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베트남 전쟁사

LRRP의 삶과 죽음

구름위 2013. 11. 2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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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RRP의 삶과 죽음

 

    Life and Death on a Long Range Recon Patrol

 

                     By Tom Corpora (2011. 9. 12)

 

 

LRRP 대원들은 총 6인으로 팀이 구성되는 특별히 훈련받은 자원자들이다. (National Archives)

 

 

 

지휘통제 헬기, 건쉽헬기 두 대, 그리고 침투헬기와 예비헬기(chase ship)들이

무리를 지어 침투지점인 캄보디아 국경 부근 월남 제19번도로 근처에 들어갔다.

이어 침투헬기와 예비헬기들이 대열에서 나와 밑으로 하강하면서 속임수 기동

을 시작했다. 건쉽헬기가 엄호하는 가운데 침투헬기는 개활지로 내려가 잠시

호버링했다.

 

그건 침투를 가장하는 페이킹이었고 예비헬기도 으르렁거리며 그 상공을 지나갔다.

이 두 헬기는 이렇게 네 번이나 그런 기동을 한 뒤에 결국 네 명의 중무장하고 위장된

대원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들은 미 제4보병사단 2여단의 장거리정찰소대 LRRP였다.

 

4명 중 하나는 무전병이고, 전에 장거리정찰작전에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선두 포인트맨도 처음 첨병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의 베테랑은 참전

을 같이 시작했다. 1966년 7월 21일. 그리고 둘 다 귀국하기 6일 전이었다.

 

고참 중 하나는 대니 하몬 상병(Danny Harmon)으로 2주 전까지 내가 있던 2여단

에서 포인트맨을 했었다. 당시 나는 30세로 UPI 통신원이었고 주로 야전을 따라

다녔다. 내가 LRRP에 관해 알게 된 건 미군 보병 주 병력이 베트남에 들어오던

시기였다.

 

그들은 ‘전선을 넘어’ 임무를 수행하는 대원들로 나는 그들에게 존경과 감탄을

느꼈다. 난 그들에 관해 쓰고 싶었고, 글을 잘 쓰는 최고의 방법은 그들과 동행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난 그래서 2여단장 저드슨 밀러 대령을 설득했고, 난 13년 전 8주간 미육군 보병학교

기초훈련을 수료했기에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밀러 대령은 자신의 구역에서

민간인이 죽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LRRP 지휘관에게 명령해 능숙한 팀을 골라보

라고 했다. 하몬이 맨 처음 선택되었다. 

 

우린 정글에 숨어 기다렸고, 뜨거운 태양이 아닌 구름이 끼고 비가 오길 바랐다.

그래야 퇴출시 소음이 조금 안전해질 수 있다. 저녁에 흐려진다고 장대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하몬은 나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가운에

하나다. 그 퇴출 과정은 존경을 넘어 감동을 나에게 선사했다. 네 명은 나와 함께

인생을 걸고 정찰을 감행했고, 그 레인저 대원들과는 이후 몇 년 동안 연락했다.

 

 

대니 하몬은 알라스카 코디악 부근의 외딴 섬 출신으로 알루티크(Alutiiq)족 에스키모다.

그는 아버지 없이 자랐고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대니를 양육시키려 발버둥쳤다.

자녀들과 생존을 위해 오두막을 짓고 물고기를 잡았다. 그의 오지 생존기술(bushcraft)

정찰소대장 미첼 라폴라 중위를 만나면서 부각되었다. 중위는 여단의 정찰소대를 조직

하고 첫 번째 지휘관이 됐는데, 중위는 하몬을 이렇게 말했다.

 

"하몬은 야전의 유령이다.

정글에서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걷는다.

그는 공포란 걸 모른다."

 

(잇빨 주: 미국인들은 에스키모도 ‘OO족 인디언’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본문 내용.)

 

대니 하몬 (이 사진만 본 글에 해당되는 사진임)

 

 

하몬은 매우 잘 웃고 겸손하며 친절하고 인기가 있다. 그의 검은 피부는 중부 고원지대

소수민족인 산악족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는 날카로운 대검을 항상 휴대

하고 가끔 모자에 깃털을 꼽기도 한다. 그는 정찰소대에 오기 전에 특별한 특수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그의 스킬들은 알라스카 숲에서 배운 것이고, 그걸 베트남의 정글에서

적용하고 있다.

 

하몬은 궁극의 포인트맨이다. 적이 우릴 보기 전에 먼저 보고 소리를 듣는다. 그가 정찰

작전에 나가기까지 그 누구도 그에게 정글의 기술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하몬과의 정찰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 문제없었다. 2여단 LRRP 정찰이 시작

된 지난 1년 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하몬은 이미 동성훈장 V Device를 장군에게 직접

가슴에 수여받았다. 동성훈장은, 그는 개인의 안전을 무시하고 정찰팀을 추적하는 적군

병사들에게 포격을 유도하고 안전하게 퇴출시킨 공이었다.

 

1967년 5월 31일, 하몬은 베트남을 떠날 날짜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때 2여단 정찰

소대 웨인 리틀존 하사는 여단 정보부로부터 캄보디아와 인접한 이아드랑 근처에 B-52

아크라이트 폭격효과 관찰임무(BDA)를 받았다. 리틀존은 애매한 입장이었다. 보병4사단

은 베트남에 온 지 1년이었고, 병사들 많은 수가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들이었다.

 

여단의 LRRP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대 운영은 여전히 4인 정찰팀 규모. 캠프 오아시스

의 경험이 풍부한 정찰팀장은 로날드 보넛 병장 하나였고 그 역시 6월 5일 하몬과 같이

귀국할 예정. 정찰소대는 이런 ‘short-timer’들에게 정찰작전에 표준절차를 요구할 수는

없었고 회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계속 피할 수는 없었다.

 

처음 들어온 대원들 쪽에선 고참들이 경외의 대상이다. 리틀존 중위와 보넛은 당시

일본에서 치료와 회복을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보넛은 매복 도중 다리에 소총탄을

맞았는데, 짐이 되고 곧 죽을 거란 생각에 팀원들은 그를 방치하고 떠났다. 보넛은

기고 비틀거리며 팀을 쫓아갔다. 그리고 결국 휴식하고 있던 팀을 따라잡아 살았다.

 

보넛은 귀국 6일전이었고 리틀존도 그를 임무에 정말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었고 보넛 역시 임무를 거절할 사람이 아니었다. LRRP대원

들은 100% 자원자였다. 만약 귀국 직전의 두 대원에게 작전을 내보내려면 일종의

보증이 필요했다. 리틀존 중위와 보넛에게 떨어진 임무는 아주 문구가 간단했다:

들어가서 B-52 폭격지대를 관측하고 돌아올 것.

 

사실로 말하면 보넛 병장은 리틀존 중위의 경력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보넛은 승낙을 하고 리틀존 중위와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그리고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풀려고 했다. 하몬에게 임무에 같이 나가지 않겠냐 물은 것이다. 보넛과

하몬은 21세 동갑이고 모두 징병자이며 둘 다 빨리 군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정찰대를 채우면서 보넛은 최근 도착한 20세 론 쿤 상병에게 포인트맨을 하지 않겠

냐고 물었다. 쿤은 미네아폴리스 근처에서 성장하면서 항상 레인저가 되기 위해 기다

렸던 친구다. 그의 아버지가 2차대전 당시 레인저로 이탈리아 본토인 안지오에 상륙

해서 싸우다 포로가 되어 종전을 맞은 사람이었다. 쿤은 4사단 보병중대에서 2개월을

근무하다, 장거리정찰소대에서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넛은 쿤과 작전을 한번도 뛴 적이 없었고, 쿤도 포인트맨(첨병)을 선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경험 많은 하몬이 쿤을 포인트맨으로 훈련시켰다. 정찰에서도 가까이

행동하면서 그에게 전술을 전수했다. 네 번째 팀 멤버는 무전병 제임스 소머스로 부대

에 갓 들어온 친구. 그래서 부대원들은 그가 어디 출신인지 몇 살인지도 몰랐다.

 

이후 소머스와 쿤은 MACV Recondo School에 들어갔고 그 학교는 당시

장거리정찰의 종결자 학교로 불리고 있었다. 훈련 교관 / 조교는 그린베레

정찰대원들이었다. 나트랑에서의 이 훈련의 마지막 시험은 실제 전투정찰로

훈련생들은 그걸 “네 목숨에 걸어라!”라고 불렀다.

 

 

 

다음 날인 6월 1일, 4명이 오후 1시 임무를 위해 준비된 상태였다. 그들은 정찰대

막사에서 150미터 떨어진 여단 헬기장으로 완전군장으로 걸어가 기다리던 헬기에

올라탔다. 헬기가 공중에 올라가자 익숙한 캠프 오아시스가 보였고, 이 소도시는

매우 분주했으며 또 무언가를 짓고 있었다.

 

플레이쿠 남서쪽 23마일 캄보디아와의 중간 거리 정도의 포인트. 지형은 많은 산

과 강, 냇물이 흐르는 지역이었다. 근처에 오래된 차농장도 있었고 산악족 마을도

드문드문 보였다. 공중에 오르자 곧 건쉽헬기 두 대와 지휘통제헬기/예비헬기들이

날아와 합류했다. 헬기 무리는 아크라이트 폭격이 있었던 침투지점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목표지역에 이르자 헬기가 또 밑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호버링한 것은

위장 랜딩존의 호버링보다 길지 않았고, 대원들은 스키드 바에 내려가 3.5미터 높이

에서 땅으로 점프했다. 그리고 엎드려 몇 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다. 적

에게 간파되었는지 잠시 기다리는 것이다. 이후 팀은 북쪽 숲으로 들어갔고 100미터

정도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후퇴해 방향을 꺾어 아크라이트

폭격지대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주 많이 사용되고 잘 위장된 산길에 최근에 찍힌 발자국이 보였고,

이른바 스파이더 구멍이라 불리는 개인참호가 보였다. 적의 이동로를 감시하는 건 이

작전의 임무가 아니었다. 보넛은 노트에 적기만 하고 빨리 목표로 이동하자고 팀원들

에게 말했다.

 

오후 5시 정도에, 팀은 수풀이 뒤덮인 큰 개활지를 만났고, 방어에 유리한 근처 지형을

잡아 야간방어를 구성했다. 300미터 북쪽은 19번국도, 400미터 동쪽은 캄보디아였다.

B-52 폭격지역은 도로 남쪽으로 진행되었고, 팀은 목표 근처에 도달한 상태. 임무인

폭격효과사정(bomb damage assessment) 임무는 이른 아침에 시작하기로 하고, 그

오후에 바로 퇴출을 요청할 예정이다.

 

팀원들은 네 방향에 크레모어를 깔고 어두워지자 보넛이 불침번을 섰다. 1인당 한

시간 반을 선다. 어두워지자 곧 먼 거리에서 밤하늘에 기관총의 녹색 예광탄들이

거의 한 시간 동안 가로지었다. 누가 누구를 쏘는 걸까? 그리고 얼마 뒤, 우리가

이동해 온 침투 지점에서 우릴 향해 오는 소음을 들었다. 월맹군이 우릴 추적하는

걸까? 소음은 갑자기 멈췄다가 다시 들렸다. 팀은 아침까지 그대로 있기로 결정.

 

 

 

 

새벽이 되자, 대원들은 군장을 꾸리고 크레모어 수거하고 19번 국도를 향해 남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팀이 자갈로 된 커다란 도로 가장자리에 도착했을 때 위치는

캄보디아 국경에서 150미터밖에 안 됐다. 팀은 도로를 교차해 건너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국경으로 향했고, 아크라이트 폭격지역 가장자리를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몇 분 지나자,

전날 본 것과 같은 위장된 길이 하나 또 나타났다. 차량이 충분히 통과할 폭이었고 길옆에

참호들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지역에 도착했다.

 

B-52 폭격기는 원래 핵폭탄을 투하하는 임무로 설계된 것이나, 베트남에서는 전통적인

폭격에 동원되었고 500파운드와 750파운드 강철폭탄을 실어 총 6만 파운드의 폭탄을 각

폭격기들이 탑재할 수 있다. B-52 폭격의 황폐함은 두렵고 소름 끼쳤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짓밟고 구부려버린다," 쿤 상병은 아크라이트 폭격지대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움직이지 못한다." BDA임무는 어찌 보면

무의미하다. 폭격 구덩이 크레이터들은 모두 크기도 거의 똑 같다. 보넛 병장은

먼저 폭격지대 사진을 찍고 14번 국도를 향해 계속 정찰을 이끌었다.

 

보넛의 계획은 다른 폭격지역으로 가서 더 사진을 찍는 거였다. 산산이 부서진 대지

위를 천천히 이동했고 또한 전에 왔던 길을 최대한 세심하게 피하며 진행했다. 이전에

그랬듯이 자주 사용된 잘 닦여진 도로를 또 찾아냈다. 폭격으로 이런 도로들이 더 드러

난 것이다. 도로는 B-52 폭격에도 상처받지 않고 온전했다. 그들은 도로와 평행으로

이동하면서 횡단할 지점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를 찾아 팀이 횡단하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 쿤 상병의 주의를 끄는 게

있었다. 물론 그는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었다. 바로 그때 쿤은 하몬 상병이 손을

어깨 위에 대는 것을 보고, 긴급하게 바로 수풀로 들어갔다.

 

그들이 숨자, 하몬은 조용히 손가락으로 매복을 서고 있는 월맹군 네 명을 지시했다.

다행히 그들은 반대편에 있었으나 우리 앞 20미터도 되지 않았다. 팀은 적의 매복을

피하려 다시 뒤로 이동했다.

 

정찰팀은 19번 도로를 향해 150미터를 조용히 뒤걸음질했다. 그리고 폭격 크레이터

속으로 들어가 엎드렸고 사방을 주시하면서 조용히 기다렸다. 15분이 흘러 아무런

추적 징후가 없자 보넛은 다시 도로 북쪽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팀 임무는 완성

되었으나 문제는 목표지대 적 매복이었다. 팀은 퇴출할 장소를 찾아서 돌아갈 시점

이었다. 다시 근처 크레이터로 이동해 10분을 대기하며 횡단할 곳을 모색했다.

 

갑자기, 팀이 도로 끝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데 북베트남 병사 두 명이 갑자기 15미터

왼쪽의 수풀에서 튀어나와 도로를 횡단하면서 도랑으로 뛰었다. 둘이 도랑으로 점프

해서 들어가기 전에 하몬이 파쇄수류탄을 그들에게 던졌고 이어 쿤도 하나 까서 던졌다.

수류탄 두 개가 둥근 아치를 그리며 도로 건너로 날아갔고 팀은 도로 반대편으로 엄폐

했다. 수류탄 두 개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 폭발했다.

 

이제 정찰팀은 폭격지대를 어슬렁거릴 처지가 아니었다. 19번 도로와 평행으로 놓고

북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방향에는 오래된 프랑스군 요새가 있었다. 보넛은 지도

를 보여주며 국경에서 1km 부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곳은 폭이 넓은 개활지라 퇴출

헬기가 충분히 착륙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이동하면서 팀장 보넛 병장은 무전기로

매복장소를 알려주었고 수류탄 교전이 있었으며, 적 위치에 포병 포격을 요청했다.

 

팀이 오래된 요새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썩은 목재가 쌓여있는 게 보였고 과거

요새의 해자방벽이 정글 위로 솟아 보였다. 요새 코너의 오래된 벙커엔 은폐할

곳이 조금 있고 나머지는 불에 타버린 개활지였다. 보기에 퇴출 장소로 꽤 알맞아

보였다.

 

하몬, 쿤, 소머스가 방어태세를 취한 가운데 보넛이 적거점에 포격을 유도했다.

보넛은 무전기로 22보병연대 1대대 전술지휘소에 현 상황을 보고하고 퇴출을

요구했다. 그런데 보넛이 교신하는 동안 그곳 대대장이 중간에 송수화기를 잡

더니, 일주일 전에 1개 중대가 그 일대에서 작전했고, 거기에 아무런 길도

월맹군도 없는 cold한 곳이라고 주장했다.

 

정찰대원들은 그 지휘관들이 ‘기본적으로 우릴 안 믿는다,’라고 생각했다.

쿤 상병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우린 기분 나빴다. 정말로 기운 빠졌고

삼가하고 줄여서 말해야 믿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달리 의지할 곳도

없다. 그들에게 자비를 구하는 수밖에."

 

헬기로 퇴출하는 과정도 LRRP에서는 기본적인 표준절차가 있다. 그러나 그때 그

대대에선 가용한 헬기가 없다 말했고 그 대신에 보병과 탱크를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오전 8시 경... 대낮이 시작되었고 요새 서쪽 300미터 지점에 월맹군 분대가

벙커에 들어가는 게 보였다. 정찰팀이 전날 밤 비박했던 곳 근처였다. 보넛은 포격

지원을 요청했고, 몇 분후, 하몬은 19번 도로 남쪽에 움직임을 봤다. 보넛은 포병

화력을 더 요청했다.

 

두 시간 후, 거의 정오가 되었을 무렵 아무 탱크도 보이지 않았다. 보넛은 무전기로

다시 전술작전센터를 불러 퇴출이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제서야 탱크

캐터필더를 수리하고 있어, 준비하는 대로 출발하겠다고 응답했다. 대원들은 점차

불안해졌다. 정찰팀 사방에 적이 움직이고 있었고 적에게 발각되는 건 오직 시간의

문제였다.

 

오후 2시 30분, M-48 탱크가 동쪽에서 19번 도로를 타고 쿵쿵거리며 다가왔고

그 뒤에 보병 1개 소대가 행군종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보넛은 팀에게 해자 방벽

위로 올라가라고 했다. 선도 탱크가 도착하자 탱크 지휘관인 중위가 보였는데,

한 눈에도 왜 여기까지 나와서 성가시게 구냐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해치를 열고

소리쳤다. “당신들 지금 지뢰밭 한가운데 있어!”

 

정찰대원들의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분명히 브리핑을 받은 사항이었다.

과거 프랑스군은 요새 근처에 아주 오래전 분명히 지뢰들을 매설했고, 프랑스인

들은 물러나면서 그 지뢰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그 오래된 지뢰들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으나 탱크가 도로를 타고 굴러오자 현실로 다가왔다. 탱크의 무게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쿤은 탱크장을 봤다.

 

"탱크 지휘관은 우리가 적을 봤다는 걸 분명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릴 구하러 나온 것에 짜증까지 내는 눈치였다."

 

탱크장 중위는 보넛에게 해자 방벽에서 내려오라고 하면서, 정찰대를 태워 좀 더

앞으로 가 본 뒤에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보넛을 탱크에 올라가 눈으로 본 적의

활동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해 줬다. 그러나 중위는 대대장이 그곳에 적은 없다고

한 말을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정찰대원 넷은 노출된 상태로 탱크 위에 올라

탔고, 탱크장은 월맹군이 있는 곳을 향해 탱크를 더 진행시켰다.

 

“이건 정말 아냐!” 쿤 상병은 버넛 병장에게 소리쳤다.

 "우린 탱크에서 내려 벗어나자구! 정말로 이건 아냐."

 

그러나 탱크는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캄보디아 국경을 향해 200미터를 더 가자, 직전에 수류탄을 던졌던 장소에

가까워졌다. 탱크는 도로 밖으로 밀고 나가 포를 쐈다. 그러자 2-3번 탱크가 수풀을

향해 대인산탄을 주포에 넣고 쐈다. 이어 정지 없이 도로로 돌아와 캄보디아 국경을

향해 서쪽으로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보병들도 계속 따라왔다.

 

19번 도로 상으로 약 100미터를 다시 이동했고, 정찰대원들을 태운 선도 탱크가

통과하자 월맹군은 지뢰를 폭발시켰고, 트랙이 날아갔다. 이어 두 번째 대전차지뢰

가 대열의 마지막 탱크 밑에서 폭발해 다시 트랙이 날아갔다. 결국 손상을 안 입은 

2번 탱크는 트랙이 날아간 1번과 3번 탱크 중간에 오도가도 못 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도로 북쪽에서 월맹군 병사들이 소총과 RPG를 쏘기 시작했다.

소머스는 탱크 트랙이 박살나고 공격이 시작될 때 탱크에서 뛰어내려 도로 옆 도랑

으로 엎드렸다. 소머스는 작은 파편을 맞아 부상당했다.

 

그리고 몇 초 후에, RPG 로켓 하나가 날아와 보넛 병장의 양 다리 사이를 때렸다.

보넛 병장은 양다리를 벌리면서 몸이 뒤로 날아갔다. 그 로켓탄은 쿤 상병의 위치

와도 매우 가까워서 폭풍이 머리를 때려 고막이 나갔다. 오른쪽 귀가 나갔고 아무

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왼쪽만 간신히 들렸고 왼쪽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 RPG 탄이 하나 더 날아와 터졌고, 쿤 상병의 양쪽 군화를 찢고 파편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에 박혔다. 작은 은색 파편 하나는 쿤의 오른쪽 눈꺼풀을

때려 크게 찢어졌다.

 

3번 탱크가 불구가 된 가운데, 2번 탱크는 포구를 돌려 지근거리에서 수풀에 대인용

산포탄을 발사했고 기관총도 난사했다. 이때 불구가 된 1-3번 탱크도 가능한 포탑을

돌려 수풀에 쏘기 시작했다.

 

하몬은 보넛과 부상당한 쿤이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둘이 있는 곳은 탱크에 장착된

선무전용 대형 스피커가 있었다. 하몬 상병은 최초로 공격당할 때 경상만 약간 입은

상태였다. 그는 정신이 나간 쿤 상병의 단독군장을 띠를 잡아 탱크 쪽으로 비틀어 당

겼고 이어 안전한 도랑으로 끌고 갔다. 그 다음에 다시 탱크로 뛰어 돌아간 하몬은

보넛 병장을 구조했다.

 

치열한 교전 와중에 하몬은 다시 포탑 밑에서 약간의 엄폐만 된 보넛 병장을 향해 뛰어가

구조를 시도했다. 바로 그때 소총탄이 날아와 하몬의 가슴에 두 방을 때렸다. 그 탄의 충격

으로 하몬은 탱크에서 벗어나 딱딱한 도로로 나가떨어졌다. 보넛은 탱크에 여전히 있었으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도와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보병소대는 첫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전투에서 벗어나 모두 엄폐해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도랑에 옮겨진 쿤은 곧 의식을 되찾았고 보넛 병장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소머스도 쿤과

같은 도랑의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쿤이 소머스에게 하몬 상병이 어디 있냐고 물었고,

소머스는 도로에 쓰러진 몸을 손가락으로 지시했다. 쿤은 하몬에게 기어가 몸을 살펴보니

이미 전사한 상태였다. 결국 쿤은 다시 도랑으로 기어왔다. 노출이 되고 고통스런 부상을

당한 보넛 병장은 도와달라고 미친 듯이 발작했다.

 

결국, 매복 장소에서 총격은 사라져 아무도 쏘는 사람이 없게 되자, 탱크도 사격을

멈추고 보병들이 이동했다. 보병소대는 보넛에게 응급조치를 했고 헬기후송을 준비

시켰다. 다른 병력은 일대를 수색해 월맹군 병사 시체 아홉 구를 발견했다.

 

LRRP 정찰대원을 제외하고 다친 사람은, 바로 그 선도 탱크 탱크장 중위였다. 교전이

시작되던 바로 그 시점에 맞아 오른쪽 팔이 날아갔다. 중위와 보넛, 하몬의 몸이 같이

뉘여서 후송을 대기했고 첫 번째 헬기로 후송됐다. 쿤과 소머스는 두 번째 헬기를 타고

플레이쿠 제18외과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쿤 상병은 보넛 병장을 돕지 못했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꼈다. “보넛 병장은 정말

고통스러워했고.... 누군가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난, 백만 번도 더 자기합리화

했다. 월맹군은 그를 미끼로 쓰고 있었다. 내가 보넛 병장을 구했건 못 구했건 아마

결과는 같았을 거다. 난 보넛 병장에게, 왜 내가 다가갈 수 없는지 말했었다. 그는

이해했다. 병장은 내가 올 수 없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난 보넛

병장을 탱크에서 끌어내지 못했다.”

 

12일이 지나,

보넛 병장은 퀴논의 67이동병원에서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원래 그 시간에 그는 고향인 시카고에 있어야 했다.

 

소머스는 치료를 받고 부대로 다시 돌아왔고, 그건 정찰대로 돌아가겠다고

소머스가 지원했기 때문이다. 정찰대는 본인이 포기하고 싶을 때 어느 때나

나갈 수 있었다.

 

대니 하몬의 죽음도 쿤에게 큰 중압감을 주었다.

 

“대니는 내 생명을 구해줬다. 그런데 감사하다고 말할 방법이 없어졌다.

 그는 내 친구였고, 그걸 어떻게 갚아야할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쿤 상병 역시 치료 후에 LRRP 소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 감정적인 상처가 유령처럼 그를 맴돌았다.

그는 계속해서 정찰작전에 나갔지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다음 임무에서, 난 돌아오지 못할 거야.”

 

쿤의 참전이 끝나갈 즈음, 그는 새로운 신참 둘을 데리고 작전에 나갔다.

작전 동안 아무 사고도 없었지만, 그는 자꾸 하몬과 보넛과 같이 나간 작전이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그는 돌아와 말했다. “됐다. 난 지쳤다. 이제 충분하다.”

 

 

 

 

글쓴이 로스엔젤레스 토박이인 톰 코포라는 17세에 육군에 입대했고,

제대한 뒤에 UPI와 NBC News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66년 UPI

통신원으로 베트남에 갔다. 그리고 1970년대에 NBC 방송국 사이공

사무소장으로 베트남을 다시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