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승의 파수꾼 " (특공 정찰대)
백마 1진 28연대가 캄란에서 약 3개월간 주둔 하면서 한국과 다른 기후 적응과, 곧,있을 작전과 매복에 대한
훈련을 실전처럼 계속했다.
전쟁터라 그런지 사병들도 평소에 실탄을 장전한 개인화기를 갖고 다녀야 했고 넓은 지역 이어서 아무데서나 늘 사격 훈련을 했다.수류탄은 물론이고 크레이모어와 조명탄,vc들이 소지하고 있는 구식 장총과 방망이 수류탄의 성능도 시험해보고 지원 부대인 화기 중대의 LMG. 106 미리 무반동총 등의 시험발사등도 지켜봤다.
우리들 모두가 한국과 전혀다른 월남의 이국 정취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마음들이 느슨해져서 그런지 안전사고도 있어서 후송당하는 일들이있어 마음이 울적한 일도 생겼다.
안전사고는 없어야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경험이고,
"이런일은 없어야 한다고 서로가 조심하고 조심을 했다.사실 안전사고는 무의미한 희생일 뿐이다.
캄란에서 우리는 전쟁에 대비한 훈련이 계속 되었고 후방이라고 할수있는 그곳은 미군들의 군수기지 시설들이 있어서 우리가 그 일익을 담당 했었는데, 우리가 부대 이동을 하게되자 미군들이 반대했고 우리들 대신 백마의 다른 연대가 그지역을 담당한것으로 안다.
우리28연대는 투이호아로 이동해 주둔한곳이 1번 국도와 연결된 혼바산 아래다.우측은 2대대 서쪽끝은 3대대가 위치 했는데 모두가 위험지역이다. 왜냐면,우리의 28연대가 위치해 힜는 혼바산 와지선 일대앞에 위치한 앞쪽 혼바산에는 vc들이 우굴거리고, 1대대가 있는 지역, 國道 1번도로와 우측 긴언덕으로 연결된 3대대 지역엔 vc가 장악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곳으로 혼바산 일대룰 장악하고 있는 놈들을 소탕해야만,우리의 군수물자를 맘놓고 운반할수가 있는 중요한 거점이다.
작전에 임하기전,최명재 연대장님의 지시로 28연대 분대장 이상급은 자신들이 투입될 혼바산 일대를 헬기로 정찰,그 지역을 익히게 했다.약,3.000피트 상공에서 내려다본 혼바산은 우리나라 지리산 보다는 높이와 면적이 훨씬 작아 보였으나 정글로 덮여있는 사이로 보이는 돌들이 나중에 실제로 가보니..집채만한 바위들 이다.
나는 원래가 3중대 화기소대 61미리 3포대 포 반장이다.전쟁시 화기소대는 소총수들과는 달리 후방에서 61미리 박격포와 57 과 3.5인치 로켙포로 소총수들을 지원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혼바산을 정찰해본 결과 주로 집채만한 바위로 구성된 험한 산이며 바위속에 천연적으로 생겨진 동굴속에 vc가 숨어 저항 한다면.61미리 박격포"로는 계란으로 바위깨기 밖에는 안되는 무용지물이고 작전시에 무거운 짐만 될 뿐이다. (나는 수많은 작전에 참가 했지만 한번도 57 이나 61 박격포 등을 갖고 다닌적이 없다.)
나중 얘기지만, 그래서 포반장인 나는 작전시, 일반소총 분대장과 같은 역활로 선두에 서야 했다.
드디어 도깨비 1호작전과(백마 28연대를 가르켜 도깨비부대라고 한다.)전 백마가 합세하는 백마작전이 연이어 벌어졌고 위 백마는 약 40여일 간이나 계속된 작전으로, 악명을 떨치는 vc 들을 섬멸 소탕하고 혼바산과 샤이산 그리고,1번 국도를 장악했다.
최초의 전투에서 백마는 상당한 전과를 올렸고 인근 주민들도 자유로히 1번 국도를 넘나들었는데,그로부터 한달후쯤, 혼바산 서쪽 맨끝에 주둔하고 있던 3대대 11중대가 야밤에 vc들의 습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습격을 받은 시각은 새벽 두시쯤으로
적의 숫자는 추산 2.000 여명 이라고 공식보고가 있었는데 하여튼 그날밤 백마28연대는 vc의 11중대 습격으로 초 비상 상태로 돌입, 야밤에 지원부대는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백마 30포병의 지원이 전부 였는데, 그날밤 30포가 지원한 발사수가 조명탄 포함, 놈들의 후방을 향해 발사된 105미리와 155미리포가 3.000 發이 넘었다고 발표됐다.
(<1중대장 그러니까 30포는 다음 명령이 있을때까지.. 그러니까 날이 밝을때까지 지원 사격을 했다.월남 戰史에 불과 몇시간 사이에 그렇게 많은 포를 발사한 작전도 없을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듣기로 인근 미군 부대에서도 지원 사격을 했다는데 그건 확실히 모른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적과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 했을 11중대원들의
사투가 짐작이된다.
상황이 끝나갈 새볔 5시쯤에 진노한 최명재 연대장의 고함소리가 무전기를타고 각 중대에 진동했다.
"금일 00:80시 까지 연대 분대장급 이상은 11중대에 모두 집합하라!!"
각 소대는 분대장 4명,향도 선임하사, 소대장, 그렇게 7명이다. 그러니까..4개소대 28명 중대 선임하사 중대장,
그렇게 30명씩 11개 중대 330명이다.(부중대장은 중대에 남아 있어야했고) 11중대에서 가장 멀리있는 우리 1대대 분대장 이상급 병력은 모두 헬기로 현장에 도착했다.
11중대는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적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즐비하게 있고 11중대 각분대 우개호와 근방 나무에 붙어있는 살점들 피덩어리,발사되면 30분간 공중에서 3만 촉광의 빛을 발하고 있었던 조명탄의 낙하산이 하얗게 깔려있고 포가 떨어져 폭파된 근방은 집 서너채씩 지을만큼의 커다란 구덩이가 파져있고 아직도 남아있는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겹쳐저 우리모두의 간장과 모골을 송연케 했다.
지금까지 내가 작전지역에서 적과 수차례 격전울 치뤄 봤지만 이렇게 치열한 상황의 현장을 보길 처음이다.
<이게..좀전에 벌어졌던 긴급한 현장 이고나...그런데, 11중대 병력은 왜 이렇게 없는가!>
난 그런 생각만 했다. 왜냐면, 한쪽에 서있는 11중대 전 병력은 10여명에 불과 했기 때문이다.
누구하나 입을 여는 사람없이 벙어리가 된채 우리모두는 한곳에 정렬해 앉았고, 연대장님은 우리들 앞 측면 의자에..그옆에는 참모들.. 중앙엔 11중대장이 잠시전 엉망인 복장 그대로 서서 상황 설명을 했다.
11중대장의 상황 설명을 요약 하자면, vc특공대 9명이 발가벗은 차림으로 대검과 가위 하나씩을 갖고 중대 전술기지 주위에 설치해논 조명지뢰 연결선을 끊고 중대 안으로 침입, 분대마다의 "우개호에 들어가 어둠속에서 닥치는데로 아군을 찌른것이다.
아군들은 자다말고 불시에 쳐들어온 적이 몇명인지 상황 판단이 서질않고 우왕좌왕, 칼에찔려 정신이 없었으나 곧 침착히 반격. 적 8명을 처치하고 아군한명이 손에 잡히는 벌목도(정글도)로 적과 싸워 놈의 어깨와 팔쿰치 사이를 내리쳐 사로 잡았다.
한편 밖에서 안쪽의 동정을 살피던, 수 미상의 vc들은 길이 10 여미터 길이의 파이프에 탄약을 가득히 넣고 여러개를 중대 전술기지 밖으로 설치해논 3중의 원형 철조망 밑으로 넣고 폭파...철조망이 열리자.중대 안으로 난입했다.
상황을 파악한 중대장은 곧 연대 상황실로 구원 요청을 했고 연대는 즉시,조명탄을 포함한 105미리포 로 적 후방에 발사, 아군의 필사적인 악전고투끝에 적의 사기를 꺽는데 성공했고 차츰 아군의 유리한 작전전개로 바뀌였다.
11중대원들이 싸우며 적의 상태를 보니 "새까맣게 쳐들어 오더라!"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한쪽팔이 잘린 포로의 고백에"약 2.000명 가량"이라고 현장에서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날밤 11중대 병력 절반이 다른 사정으로 중대를 벗어나 중대에 없었고 11중대는 80여명의 병력으로 몇십배의 적과 날이 새도록 싸운 것이다. 11중대는 열명이 넘는 전사자가 .. 그리고 많은 수의 부상자들이 헬기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가서 남은 병력이 얼마 없는 것이다.
자초지종 상황 설명이 끝나자 연대장님의 질타가 있었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절반이나되는 병력을 다른데로 이동시켜 이지경을 만들었느냐!!"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 하셨다.
그러나 아군의 전사자에 비해, 그곳 주변에 죽어 짜빠져 있는 적의 숫자에 비한다면,승전이 분명 했으나 연대장님은 아군의 희생이 크다며, 여차하면 11중대장의 쪼인트를 깔 태세로 분노하고 계셨다.
당시 연대장님의 비통한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또한, 11중대장의 상황설명 도중,
상황이 끝나갈 무렵 부상당한 아군 병사들이 피투성이로 중대장 앞으로 기어오며,
"중대장님 날 살려달라!!" 울부짖었다는 그말이, 듣는 우리 모두의 일천간장을 찢어 놓는듯 했다.
연대장님의 작전에 대한 경계와 주의를 요하는 훈시중 그 자리에 초대된,30포대장을 돌아 보시며,눈에 보이는듯한 정확한 포격으로 11중대를 지원한 30포대의 공적을 높이 치하 하셨다.
우리 모두는 "복수를 해야한다는 일념으로 분함과 우울한 마음을 갖고 돌아오면서 계속 11중대의 처참한 모습만 떠올렸다.
사람은 평화시나 전쟁시에도 "외양간 고치는" 일을 해야 하나보다. 그일이 있고나서 각 중대의 방어 체제는 더욱 철저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후, 나는 중대장의 호출로 불려갔다. 그자리엔 대대의 '시베리아 독사"로 불리우는,대위 작전 참모가 같이 있다.그를 본 순간,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러한 내모습을 간파했는지 민찬기 중대장님이,
'긴장하지 말고 편히 앉으라!" 그리곤 작전 참모를 돌아본다. 그래도 나는 긴장을 풀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꿰뚫듯이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리듯 살펴보던 작전 참모가 이윽고,
"신춘균 이라고.!! 중대장님이 그토록 칭찬하던 분대장이 나와 마주 앉았군!"
"??.........???"
"하사관학교 출신 이라고?"
"네!"
"한달전 매복 에서도 전과를 올렸다지?"
"........." 그런적은 있지만, 나는 영문울 알수가 없었다.
"며칠전,11중대에 상황을 본 귀관의 생각은 어떤가?"
그 질문에 나는 참모의 뜻은 생각도 못하고 그냥- 하사관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
"......감히 제 소견을 말씀 드리자면.....!"
"말해보게!"
".....우리도 언제 그런 습격을 받을지 모릅니다.습격에 대비 하는것도 한정이 있고,"
"그래서...?"
"제가 하사관학교에서 배운바로는 전쟁시 선제 공격이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내말에 두분이 동시에 몸을 나에게 당기며 묻는데 기대에찬 표정이다. 난 멋도 모르고,
"선제 공격을 할려면 첩보나 그외의 정보로 적정을 탐지해야 함이 중요하고 그럴려면, 위험을 무릅쓴 아군의 정확한 정찰 활동이 필수 조건이고 정찰 보고에 의해 아군이 선제 공격을 감행하면 습격의 대한 위험 요소를 미리 없앨수가 있다고 봅니다."(나는 내가 겁없이 그렇게 말을 잘 할줄 몰랐다.)
두분은 나에게 향했던 상체를 천천히 의자 등받이에 기대면서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끄덕 만족한 미소를 짖는다.그때까지도 미련한 나는 눈치도 못채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있은뒤, 작전참모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귀관은 참으로 정확한 말을 해줬다.!"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그러니까 부 대대장님이 대대장님께 특공 정찰대의 중요성을 건의, 이를 받아들인 대대장님께서 작전참모를 보내,민찬기 중대장님이 천거한 나를,
(그만한 능력이 있는가,를 시험하러 왔던거 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배운 그대로ㅡ곧이 곧데로 말한 바람에.. 뜻하지않게 특공 정찰대 분대장이 된거다.
나는 그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 이라고 생각 했는데, 후방에서 소총수들을 지원하는 비교적 안전한 포반장에서 그들보다 더-위험한 역활을 맡게됐다.
첨에는 작전참모의 배려로 비교적 안전한 지역을 정찰하다가 세번째부터는 본격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뭐든지 자꾸해보면 "는다"고 했던가..전쟁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러나 밤새도록 한자리에서 움직이지않고 적정을 살피다보면,독충에 시달리게 된다. (전우님들 모두가 아시겠지만,)나무위에서 사람에게 떨어저 옷속으로 스며들어 피를빠는 푸르고 누르끼리한 거머리, 전갈 ,지네, 그리고 뱀 들이다.그러니 모기는 앞을가리게 많아도 신경쓸 겨를이 없다.
그러던중 67년도 6월말경이다. 나는 다시 작전참모에게 불려가 그와 마주 앉았다.
참모는 대위지만, 여러번 만나다보니 계급을 떠나서 그의 앞에서 나는 당당한?자세로 임했다.
그러한 나의 태도를 참모도 묵인하고 어떨때는 형처럼 다정히 대해줘서 나도 편안했다.
여늬때보다 긴장한 표정으을 늦추지 않는 작전참모의 말은 이러했다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바 신하사 이하 대원들 모두는 국인정신이 강인하고 명령에 철두하니 특공대의 정찰임무를 바르게 인식하고있는줄안다.
특공대의 임무는 적지와 적상황을 알아서 정확히 보고 하는 것이지 적에게 노출되거나,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과의 조우는 작전의 실패이다. 그러함과 같으니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게 원칙이다 명심 또 명심하고 경거 망동은 삼가 하도록 하라.
0 0 지역에 베트콩 1개 소대 이상로 보이는 적군이 자연 동굴을 거점으로 근 30 여일 잠적해 은밀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우리군의 매복 작전등, 실패로 인한 희생이 속출하고, 인근 부락 양민 들의 피해가 또한 크다는 부락민의 원성이 있다.
그중에 몇명은 베트공이 아닌 월맹 정규군으로 보이며, 지역 베트콩을 지원하기 위한 월맹에서 지원 온 정규군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둠이 내릴때 쯤이면 그 곳을 떠나 몇몇이 먼 부락에 잠입해 식량을 약탈해 가는 흉폭한 행위까지 한다는 첩보원의 말이 있어 어느 정도 첩보로써 가치가 있다고, 대대 정보과와 작전과에서는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첩보에 의해 수집된 일들은 가끔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것은 월맹 정규군이 있다는 징후가 발견된 사실이다.
월남戰 戰史에도 있지만, 백마가 투이호아로 주둔지를 옮긴것은 혼바산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베트콩을 소탕하고 혼바산과 바닷가를 경유해 이루어진 1번 국도를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 인데,그 지역을 빼앗긴 베트콩은 군수물자 조달이 어려워 시도때도 없이 아군에게 습격을 가해 왔었다.
그예가 사흘에 두번은 물속으로 침입해 1번국도를 연결하는 임시 고무다리를 폭파해 아군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렇다면 놈들이 샤이산에 거점을 마련해 놓고 수천명이 일거에 1대대와 3대대로 습격을 가해 온다면,28연대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수 있으니 사전에 피해를 막아야 하는데, 첩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지역 베트공 첩자의 첩보에 의한 내용이다. 이렇게 시작한 상황판을 지휘봉으로 가르키며 한마디 한 마디의 지시 설명은 매우 고된 위험이 있으리란 것을 주지시키고 확인 하려는 작전참모의 섬세함이다. 그 것을 직접 정보화하는 것이 특공 정찰대의 임무이다.
입을 다문채 설명에만 귀울이며 눈길로 응대하는 내 자세에 어떤 저항 같은 것을 느꼈는지, 나를 보며,
" 귀관의 의견은 어떠한가? "
하며 주지한 바를 확인이라도 하려는듯 예리한 눈빛이다.
나의 정찰임무 장소는 이미 잘 알려진 샤이산의 험준한 산악이었다. 샤이산이 어떠한곳 인가! 혼바산 정상에서 마주 바라다 보이는곳.. 직선 거리로 5킬로 지점에 있는 차이산..일명 죽음의 계곡 이라는 차이산에서 나의 3중대 분대장 하사 배소부와 2중대 향도 황음주 하사가 전사해 헬기로 실려간곳..... 그곳을 지나가야한다.
이번 작전 지역은 샤이산 뒷 산맥을 따라 깊이 들어 가는 사레이오 산 속의 험악 하기로 이름 난 먼 곳이다.
아 !! 그 험하고 무서운 곳으로 가야 한다니.. 그것도 1개 분대원의 숫자로...
나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추풍의 낙엽처럼 사라진 전우들의 원수를 갚는데에 일조를 한다는 백마 특유의 쾌감도 밀려왔다. 그래서 참모에게 질문울 했다.
헬리 콥타 이동후 부터 또 적지 잠입 후 만약에 적과의 조우 할 시, 이 곳과의 거리 관계로 신속하게 병력
지원이 가능할지?, 무장 헬기의 지원이나, 포대의 지원도 그리 용이 할 수만 없을 것이 아닌가? 의
의문이 든다며....
내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이번 정칠대의 특공 작전은 우리 대대의 거시적 이고 대망적인 차원에서 행해 지는 정보작전의 일환이라, 기대가 큰 만큼 귀하들의 신변 보호을 위해 만전의 지원 태새를 다 하고 있다는 대대장님의 지원 의지가 굳건하다는 것을 몇번씩 강조하며 나를 격려 해 준다.
그것도 정규 수색 정찰 특수 훈련을 받은 프로들로 선발된 것도 아닌 者, 특별히 날쎈놈(?)들이란 것만 강조된 것이 全部인 전우들로 구성된 정찰 특공대는 자체에 위험요소가 아딘가 있다고 나는 판단했다. 특히 대대장의 야심차고 충성적인 의지로 속성된 소수 구성(인원을 더 더 할 수는 없다 해도...) 과연 기대할 만큼의 성과를 올릴 것인지!?...
사실 일개 분대수에 미치지도 못한 소수 인원을, 장교 한명 없이 일반 사병으로 구성된 팀을 먼 거리에 있는 적군의 은거지에 투입하려는 야심 찬 대대장의 의도 도 만만 찮은 결정이 아닌 것을 작전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전 명령은 하달 됐다. 적의 수와 지역에 대한 정보는 아직 파악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특공 정찰대가 출동 그 내용을 확인 확보 해 와야 한다는 명령이다.
작전 촐동은 익일 07:30분 헬기로 대대를 출동, 적지 인근 4 Km 부근에 08:00시에 착륙하면, 지적된 곳까지 신속히 이동, 그 들의 근거지를 찾아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그 영역에 10:00시 까지 도착 우군 거점을 확보한 후, 그 때 부터 VC의 활동 사항을, 3박 4일동안 동정을 면밀히 살펴 충분하고 믿을만한 내용을 탐지하여 확인 하라는 작전 명령이다.
적지의 정확한 위치는 물론, 그 주위의 진입과 퇴로, 가급적 대소의 지형지물등과 인력과 적의 무기 내용등,
그 들이 드나드는 통로와 시간대며 적수가 최대로 운집할 수있만한 지형의 크기와 그 일거수 일투족까지 확인하고. 의심이 가는 형태를 그때 그때 마다 보고 하도록 하고.
또 다른 적부대와의 은밀히 내통하고 있는 기미를 탐색할 수 있는지, 드나드는 적이 아닌 또 다른 적의 잠입 즉 대량에 해 당 되는 적군이 급격한 이동 상태 등 적의 복장에 이르기까지 작전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모든 형태를 보고함은 물론, 귀하의 의견까지도 함께 보고하라는 것이다.
보고서 의해 정보로써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연대에 보고 작전명과 작전 규모가 정해져 최소 대대작전 규모가 이루어 진다.
그 때 부터 우리 포진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뒤 전으로 밀리고, 주로 주야간 매복작전과 베트콩 소탕 작전에 화기소대도 똑 같이 임무를 받아 수행했다. 왜냐하면 평지나 개활지에서의 적군의 퇴로나 공격에는 61m 박격포가 유용할지 몰라도, 험준한 산악지의 밀림이 우거진 지대에서는 대형 포대의 막강한 화력의 지원이 절대 필요했던 곳이다.
또, 1개 분대가 주야 매복시에도 훨씬 화력이 강한 크레모어가 있어 전방 5 ~ 70 m 지점에 설치하면 그 것이 훨씬 유리한 방어와 공격을 담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1개 분대가 샤이산에서나. 혼바산 서편 다농강 강둑에서의 야간 매복을 나가는 것만해도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고 생각 했던 것도 특공정찰대에 속해 작전임무를 받아 수행한 후에야 비로소 그렇게 생각하게 된 듯 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특공정찰대에 선발된 병사들의 말 없는 심적갈등과 부담. 죽음의 공포에 대한 무언의 저항은 참으로 처량한 신세로 추락했다고 했다. 월남에 파병된 것만 해도 억울한 죽음앞 일 일 진데. 청천 벽력같은 군대 명령에 우리 모두는 어안이 없었던것도 사실이였다.
나는 이번 정찰이 마지막 이라는것과 어쩌면!! 죽어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인간은 약한 쪽으로나 강한 쪽으로나 자극을 받게 되면 상황에 맞게 적응되는 조건 반사적 반응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잠재적 인간의 능력은 한계 없는 무한한 초인적 정신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나를 포함 몇몇은, 월남 파병 지원자였지만, 그외 많은 병사는 차출에 의해 파병된 전투병이다.
나는 작전 상황실을 나서며 1차로 무사히 귀국한, 정말 .. 죽음의 문턱에 같이 있었고 개인적으론 절친한 친구였던 나의 3중대 김의성.이강한 송순복. 그리고 2중대의 김영배,조종학 전우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섯명은 고향이 서울이고 入隊 날자도 같고 백마 1진도,그리고 원래가 걔네들은 나와같이 백마부대 출신들이다.
나와 다른점은 나는 지원해서 월남에 왔지만,개네들 다섯명은 "월남에 안간다"고 맞서다가 결국 조국의 명령으로 어쩔수없이 월남에 와서는,1차 귀국명단에 악착같이 합류,귀국을 했다.
그들은 조국으로 귀국후,지금은 제대하여 고향 집에서 편히 있겠지...그생각에 만감이 교차 됐다.
(아!! 나도 그때 같이 귀국할껄...)이제와서 후회를 해봐도 소용없는 일 이다.
오늘도 험난한 산악지대에서 정글을 누비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꼭 살아 돌아 가겠다는 신념에 불 타는 이 친구를 잊지말아다오 전우여!!! 친구들이여!! 나의 눈에 뇌리에 특별히 각인된 사람들이여. 행복 하소서.
(그래...이렇게된 지금 천국에라도 손을 뻗자..)
아 ~아 이젠 끝이구나 하고 절망의 나락에 털어져 버리는 마음이 이런게 아닐까...
고국에서 이못난 자식의 무사안일을 위해 기도하실 늙으신 어머님, 그리고 형제들, 잠시 향수에 젖었던 나는, 이빨이 모두 부러지도록 이를 악물었다.(그래...내몸이 나혼자만의 몸이 아니다.살아서 돌아가자...)
그러나 젊음이 무기이고 왕성한 힘이 절대 강자였던 그 때의 우리 특공대원들에게는 명령 보다 더 강인한 적은 없다. 군대의 명령이기 때문에 어떤 장벽도 절망이 될 수만은 없었다. 반드시 살아야하고 살아 귀국하는 것만이 지상의 목표이기에 그 보다 더한 악전고투일지라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마음들을 다지고 서로 손을 맞주잡고 불꽃 튀는 의지를 보이며 특공 정찰대의 임무를 불평없이 수행 했었다.
이것도 살기위한 수단이였으니 ....
아군 진지안에서 할 수있는 이 사격 훈련은 일석 삼조의 이득이 있다.
출동 전날 만반의 준비을 갗춘 우리는 익일의 무사함을 하늘에 기원하며...67 년 6월 28 일 07:00시에 대대 연병장에 나를 선두로 작전 관에게 출동 군장 검열을 받았다. 오늘 출동 인원은 7명이다.
최고의 켠디션이 좋은 병사들만이 출동 대열에 선발되었다. 9 명 중 부득이 출동 못할 병사 두명을 제외함은 분대장의 권한 에 속한다. 한 명이라도 많은것이 서로 의지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는 것이다.
출동 조직은 이렇다 첨병. 분대장. 무전병. 우측경계병. 좌측경계병. 그리고 부분대장. 후미경계병이다.
3박 4일동안 제한된 적지에 은밀이 잠입해 있어야하고 지원도 차단된 곳이라 개인 지급품이 떨어지면, 하사관 학교에서 배운대로 생존학을 해야한다. 그러나 적에게 포위된 상태라면...그때는 주저없이 자결이다.
M16 개인화기와 실탄 120발. 수류탄 8 개들이 한포를 어께로 내려 멘다.. 비상식량 12봉지. 수통 4개중 2개은 배낭에 붙쳐 멘다. 수통백(2통드리)한백(배낭위 부분에 붙치게 되어있음).예비용 빈 수통백(도중이나 현지에서 물을 얻들 수있으며 보충함)하나. 전등. 망원경(쌍안경). 나침판. 작전지도. 단검. 밀림刀(첨병에게 지급됨)구급약품(부분대장에게 지급된다)등은 필수품목이다. 빼고 줄일 물건도 없다.
보통 일반 전투군장과 비슷하나 비상식품과 수통의 물량이 다른다. 그 무게만도 무시못 할 만하다. 비상식은 물을 부어 먹기에 물량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물은 절대적이다. 이동하면서 재수좋게 물을 구할 수있으면,
사실 요행은 天心인 셈이다.
(아래사진,출동을 위한 군장 검열: 신춘균. 윤두혁 병장. 임기성 병장.
김종철병장. 성치만병장. 김영기병장 무전병. 부분대장 이화웅병장)
검열이 끝나고 대기한 헬기에 오르면 이미 알려준 좌표에 의해 헬리콥타는 약 30분 비행한다. 다다다다 푸푸푸하는 헬기의 탁하고 고막을 째는 듯 프로펠라 회전 소리도 어쩌면 이게 마지막 듣는 소리가 아닐까!!? 오늘따라 요란한 소음도 정다운 전우의 격려와 같은 소리로 와 닿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 끝나기도 전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헬기 양 쪽에 걸린 LMG기관총이 고요한 밀림을 온통 뒤 흔들어 놓는듯 무서운 소리를 내면 전방을 퍼붙듯한 굉음을 일으키며 지상에서 5 미터쯤의 높이에서 잠시 정지하는 순간, 우린 양 쪽으로 일곱명은 재빨리 랜딩을 했다. 헬기는 오래 있으면 안된다.
그러면 "헬기는 내 할 일은 끝났네. 이제부터는 너희들 몫이라네,"건투를 빈다는 듯 오던 방향으로 한마디
안녕이란 작별의 말도 흘리지도 않은채,멀리 멀리 살아져 가는 헬기의의 모습을 다 확인 할 겨를도 없이 적에게 노출된 이 지역을 신속히 벗어나야 만 한다.
그렇게 무겁게만 느끼던 어깨의 군장의 무게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긴박감이 나를 억누른 때 이곳을 어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조금 떨어진 엄폐된 곳으로 몸을 숨겨 한숨을 돌린 새도 없이 지도와 나침판에 의지 해 정해진 장소를 향해 대열을 재 정비했다.
이제 이 천지간에 우리 7 인이 전부이며 내가 이들을 인도하는 者일 뿐이다. 이렇게 외롭고 겁나는 때 6인의 전우가 내곁에 있다는것은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大軍이기도하다.
나침판과 작전 지도를 정치한 다음 그 방향으로 전진,앞으로 나아갔다.
밀림이 우거져 앞으로 전진을 못 할 때는 시간이 지체하드라도 밀림刀 로 가시넝굴과 잔목등를 쳐 내며 전진 해야 하고 집체만한 자연돌로 이른 무더기를 지나기란 매우 시간과 힘을 뺏길때가 많다. 이렇게 애쓰다보면 사간도 지체되고 힘에 지쳐 마음은 바빠지니 방향 감각이 흐려져 엉뚱한 곳으로 분대를 인솔 할 때가 있다.
엉뚱하게 제 지역을 몇번씩 돌게 할 때 뒤 따르든 부 분대장이 바른 지적과 주의에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지도를 다시 정치하려면 주위에 가장 크고 높은 나무에 기어 올라 사방에 표시나는 地物 을 찾아야 하기에 내가 나무를 타고 올라 직접 눈으로 확인, 지도와 일치를 확인한 후 내려 와 다시 정치를 하여 방향를 잡고 분대는 전진했다.
바쁠 때일 수록 돌아 가라는 이치도 잊은체.. 전진 전진일 뿐이다.
깊는 계곡을 만나 피 할 수없는 불가피할 경우는, 위험하지만 도강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사실 천신만고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매복지에 도착하려면 우선 멀리 우회하여 그곳에 가 듯. 헬기 조종사 역시 우회한 약 4Km 후방 어느지점 나무가 없는 산 등의 풀 들이 있는 지점을 선택 한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목표지점에 이르렀다. 산 등성 7부능선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 산새가 재법 가파르다.그밑 개활지에는 몇몇의 베트콩들의 옴직임과 VC들의 천연동굴인 듯 입구가 똑똑히 보인다. 측면이긴 해도....거리는 한 2 ~300 정도로 보여지나 너무 가까운게 아니냐고? 분대원이 말한다. 이때는 상호 무시란 절대 있을 수 없고 서로 존중하는 의견 속에 그래도 분대장의 말이 우선 한다.
이곳을 관측 장소로 정하기로 의견을 보았다. 첫째 시야가 확 트여서 관찰이 용이해야 하고. 저쪽에서는 이쪽을 전연 볼수없게 엄폐된 곳과 은폐가 잘 되 있는 곳이여야 한다.
가장 가까이에, 그리고 가장 멀리에,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복합된 합리성을 갗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는 원칙에 적용된 장소를 찾기기란 어럽다.
좀 멀리에 안전한 곳에 있다가 가면 되는게 아니야고하며,어느 분대원과의 심적 부딪침이 없었던 것도 아니였지만. 사실 이 이 적지에 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차라리 적을 눈 가까이에 두고 지껴보며 있는 곳이 오히려 마음이 더 놓인다고 하지 않을까?!
나도 마음만은 좀 더 멀리 멀리하면서도 실제는 그렇지 않아야 하기에 두렵고 힘든 3박4일동안 적지를 관찰하기가 가장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장소를 찾기란 힘들고 힘들다.
( 윗 사람이 간섭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차라리 윗 사람이 지정해 주면 좋으련만...)
적을 눈 앞에 두고. 망원경으로 보면 그들의 코 털의 길이 까지도 확인될 만큼 지척인지라 길게 심사숙고할 시간도 없다. 짧은시간에 결정해야 하는게 나의 고민이다. 이렇게 자아갈등을 겪으며 우린 진지가 결정됐다.
야간에는 능선의 말소리는 개활지에서 더 잘 들린다는 원리와. 일체에 불빛을 보이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여야 하다는 것. 그리고 만약을 위해 퇴로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빼놓을 수없는 작전수칙인 것 등. 적과 교전하는 것을 최대로 피하는 것이 우리
행동수칙의 원칙이나 만약에 피할 수없을 땐 그들을 선제공격하고 빠지는 작전도 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적과 조우했을 때 그들은 이 곳 지형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며칠,이 지역를 깨들러 실핀 곳이니
다람쥐 같은 VC의 행동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우리가 지니고 있는 화력이 월등하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과연 기적이 우리에게 손을 들게 해 주겠는지!?
그럴 경우 희생은 각오해야 한다.
이곳의 지리적 좌표를 정확하게 교신했으니 피아의 상황일때 105m 나 155m 의 포부대지원이 가능할지, 또 정확히 적을 박살 내 줄런지?, 주간에야 핼기의 지원도, 소수지원 병력이 대기하고 있을 거라 했지만,... 야간에는 조명탄이 대낮 같이 밝혀 주겠고.... 이래 저래 별 생각이 다 든다. 오 하느님 굽어 살피소서.
이제부터는 시간과 싸움이다. 하루 24시간이다. 어떻게 넘기느냐 다. 사실 그럴 겨를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것도 3박4일 동안을 내려다 보이는 적의 눈인들 매섭지 않다고 마음 놓을 수 없다.
늘 그 들의 감시를 받는다고 생각 해 보라. 온 몸에 오금이 저린다.
음직일 수도 없고, 분대간에 대화도 적지 상황에 대한 것이지만, 귀에 대고 하는 방법과 手身으로 해야 함은 물론, 소 대변을 본다한들, 숨어 경계하며 해야 하기에 모든 것이 어느 때든 계속된 형벌이라고 할 수있다.
지금은 乾氣라 따겁다 못해 내려쬐는 햇살엔 타는 듯한 뜨거움이 사람을 못 견디게한다. 웅달을 찾아 기여들지 않으면 타 죽을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때로는 모든게 다 귀찮을 때도 있으나 한시도 정신을 놓을 수는 없다.
비 한방울 없이 12시가 지나서 오후 두시 전후에 한 3 ~ 40분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렇게 반갑고 요긴 할 수가 없다. 乾氣 때는 거의 매일 이때는 스콜 Time 이 반복되고, 쏟아지는 빗 줄기가 시들어 지는 사람의 기운마저 돋구아 주니, 人義에 Energy 를 충전하라는 하늘의 天惠 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빗물에 흠뻑 빠져 하늘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며 활개라도 치고 싶은... ...
억눌린 마음에 뛰처 나고 싶은 갈구가 잠시 정신착란에 빠질 때도 있지만, 제한 된 곳이라, 앉어서 또는
반 포폭상태로 그 비를 다 맞어야 하니, 함부로 기지게 마저 킬 수도 없는 처지이기에 바위틈이나 어설프게 생긴 우산 바위같은 곳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모아 수통에 모으는 것만도 하늘의 은혜라 자위했다.
베트콩들은 이런 때면 추워서 동굴로 기어들어 모습도 볼 수가 없다, 아마 모포나 덮바로 몸을 들들 말고
午睡를 제 맛되로 즐길 것이 아닐가 짐작이 된다. 우리는 조금 행동에 여유를 느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어느새 젖은 옷은 금방 반짝 말라버려 또 햇볕에 더위에 시달린다. 이러기를 반복해 3일을 보내야 한다.정해놓은 엄페지역에 우리는 죽은듯이 엎드려 적이 있을만한곳을 주시했다.
몇명은 다닌듯한 흔적이 있는곳에서도 백여미터 떨어진곳이다.
(우리는 정찰을 하는것이 목적 이니까..
<배가 항구에 정박중일 때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허지만 배는 그러자고 항구에 있는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우리 정찰대가 죽은듯이 엎드려 있지만,그러자고 괜히 엎드려 있는게 아니라.적의 활동, 인원수, 무기는 어떤것인가! 뒤에 또다른 병력은 없는가! 그곳의 지형지물 등을 상세히 살피고 본부에 지체없이 보고하는 것이다.우리 정찰대의 정확한 보고에 의해 아군은 신속히 선제공격을 감행 수색과 소탕전을 함으로서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의공격 의지를 묵살 시키는데의 목적이 있다.그러므로 우리의 특공 정찰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다.>
첫밤이 제일 힘들고 어렵다는 말은, 시작이 반이라는 심리가 이 곳에서도 적용된다는 뜻이다.
명령을 받은 대로 기억과 짧은 메모를 해 가며 모든것을 빠짐없이 기억하려 애쓰다보니...
드디어 놈들의 움직임이 눈에 포착됐다.나타났다간 사라지고,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다가 열명, 스무명...잠시후엔 30여명도 넘는데,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니 인근에 1개 소대 병력 이상이 있는것이 확인됐다.
그곳에서 좀 떨어진 장소에도 놈들이 또 있다는 징후가 있다.
그들도 자기들끼리는 줘박고 밀치고 장난도 치고 웃고 떠드는 모양이 어쩜 저리도 우리와 똑 같을까.
순하고 착한 동료같기도 하다는 느낌 때문에 억압된 긴장을 조금은 늦출때도 있었다.
놈들의 개인화기는 AK 소총이거나 개머리 판이 없는 기관단총이고. 그 외 수류탄은 베낭 비슷한 봇짐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원 개인화기가 소지한 것은아니것으로 보여 전투 병력과 그 들을 보조하는 지역 베트콩이 함께 있는 듯 함. 아침 일찍 5명씩 패를 지어 저녁쯤 한 짐씩 메고 오는 것으로 보여, 식량를 비축하는 것으로 보임. 반대로 저녁에 나가는 조는 전원 무기를 지참한 전투 인원으로 판단됨. 전투 병력이 4분의 3 이상으로 보임.
매일 몇차례씩 대대와의 무전은 잘 교신되고 있기에, 조금은 든든한 의지도 된다.
그렇게 눈이 아프게 정찰을 한지 이틀째 되는날 오후,믿어지지않는 광경이 눈에 뜨였다.적들이 있는 사레이오산 와지선엔 약 1.000평 가량 크기의 연못이 있다.
그곳에 몇명의 vc들이 발견됐다가 금방 사라지고 얼마후에 다시 두세명이 보였다간 어디로 갔는지 없다가 다시 보이곤해서 난 그곳을 주시했다.
아!!그때 나는 확실히 봤다.산 와지선 과 연결되는 물속에서 나오는 놈들을...다시말해서 물속으로 통하는 동굴이 있는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하사관학교에서 말로만 듣던 '수중동굴'이다.
(나중 얘기지만 작전시 아군은 그곳을 수색..많은 탄약을 노획했다.)
또한 그들은 우리를 전연 눈치체지 못한 상태라 3 일 되는 날부터는 긴장이 조금 풀렸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자연 무디어지듯 아마 그런 심리 현상이 안전 불감이랄까. 경계심을 더욱 조이도록 주의를 환기 시킨다.
드디어 마지막 밤 내일 7월 1일, 아침 동이 트면 이곳을 철수(퇴각)한다. 불안하고 어렵고도 긴- 날들이었다.
첨엔 그렇게도 막막하고 긴장된 순간 였지만,그러나 내가 안달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던거다.
철수 때는 핼기가 오지 않는다. 도보로 6 ~ 7 시간 이상 걸어 부대로 귀대해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더 고난된 귀로가 될 수도 있을런지도 모른다.
몇번에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경계만 철저히 잘 하면 부대까지 귀대는 기쁨의 위안일 수도 있다고 나는 자신 한다..
월남은 아침은 뻘리 온다. 밤에는 눈 한 번 못 붙일 경우가 더 많다. 칠흑같은 어둠이 불안과 공포감을 더하기 때문이다. 지난 밤도 그래서인지, 피발이 선 눈동자이며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의 지탱이 모두 위험한 위기를 느끼게 한다.
잠입 할 때 보다 퇴각 할 때가 더 조심 스럽고 어렵다.. 후방에 적이 있으믄 사실이니 4 ~ 5 분 간격으로 출발을 시도, 첨병과 부분대장 순서되로 앞 세웠고, 지입로와 거의 반대 방향, 부대 방향을 잡을 수 있기에 그렇게 출발 시켰고 후미병과 나는 제일 나중 순서로 뜨기(퇴로)로 했다. 우린 20 여분 만에 그곳을 별 일 없이 퇴각해 빠져 났다.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돌아갈수 있을까..!! 처음에 잠복 정찰시 그런 공포감이 있었으나,우리는 "죽지않는者"들이다.우리는 살아있고 또한 우리는 서로를 지켜줬다.그러나"전쟁은 최후의 五分이 중요한것" 그렇게 좌우를 살피며...축배를 들기는 이르다.
우리는vc를 '쥐새끼로 호칭했다.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쥐새끼처럼 은폐,엄폐를 이용하며 나아갔다.
올 때와은 전연 다른 길, 어느 곳이나 낮 설고 험악한 곳이다. 또 3일간 지켜 봤던 적들의 이동 경로를 되도록 피해 가면서 다시 대열을 재 정비 할 만큼 그곳에서 퇴각해 "어느정도 안전지대에 왔다."고 판단했을때 우리는 불안감과 안도감에 피로감이 겹쳐 쓰러질것같이 기진했던 모습은 잠시였고 금방 회복이 가능함은 젊은힘 이라는 특유의 발로라 하겠다.
그 들과 조우 없이 무사이 부대 까지 가야 한다는 것 만이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 열에 군장의 무게는 더 무겁게 느껴질 뿐, 비상식량과 수통의 물량만 줄어졌을 뿐, 힘의 소모에 비례, 그무게는 더하면 더 한 같다.
긴장의 연속이 였었으니 힘의 소모는 반분 정도 일 텐데...부대까지 몇 시간을 행군 할 수가 있을까. 그게 큰 걱정이다. 이런 때 적과의 조우는 사실 치명적일 수도 있다.
느리게 가는 한이 있어도 절대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나의 지시에 분대원들도 같은 자세이다.
월남 나무 거머리를 보았는가. 나무위에 기여 대다 그 밑이나 나무를 쓰치는 감이 있을 때 밑을 지나는 동물이나 사람에 어깨나 등짝에 떨어져 붙뜨면 옷이나 살갗을 뜰고 피를 빠라 멱는다. 크기는 손가락 만 하다. 진짜 징그럽고 진저리나는 더러운 흡혈귀다. 정신없이 숲을 헤메 가다 떨어져 붙으면 뒤 전우가 확인 하지 못하면 살갗에 피를 빠는 것도 느끼지 못 한체 당한다.
길이 아닌 곳으로만 뚫고 가려니 너무 지쳐 시간도 지체되고 너무 힘들다. 어느정도 사태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 두려움도 이젠 이길수 있고해서 위험하지만 산 능선의 길을 선택하여 길 아닌 길로 가기로 했다.
거머리에 당한 분대원의 응급 차료를 위해 우린 잠시 주위 안전한 곳을 선택하여(길 옆 바위로 된 길보다 높은 곳)바위를 엄패 삼아 일열로 잠시 대기 휴식하면서 한숨을 들린수가 있었다. 어깨에 붙어 이미 살갗을 똟고 피를 얼마나 빨아는지 엄지 손가락 만큼 굵어져 있는것을, 뒤 전우에 의해 발견됐다.
부분대장의 응급치료는 그곳 군복을 찌져 넗히고 이미 넗게 번진 곳에 소독과 흰 가루약을 쳐 넣는 것일 뿐이다. 큰 부상은 아니니 지혈만 시켜 주면 되는 것이지만 본인으로써는 귀한 피를 빼았겼다는 것이 영 마음이 지저분하고 불쾌한듯 해 보인다.
막 치료가 끝나갈 때 앞서 경계하고 있던 첨병이 이상한 낌새에 연락이 온다. 우리의 위치에서 약 10여M 밑으로 산길 같지도 않는 길을 따라 적 병이 오는 기색이 있다고 수신호가 왔다 우리는 급박한 긴장을 느낀다
조금 편하고 완만한 자세가 일시에 전투 태세로 좌우로 넗폈다. 너무 급작한 사태 발생이였고, 제대로 간격을 갖출 겨를도 없이 3 ~4M씩 기여가듯 전투 태새을 갖춘 것이 제빠르다 매북 때 처럼 일열 횡대로 배치 되었고, 적병이 어느정도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모른다.
숨어 그냥 지나 보낼까?! 하고 생각도 했지만 그 지역(관찰)을 떠난 시간도 서너 시간이 넘었으니 실제 많은 적병과 교전하게 되거나 지원병이 없을 것이란 작전개념이 우리 모두에게 전투 의기를 복돋아 준다. 그래 차라리 마지막 붙어보자. 삶과 죽음의 교차서일 수도 있고 군인으로써도 한 놈의 적병이라도 죽어 없애야 하는게 본연의 수단이니 어떠한 결과가 온다 하더라도 피 할 수가 없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그들을 지켜 보며 적개심으로 고통을 당하며 속을 태었던가?!
그리 간단한 조우는 아닐지라도 전투라는 특유의 사태 발생에 긴장은 극에 달한다. 우리가 적의 이동를 먼저 발견했고 그들은 우리를 전연 모른다는 것은 전투개념에서 재일 중요한 요소다. 뭐 하나 불리 할게 없다고 자신이 생긴다. 또 매복 형태로 전열을 정비한 상태였므로 어느 처지에서라도 그들을 제압할 태세와 의욕과 실력은 충분하다고 자신이 생긴다. 너무 급박한 상황전개임에 대대와의 교신할 시간도 없다.
징그럽고 더러운 거머리가 우리에게 안전한 곳을 선택하는데 도움을 준 셈이다.
잠깐 사이에 그들의 척후병이 우리(네)앞을 지니치며 총를 든체 사주를 경계하고 지나 간다. 우리가 있음을
전연 낌새을 느끼지 못한체 지나 친다. 전투의 전율이 전신를 감싸 돈다. 나의 판단이 중요하다. 어느 때 사격을 개시 해야 10 여m 전방 숲길을 일렬 종대로 지나는 적을 우리 포위망 안에 들게 할것인가.
첫째놈이 지나갔다. 더 기다리자. 머리 회전이 급속히 돈다. 두번째 놈도 개인 화기를 지니고 앞 놈과의 간격이 7 ~ 8m 후 쯤 내 앞을 지나치고 세번째는 서너걸음 뒤에 그 뒤로 네번째 놈이 내 앞을 지나는 것을 보아 우리의 포진의 넗비가 15 m 라 해도 4~5명이 우리 사격권내 둘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너무 가깝다. 긴장감이 극도에 달한다. 가슴이 떨려옴에 진정하기가 어렵다. 진정하는 것만이 승전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 잡는다.
과연 넗혀있는 우리를 적은 눈치채지 못한 체 우리에게 당할까. 하늘에 도움인가 마침 바위들이 우리를 엄패해주는 요새같다. 이 지형지물만 잘 이용한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일개 소대가 공격해 와도 자신이 있을 것 같다.
어떠한 경우라도 적과 조우말라, 우리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것은 그 동안 얻은 정보을 실패일 뿐 조용히 보내자 그게 이번 작전을 성공으로 이어질 거시 아닌가 머리의 계산과 심장에 박동은 요란하게 자신을 공격해 와 어쩔것인가 잠시 망서려지고 겁이난다.
이미 그 곳 정찰지를 벗어난지도 3~4시간이나 거리가 멀어 졌으니 실재 그바운드에서는 벗어난 셈이다 괜찮겠지!!! 경거망동은 말란는데, 피해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쩌지... 예라 이왕지사 vc를 때려잡는게 우리의 의무가 아니더냐....아주 좋은 호기를 놓칠 수는 없다. 한 놈도 놓쳐서는 안된다 전부 때려 잡아야한다 그래야 흔적없이 이 자리를 벗어날 수가 있다...
두번 째 놈이 왼편에 있는 후미 경계병 앞을 지날 때 사격을 하겠다는 각오로 조금 기다리며, 마침내 내 앞에 네번째 놈이 지나는 것을 확인하고 우린 일시에 물론 내가 선제 사격이라 해도 거의 동시에 다발적으로 적병를 대고 사격을 탕 타타탕다다다다다 타타탕--- 정조종 할 수 있었으니.....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다
일렬 행대로 두명 세명씩 그리고 네명 다섯영이 무심한 태세로 늘 그들이 지나 다니는 길인 듯 그런 모양세 를 우린 확인 사살하듯이 M16 20 여발씩이 난사 됐으니 그 결과는 이미 판명이 난 거나 같다고 해야 한다.
꼼짝없이 적 놈들은 총 한방 쏘지 못햔채 당하고 만 것일 게다.
4 명이 그자리에서 쓰러졌다. 첨병 놈은 살았다 해도 혼비백산 쥐쌔끼 모양 도주 했을 것이다.
아깝다 선두에 가는 놈을 사살했다면 일개 이동 적군을 한꺼번에 일망 타진 했을 텐데,.... 더 이상의 적은 없다고 봐도 될까. 너무 조용하다 두렵다는 감정보다 다음 태세에 대비하도록 훈련된 군인임에 든든하다.
그 들은 언제든 5명씩 조가 되어 이동 했다는 것을 3일간이나 확인한 것이였으니까
그래도 모른다 또 5명의 한 조가 뒤 따르고 있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언제나 경계를 해야 한다.
3 ~ 4명을 경계께한 후 우선 죽은놈들 부터 확인해야 한다. 둘째와 셋째는 네째는 즉사했고 마지막 다섯번째는 옆구리를 관통당해 피 번복이 된 체 우리를 악 받쳐 노려 본다. 개머리판 없는 기관 단총은 옆에 두개만 쳐박힌체 죽어 늘어진 시체가 된 모양이다. 시간이 없다. 빨리 수습하고 가던 길로 또 전진해야 한다.
첫째 놈이 개인화기를 가지고 뛰었고 그 다음 놈과 마지막 놈이 개인 화기를 소지했고 나머지는 지역 베트콩인 것 같다. 죽어 널어져 있는 베트콩은 총도 없이 배낭 비슷한 것 속에 식랑과 수류탄 여섯개가 전부의 노획품이고 마지막 놈이 전투 월맹군 지원군인 것 같다. 적사살 4명 기관단총 2정 수류탄 6발이 노획품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사태를 수습하고 그때서야 대대 본부에 무전을 교신하고, 총에 맞아 죽어가는 베트콩 한명을 확인 사살한 후 사방에 대고 10 ~ 20 발 난사, 적에게 많은 아군 병력이 있음을 과시하듯 사격을 했다. 마음이 급하다 도망치듯 이곳을 어서 벗어나야한다.
작전관의 다급하고 걱정된 목소리가 네 귀전을 다구친다. 귀관과 팀원은 무사한가. 이곳까지는 약 2시간이면 도착 할 수있으니 급히 수습하고 출발하도록하라. 무사함에 감사한다. 무운을 빈다 이상ㅡㅡ
더 이상 길따라 도보할 수가 없었다 조금전의 충격이 산을 헤메는 힘들고 시간이 지체하드라도 길은 피하며 가야 한다.
또 한시간이 지났을까. 20~30도 경사를 따라 산을 오르는데 첨병이 급히 낮은 포복 자세로 경계한다.
가슴이 나려 앉는다. 바로 앞에 한구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백골이다. 철모도 탄띠도 군화도 목뼈에 걸려 있을만한 군표도 아무것도 없다. 과연 누구일까. 골격으로 봐 월남이나 한국군은 아닐 것 같은데.... 정말 무상하다. 언제 쯤 당해 이모양으로 이 깊은 산속에 이렇게 홀로 누워 벡골이 되어 있단 말인가.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없다.
그 얏튼 산을 지나면 개활지가 나온다. 개활지는 그야말로 사선이다. 개활지에서 적의 저격에 당해 `한마디 말 위생병` 하며 곧 숨은 거두며 죽어갔든 3중대 2소대장 김승태소위의 사건이 생각난다.
베트콩이 숨어 저격한다면 피 할 길이없다. 빠른 속도로 지그재그 하며 뛰는 수가 모책이다.
어떻게 하든 개활지를 건너야 한다. 넓비는 200m 전후의 거리를 첨병과 내가 먼저 뛰었다. 그리고 충분한 간격을 두고 또 두명씩 마지막까지 모두 무사히 건너 올 수가 있었다 정말 요행이다.
너무 힘들다. 서글프고 괘씸한 생각이 나를 때린다. 가난한 국가의 국대가 아니였다면, 또 미국 군인의 철수
었다면, 철수때 이렇게 냉대를 받았을가? 어느 지점 까지 핼리콥타가 와 주어야 하고 그토록 3 박 4일 동안 죽도록 고생했던 한국 정찰대원을 보다 안전하게 대대 연병장에 안착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마땅하다, 이 험한 적지에서 헬리콥타 한대 없이 모든 것을 미군의 의해 전투를 하는, 한국군,
가진 것 없는 나라, 가난한 군대니 이렇게 설음을 당한다고 생각이 미칠 때 억울한 분노마저 가슴을 저민다.
그렇다 이 설음과 수모를 이기는 것은 우리군의 용맹한 전투실력이 월등하다는 것을 미국과 세계에 그 기상을 인정케하고 월남이 우리를 절대 승전의 대리인으로, 백전 백승의 군대임을 각인 시켜야 한다.
``왜 이제 43년전의 월남전 때 작전을 그리면서 한국형 기동 헬기을 등장시키는냐? 고 하겠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우리 군도 이렇게 훌률한 최첨단 전투 기동 헬기를 보유한 강대국 대열에 있다는 사실 하나 만 하더라도 그때 그 열악했던 한국군, 몸 하나 가지고 전쟁을 했던 시대의 사람으로 너무 감격한 나머지 격세지감을 느끼기 때문이란까!!!``
(잠시 한국형 헬기에 대해 언급하자면 경남 사천 KAI 공장에서 출고식을 가진 기동헬기(KUH= Korean Utility Helicopter)`수리 온` 은 한국 기술로 만든 첫 헬기이며 세계 11번째로 직접제작 백두산 높이서도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 `수리온` 은 독수리를 뚯하는 `수리` 와 완벽한 상태를 가르키는 `온` 을 붙인 신조어다.
이위재 기자. 조선일보에서 ) .
곳곳에 낮은 평지에는 지름 20m에 달하는 원모양의 어려곳에 빨간색으로 죽어있는 풀들이 있었다 그 때만해도 별것으로 보지 않았고 그 가운데를 꺼림낌도 없이 지나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것이 그 무서운 에이전트 오랜지(다이옥신 성분이 썪인 제초제 혼합물)를 투하한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도 그때는 이상하게 생각 하지 않았다. 그 무서운 것을.....
이제부터는 얏트막한 산과 들이다. 그 험한 사레이오산 맥 지나, 샤이산을 내려가면 낮은 막한 산들이다. 낮은 산에는 천연 동굴이 될만한 곳이 없다 그 지겨운 베트콩의 은신처가 될 만한 동굴이 없다 그 것을 이용해 가기로 했다. 멀리 부대 위치가 보인다. 이곳에는 여려번 주 야간 매복을 한 곳아라 어느 정도 지형이나 위치를 파악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설치했을지도 모를 부비츄렙을 잘 살피며 가야 한다.
조금만 벗어나면 논과 수로로 이어지는 대명 천지가 있을 터, 거의 95%는 성공한 셈이다.
분대원들의 꼴 모양이 말이 아니다. 그 간에 3~4k는 빠진 듯, 볼 품들이 없다. 세면도 양치질도 못한 거러지꼴이라 한마디로 불쌍하다. 실아있다는 게 기적이다.
사실 군대 생활중 모두 한 가락(?)씩 안 해본 인물이 있겠습니까? 만은, 우리 대원들 중에는 대단한 사람이 많다.
-박정곤병장은 태권도가 3 단이며 부대에서 사범도 해 가며, 시간이 나면
우리 대원을 연변장에 모이게 해, 앞지르기, 옆 발 돌려차기로 힘을 기르게 한다. 이 더위에....
- 김영진병장은 마산에서 권투선수로 다져진 단련된 당당한 몸매다.
마산내 밀수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제범 실감있게 해준다. 또 막사 옆 평행봉의 명수다. 작전지에서 크레모아 내관 폭발로 가슴과 오른 손가락에 부상을 입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내 귀국 때 눈물을 글썽이며 차고 있던 자기 시계를
기억 해 달라고, 네 손목에 끼여준 사람이다.
-송성득병장은 체구가 우람하고 눈매가 매섭다. 성격이 우직한 부산 사나이로 성질이 나면 무섭게 설처 댄다. 평소에는 마음이 곱고 양순하다.
첨병, 후미병을 맡으며 지시하는 대로 잘 해낸 병사다.
-임기성병장은 분대 첨병으로 체구가 당차고 185 신장에 튼튼한 몸에,
주의력이 좋다.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켰다. 착실한 카톨릭 신자다.
지금도 전화통화 때는 聖堂 말부터 안부가 시작된다. 청주에 직장을 둔
성실한 가장으로 타의 모법이 될 만한 사람이다.
허허하며 웃는 목소리가 정겹다.
-김영기무전병은 경부선 12열차를 휘졌고 다닌 악바리로써 악당에 속한다. 한번은(중대장 무전병일 때) 어떤 불만이 폭팔 했던지? 술에 곤드레된 상태에서 막사에서 M16총을 난사 하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어 우리들에게 큰 충격과 잠시 기걱을 막게 한 인물이다. 지금도 그 일은 기억 할 것으로 본다. 근데 귀국 할 때 까지 나에게는 정말 양순한 대원이엿다. 늘 지금도 고맙게 여긴다. 서울에서 부분대장이였던 이화웅 병장이 길거리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었다는데....
-전천수병장은 첨병으로써 위험한 일은 앞서 하는 주의 깊고 의리의 사나이다.
거므스레한 얼굴에 인물도 좋다. 샤이산 8 부 능선에서의 VC 수색 시에 전과는 대단했고, 그 때 나에게 전우애를 보여 감동을 준 전우이다.
아직도 그의 말을 잊지못한다. 천연동굴 수색중 몸을 옴크리고 숨어 있던 적이 던진 수류탄이 용하게도 앞 바위에 띵겨 적 쪽에서 터져 일부 파편으로 부상을 당 했는데...지금은 소식을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
-윤기수병장은 말이 없고 늘 고독한 석양의 건맨 마냥 생각이 깊고 키도 크다.
꼭 만나자 했는데....지금 마산 지방에 살고 있다 또 전화를 해 봐야 겠다.
-부분대장 이화웅병장은 나 보다 일년 선임자로 경험과 판단력이 뛰어난 인물로 작전땐 내가 늘 믿은 상의 역할을 잘 해 준 전우로써 지금은 화성에 있으며 전우찾기와 모임에 열정이 가득하다. 이번 8 월 중순쯤에 제천에서 모임이 있다고 벌써부터 연락에 성화가 대단하다 꼭 참석하고 싶다. 부대에서 만든 역기를 들며 운동 할 때를 보면, 힘이 장사이다. 요즘에도 만나면 서로 부등켜 안고,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다.
- 나 신춘균은 뭐 하나 내 새울 만한 게 없는 그저(?)그런 존재일 뿐 이다.
그런데 분대원들은 내 명령에 언제나 절대 복종했다고 지금도 이것만은 자신 하고 그것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한다. 군대였으니까...고마운 전우여 보고싶은 전우들이여....
*모두 중대에서 모범된 병사로 선발된 사나이들이라 언제나 자신만만 하고 자부심이 대단한 대원들이다.
만약 무탈히 전원귀대 한다면 우리는 대단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그리고 전 대원의 그간의 고초에 감사 한다.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친 이 번 작전에 이 모든 功勞 을 전부
대원들에게 돌리고 싶다....
무사히 임무를 끝낼 수 있었다는 성취감이 내일 우리는 얼싸않고 기쁨에 가슴과 가슴을 부딪치며 환희할 것이다.
축배도 함께하고, 우린 또 몇일 동안 휴식을 취하며 익일의 출동를 위한 심신의 힘을 비축하고 준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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