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투옹 덕 지역의 그린베레 캠프,
이른바 덕랩(Duc Lap) 캠프에 대한 내용이다.
덕랩의 A-239 그린베레 캠프는 캄보디아 국경에서 약 4.5km 거리로 남베트남
중부 반 메 투옷 남서쪽 42마일에 있다. 그 일대는 호치민 루트의 종착점으로
위치는 매우 중요했고, 북베트남 측에서는 매우 이 캠프가 걸렸다. 덕랩 캠프는
A-239 팀 12명 외에 그린베레 403팀 세 명이 보강되었고, 캠프 병력은 비슷한
숫자의 남베트남 특전단과 산악족 350명과 그들의 부양가족들이 있었다.
이곳에 1968년 8월 말, 월맹군 제1사단 약 4천 명이 포위 공격했다.
8월 말 어느 날 밤, 적은 이 덕랩 캠프를 탈취하기로 결정했고, 박격포와 로켓 소총
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린베레 대원들은 박격포좌로 달려가 81밀리 박격포로
응사를 시작했고, 얼마나 쐈는지 물을 부어 포열을 식혀야 했으며 방어선엔 전 병력이
투입되었다.
다음날 동이 틀 때 미국 전술항공기들이 나타나 폭격을 시작했지만, 기상이 좋지 않아
정확한 폭격이 힘들었다. 그래서 미군 조종사들은 가능한 낮게 날면서 용감하게 폭격
했다. 이때 기총소사를 가하던 F-100 수퍼 사브레 한 대가 맞아 격추되었고 조종사는
사출했고 그린베레 대원 3명이 달려가 구출했다. 이때 구출대는 지프를 몰고 가 엄청난
저격수 사격을 뚫고 캠프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후 2박 3일간 상상이 불가능한 연대기적인 캠프 공방전이 벌어졌다. 월맹군은
한국전 당시 중공군을 연상시키는 인해전술을 시도했다. 덕랩 캠프 내부는 두 개의 작은
고지로 되어 있었는데, 그 북쪽 고지가 월맹군에게 탈취되면서 그 중간의 안장 지역에서
혈전이 이어졌다. 적은 남쪽의 지휘벙커 50미터까지 접근했었다. 결국 그린베레 대원들은
특공대를 조직해 북쪽 고지를 향해 벙커를 파괴하면서 백병전을 벌이며 접근했고, 나중에
훈장을 받는 젊은 그린베레 대원 차일즈 상병은 돌격하는 적의 1개 분대와 조우해 5미터
거리 안에서 M-16으로 이 공격을 격퇴했다.
중간에 다낭에서 날아 온 제5마이크포스 2개 중대가 캠프 몇 km 거리에서 랜딩해 캠프를
향해 전투를 벌이며 접근해 들어오는데 성공한다. 이어 산악족과 함께 북쪽 고지를 공격해
다시 탈환했다. 당시 그린베레 대원들은 대형 무반동총과 50기관총으로 엄청난 양을 사격
했다. 반 메 투옷의 제2마이크포스 1개 중대도 투입됐다.
이 전투로 다수의 남베트남과 미군 특전단 대원이 전상을 당했고, 산악족은 150명이
죽거나 다쳤다. 월맹군은 3일간의 전투로 약 800명이 전사했다. 이 전투의 공으로
은성훈장을 홀 하사와 차일즈 상병 두 명이 받았는데(퍼플 하츠와 함께), 차일즈
상병은 베트남에 들어온 지 5일 밖에 안 된 대원이었다. 동성훈장도 세 개.
Battle of Duc Lap information (미 육군 기록, 추가 사항)
첫날의 주 공격은 동이 틀 때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AC-130 스펙트러 건쉽이
돌아갈 때였기 때문이다. 그린베레는 진중폭격을 요청해 미군의 공중폭격을 받았다.
이때 그린베레는 반격해 몇 개 거점을 탈환했다. 보급은 미군 항공기 Caribou로
보급품을 받았다.
당시 실제 공중재보급 사진.
제2마이크포스의 중대가 캠프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미군 쪽에 약간 유리해져 북쪽
고지에 대한 반격이 시작된다. 그리고 공격 두 시간 만에 영웅적인 대원의 행동과
엄청난 근접전투 속에 북쪽 고지가 탈환되었다. 특히나 산악족 지휘관 Y-Gaul Nie는
수류탄으로 전사할 때까지 영웅적으로 전투를 이끌었다.
이후 총 6시간의 혈전을 지속해 결국 캠프 밖으로 적을 몰아냈다.
서로 간에 포로는 없었다. 덕랩은 그린베레의 승리였고, 마이크포스의
지상전투 능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전사 - 그린베레 6명, 남베트남 특전단 1명, CIDG 37명, 민간인 20명.
실종 - CIDG 9명.
부상 - 그린베레 13명, 남베트남 특전단 7명, CIDG 80명.
북베트남군 전사 : 8-900명.
캠프방어력:
105밀리 자주포 2문, 81밀리 박격포 4문, 4.2인치 박격포 1문, 106밀리 무반동총 2정.
------------------------------
마이크포스: 원래 명칭은 Mobil Strike Force이나, 맨 앞자 'M'을 군사식 약어로
마이크라고 약칭해 마이크포스라고 불렀다. 특전단 B-제대. 쉽게 말해 특전단
대대급에서 운영하는 그린베레 자체 타격군으로, 보통 2-3개 산악족 중대로 구성
되어 지휘관들은 그린베레였다. 마이크포스는 총 5개다. 1-4군단 마이크포스와
따로 나트랑 마이크포스. 이 병력은 월남군 지원의 문제점 때문에 본인들이 직접
훈련시키고 보수를 주고 작전에 투입했다.
덕랩 전투 후에 훈장을 받는 그린베레 대원들. 사진의 현 수상자는 베트남에 들어온 지 5일 밖에 안
되는 차일즈 상병으로, 이 사람은 마치 전쟁을 놀이로 생각하듯이 싸워 다른 대원들을 경악케 했다.
1968년 8월, 덕랩 캠프 포위전
그 일은 내가 병원을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병원을 나와 지프에 올라 제5특전단
막사를 향해 먼지를 날리며 갔다. 그리 멀지는 않았다. 막사에 들어서자 병사들은
트럭에 짐을 싣고 어디론가 막 출발하고 있었다. 지프차가 팀하우스 앞에 섰다.
그때 내 중대장 라이트 중위와 라이트 소령이(중위와 친족 관계는 아님) 나더러
지프에 그냥 있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거기서 타이거스트라이프 군복으로 갈아
입고 군장을 차려 작전에 같이 나가라는 거였다. 이어 군장과 벨트 그리고 탄창이
결합된 Car-15 소총을 던져주었고 선임하사를 나에게 소개했다.
덕랩의 A-team이 포위되었단다.
운전병은 지프차를 돌려 비행장으로 향했다. 비행장은 내가 잠시 전 떠나왔던 병원
바로 옆이었다. 비행장에 도착하니 C-130 수송기들이 윙윙거리며 주기장을 벗어나
활주로로 향하고 있었고 맨 앞 수송기는 이륙하고 있었다. 난 마지막 수송기 뒷문으로
뛰어가 올라탔고 그러자 램프도어가 닫쳤다. 안은 약간의 등 외에 어두웠고,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선임하사가 누군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당혹스런 가운데 나는 비행기 후미에서 녹색 군복을 타이거스트라이프 군복으로 갈아
입었다. 탄띠와 엑스반도도 채웠고 Car-15 소총의 끈을 조종해 어깨에 걸머졌다. 그런
다음 실탄 파레트 위에 앉아 사방을 둘러봤다. 수송기는 활주로에서 이륙해 180도 회전
해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간에 다시 한번 기수를 틀더니 우린 2군단 반 메 투옷
으로 향했다. 20분 쯤 반 메 투옷에 도착해 우린 내렸고 비행장 서쪽으로 이동했다.
나도 따라갔다.
거기서 5중대 대원들을 다시 찾아봤다. 우린 B-55 예하 이동타격군(Mobil Strike Force),
즉 마이크포스였다. 우린 북베트남군에게 강력하게 포위된 A-Camp에 소방수로 들어
가는 거였다. 랑베이 캠프 피탈 이후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더 이상 A-캠프가 함락
되는 일은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각 군단에 있는 우리 마이크포스는 군단
지역 내의 캠프가 위험해질 경우 자동투입의 임무를 받고 있었다.
난 누네즈 중사에게 달려갔고 그는 다른 하사관들을 소개했다. 에스트라다, 곤잘레스,
마케타였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덕랩 캠프에 관해서 그나마 좀 알 수 있었다.
하사관들이 캠프 현재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캠프는 아침 일찍 공격 받았고 북쪽
고지가 적에게 점령되었으며 다시 남쪽 고지 CP를 향해 공격 중이고 거의 함락 직전
이라고 했다. 캠프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어두워졌기에 헬기가 랜딩존을 찾기 힘들어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덕랩
캠프는 아침까지 탄약보급과 증강군 없이 버텨야 했다. 그건 생존이었다. 그때까지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우린 슈헨겔 대령으로부터 캠프 상황을 브리핑 받았다.
동이 트기 전에 헬기에 탑승한다고 했고, 우린 임시 숙영지를 만들었다. 아침에
랜딩존에 들어가자마자 교전이 예상되니 잠을 좀 자두라는 말을 들었다.
[슈헨겔 소령은 랑베이 캠프 함락 시 싸웠던 인물이다.]
미래가 불투명했다. 난 대원들을 둘러보며 산악족 대원들과 대화를 조금 나눴다.
그들과 대화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난 마이크포스 소대장으로 3주 전에 배속이
됐지만 곧바로 리콘도 스쿨에 입교했고 수료 전날 먹은 음식에 이상이 있었는지 기후
에 적응을 못했는지 식중독(Food poisoning)에 걸려 결국 5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퇴원한 바로 이날 난 야전으로 나가게 됐다. 그것도 전투작전에. 난 불안했다!
난 새파란 소위였고, 마이크포스 대리중대장으로 중대를 이끌어야 했다.
왜냐하면 원래 중대장이 일주일 전에 나트랑 근처 산악에서 작전하다 다쳤기 때문
이다. 앞서 본 라이트 중위가 바로 중대장이었는데 총격으로 엄지손가락이 날아갔다.
난 잠을 청했다. 내가 새파란 소위로 덕랩으로 가야 한다니. 결론적으로 난 밤새 한
숨도 못 잤다. 그 상태에서 동이 터왔고 난 커피를 수통컵에 한잔 받아먹고 군장을
꾸려 헬기를 기다렸다.
우리 앞에 다른 마이크포스 중대가 이미 하나 들어간 상태였다. 그들은 정글을 통해
빠르게 캠프로 이동 중이었다. 첫 번째 중대를 랜딩시켰던 헬기들이 30분 뒤에 비행장
으로 돌아왔다. 첫 중대는 랜딩존에서 교전이 없었다. 좋았다. 작전 시작부터 전상자를
내는 건 힘든 일이다.
우린 헬기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덕랩으로 향했다. 덕랩 진지(캠프)는 캄보디아
에서 들어오는 호치민 루트 종착점 부근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침투하던
월맹군과 베트콩들은 캠프로 인해 일시 정지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거기다
A-캠프는 15-20km까지 위력정찰을 나간다. 캠프만 없다면 적은 굉장히 편해진다.
캠프 안에는 남베트남 특전단과 라드와 자라이 산악족 병력이 있다. 그 CIDG 병력
중에는 눈족과 참족도 섞여 있고, 중심은 미 육군 특전단이다. 원래는 그린베레가
고문관이나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있었다. 그린베레의 실제적인 지휘를 받는 것은
산악족 내에서 뽑은 산악족 지휘관들이다. 농담이지만, 그 산악족들은 월맹군보다
남베트남인을 더 죽이고 싶어 했다.
우리 헬기는 5천 피트 상공을 날았고 공기는 찼다. 헬기가 내려가는데 우리 앞에
제트기들이 폭격하는 걸 목격했다. 공중에는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떨어진
폭탄이 터지는 강력한 폭발음도 들렸다. 그렇게 때려주는 것이 나로서는 기뻤다.
우리 헬기가 미끄러져 내려갔고 지상 1미터 정도로 날면서 진행했다. 엄청난 타킷
이라고 생각횄다. 우린 맞고 싶지 않았다. 헬기가 상승하고 몇 초 만에 우린 대열을
형성해 덕랩 캠프로 향했다. 우린 캠프를 향해 남서쪽에서 다가서고 있었다. 적의
박격포나 포병이 우릴 향해 쏘지 않기를 빌었다.
약 1km를 이동했을 때 첨병이 월맹군과 조우했다.
짧게 총소리가 다다다닥 나고 적은 쓰러졌다.
우린 계속 캠프로 나무가 많은 지역을 통해 진행했다. 나무들은 불타 있었다. 몇 분
전에 거기 월맹군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린 조심해서 이동했고 특히 발목지뢰를 조심
했다. 발목지뢰가 발견되면 철사를 감아 처리했기에 행군속도가 느렸다.
무전기가 지지직거리면서 상공의 지휘헬기에서는 속도를 재촉했다. 월맹군이 캠프
남쪽 고지의 마지막 벙커 앞에 도달했다고 했다. 잠시 후 우린 구형 2차대전 전투기가
폭탄을 우리 앞에 떨어트리며 기총소사를 했다. 약 1.5km 전방이었다.
한 대원의 기념사진에 찍힌 공격 전의 덕랩 그린베레 A-239팀 캠프. 내부는 완전히 진지화 되어 있다.
15분 후 상공의 조종사가, 적이 캠프 남쪽파트의 철조망에 도달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아군이 도착하고 있어 캠프 안에서 기뻐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교신을 끝내고 몇 분
만에 우리는 벙커들로 향하는 고지 경사면을 걸었고, 내 눈에는 시체와 시체 조각들이
보였다. 일부는 태양으로 인해 부패해 부풀어 있었는데, 내가 아침에 커피만 마시고
식사를 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었다.
캠프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는 고지 정상 근처에 벙커에 모여 브리핑을 간단히 받았다.
적은 현재 북쪽 고지를 향해 퇴각하고 있었지만 남쪽고지 동쪽과 서쪽의 벙커들에는
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린 그들을 뿌리 뽑아야 했다. 그리고 어두워지기 전에
북쪽 고지를 탈환해야 했다.
나는 한 소대를 누에즈 중사에게 맡겨 서쪽 참호와 벙커를 청소하라고 했고, 다른
소대는 머물로 엄호사격을 하며, 나머지 소대는 동쪽으로 역시 평정작전을 명령했다.
기동하는 두 소대는 12시에 만나 북쪽고지를 공격해 탈환하기로 했다. 말은 좋았으나
난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우린 빨리 움직였다.
벙커에서 10미터 정도를 가고 있는데 한 대위가 자신을 조셉 트림블 대위라고 소개
하면서 자기가 새로 중대장으로 부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서쪽으로 진행
하는 소대를 맡으라고 했다. 나는 "Yes sir"하고 대답하고 누에즈 중사와 같이 이동을
시작했다. 누에즈 중사는 내 왼쪽에서 곧바로 일어나 앞으로 나갔지만, 난 바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동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참호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남쪽 고지 오른쪽
벙커와 참호들이 조금 있는 곳에서 쏘고 있었다. 난 산악족 대원 몇을 모아 사격을
피해 남쪽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첫 번째 참호선을 평정하자 앞에 첫 번째 벙커가
보였다. 벙커 주변은 온통 흙과 바위들로 되어 있었고, 결론은 하나 그걸 점령해야
했다.
난 미 육군 특전단 그린베레 소위로 뒤에서 명령할 처지가 아니었다. 전장에선
나도 신병이었고 난 훈련받은 대로 과감히 해야 했다. 산악족 대원들은 전투를
많이 치른 사람들이고, 내가 여기서 과감히 나가지 못하면 난 영원히 그 병사들을
지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군대 교육기관에서 배운 모든 게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그러나 나가면 곧 죽을 것 같았다. 저 앞이 저승길로 보였다.
사방에서 총소리와 수류탄 쿵 소리가 난무하고, 북쪽 고지를 향한 전장에는 쓰레기
더미와 네이팜으로 인해 녹아내린 하얀색 플라스틱 액체가 잎사귀에서 뚝뚝 떨어지고,
구부러진 금속조각과 난파된 철조망, 부서진 AK-47, 시체와 시체 조각들... 그 시체에서
풍기는 악취는 내 손에도 묻어났고 내 입술과 입속 입천장까지 묻어났다. 사방은 달
표면의 크레이터 모습과 같았다.
하루 반 동안의 격렬한 전투에서 나온 모든 부산물들이 보였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주기적으로 수류탄이 터졌다. 좌우를 살피니 그 지옥의 입구에서 병사들은 숨지 않고
앞을 향해 약진하고 있었다. 고개만 들어도 맞을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덕랩 전투 후반부 사진. 100% 진지화된 캠프
안에서 월맹군과 캠프 방어군이 혼전을 벌였다.
난 내 앞의 벙커를 쳐다봤다.
사격 섬광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누굴 쏘는 지도 모른다.
난 산악족 대원들에게
엄호사격을 하라고 지시하고 벙커 오른쪽으로 힘껏 뛰었다.
그리고 벙커 옆으로 슬라이딩해 들어가 수류탄 안전핀을 까서 던져 넣었다.
폭발하자 벙커 안의 모든 적은 즉사했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우리가 가는
길은 북쪽 고지를 향한 측면으로 이를테면 캠프 방어선이었다. 그래서 벙커가
연달아 우리 앞에 이어져 있었다.
그 벙커를 점령하고 나서야 같은 방법을 되풀이 했고, 그러면서 내 지휘력에 신뢰가
좀 더 생겼다. 두 번째 벙커에 도달했고 방법은 같았다. 벙커의 사격은 우릴 꼼짝 없이
엎드리게 했고 우리도 응사하면서 화력을 압도하려고 노력하며 벙커를 향해 기었다.
그리고 점령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것은 앞의 것과 달랐다. 북쪽 고지 정상에서도 우릴
향해 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의 벙커와 북쪽고지의 사격을 둘 다 상대하려니 점차
속도가 느려졌다.
그렇게 사격을 피하고 있는데 우리 앞에 월맹군 병사 둘이 돌연히 점프해서 나타났다.
15미터 거리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수류탄을 던지고는 북쪽 고지 앞 참호선을 향해
되돌아 뛰었다. 우린 수류탄 폭발과 파편을 피하려고 엎드려 엄폐했다. 뜨거운 파편
하나가 내 삼두근을 때렸다. 그러나 고맙게도 부상은 크지 않았고 난 총을 들어 뛰어
가던 월맹군 하나를 쏴서 잡았다. 한 명은 참호로 살아서 돌아갔다.
우린 다시 앞 벙커를 잡는데 집중했다. 산악족 병사들이 엄호사격을 하는 가운데
난 다시 뛰어갔고, 벙커에 도착해 수류탄을 까서 던져 넣었다. 폭발하고 나서 벙커에
들어가면서, 난 연기 속에 반 탄창 정도를 벙커 안에 갈겼다.
그리고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기가 걷히자,
내 왼쪽에 한 월맹군 병사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우린 서로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그는 증오의 눈동자로 날 응시했다.
순간,
우린 동시에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잠시 후 그는 땅에 굴렀고 난 여전히 서 있었다.
그의 총알이 날 맞히지 못한 것 같았다.
난 아무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난 벙커를 나와 산악족 대원들에게 이리로 오라고 수기신호를 하고 우리 왼쪽의
큰 폭격구덩이로 이끌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북쪽고지와 앞의 벙커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른쪽으로 보니 북쪽고지를 향해 돌격하는 아군이
보였고, 이어 우리도 일어나 그들과 합류했다.
난 폭탄구덩이로 점프해서 들어갔고 이어 북쪽고지를 향해 응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실탄 약실 삽입구가 부서져 잼이 일어난 것이다.
한 산악족 대원이 계속해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상체와 복부를 내려다
보니 오른쪽 끝에 무슨 파편 조각 같은 게 보였다. 탄입대 탄창의 총알이 터진 것
같았다. 1:1로 만난 월맹군이 쏜 총알들은 내 총 약실과 탄입대를 때렸다.
아까 쏜 월맹군 병사의 총알이 내 탄입대 실탄이 든 탄창을 뚫고 실탄을
파열시키며 내 몸으로 들어온 거였다. 그 몸 오른쪽은 감각이 없었다.
아픔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나도 모르게 내 몸에 균형이 사라지면서 난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시야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난 정신을 차리려고 발버둥 치면서 상처 부위에 압박붕대를 감으려고 노력했다.
그때 우리가 있던 구덩이 안으로 누에즈 중사가 점프해 들어왔다. 내가 맞은 걸
보더니 산악족 병사들에게 나를 캠프 의무대로 후송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내
양 옆을 잡아 의무대로 나를 데려갔다.
그 이상은 더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시야가 검게 물들었기 때문이다.
난 의식을 잃었고 쓰러졌다.
누에즈 중사와 병력은 북쪽고지를 계속 공격했고,
난 정신을 잃고 의무벙커에 누워있었다.
다음날 깨어나 보니 내 팔에 정맥주사가 걸려 있었고 내 허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난 메스꺼웠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벙커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상자를 나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캠프가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북쪽 고지가 탈환된 것 같았고
헬기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은 적의 시체를 치우고 노획무기를 정리했다. 2일 동안
월맹군 약 900명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린 캠프를 구했다. 기분이 좋았다.
덕랩 전투가 종료되고 모인 A-239 팀원들.
전투 후 포상을 정리하는 잭슨 부사관.
내 첫 번째 지휘관 임무에서 성공적으로 병력을 이끌었고 임무는 완성되었다.
난 살아 있었고 난 전투에서의 내 지휘력에 좀 더 신뢰가 생겼다. 그러나 우리
중대 하사관 한 명이 전투 중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풀이 꺾였다. 그를 거의
몰랐지만 기분이 최악이었고, 난 그와 친해질 시간도 없었다.
내가 한 샌드백에 앉아 있는데 거대한 CH-47이 날아와 착륙했다. 후미 램프도어가
열리고 난 그 앞으로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들어갔다. 한 산악족 대원이 탑승하는 걸
거들어주었다. 몇 분 만에 헬기는 이륙했다. 내가 떠나고 얼마 뒤 많은 장성들이
덕랩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방문한 그들은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마이크포스는 다시 한번 능력을 입증했다.
그런 대원들과 같이 전투에 참가해
내가 이끌었다는 것이 고맙고 또한 기쁘다.
병원에서 복귀할 때가 되자 난 다시 불안해졌다.
그동안 또 부하들은 놀지 않았으니까.
소위 John H. Wilson
5th Company, B-55 Mobil Strike Force
Nha Trang, Vietnam.
덕랩 캠프 포위전에서 그린베레 대원들의 역량은 빛을 발휘했다. 여명시에 월맹군이
공격을 시작하자 그린베레 대원들은 나와서 이 무반동총과 82밀리 박격포로 맹렬하게
응사했는데 이는 상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캠프의 크기는 20분의 보병전투면 점령될
크기였다. 그린베레 대원 대부분이 대구경 공용화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잇점은
바로 이런 전투에서 높게 평가 되었다. 그린베레 A-팀은 소수이기에 평상시에도 화기주특기
유고를 대비해, 다른 주특기에게 화기 주특기가 공용화기 조작법과 훈련사격을 시켜온 결과였다.
사진은 덕랩 A-239 팀 대원 사진이다. 덕랩 전투 시기의 대원인지는 알 수 없다. 팀원들은
1-2명씩 계속해서 귀국하고 충원되었다.
'전쟁..... > 베트남 전쟁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없는 전장, 사이공 (월남군 레인저)||베트남전쟁 (0) | 2013.11.25 |
---|---|
니하 (Nhi Ha) 전투 (0) | 2013.11.25 |
잊혀진 전투 - 캄보디아 습격|베트남전쟁 (0) | 2013.11.25 |
사이공의 마지막 해병대원들|베트남전쟁 (0) | 2013.11.25 |
LRRP의 삶과 죽음 (0) | 2013.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