고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드디어 크레모아와 수류탄이 터지고 수타식조명이 공중에서 “팍”퍼졌다. 박격포 조명탄이 날아갔고 주변이 대낮같이 밝아지면서 무전교신도 정상적으로 되었다. 바로 우리가 정찰했던 그 장소, 그 자리, 우리 병력이 기다리고 있는 교통호 안으로 들어온 적을 100여m의 살상지대에 정확하게 집어넣고 교통호 위에서 크레모아와 수류탄으로 완전히 섬멸해 버렸다. 30여명의 적을 사살했던 것이다.

한중위는 이 작전으로 충무 무공훈장을 받았고, 적의 안내병을 한발에 쓰러뜨린 경계병은 화랑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다른 장병에게도 많은 포상이 수여되었다.

나는 이번 매복작전에 성공한 한중위를 그래도 더 데리고 있다가는, 나와 중대로서는 좋지만 그가 몸성히 귀국할 것 같지 않아 상급 지휘관에게 건의하여 연대 전투지원 중대 소대장으로 전출시켰다. 2년여의 소대장, 중대장 시절을 통털어 내가 가장 완벽하게 수행했던 매복작전 이었다.

조우전, 먼저 보고 먼저 쏴라. 그리고 과감하라 !

1969년말경, 이시기에 우리 중대지역에는 많은 월맹정규군이 나타났다. 하루는 아침나절에 고지근무 교체병력 1개 소대와 함께 166고지로 올라가다가 하단부 근처의 개울 숲에서 약 150명 정도의 월맹정규군 이동병력과 조우했다. 우리 중대의 선두 병력이 이동하는 적 무리를 발견하고 월남어 통역병을 시켜서 확인하는 사이, 적이 먼저 사격하는 바람에 교전이 붙었다. 적과의 거리는 약 200m정도, 서로 조준사격이 가능한 거리였다. 나는 적을 발견한 순간 잠시 머뭇거렸다.

산위에 있는 중대원이 마중을 나온 것이 아닌지, 혹시 지역내의 월남 지방군이 수색을 나온 것은 아닌지 등 생각하는 사이에 적이 먼저 총을 쏘게 하는 기회를 주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총에 맞은 사람은 없었지만 적을 빤히 보면서도 판단착오로 먼저 쏘지 못했다는 것은 큰 실책이었다.

고지에서 박격포 사격을 실시하고, 포병사격을 유도하여 지역일대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니 적은 응사도 제대로 못하고 곧 도주하여 버렸다.
포병사격을 중지시킨 후 중대원을 이끌고 공격을 했다. 하천을 건너가 보았더니 적은 이미 도주하고 없었으나 여기저기에 메고 왔던 배낭을 버려둔 채 부상병을 들쳐업고 도주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개울을 따라 한참을 추격했으나 적의 꼬리를 잡지 못하고 피묻은 붕대와 헝겊조각만 한 보따리 회수해서 고지로 되돌아 왔다.
상급부대에서는 피묻은 배낭과 붕대를 보고는 약 30명 정도의 비전투손실이 난 것으로 판정했다.

조우전, 순간적인 판단이 빨라야 한다. 그리고 먼저 쏴야 한다. 과감하게 덤벼들어야 한다. 피차 전투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므로 과감한 쪽이 승리하는 법이다. 우물우물하면 호기를 상실한다. 군복 색깔, 군화 철모, 배낭 등을 보고 직감으로 첫눈에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번의 경우, 출발전에 이미 대대에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판단이 늦었다. 중대장이 166고지에 올라간다고 통보하면 고지에서 안내병이 하천까지 내려왔던 일이 가끔 있었고, 이따금 월남 지방군과 이 지역 수색을 함께 한일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 오인사격을 해서 우군을 죽이면 어찌하나’하는 우려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항상 생각하면서 걸어야 한다. ‘늘 다니는 길인데 무슨 일이 있을라구’ 하는 겸손하지 못한 안일한 생각이나 행동은 절대 금물이었다.

고지에 도착하고 난 그날 오후 뒤늦게 대대에서 중요한 첩보가 전달되었다.
당시 월맹정규군에는 북괴에서 파견된 장교들이 월맹군과 함께 무전기로 우리의 통신 내용을 도청해서 그들의 작전을 도와주는 한편, 삐라나 선전문을 우리 한글로 만들어 심리전을 전개하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어 있었다.
바로 그 북괴군이 월맹군과 함께 우리 중대지역을 통과한다는 첩보였다. 그렇다면 오전에 조우한 월맹군 무리속에 북괴군이 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잘 하면 잡을 수도 있었는데 모두들 몹시 아쉬워했다.

166고지에 올라온 첫날부터 중대는 ‘캇숀’ 계곡을 완전히 틀어막고 이곳을 지나갈지도 모를 북괴군을 잡으려고 전 중대가 매복작전에 들어갔다. 첫날 들어가자마자 임중위가 지휘하는 제2소대에서 적게릴라 한 명을 사살하고, 권총을 찬 간부 한 명의 다리를 맞춰 부상을 입히고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바로 같은 날 밤이었다. 10시쯤 되었을 때였다. 나와 함께 매복하고 있던 제1소대의 선임하사조에서 적 발견신호가 왔다. 곧 이어서 길을 안내하는 적의 첨병 한 명이 우리 앞을 덜렁덜렁 지나갔다. 조그만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숲속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후속하는 본대가 있을 것으로 믿고, 쏘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통과시켜 주었다. 15분 정도 지나자 똑같은 길로 5명이 걸어서 내려왔다. 좌우의 매복조는 중대장 지시가 없으면 크레모아를 누르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5명의 적 뒤에 더 많은 적이 오는지를 기다렸다. 좌측 소대의 선임하사조에서 전혀 소식이 없었으므로 후속해서 오는 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우측조에 크레모아 사격신호를 보냈다.

“쾅 쾅…….”

조명탄을 띄워 놓고 총을 쏘면서 전방으로 나가 확인했다. 5명의 적은 전부 사살되었다.

우리는 시체를 끌어다가 호 뒤쪽에 놓고 풀로 덮어두고 밤을 보냈다. 다시 올지도 모를 적에 대비하여 크레모아를 재조정하고 소로에 흩어진 적의 배낭과 신발, 소총들을 전부 치웠다.

중대장인 나의 생각으로는, 침투하자마자 두 곳에서 적과 교전을 하여 탄약을 많이 소모했고 피로도 겹쳤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므로 적과 접전이 없었던 일개 소대규모만 남겨서 잔류 매복을 시키고 남아 있는 크레모아와 실탄 등을 모두 인계한 뒤, 적과 접전이 있었던 조는 다음날 아침 일찍 철수시키기로 결심했다.

확인 사살, 안하면 당한다

아침이 되었다. 날이 밝자 연대장님과 대대장님이 현장으로 격려차 오신다는 전달이 왔다. 전리품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소총과 배낭 및 시체들을 정리해야 했다. 어젯밤에 사살했던 적의 시체를 개활지로 옮겨 놓으려고 덮어두었던 풀과 나뭇가지를 걷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에는 내눈으로 시체가 다섯 구인 것을 분명히 확인했는데 하나가 없어지고 네 구 뿐이었다. 도대체 죽은 놈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여기저기 찾아 보았으나 연대장님이 현장에 오셨을 때까지도 찾아내지 못했다. 중대장인 나는 허위 과장보고나 하는 실없는 중대장이 되고 말았다. 연대장님도 대대장님도 시체가 밤사이 증발해 버렸다는 보고는 귀담아 들으시지 않았다.
“4명이나 5명이나 무슨 차이가 있나?”

“여하튼 수고했다.”

내가 네 명을 잡아 놓고 하나 정도 덤으로 붙여서 다섯 명으로 보고한 것으로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현지 격려를 마치시고 떠나시기 직전에서야 비로소 주변을 수색하던 중대원에 의해서 가시덤불 속에서 증발했던 적을 다시 찾아냈다.

크레모아 파편을 가까이서 맞은 모양이었다. 허벅지 이하에만 많은 파편이 박혔고 허리 위에는 한발도 맞지 않았다. 하체에서 나는 피를 얼굴과 가슴 등에 자기 손으로 바르고는 죽은 체하고 있다가 밤에 몰래 빠져나가 가시덤불 속에 숨어 버렸던 것이다.
그는 자기 옷을 찢어서 상처부위의 지혈을 잘했기 때문에 밤새 살아 있을 수 있었다.

“너희 중대는 안 해보는 것 없이 다해보는구나. 확인을 확실히 해야지.”

연대장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시고 연대로 돌아가셨다. 그렇다. 반드시 확인사살을 해야 한다. 적의 후속제대가 뒤따라 올지도 모른다는 조급함 때문에 시체를 옮기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순간적으로 잊어버려 생긴 실수였다.

연대장님이 떠나신 후 전과 정정보고를 했다. 생포 1명, 사살 4명으로…

◎잃었다가 다시 찾은 전투음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희망을 버리지 마라.

중대장 시절 우리 중대에는 내가 파월되기 전에 15사단에서 최초 소대장을 할 때 함께 근무하던 제중사가 있었다. 내가 소대장시 그는 분대장을 했으나, 울 l중대로 파월된 후 중사로 진급하여 소대 선임하사를 했다. 제중사는 내가 이곳에 있는 줄도 몰랐고, 1연대까지 전입와서야 옛날 소대장이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것을 알았다. 연대 인사과에서 부탁도하고 나에게도 연락이 왔기에 다른 중대로 갈 뻔한 것을 우리 중대로 대리고 왔다.

제중사는 눈이 커서인지 겁이 많은 편이었고, 머리에 상처가 있어 땜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람이 착하기가 이를 데 없었으며, 마음이 너무 좋아서 늘 손해를 보며 지냈다. 항상 성경을 가까이 했고, 부대 내에서도 병사들과 함께 찬송가를 부르며 가끔 기도도 하곤 했다. 자기 소대원에게 한번도 욕하는 법이 없었으며, 남에게 싫은 소리하기를 무척 꺼려했다. 위험한일은 겁이 나서 덜덜 떨기는 했지만 누구보다도 앞장서기를 잘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주위가 산만하고, 태평스럽고, 세상에 바쁜 일이라곤 없었으며 어디든지 가면 무엇을 흘리고 다니기를 잘했다. 우리 중대에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그는 수난을 많이 겪었다.

그가 일으킨 사전 중 제일 큰 것은 매복을 나갔다가 전투음어를 분실하고 돌아온 사건이었다. 당시 월남전에는 북괴군 고문관이 월맹군측에 참전하여 우리의 무선교신을 도청하면서 월맹군 작전을 지원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으므로 전투음어를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복나갔다가 이 전투음어를 어딘가에 흘리고 돌아 왔다. 그는 전날 밤 중대기지에서 약 4km 떨어진 숲 속에서 매복하다가 혼자 오는 적을 사살해서 크게 망신을 당했다.
원래 우리 중대는 혼자 앞에 오는 첨병을 쏘는 사람을 두고, ‘겁장이’요 ‘비겁한 군인’이라고 비난했고, 비록 적을 잡더라도 자기 소대나 분대의 수치로 간주해 왔었다.

적을 처음 발견한 병사가 자기 앞으로 지나가는 적 첨병을 통과 시켰는데 중앙 지점에서 근무하던 제중사가 자기조 앞에 적이 지나갈 때 크레모아를 눌러버렸다는 것이다. 대원들이 선임하사 때문에 망쳤다고 빈정되면서 “중대장이 꾸짖으면 무어라고 대답하겠느냐?”고 묻는 고참병들에게 “빈 손으로 가는 것 보다는 낫다”는 식으로 말할 만큼 태평스러운 사람이었다. 다음날 새벽에 적의 시체를 땅에 묻어주고 매복했던 자리를 정리 한 뒤 중대기지로 돌아 왔다. 중대에 도착하자마자 전투음어를 반납해야 되는데 찾아보니 없었다.

나는 그길로 중대원을 인솔하고 잃어버린 전투음어를 찾으려고 어제의 매복지점으로 다시 갔다. 어제 매복했던 호를 다시 파보기도 하고 적을 묻었던 장소도 파 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매복병력이 철수한 후 이곳에 몇 명의 적이 왔다간 흔적을 발견했다. 즉 우리 병사들은 국산담배나 양담배를 피웠고, 또한 매복나올 때 담배를 한 사람도 지참하지 않았는데도, 어젯밤에 파고 들어갔다가 아침에 다시 메꿔버린 호 근처에 월남 사람들이 즐겨 피우는 담배꽁초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담배필터나 종이가 아직 깨끗했다. 분명히 적이 다녀간 것이 확실했다. 적들이 첨병을 뒤따라 오다가 어디엔가 숨어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아침에 철수할 때 습격을 받거나 역매복에 걸려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어제는 산에서 마을쪽으로 내려오는 적을 타격했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산속에 계급이 높은 적 지휘관이 있을 것이며, 그들의 지휘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음어를 가지고 빠른 시간내에 산으로 다시 들어가리라고 예측되었다.

나는 대대에 전투음어를 분실한 사실을 보고하고, 3일 이내에 반드시 찾겠으니 음어를 분실한 제중사를 3일 동안만 함께 작전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건의드려 승낙을 받아냈다. 중대에는 상급부대의 음어관계관이 와서 우리와 함께 음어를 찾는데 협력했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음어회수작전에 임했다. 전 중대원을 3명 일개조로 편성하여 조당 거리를 평균 50~100m정도 이격시켜서 약 2km정도 되는 ‘캇숀’ 계곡 입구를 완전히 막았다.

출동하기 전에 군장검사를 하면서 일장훈시도 하고, 현상금도 걸었다. 극비문서인 전투음어가 적의 손에 들어가서 북괴에서 온 장교의 손으로 면밀히 연구, 분석된다면 앞으로 교신내용이 적에게 완전히 노출되어 많은 전우가 희생된다는 내용을 강조했으며, 중대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길 당부했다. 또한 찾지 못하면 중대장과 제중사가 군법회의에 회부된다는 사실에 중대원들은 많은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꼭 찾아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대원들이 중대정문을 나서서 컴컴한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중대 기지에는 화기소대를 포함하여 20여명만 최소의 기지경계를 위해 잔류시켰고, 나는 관망대 위에 올라가 밤을 보냈다.

그날 밤, 중대는 세 군데서 적과 접전을 했다. 나는 전투음어를 분실한 제중사와 그가 인솔했던 어제의 매복조를 같은 장소로 다시 내보냈다. 그길로 적들이 다시 올 것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새벽 두 시경, 관망대에서 폭음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제중사가 매복하고 있는 장소 상공에 적과의 접촉을 알리는 빨간색의 수타식 조명탄이 떠올라 있지 않은가!

‘살상지대로 10여명의 적을 완전히 유인하여 전부 사살했다’는 보고가 날아왔다. 미리 출발전에 이르기를 적 첨병은 음어를 절대 갖고 있지 않으며, 본대에 있는 간부가 소지하고 있을 것이므로 절대 첨병을 공격하지 말고 반드시 통과시킨 뒤 본대를 공격하라고 명령했었다. 첨병을 타격하는 조는 전부 군법회의에 회부시키겠다는 중대장의 의지를 병사들은 실천에 옮겨 주었다. 제중사는 두 명의 첨병을 통과시키고 본대를 타격했다. 그들은 조명아래서 경계병을 배치하고, 적의 군장과 옷을 전부 벗기고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적의 지갑 속에서 제중사가 분실했던 바로 그 음어를 기적같이 찾아냈다. 그 음어는 크레모아 파편에 구멍이 났고, 선혈이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정말 기적같은 행운이었다.

우리 중대는 유명해졌다. 주월한국군 최초로 전투음어를 분실하여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하여 유명해졌고, 또 그 분실한 음어를 분실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분실했던 그 장본인이 다시 찾아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전투 그 자체에 무서움이나 공포를 이기지 못하는 병사들을 이해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음어분실 사건 이후, 제중사는 최소한 대대 내에서만큼은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그는 그후 몇 번이나 엉뚱한 행동을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 첫 번째가 한 병사의 자해사건이었다.
사냥꾼이나 낚시꾼처럼 멧돼지를 쓰러뜨리거나 월척을 낚아내기 위해 스스로 고생하며 스릴을 찾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생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싸움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무서움이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사람도 있다.

제중사의 대원 중 한병사가 전입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야간 매복을 나갔을 때, 밤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호 안에서 근무를 서다가 자기 우측발의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에 총을 대고 쏜 사건이 발생했다. 소위 전장에서 자해를 한 것이다.

호 안에는 다른 두명의 동료가 함께 있었는데 그 당시 그들은 가면을 하고 있었다. 적이 접근하면 눈뜨고 근무하는 병사가 옆의 가면하고 있는 동료를 깨운다. 그리고 함께 전투를 한다.

우리 병사들은 그런 절차에 숙달되어 있었다. 그들이 가면 상태에 있을 때 전혀 예고도 없이 호 안에서 총소리가 “땅”하고 났으니 어찌 되었겠는가?

같이 있던 한 병사는 벌떡 일어나 앉아 총을 잡고, 자해한 병사를 보면서 “적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사격준비를 했다. 이 병사는 다가오는 적을 향해 근무자가 총을 쏜 것으로 믿었다. 다른 한 병사는 엉뚱하게도 호에서 뛰쳐나가 매복지점의 측후방으로 뛰어 달아났다. 이 병사는 적이 호 앞에까지 와서 호 안에다 대고 총을 쏜 것으로 착각했다. 그가 뛰어 가면서 측후방에 동료가 설치한 조명지뢰를 터뜨리자, 인접 매복조 근무자가 후방에 매설한 크레모아를 터뜨리고 사격을 했다.

그는 뛰어 달아나다 정신이 들었는지 약 20m정도 후방에 있는 작은 둑밑에 엎드렸다. 간발의 차이로 전우의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면했다. 행운아였다. 네 다섯 발작만 더 뛰어갔어도 전우의 크레모아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자해한 병사가 겁에 질려 자기 옆의 고참 병사에게 “무서워서 제가 제발을 쐈어요”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즉시 이실직고를 하였기 때문에 옆의 고참병이 총기오발이라고 고함을 질렀고, 그 때문에 엉뚱하게 벌어진 이 사건은 운좋게 끝났다.

그런데 이사건의 뒷처리를 제중사는 또 엉뚱하게 했다. 그는 전장에서 자해를 하면 현장에서 즉결처분을 하거나 군법회의에서 사형에 처할 만큼 엄하게 다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사건 자체를 보고도 하지 않고 꿀꺽 삼켜버렸다. 자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함께 매복한 병사들까지 함구하도록 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근무병이 허깨비를 보고 적으로 오인하여 일어난 촌극이라고 조작해서 보고했다.

전장에서 깊은 밤에 무서워지기 시작하면 전입온 지 얼마 안되는 신병들이 나무등걸이나 돌을, 총을 든 적으로 오인하여 사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쩌다 한번씩 발생했기 때문에 나는 제중사의 허위보고를 사실로 믿어버렸다.

3일째 되는 날 모든 사실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날은 제중사팀이 다시 매복나가는 날이었다.

군장검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자해했던 그 병사는 다시 총을 들고 호로 들어가 지난번에 쐈던 발가락사이를 또 쐈다.

중대장 앞에 불려온 그의 군화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아무리 물어도 말을 못하고 사시나무 떨 듯 와들와들 떨기만 했다. 군화를 벗기니 실탄이 자나간 자리가 나란히 두 군데였다. 잘못해서 연발사격이 된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자해라는 의심이 들어 다그쳐 물었으나 와들와들 떨기만 하고 말을 더 이상 못했다.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더 확인을 못하고 중대의 급수차에 태워서 대대의 의무지대로 후송했다. 나는 후송간 병사가 자해한 것으로 의심이 되니 대대에서 좀더 자세히 조사해 달라고 보고했다.

다음날 아침, 매복에서 돌아온 제중사가 매복 복귀신고를 마치고 중대장실로 따라 들어 왔다. 의자에 앉은 내 옆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어제의 사고에 대해 용서를 비는 줄 알고 부하를 걱정하는 그를 오히려 위로했다. 그러나…
그의 보고를 다 듣고난 후 나는 새로운 사실, 즉 전장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고뇌와 고통의 한 부분을 체험했다. 후송간 병사는 전입온지 얼마 안되는 신병이었다. 며칠간 기지내에서의 동화기간이 지나 첫 매복을 나갔다. 당시 이 병사의 분대는 소대장인 한중위조에 편성되어 며칠 전에 큰 전과를 올렸던 교통호 매복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다. 앞에서 이미 소개했듯이 그의 소대는 30여명의 적을 교통호 안으로 유인하여 몰살시켰다.

이런 경우, 시체에 대한 전장정리는 주로 신병들의 차지였다. 신병의 입장에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었던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적의 시체를 한곳으로 모으고, 갈기갈기 찢겨진 옷속에서 피범벅이 된 소지품을 수집하여 첩보의 가치가 있는 문서와 기록물을 찾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 병사는 겁에 질려 떨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으면 자주 토하고 아예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밤만되면 악몽에 시달렸다. 무서워서 잠도 못잤고 며칠사이에 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피로가 극에 달했으며, 점점 야위어 가더니 끝내는 자기 감정을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버렸다. 불과 며칠사이였다. 게다가 고참병들은 신병의 그러한 행동을 꾀병으로 간주하고는 그의 호소를 전혀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집단의 수치로 생각하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제중사는 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런 증세는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힘으로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첫 번째 자해가 있고 난 후 그 병사의 고통을 잘 알고 있던 제중사는 늘 그 병사와 함께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그를 데리고 기도했다. 밤이면 그 병사가 잠들기 전까지 그의 곁에 쭈그리고 앉아 기도했고, 야간에 기지내 경계호에서 경계근무를 할 때는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근무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함께 기도했다. 자기 자신의 허위보고에 대한 잘못과 병사의 자해를 용서하고, 고통과 괴로움, 무서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의 대원들 역시 그의 진지한 종교적 태도에 감동되어 다같이 입을 다물어 주었다. 아무도 보고를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자해사건이 있은 지 3일이 지난 후, 다시 매복임무를 부여받았다.

그 병사는 엄습해오는 고통과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자신이 없어 다시 발가락을 쏴버렸다. 전장에서 자해행위를 한 그 병사는, 당시 상황으로 보아 즉결처분할 여건은 못된다 하더라도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중벌을 받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제중사의 울먹이는 보고를 다 듣고 난 나는 그를 돌려보내고 나서 군율을 공정하게 다스려야 하는 지휘관으로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대로 보고를 해서 처벌을 받게 할 것인가? 아니면 모른다고 할 것인가?

제중사가 사실대로 보고를 하지 않았으면 나도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자해사건에 대해서 추가로 보고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공포감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다르고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받은 심적 고통과 두려움은 우리 인간으로서 얼마든지 이해하고 수용해야 된다고 믿었다. 이미 그는 벌을 받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판단했다.

그 병사가 후송간 후에도 상급부대에서는 몇차례 문의를 해왔다. 그때마다 ‘경계호에서 소총 손질도구를 개머리판에 집어 놓기 위해 총을 거꾸로 놓고, 뚜껑을 열고 집어넣다가 노리쇠뭉치가 충격을 받는 바람에 격발되어 발가락을 다쳤다’고 주장했다. 이런 경우에는 오발로 처리되어 벌을 받지 않는다. 나에게 ‘사실이냐?’고 재차 물었을 때에 ‘현장에서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 확실한 증명을 할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우리 중대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여운은 그리 달갑지 못했다. 그 병사는 제중사의 간절한 기도대로 인간적인 고뇌와 고통을 청산하고 싸움터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났겠지만, 지금 어디에선가 인생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간직한 채 살고 있을 것이다. 제중사의 허위보고와 변명, 자기과오와 병사의 두려움을 씻어주기 위한 간절했던 기도,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또는 허위로 가득찬 변명이었는지 지금도 판단이 옳게 내려지지 않는다.

중대장으로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자해한 병사를 비호 한 것은 상급부대의 꾸지람이 두려워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내 나라의 전쟁도 아닌 남의 나라 전쟁터에 잘못 뛰어든 그를 낙인찍힌 인간으로 살게 만든다는 사실이 내 자신을 두렵게 했을 뿐이다.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포에 시달리던 그를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전과자로 만들지 않고 우리 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 살 수 있게 해주었다는데서 의미를 찾고 싶다.

◎벙어리와의 교신, 방법은 있다

야간에는 매복진지에서 최소한 200m정도의 거리내에 적이 들어 왔을 때 적이 이동하는 발걸음 소리나 휴대장비가 흔들리는 소리 등이 들린다.

이러한 소음을 인지하고 그것이 적이 접근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잘못들은 것인지를 판단하다 보면 거의 100m이내의 거리에 왔을 때쯤에야 적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나무가 우거진 산속, 탁 트인 개활지, 각종 풀이 무성한 숲속 등 지형조건에 따라서 적의 접근을 청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는 상이하다. 특히 물이 흐르는 강이나 개울가 등에 매복위치를 선정했을 때나, 비가 오거나 바람부는 날 밤은 청각으로 판단하는 데 상당한 제한을 받는다.

100m이내의 거리에 적이 들어왔을 때 무전기에 대고 음성으로 상황보고를 하기란 상당히 어렵고 또한 위험한 짓이다. 소음에 의한 매복위치의 노출은 매복작전의 실패를 초래할 뿐 아니라 습격으로 인해 매복조의 전멸을 불러올 수도 있다. 따라서 매복작전시 소음은 철저히 통제되어야 한다.

1소대의 박중사가 인솔하여 매복나간 지역에서 적이 매복진지 앞으로 접근한다는 신호가 왔다.

상황실과 박격포 포상의 무전기에서 “칙칙, 칙칙, 칙칙” 두 번씩 연속해서 소리가 났다. 100m정도의 거리내에 적이 들어 왔다는 신호였다. 박격포 포상에서는 조명탄과 차단사격 준비를 완료해 놓고 긴장하며 기다렸다.

“꽈꽝, 꽝”

크레모아와 수류탄이 터지는 폭음과 소총소리, 박격포 사격방향을 알려주는 적색을 수타식 낙하산조명탄이 떠올랐다. 얼마 후 매복대장인 박중사로부터 적을 타격했다는 최초 무선보고가 날아오고나서 갑자기 교신이 뚝 끊어 졌다. 무전기를 잡고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매복전투시 교신두절은 무전기가 파괴되었음을 의미한다. 틀림없이 선임하사와 무전병이 같은 호에서 근무를 했을텐데 ‘호 안으로 적이 전진 수류탄이 굴러들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상황실에서 송신을 하면 “칙-, 칙-” 하면서 무전기의 키잡는 소리가 들렸다. 무전기의 송신기에 이상이 있음을 직감하고, 송신기에 이상이 있으면 무전기의 키를 짧게 세 번만 잡아보라고 지시하니 응답이 왔다. “칙, 칙, 칙”

“내가 보내는 말이 잘 들리면 키를 두 번 잡아라” 하니 또 다시 응답이 왔다.

“칙-, 칙-”

송신기 고장이 확실했다. 모든 전투 작전시 특히 매복전투시 무전기의 고장은 단순한 고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미 위치가 노출된 상태에서 적이 제2차 공격행위가 있을 때 화력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그 매복조는 적의 공격에 궤멸되고 만다. 이 문제가 가장 염려스러웠다. 무전기의 키를 잡고 선임하사와 벙어리 같은 교신을 시작했다.

문 : 조명상태가 좋으면 무전기 키를 한번 누르고, 나쁘면 두 번 눌러라

답 : 칙, 칙.(조명상태 나쁨)

문 : 현재 조명탄 위치가 어떠한가? 중대기지를 바라보고 앞쪽은 한번, 뒤쪽이면 두 번,         좌측은 세 번, 우측은 네 번 눌러라.

답 : 칙.(조명사거리가 짧음)

문 : 조명거리를 늘리겠다. 더하기 200m이면 1번, 400m이면 2번, 600m시 3번 눌러라.

답 : 칙, 칙.(400m연장)

문 : 사거리 수정된 조명이 뜬다. 조명이 좋으면 한번, 나쁘면 두 번 눌러라.

답 : 칙.(조명상태 양호)

문 : 적의 후속제대가 있으면 한번, 없으면 두 번, 잘 모르겠으면 세 번 눌러라.

답 : 칙, 칙.(후속제대가 없음)

문 : 부상자가 있는가? 전사 한번, 중상 두 번, 경상은 세 번 눌러라.

답 : 칙, 칙, 칙.(경상환자 발생)

문 : 밤을 넘길 수 있으면 한번, 없으면 두 번 눌러라.

답 : 칙.(밤을 넘길 수 있음)

문 : 적을 몇 명 잡았는가? 숫자대로 키를 눌러라.

답 : 칙, 칙, 칙, 칙, 칙.(적 5명 사살)

문 : 포로가 없으면 한번, 있으면 두 번 눌러라.

답 : 칙.(포로 없음)

나는 답답했지만 이런 식으로 교신을 하면서 백린연막탄을 쏘아주고 매복진지 주변에 사격을 실시하여 만일의 경우 적이 매복조를 공격하면 매복주변에 정확하게 사격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했다. 매복조 주변에 일일이 사격을 하면서 완전한 제원을 산출해냈고, 인접 155mm와 105mm 포대와도 협조하여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어떠한 역경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상급자가 함께 겪어주면 병사는 잘 참아낸다

아침 일찍 먼동이 트기도 전, 나는 중대원을 인솔하여 지역수색을 병행하면서 매복지점에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밤새 예상했던 것과 같았다. 적의 접근을 확인하고 나서 앞서가는 첨병을 통과시킨 후 짐을 짊어지고 산으로 들어가는 적의 본대를 살상지대로 유인하여 완전히 사살했던 것이다.

무전기는 송신기가 고장나 있었다. 적이 던진 수류탄이 선임하사 호 앞쪽에서 폭발하여 무전기의 송화유니트가 수류탄 파편에 맞아 깨져버렸던 것이다.

또한 선임하사는 수류탄을 투척하려고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적이 던진 수류탄 파편에 맞아 우측 복부에 작은 파편이 박혀버렸다. 본인 판단에 큰 부상이 아닌 것 같아 미련스럽게도 긴 밤을 버틴 결과 얼굴이 몹시 창백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우직스러운 충성심과 책임감에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그날 아침 일찍 매복현장에 부연대장님과 대대장님이 헬기로 날아 오셨다. 어젯밤에 있었던 벙어리같은 교신내용을 모두 들으셨고, 심지어 참모들에게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그 같은 교신방법을 발전시키라는 지시도 하셨다면 칭찬해 주셨다. 그후 벙어리 교신내용은 참모들에 의해 더울 발전되었으며, 예상되는 조치요령도 잘 정리되어 교육회보를 통해 하달되기도 했다.

매복현장까지 찾아와주신 부연대장님과 대대장님은 성공적인 매복작전보다는 부상을 당했으면서도 끝까지 자기의 책임을 다한 충성스런 부하를 만난 것에 큰 감명을 받으신 것 같았다. 따갑고 아픈 배를 움켜잡고 밤새 그의 대원들과 고난을 함께 한 박중사의 우직한 책임감과 충성심을 보면서 함께 싸웠던 대원들이 훌륭한 전투원이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부연대장님과 대대장님이 타고 오셨던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갔다.

박중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책임완수와 솔선수범이라는 말은 남보다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자기가 맡음 임무를 철저하게 완수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임무를 적극적으로 훌륭하게 완수해 나가는 진취적이며 능동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책임완수나 솔선수범은 비록 말하기는 쉬우나 그 실천은 힘든 법이다.

군대가 엄격한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이라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명령만 내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상급자의 책임감과 솔선수범 없이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있을 수 없으며 소기의 목적달성이나 효율성 또한 기대할 수 없다. 병사는 아무리 극복하기 어려운 역경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상급자가 함께 겪어주면 잘 참아내며, 명령이니까 복종한다거나 할 수 없이 처벌이 무서워서 끌려간다는 따위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우리 병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주고 멋있는 차림으로 찾아와 상투적인 칭찬이나 늘어놓고 다니는 상급자가 아니라 위험과 고생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다. 군대가 가장 멋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북치고 나팔부는 퍼레이드(Parade, 행진)가 아니라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 고생하고 함께 위험을 극복하고, 함께 고통을 견뎌내는 자세라고 본다.

우리는 책임완수와 솔선수범이란 말을 많이 하고, 또 많이 들어 왔다. 상급자에게도 많이 했고, 아랫사람에게도 많이 요구해 왔다. 그러나 백마디 만마디의 달변보다는 고통과 아픔을 참고 버티면서 죽음과 직면한 상황하에서 솔선수범을 행동으로 보일 때, 부하를 감동시키고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박중사를 통해서 배웠다.

박중사의 매복작전 전과를 대대장님이 둘러보시고 있다.

◎매복 준비와 전투,매복준비:작은 것에 충실하라

매복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지배적인 요소는 적이 반드시 통과할 수밖에 없는 ‘목’을 선정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다. 왜냐하면 전쟁터에서 그렇게 하면 죽는 줄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다니던 길도 계속 다니기 때문이다. 산돼지, 노루, 토끼, 등의 산짐승들도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습성 때문에 사냥꾼에게 잡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매복할 때는 적이 꼭 지나가야 하는 목을 찾아서 자리 잡으면 틀림없이 적을 잡는다.

지도상에서 목을 찾기란 간단하다, 소로가 마주치는 곳이나 소로와 고지 능선이 마주치는 곳이 목이다. 적은 주로 소로나 능선으로 다니기 때문이다.

매복을 출발하기 전에 확인하고 교육할 사항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반드시 냄새를 풍기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담배는 죽음을 초래하는 독초다. 또한 대소변 처리를 잘해야 한다. 고양이가 하는 버릇처럼 반드시 흙을 파고 묻어야 한다. 장기간 매복의 경우 대소변 냄새와 땀내, 음식물냄새, 담배냄새, 김치냄새, 사람에게서 풍기는 인내 등은 새벽이나 밤이 되면 날아가지 않고 땅에 깔려서 냄새구역(Smelling pocket)을 형성하게 된다. 신선한 풀내와 흙내를 맡으며 걸어온 사람은 이 냄새를 쉽게 구별한다.

일일 매복을 나가든 장거리 장기매복을 나가든, 병사들은 휴대기준 이상으로 실탄과 수류탄, 크레모아를 휴대하고 나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 그렇게들 한다. 통상 보면 수류탄은 개인당 두발 이상, 크레모아는 개인당 한발 이상씩을 휴대하고 소총실탄을 탄창에 넣어 실탄 포에 담아서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나간다.

대다수 병사들은 방탄조끼가 무겁고 입고 다니면 너무 덥기 때문에 입기를 싫어한다. 그 대신 탄창이 든 실탄포는 방탄효과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양쪽 어깨에 대각선으로 둘러서 앞가슴과 어깨, 그리고 등쪽이 보호받도록 잡아맨다. 매복진지에 도착하여 야간에 근무서고 있을 때나 가면을 취할 때도 탄포를 방탄조끼 대긴 모에 두르고 지냈다.

다음은 원활하게 다량의 사격을 하기 위해서 소총과 탄창을 말끔하게 손질해야 한다. 우선 총구 손질이 잘못되어 먼지나 오물이 끼어 있든지 기름이 과다하게 묻어 있으면 칼퀴가 탄피를 물어내지 못해 기능고장이 생기므로 실탄이 장전되는 부분은 항상 깨끗해야 한다. 연발사격을 하는 소총은 칼퀴고장이 자주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수시로 확인하고 칼퀴의 날이 무뎌지기 전에 교환해 주어야 한다.

다음, 탄창은 늘 실탄이 꽉 차 있기 때문에 자주 분해해서 깨끗이 해야 한다. 탄창에 물이 들어가 내부가 부식되거나 먼지가 끼면 용수철이 작동을 못해 사격시 실탄을 제대로 밀어올려 주지 못한다. 실탄이 부식되었거나 지저분해도 안된다. 더욱이 소총을 닦던 기름걸레로 실탄을 닦으면 약실에서 개스와 함께 범벅이 되어 탄피가 원활히 추출되기 않게 된다.

탄입대 속의 탄창을 꽉 끼게 넣으면 탄창 교환시 잘 빠지지 않는다. 반드시 탄입대 밑에 끈을 넣어서 필요시 끈을 잡아당기면 탄창이 튀어 나오도록 준비해야한다.

◎예행연습:예측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철저한 준비와 교육 및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 ‘소총과 탄약, 무전기, 기타 장비 등이 잘 정리되어 있겠지, 즉각조치 절차도 여러번 교육시켰는데 다 알고 있겠지?’하는 따위의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다.

매번 작전준비를 철저히 해야하며 새로운 마음가짐과 겸허한 자세로 확인하고, 교육하고, 예행연습도 해야한다.

탄약은? 무전기는? 총기는? 환자는? 냄새는? 적과 조우시는? 진입과 철수시 역매복 예상지역과 조치는? 살상지대는? 화력지원 요청은? 타격은? 등등…

예상되는 모든 사항을 마치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시키듯이 잘 정리해서 머릿속에 넣어두었다가 필요시 풀어내서 반드시 써먹어야 한다. 사전에 대원들의 행동연습이 필요하면 반드시 예행연습을 시켜야 한다. 일이 닥쳐서 소리소리 지르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다가는 모두 죽는다.

매복대장이 할 일은 행동이 아니라 철저하게 지형과 당시 상황에 알맞는 전술적 예측이다. 상황 전개 예측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매복진지 점령:공제선 투시를 위해 밑에서 위를 쳐다보는 매복진지 점령은 신중하게 채택해야 한다

매복진지로 이동하는 도중 적과 조우할 때는 먼저보고 먼저 쏴야 한다. 조우전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피아를 직감적으로 식별하여 적인 경우 신속한 다량사격이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쏘는 쪽이 대부분 기선을 제압하게 되고, 사격을 받은 쪽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매복 출발 전에 매복 진입로상의 우군활동을 확인해야 하며, 연합작전일 경우는 연합국 상황도 일일이 협조하고 점검한 뒤 출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과 조우했을 때 우군인지 적인지 자세히 몰라 머뭇거리며 우물쭈물하는 일이 발생하고 즉각사격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조우시에는 주변의 유리한 지형을 신속히 점령하여 사격으로 적을 고착시키고, 즉시 박격포나 야포 등 곡사화기 사격을 유도하여 정확한 포사격을 실시토록 해야 한다.

신속한 육군 항공지원이 가능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만약 지원 사격을 할 수 없는 적진 깊숙한 후방지역에서 작전시 대규모의 적과 조우하게 되면 신속히 그 위치를 이탈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매복지점 진입시에는 가까울 때는 바로 매복지점으로 들어가지만, 거리가 멀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기지를 떠나 매복진입이 노출될 때는 가매복지점을 선정하여 숨어 있다가 어두워진 후 매복지점을 적이 관측할 수 없을 때 점령해야 한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어두워 졌을 때 즉 EENT+30분 이후에 움직이는 것이 현명하다.

주간에 지역일대에 대한 수색정찰을 마치고 철수시 휴식하는 것처럼 적을 속이면서 매복부대를 잔류시키는 방법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적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숲속에 숨어 있다가 어두워 진 후 매복준비를 해야한다.

매복진입 병력이 진입도중 적과 조우할 것을 고려하여 진입로상에 확인점을 부여하고 이를 참고로 하여 조명이나 곡사화기 사격을 유도하도록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특히 매복진입과 철수시에는 적의 역매복에 유의해야한다. 이를 위해 의심나는 지역을 첨병으로 하여금 수색토록 하고 사전에 사격을 실시하여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매복지점에 도착하면 우선 적을 유인해서 타격할 살상지대를 선정해야 한다. 매복위치는 통상 도로나 소로앞에 선정하여 병력을 배치하되 아군은 호를 파고 숨어서 사격하기 용이하고, 적은 도주하기 어려운 곳이어야 한다.

살상지대로 선정한 주변에 푹 파인 골이 있다거나 가깝게 근접한 곳에 급커브가 있어서 적이 사격을 피해 숨어버릴 수 있는 지역은 살상지대로 부적절하다.

주변지형을 잘 고려해서 매복진지를 선정해야 한다. 공제선상에 움직이는 적을 발견하기 위해 매복위치를 선정하는, 소위 공제선 투시를 한다고 밑에서 위를 쳐다보고 매복훈련을 하는 것을 교육훈련장에서 종종 본 일이 있다.

지형에 따라 나무나 풀이 없는 곳에서는 공제선 투시가 가능하지만 나무와 풀, 기타 잡목 등이 사람 키만하면 공제선투시는 절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제선 투시를 이용한 매복작전은 능선상에 수목이 어느 정도인가를 주간에 사전확인 하고 난 후 채택해야한다.

매복시 사격은 위에서 아래도 하든지 최소한 평탄한 상태에서 사격을 해야하고 사격을 차단하는 방해요소가 없는 곳에 진지를 선정해야 한다.

매복위치를 선정하면 반드시 호를 구축해야 한다. 호를 파지 않고 그대로 매복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만용이다.

또한 호를 파더라도 호박구덩이 파듯하면 안된다. 교번에 나와 있는대로 호를 파야한다. 그리고 호 앞에는 반드시 양팔꿈치를 땅에 대고 거총할 수 있는 공간을 띄우고 30cm정도 높이의 사대를 만들어야 한다. 적의 소총탄이나 수류탄 파편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호 깊이는 반드시 깊게 팔 필요가 없다. 앉아서 밖을 내다 볼 수 있을 정도, 즉 목부분까지 들어갈 정도면 충분하다.

호는 2-3명의 일개조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파고, 호와 호 사이의 거리는 호 안에서 던지는 수류탄 투척거리와 크레모아 도전선의 길이를 고려하여 통상 20cm정도 이격시키는 것이 좋으나 상황과 지형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약간의 공포심 극복에는 도움이 되나 살상지대가 좁아지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적발견 신호줄 설치가 어려워지는 등의 장단점이 있다.

호를 파고 사대를 쌓았으면 반드시 지가를 설치해야 한다. 캄캄한 밤에 적이 도주한 방향으로 정확하게 사격하기 위함도 있지만, 흙위에 소총을 놓고 사격을 하면 흙이 튀어서 소총의 활동부분으로 들어가 기능고장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해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매복단위는 점매복일 경우 분대규모, 넓은 지역을 차단할 때는 소대, 중대 또는 대대규모까지 지역매복을 한다. 소대 단위일 경우, 통상 소대장조와 선임하사조로 나누어 매복조를 편성하고, 인원은 한 지점에 2개 분대 규모인 10명에서 20명 정도가 적절하다. 지역매복을 할 경우에는 분대 또는 반개 소대 규모의 인원으로 지형에 알맞게 점매복을 연결시키면 된다.

통상 일개조는 한 호에 2-3명이 근무하는 것이 좋다. 한 명은 근무를 서고 나머지 인원은 가면을 취한다. 적이 접근한다는 신호가 오면 동료전우를 깨워, 한사람은 크레모아를, 다른 인원은 수류탄과 소총을 크레모아가 터짐과 동시에 사격함이 효과적이다.

◎매복전투: 지근거리 유도, 적의 첨병을 통과시켜라

적을 살상지대 내로 완전히 유도해서 단시간내 다량의 사격을 가하여 적을 격멸하는 매복작전은 전투 중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며 신명나는 싸움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대담성과 자신감이 제일 중요하고 적을 코앞에까지 유인하는 강심장과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 매복대형은 주로 적의 접근로를 따라 배치하는 일선형 매복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적은 야간에 통상 첨병을 앞세우고 길을 따라오기 때문이며 많이 적이 이동하더라도 일단 공격을 받게 되면 지금까지 오던 안전한 길로 돌아서서 도망가기 때문에 살상지대를 길게 선정해서 살상지대 안으로 깊숙이 적을 유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도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본대를 안내해주는 첨병을 운용한다. 첨병이 지나가면 본대가 온다. 본대는 전투대형을 유지하지 않은 채 방심한 상태에서 오물오물 몰려서 온다.

따라서 적의 첨병 한두 명이 오는 것은 그대로 호 앞을 통과시킬 수 있는 담력이 있어야 하고, 본대가 오면 살상지대 안으로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력이 있어야 한다.

매복지점에서 호를 파고 크레모아를 설치하는 등 매복준비를 하는 도중에 적이 접근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통상 안내를 위한 첨병 한두 명이 먼저 오는데, 이는 경계병이 숨어 있다가 코앞에까지 적을 유인해서 적이 아군의 매복위치를 발견했다고 판단되면 심장이 있는 좌측 가슴을 조준해서 단 한발에 쓰러뜨려야 한다.

한 발 정도의 총소리는 확인도 되지 않거니와 매복조가 있을 것으로도 생각하지 않으니 그대로 매복을 계속해도 좋다. 여러 명의 적이 접근시에 경계병은 즉시 본대로 합류하여 적의 접근을 경고해주고 전투준비를 해야 한다.

호를 규정대로 잘 파고 들어앉아서 철모를 쓰고 눈만 내놓고 사격을 하면, 한번 강타당한 적이 도망가면서 조준하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쏘는 적탄에는 절대 맞지 않는다.

자신은 호 안에서 완벽하게 보호받고 있으며 적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준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도망가면서 대충 쏘는 적의 실탄이 자기 근처에 박히거나 머리위로 ‘핑’ 소리를 내고 날아간다고 절대로 겁먹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다.

훈련시 눈부위 만한 크기의 불을 달아 놓고 뛰어가면서 그것에 총을 쏴 바라. 백여 명이 뛰어가면서 쏜다 해도 맞지 않을 것이다.

호 안에 있는 자신은 절대 안전하므로 당황하거나 겁내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정확하게 조준해서 사격해야 한다.

적을 능가하는 대담성과 인내력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크레모아 확인

크레모아는 기지에서 군장검사를 할 때 반드시 점검기를 연결하여 점검기에 불이 들어와 작동이 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도전선이 끊어져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든가 도전선의 표피가 벗겨진 것이 있으면 즉시 교환해야 한다. 이는 벼락칠 때 자연폭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격발기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격발기의 고무부분이 파손되어 격발기 용수철부분에 물기나 오물이 들어가면 용수철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뿐 아니라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 크레모아는 원래 격발기를 누르면 용수철이 눌리면서 내부의 격발장치가 뇌관을 점화시켜 크레모아가 터지도록 되어있다. 정상적인 격발기인 경우 손잡이를 누르면 용수철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게 되어 있지만, 부식되었거나 오물이 끼어있을 경우 그대로 눌러져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모르고 크레모아를 연결해 두면 미세한 충격에도 용수철이 튀면서 전기가 발생, 뇌관을 점화시켜 크레모아가 터져 버린다. 각별히 조심하고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사격통제

누르고 던지고 당기고(크레모아, 수류탄, 소총)의 사격순은 잘못이다

매복간 모든 사격은 철저히 통제되어야 한다. 적을 살상지대 안으로 완전히 유인하고 나면 먼저 크레모아를 터뜨려야 한다. 매복전투는 크레모아 사격에 의해서 결판난다. 실제로 땅에 엎드려서 정확히 조준하여 살상지대를 제압하고, 실탄이 상호 교차 되도록 매설해야 한다.

호 안에 여러 개의 격발기가 있더라도 각 격발기에 연결된 크레모아의 매설 위치와 방향 및 살상반경을 정확하게 숙지해야 한다. 이를 숙지하지 못하면 적은 좌측에서 접근하는데 우측 크레모아를 터뜨리는 과오를 범한다든가 적을 코앞까지 유도해 놓고도 못 잡는 경우가 발생한다.

살상지대 내에 적이 많으면 격발기의 안전장치를 풀고나서 한군데로 모아놓고는 오른팔뚝으로 한꺼번에 눌러서 여러 발을 동시에 터뜨린다.

각 매복지점의 중앙에 소대장이나 선임하사가 위치해 있다가 크레모아 격발시기를 판단해서 좌우 인접조에 신호를 보내고 동시에 터뜨려야 한다.

적이 한두 명일 경우이거나 소수 인원일 때 크레모아를 전부 터뜨리면 안된다. 만약 뒤따라오는 적의 대병력이 있는 경우 크게 위험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정확하게 크레모아를 골라서 터뜨려야 한다.

크레모아의 폭발시기에 단 1~2초의 차이가 있어도 나중에 터지는 크레모아는 적을 살상하지 못한다. 적들이 엎드리거나 뛰어 달아나기 때문이다.

크레모아는 팔뚝으로 누르면 동시에 6발 정도는 터뜨릴 수 있다.

10여 명이 3내지 4개조로 근무할 경우 한번에 20발정도가 동시에 터지게 된다. 대단한 화력이다. 사람이 공중으로 2m정도 붕 떴다가 떨어진다. 살상지대 안의 적은 아무리 많아도 다 쓰러진다. 크레모아를 터뜨려 적을 살상하게 되면 반드시 확인사살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한 적이 수류탄을 집어던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크레모아 폭발시간을 일치시키는 요령은 간단하다. 소대장이나 선임하사의 호는 매복지점의 중앙에 위치하고, 호 내에서는 지휘자가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에 무전병과 전령을 대동하여 함께 근무하면서 인접 근무자에게 크레모아를 터뜨리라는 신호를 보내도록 옆사람의 옆구리를 쿡 치고나서 격발기를 누르면 인접조의 폭발순간과 시간이 거의 일치한다. 신호를 보내기 위한 신호줄은 통상 가는 나이론 끈을 사용하고 주로 발목에다 매면 적절하다. 좌우 인접조와 의사소통 신호는 세 가지만 하면 된다.

이상유무와 졸지 않고 근무 잘 하라는 신호는 한번을 당기고, 적이 접근한다는 신호는 짧게 두 번씩 세 번 정도 계속 당기고, 적을 살상지대 내로 유인한 다음 크레모아 사격명령을 내릴 때는 한번만 짧게 ‘탁’ 당겨주면 격발기를 누르도록 사전에 신호규정이 숙지되어야 한다.

적의 후속제대가 매복지점을 덮친다거나, 박격포 사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한 화집점을 참고로 하여 곡사화기 사격을 유도할 줄 알아야 한다.

크레모아가 터지면 적들은 전력을 다해 달아난다. 적이 달아난 후 수류탄을 던져봤자 수류탄이 땅이 떨어져 바로 터지지 않는다. 수류탄을 집어서 안전핀을 뽑고 던져서 터지는 시간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10초 내지 15초는 걸린다.

이 시간에 육상선수 같으면 100m는 뛰어간다. 크레모아 폭발 때 쓰러지지 않은 적이 뛰기 시작하면 수류탄이 터질 때까지 수류탄 살상반경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매복전투시 크레모아, 수류탄, M16 소총 순으로 사격을 해야 한다는 교범상의 교리는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감안할 때 소총사격과 수류탄 투척을 반씩 나누어서 하는 것이 좋다. 수류탄투척은 적이 사격으로 제압할 수 없는 푹 패인 골이나 절벽 밑으로 뛰어내렸을 때 사용함이 좋다. 소총사격은 최초 다량사격이 효과적이다. 소총이 위로 튀어 상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총덮개를 위에서 누르고 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완전히 거총을 하고 쏘면 총구 섬광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깨홈에 개머리판을 고정시키고 조준구로 조준하지 말고 고개를 들고 야간지향사격 자세를 취해서 사격해야 한다. 탄약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 살상지대 내의 적을 제압했다고 판단되면 즉시 사격을 중지시켜야 한다.

매복전투는 대부분 크레모아 사격으로 적을 제압하고 그것으로 작전은 판가름난다. 죽을 녀석은 죽고 살 녀석은 산다.

소총사격이란 크레모아에도 맞지 않은 적이라든지 도망가는 적을 사살하는 데에, 그리고 매복전투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완전제압을 위한 사격이다. 따라서 최초 제압사격은 다량의 연발사격을 하게 되는데 보통 한 탄창, 많아야 두 탄창 정도면 충분하다.

시간상으로 10초 내지 초면 매복전투는 끝난다. 그 이후에는 확인사살을 제외하고는 총을 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15초 정도 지나면 총에 맞지 않은 적은 이미 매복지역을 이탈했기 때문에 사격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적이 보이지 않는데 겁이 난다거나 의심스럽다 하여 소총을 마구 난사해서는 절대 안된다.

◎전장조명: 중복된 조명을 하지 마라

교전중 조명이 끊어지면 혼란이 온다

크레모아 사격이 끝나면 소대장은 즉시 수타식조명탄을 띄우고 무전기를 개방하여 간단한 상황보고와 동시에 곡사화기 조명을 요청하여야 한다.

전장조명은 크레모아 사격과 동시에 수타식조명탄을 솨 올리거나 조명지뢰를 호 안에 가지고 있다가 적이 출현한 지역으로 집어던져 터뜨려야 한다.

상황이 종료되기 전에 조명이 끊어지면 혼란이 온다. 수타식조명이나 곡사화기 조명이나 밝기는 마찬가지이며 한 발이 공중에 떠 있든, 여러 발이 동시에 떠 있든 밝기는 똑같다. 따라서 수타식조명은 철저히 통제하고 조절해야 한다.

조명지뢰는 매복조가 선정한 살상지대내 또는 살상지대의 적 접근로상에 설치해서는 안된다. 살상지대 밖이나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측후방에서 접근하는 적을 조기에 경고하기 위해서만 조명지뢰를 설치해야 한다. 측후방에는 조명지뢰가 폭발시 사격할 수 있도록 소수의 크레모아도 병행해서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상급부대의 일부로 큰 작전에 참가하여 적을 포위했을 경우, 포위부대는 적이 접근할 것으로 예상되는 접근로 상에 크레모아의 살상반경을 고려하여 조명지뢰를 설치해야 한다.

조명지뢰와 크레모아의 매설위치를 확실하게 기억한 다음 조명지뢰가 터지면 크레모아를 선별하여 사격함으로써 해당지역의 적을 정확하게 섬멸해야 한다.

조명은 많은 착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조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계곡 또는 물이 흐르는 곳에 조명지뢰를 설치하였다가 밤에 폭풍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면 조명지뢰가 폭발하기도 한다.

조명지뢰를 부착한 지주가 물에 떠내려가면 여러 곳에 그림자가 생기면서 마치 사람이 움직이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에 오인사격을 남발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조명지뢰는 많은 연기(smoke)가 발생하여 연기의 흐름이 조명에 비칠 때 사람이 움직이는 것같이 보일 수 있다.

항공 조명이나 곡사화기 조명 역시 공중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따라 흐르다 보니 나무나 바위들의 그림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공중에 어려 발의 조명탄이 떠 있을 때 더 더욱 혼돈과 착각을 유발하기 쉽다.

◎화력지원

소대규모 이상의 병력이 장거리 장기매복을 나갈 경우, 특히 포병화기 사거리 밖으로 매복작전을 나갈 때는 60mm 박격포와 탄약을 휴대하고 나가야 한다.

박격포반의 위치는 매복지점을 감제관측할 수 있는 주변의 고지에 위치시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경고할 수 있도록 하고 적과 접적시는 위에서 내려다보고 직접 사격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야간사격을 위해 주간에 각종 제원을 산출해 놓고 우군지역에 사격이 되지 않도록 포상에 사격금지선을 알리는 나뭇가지 등을 박아 놓아야 한다.

지원화력 문제도 잘 판단해 보아야 한다. 포병화력의 경우, 매복지점에서 500~600m이상 이격된 표적에 대해서는 사격이 용이하게 되나 그 이내의 표적에 대해서는 아군포에 희생당할 우려가 있어 화력지원이 어렵다.

야간 매복의 경우, 완전한 개활지가 아닌 이상 500m정도 밖에서 움직이는 사항은 절대로 관측되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또한 적들이 매복진지에 덤벼들 때는 이미 야음을 이용하여 최소한 50m내지 100m 앞까지 접근한 후이며, 매복진지가 사격으로 노출된 것을 보고 일제히 달려들기 때문에 포병화력의 직접지원은 매우 어렵다. 다만 진내사격 개념으로 지원을 받을 때만 가능한데, 이때는 포탄의 신관을 공중폭발이 가능한 신관으로 선택하여 사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미리 파놓은 호를 옆으로 파고 들어가 유개화될 수 있도록 신속히 조치하여 아군포에 의한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

따라서 매복조가 공격한 적의 이동제대 후미에 상당한 병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즉시 500~600m정도 이격된 접근로상이나 의심나는 곳에 포병화력을 유도해서 미리 사격하는 것이 좋다.

반면에 보병부대가 보유하고 있는 81mm나 60mm 박격포는 위급시 100m 근처의 지근거리까지 포탄유도가 가능하다. 60mm 박격포로 700m의 사거리 정도를 사격할 경우, 최초포탄이 포구를 나가 목적지에 떨어져서 폭발할 때까지 20여발의 포탄이 날아가면서 공중에 떠 있게 사격할 수 있다. 수십 명이 수류탄을 던진 것처럼 포탄이 계속 작렬한다. 적의 행동이 정확히 포착되기만 하면 소의 탄막사격으로 적을 격멸할 수 있다.

81mm 박격포는 60mm 박격포만큼 사격속도가 빠르지 못하지만 근접전투시 아주 효과적이다.

이와 같이 박격포 지원이 용이하고 충분히 숙달되어 있을 때는 적이 덤벼들더라도 충분히 격멸시킬 수 있으니 한번 싸워 볼만하다.

이런 식의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평소 사수요원들이 야간에 박격포의 수평(水平)과 고저(高低)를 유지하는 수포눈금 조작에 숙달되어 있어야 한다.

이때 유념해야 할 사항은 박격포로 단시간에 다량의 사격을 할 때, 포열이 과열되어 포탄에 달려 있는 장약이 공이가 뇌관을 때리기 전에 불붙는 일이 없도록 확인하면서 사격해야 한다.

만약 적이 달려들면?

교전이냐? 이탈이냐? 재치있게 신속히 판단하라

매복시 적의 첨병을 통과시키고 나면 후속해서 오는 본대의 후속장경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이동제대의 선두무리를 타격하는 경우가 생기고 이런 경우 후속해 오던 적 이동병력의 본대가 매복병력을 유린하기 위하여 전투력을 집중해서 달려드는 경우도 발생한다. 선두가 강타당하면 대부분 우회하거나 도망을 가지 조직적으로 덤벼드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공격할 때는 제파식으로 병력을 투입시킨다. 예를 들면 제1제파에는 2~3명으로 접근시켜 아군의 사격을 유도하여 위치확인과 탄약을 소모시키고, 제2 또는 제3 제파에는 본대가 전투력을 집중하여 달려드는 경우가 있다. 그 외에도 소수의 척후병이 수류탄 투척거리 밖에서 돌을 던지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서 사격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겁을 낸다거나 보이지 않는 적을 함부로 사격해서는 안된다. 적에게 말려들거나 위치를 노출시키고 탄약만 소모한다. 선두가 강타당하면 후속제대는 즉시 달려들지 못하고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준비한 후 공격하게 되며, 앞에서 쓰러진 그들 전우의 시체를 유기한 채로 즉시 도주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선두제대 타격 후 후속제대의 낌새가 보이면 즉시 주변과 의심나는 곳에 포병 및 곡사화기를 유도하여 사격해야 하고 폭발한 크레모아 자리에는 예비 크레모아를 설치하여 차후 작전에 대비해야 한다.

멀리 설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할 때는 호에서 몇미터 앞에라도 설치해야 한다.

적과 싸울 것이냐? 이탈할 것이냐? 재치있게 판단해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탄약과 호 준비 및 지원화력의 유무에 따라 다르리라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지원해 줄 박격포도 없는데, 증원될 병력은 멀리 위치해 있고, 실탄이 소모된 상태에 있다면 즉시 이탈해 버리는 것이 좋다. 무모한 전투는 다음 작전을 위해 피해야 한다. 우물쭈물 하다가는 다 죽는다. 영리하게 판단하여 대비하고 조치해야 한다.

적이 전열을 정비하여 매복지점으로 달려드는 경우, 크레모아와 수류탄 투척거리 까지 적을 바싹 유인하여 단시간에 다량의 화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적이 잠시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그 지역을 이탈해야 한다. 이탈시는 푹 패인 하천이나 골짜기 또는 작은 능선을 넘어버림으로써 적의 직사화기를 피할 수 있다. 이탈 후 접적을 단절하고 완전히 이탈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우군 화력을 유도할 수 있을 때는 주변의 고지로 자리를 옮겨서 곡사화기 사격을 유도해야 한다. 탄약이 충분하고 지원화력의 능력이 있을 때에는 이탈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

◎포로 획득

매복목적이 포로를 획득하기 위한 경우에는 주변의 높은 지역에 관측소를 운용해야 한다. 주간에는 적의 접근을 조기 경고하면서 권총을 찬 사람을 식별하여 매복조에 통보해 주어야 한다.

또한 매복조는 크레모아를 먼저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크레모아를 설치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적이 접근시에는 소총으로 엉덩이 아래 부분을 쏘아서 쓰러뜨려야 한다. 반드시 권총을 찬 사람을 골라서 사격해야만 장교를 잡을 수 있다. 야간에는 소총에 야간조준경을 달고, 영점을 잡아서 저격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매복환상과 착각: 환상과 공포증

죽음과 부상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음은 한밤중에 발생하는 환상과 공포에 대한 처리 문제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 산새가 슬피 울어대고 음산한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휘익 불어오면, 적진 깊숙히 들어와 있는 매복조 대원에게 예외없이 찾아오는 것이 무서움과 공포다.

전쟁터에서 죽음과 부상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공격 때나 주간 행동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방어시 진지에서 적을 기다릴 때, 특히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매복작전시 무서움은 누구나 느끼기 마련이다. 단지 공포와 무서움의 정도가 적어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환상과 착각이 나타나는 원인은 죽음과 부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다.

전투에서 적을 많이 사살하고 나서 피비린내 나는 비참한 현장을 본 신병이 근무를 설 때 적의 주검이나 전우의 주검이 환상이 되어 나타난다.

드라큐라같은 귀신이 피를 흘리며 너울너울 날아오고, 짝사랑하던 아가씨가 흰 치마를 입은 해골귀신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

이때 옆에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거나 산짐승이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거나, 음산하고 으시시한 바람이 ‘휘익, 휙-’ 지나가면 근무서는 병사는 머리가 밤쯤 돌아버린다. 그러한 상태가 지나치고 정도가 넘으면 소위 심리적 공황(恐惶)의 단계까지 도달한다.

이때는 자기머리를 흔들어도 보고, 때려도 보고, 얼굴과 허벅지를 꼬집어 보아야 한다.

그래도 정신이 맑아지지 않을 때는 이미 전쟁공포증을 느끼는 상태로서 인접 전우의 가면한 모습이 죽은 시체로 보이고, 잘려 나간 나무등걸이 총을 들고 걸어오는 적으로 보이며, 음산한 바람소리는 귀신일 부르는 소리로 들리고, 동물의 발자국 소리는 적이 접근하는 소리나 귀신이 다가오는 소리로 들린다. 마침내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고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다가 환상과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쟁공포증세인 것이다.

어떤 병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총을 난사하거나 크레모아를 터뜨리며 수류탄을 던지기도 한다. 고함을 지르고 식은땀을 흘린다. 심지어 먹은 것을 토하고 헛소리를 지르며 안절부절  못한다. 또한 어떤 병사는 총을 난사하면서 허깨비와 환상 속의 적과 귀신을 쏘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간다. 겁에 질리다 못해 자기 발등을 쏴버리는 자해 행위를 하는 병사도 생긴다.

예방과 조치

동일한 상황과 황경에서 연습시켜라

적응된 공포는 극복한다

증세가 나타나면 인정사정 봐주지 마라

이러한 증세는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르다. 완벽한 방지는 어렵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매복시 혼자 근무설 때 쉽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3명이 한 호에 들어가서 2명은 근무서고 1명은 가면을 취하게 하는 방법이 제일 좋다.

3열 일개조가 되도록 편성이 곤란한 경우, 최소한 2명이 한 호에 같이 들어가 근무하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도록 해야 한다.

피곤하거나 공복이 심할 때, 자기 지휘관이나 부대에 대한 신뢰감이 없고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을 때, 이때는 더욱 위험하다. 매복출발 전 충분한 교육과 사전 예행연습으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반드시 인접매복조와 신호줄을 설치하여 그 줄을 발목에 묶고 수시로 이상유무를 확인하면서 신호줄을 잡아당겨 줌으로써 믿음직한 전우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서로에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매복을 인솔한 매복대장이나 장교 및 하사관들은 평소에 병사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위험과 고난을 함께 해야 하며 의연하고 의젓한 언행과 태도로 무엇인가 멋있고 믿을 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공포증 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방법이 없다. 거칠게 다루고 무기로 위협하고, 그것도 안되면 정신이 번쩍들게 발밑에 총을 쏘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 이 단계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소대장, 중대장 시절 나의 부하 중에 이와 비슷한 공포증을 드러낸 일이 몇번 있었고, 겁에 질려서 자기 발등을 쏘아버린 자해사건도 한번 있었다. 그 외에도 나무등걸을 보고 총을 들고 자기 앞으로 걸어오는 적으로 착각하여 사격을 한다거나 들 짐승 즉 들고양이, 족제비, 산돼지, 들쥐 등 야행성 동물들이 주변에서 먹이를 찾아 부시럭거릴 때, 음산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나뭇가지가 부딪치며 소리를 낼 때, 자연적으로 돌이 굴러 떨어지거나 흙이 무너질 때, 개울가에서 매복시 물 흐르는 소리가 나고 물고기가 물 위로 뛸 때, 과일나무 밑에서 근무시 열매가 땅으로 툭툭 떨어지며 부시럭 소리를 낼 때 그리고 나무가 썩어 인을 발산하여 허연 것이 주변에서 보일 때 등은 착각과 환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처럼 경험이 없거나 전장감각이 체질화되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긴장과 두려움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고 허깨비를 보면서 헤매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그러나 사격을 한 병사들도 긴장과 두려움으로 자기자신이 환상과 착각을 일으켜 사격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크게 걱정할 문제는 못되나 실제 매복을 나오기 전에 안전한 곳에서 야간에 실제 매복과 똑같은 상황을 조성하여 경험을 시키고, 매복지점에다 사람을 통과시켜 적과 자연적 현상을 구분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면 곧 치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