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베트남 전쟁사

사이공의 마지막 해병대원들|베트남전쟁

구름위 2013. 11. 25. 12:17
728x90

Last Men Out

     

            By Bob Drury and Tom Clavin

 

 

베?꼬【?� 마지막 24시간, 미국인들과 베트남인 피난민들이 미국 대사관에서, 미 해병대와 공군헬기를

타려고 붐비고 있었다. (사진)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24시간,

 

미국은 해병대의 전투, 기상, 통신 상의 오류에도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사이공이 넘어갈 무렵, 북베트남군은 해변을 차단

해서 해상운송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 일주일 전, 여러 지방이 함락되자 사이공을 오고가는 외국 상업항공기들은

운항을 중단했다. 탄 손 눗(Tan Son Nhut) 군용비행장이 유일한 탈출로였고,

비행장은 폭격도 당해 고정익 항공기는 탈출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한다.

 

 

APRIL 29, 1975.

 

사이공 미 대사관의 버려진 2층 비서 사무실, 해병C중대 중대장 짐 킨(Kean)소령이

창문으로 밖을 응시했다. 하늘은 알루미늄 색깔이었고 구름이 바다로부터 날아와

상공을 통과하고 있었다. 킨 소령은 대사관에 남아 있는 해병대 중에서 가장 선임

장교였고 해병대 보안위병근무의 로테이션으로 들어왔다.

 

대사관의 킨 소령은 총 46명의 미 해병대 경비대원을 데리고 있었고, 그 중 15명은

도시 건너편 미국 국방성 수행원 사무소(U.S. Defense Attache’s Office: DAO)에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의 전사자가 ‘7일성도 병원’ 어디 쯤에 누워있었다.

 

2년 전, 미 국방성이 남베트남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되풀이된 공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극비리에 사이공 비상탈출계획을 마련했다. 위험이 도래한 당시, 북베트남

군대가 시시각각 수도 사이공으로 향하고 있었고, 대안 없이 탈출 방법은 헬리콥터로

모아졌다:

 

이 헬기 탈출작전의 암호명은 ‘빈번한 바람’으로,

이는 수행원사무소+미 대사관+비행장을 중심으로 계획이 준비된다.

 

 

 

 

대사관 옥상의 헬기장은 UH-1 휴이헬기의 힘을 감당하기에 충분했다. 대사관을

설계한 건축기사에 따르면 그 헬기장은 CH-46 킹나이츠 헬기보다 무거운 것도

감당할 수 있다 했다. 더 큰 해병대의 CH-53 Sea Stallion은 대사관 정원의 랜딩

존에서만 착륙이 가능했다.

 

사이공 비상탈출 신호는 몇 주 전 이미 떨어졌다: 베트남 미군 라디오 방송에서

이런 문구가 흘러나왔다. “사이공의 기온은 화씨 105도, 더 오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 빙 크로스비의 레코드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란 노래가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이 노래의 의미는 사이공에 있던 군인, 민간인 등등, 모든 미국인들은

탈출하라... 이런 뜻이었다. 이 탈출작전이 발효되자, 미 해병대-공군

-해군, 심지어 에어 아메리카의 헬리콥터까지 모두 소집되었다.

 

 

1975년 4월 29일, 오전 10:51

 

13년 전 첫 번째 미군 전사자가 나온 이래 미국 대사가 가지고 있던 남베트남에

대한 권한은 포기되었고, 이제 모든 건 군사작전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정오에서 30분 지나, 미 해군 A-7 콜세어 제트전투기와 미 공군의 F-4 팬텀이

태국의 기지에서 이륙해 남베트남 영공으로 들어왔다. 이 전투기들의 임무는,

엑세스급 경항모 핸콕에서 이륙한 미해병 헬기와 미 공군의 졸리그린 헬기들을

엄호하고 공항에 있는 국방부 수행원사무소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당시

구조를 이륙한 헬기는 총 36대나 됐고, 엄호를 위해 해군함대의 해병대대가

엄호병력으로 나섰다.

 

미 해병대 리차드 카레이 준장은 해군함정 블루 릿지에 타고 이 탈출작전을 무전기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케어리 준장은 미국대사 마틴을 불러 퇴거할 사람이 몇 명 남아

있냐고 물었다. 대사는 정확히 몇 명인지 주저했고, 계획된 퇴출작전은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대사관 안뜰에 비박을 하며 출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레리 준장은 머리가 복잡했다. 곧 대사관은 비워져야 했고 일단 버스로 대사관을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케어리 준장은 조지 스틸리 제독에게 무전으로 연락해,

최대한 헬기들을 퇴출작전에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이공 동쪽 끝에서는 비와 돌풍이 불고 있었고, 첫파로 나선 해병대 조종사들은

시계가 제로에 가까웠다. 제7함대 공중교통 통제관은 구름들이 몰려온다고 헬기

들에게 대기를 지시했다. 당시 고도는 분류가 되어 ‘미시건 전용로’는 6,500 피트로

월남으로 들어오는 항공기의 고도였고 ‘오하이오 전용로’는 5,500 피트는 월남을

떠나는 항공기 고도였다. 구름이 몰려오면 항공기들은 모두 그 아래 고도로 내려

가야 하고, 그러면 적의 소총탄이나 RPG에 당할 수 있는 높이였다.

 

40마일 거리 대사관에는 가벼운 이슬비가 내렸다. 대사관 옥상 헬기장 끝에 있던

킨 소령은 상공의 헬기를 봤다. 소령은 헬기가 DAO를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소령은 안으로 들어가 전화기를 들어 DAO의 알프레드 그레이 대령에게 걸었다.

 

킨 소령은 예상한 답을 들었다. 대사관 모든 직원과 경비대원들이 버스로 DAO로

이동해서 퇴출한다고 카레이 준장과 스틸리 제독이 지시했다는 거였다. 카레이

준장은 헬기의 경우 대사관에 남은 마지막 소수 해병대원에게만 쓰겠다는 것.

 

“우린 헬기가 필요합니다. 아무 많이,” 킨 소령이 말했다.

 

소령은 대사관 안에 대사관 직원과 해병대원, 그리고 100명의 피난민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사관 벽 밖에는 약 1만 명의 베트남인들이 둘러싸고 있다고 말했다. 킨 소령

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고, 거기 주안 발데즈 상사가 있었다.

 

그는 별명이 Top으로 소각실 밖에 있었다.

“헬기가 옵니다. CH-53 헬기들이 저기 내려옵니다. CH-46은 저 위에 있고.”

 

 

 

 

오후 6시 근처...

 

킨 소령은 대사관 옥상에서 멀리서 빨래판 두들기는 헬기 로터음을 들었다.

잠시 후 상공에 씨나이츠 헬기 네 대가 줄을 지어 나타나 차례로 하강하는

게 보였다. 해병대원들은 피난민들을 20-25명씩 네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계단을 통해 대사관 옥상으로 이동시켜 빈 CH-46 헬기에 탑승시켰다. 머지

않아 CH-53 헬기들이 헬기장에 다달았다.

 

헬기들은 10분 간격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매우 천천히 수직으로 내려왔다.

대사관 옥상의 헬기장이 70(21미터)피트 크기였기 때문이다. 만약 헬기가 그

착륙판에 충돌할 경우 아무런 방법이 없고, 그 이후는 올 수 없게 된다.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이었다.

 

조종사가 소리쳤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적어도 천 명.”

“함대가 그 정도는 수용 못 합니다.”

 

킨 소령은 으쓱했다.

 

“잠시 밖에 머물지 못해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합니다.”

 

헬기 조종사가 헬기 비가동 시간(downtime)이 필요하다는 걸 킨 소령은 알고

있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조종사는 착륙장이 비워지고 모두 탑승한 것을

일어서 확인하고는, 헬기 엔진에 힘을 주어 이륙한 뒤 사이공 강 윤곽을 따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헬기는 하루 종일 비행해 지친 상태였다.

 

하늘은 어두워졌고 카레이 준장은 킨 소령에게 DAO의 철수가 완료됐으며, 대사관은

옥상을 통해 잘 철수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명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헬기

조종사는 헬기를 대사관으로 향해 하강시켰으나 눈으로 보기 점차 힘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온 헬기 조종사는 Task Force 76 데이빗 위스미어 제독에게 명령을 받았

는데, 모든 CH-53 헬기들은 어두워지면 퇴출작전을 중단이라는 거였다. 어둠 속에서

대사관 옥상에 착륙할 수는 없다는 것.

 

킨 소령은 CH-53 조종사에게, 착륙장에 브로드웨이처럼 불을 켤 테니 시도해 달라고,

상부에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해병대원들이 차량의 휘발유를 꺼내 대사관

외곽에 불을 놓겠다고 했다. 새벽 1시가 되어도 공중은 조용했다.

 

어스름한 가운데 움직이는 군복들, 대사관의 미 해병대원들은 윕-윕-윕 거리는 헬기

로터 음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남겨진 가운데

퇴출작전이 종료된 것인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함정 불루 릿지에서는 카레이

준장과 위트미어 제독이 만나 논의하고 있었다. 위트미어 제독은 워싱턴에서 온 전문

에 따라 이제 작전은 종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카레이 준장은 노기를 눌렀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위트모어 제독에게 말했다.

현 시간에 이미 조종사들은 이미 강제적으로 충분히 쉬었으며, 다시 날아올라 대사관

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그러지 못하면 대사관의 해병대원들은 사이공으로 다가오는

북베트남군에게 포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명도 남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배의 대기실과 비행갑판 선실 등등 모두 만원이었다. 이어 조종사들이 소환되었고

다시 이륙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해병대 헬기 전대 첫 번째가 공중으로 올라갔고,

동이 트려면 여전히 4시간이 남아 있었다.

 

“저거 들려요?”

 

주안 발데즈 상사는 상공을 보는 킨 소령을 한번 보고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새벽 2시 15분, 해병대 H-46 헬기 두 대가 대사관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첫

번째 헬기가 하강할 때 킨 소령은 헬리패드에 웅크렸다. 킨 소령은 조종석으로

뛰었고, 조종사는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소리쳤다.

 

“19대가 더 옵니다. 소령님. 그게 전부입니다.”

 

소령은 마음속으로 셈을 했다. 적어도 850명의 피난민이 대사관 안에 흩어져 있고,

먼저 200명의 대사관 직원과 해병대원, 미국인들을 계산했다. 천 명이 넘는 사람이

헬기 20대에는 절대 탈 수 없었다. 조종사와 토론할 필요가 없었다. 최선을 강구

해야했다.

 

새벽 3시 30분, 카레이 대령은 백악관에서 긴급전문을 받았다.

포드 대통령은 모든 정치적 요구를 묵살하고 간결한 명령을 내렸다:

마틴 대사를 즉시 퇴출시켜라. 또한 베트남인들은 더 이상 퇴출시키지 마라.

 

CH-46 레이디 에이스 09호의 조종사 게리 베리 대위와 윙맨 크라우스 샤거트

대위가 구출 1파였다. 그들은 미 해군 USS Dubuque에서 이륙해 총 15시간 동안

사이공을 오가며 32번의 여정을 소화했다. 베리 대위가 대사관 지붕에 도착하자,

그는 다리에 달린 클립보드에 유성펜으로 썼다. “대사는 떠난다. 이제 곧.”

 

킨 소령은 베리 대위에게 상부 허가가 필요하다고 했고, 그러자 베리 대위 헬기의

승무원장이 킨 소령에게 헤드셋을 주었다: 카레이 장군은 소령에게 대통령에게서

온 지시라고 말했다. “모든 대사관 잔류자를 탑승시킨다. 그러나 미국인에 한한다.”

 

“장군님, 내 해병대원들이 외벽과 대사관 정문에 있습니다. 정문의 해병대원들

중간에 기다리는 피난민 400명이 있습니다. 내 해병대원들만 빼내고 나머지는

뒤에 두고 떠나란 말입니까?”

 

카레이 대령의 목소리가 공중에 울려퍼졌다.

“소령, 먼저 자네가 나와. 미합중국 대통령의 지시를 이해하라.”

 

혼란 가운데 마틴 대사가 헬기를 향해 갔고,

그의 경호원 중에 한 명이 대사관 깃발을 뽑아 접어 넣었다.

 

대사는 기다리던 킹나이츠 헬기에 올라탔다.

1975년 4월 30일, 오전 4시 58분이었다.

 

베리 대위가 블루 릿지에 착륙하자,

그는 승무원들에게 인터컴으로 말했다.

“우린 해병들을 구하러 돌아가야겠지?”

 

카레이 준장과 무전기를 통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킨 소령은 더 탈출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하지 않았다. 베리 대위의 CH-46 떠나자, 그는 다른 헬기를 기다리는

것이 헛되다는 걸 깨달았다...

 

“더 이상 CH-53은 없다,”

킨 소령이 알렸다. “이제 미국인이다. 지붕으로.”

 

킨 소령이 해병대원들에게 달려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퇴각 신호를 하면 조용히 정문에서 반원형으로 물러난다.

  절대로 뛰거나 소리치지 마라.”

 

해병대원들은 15명씩 세 그룹으로 원형으로 모였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난민 400명이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깐이었지만 뭔가 천천히 누설되는

것 같았다. 가장자리에 있던 베트남인들이 우리 미군을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응시했다.

그러자 해병대원들은 대열을 무너트리고 대사관 로비로 들어갔다. 시 외곽에 포탄 떨어

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미 해병대원들은 두 번째 방어선을 만들었다.

 

“저기 사람들이 온다!” 누군가 소리쳤고, 대사관 정문은 성냥개비처럼 버려졌다.

 

해병대원들은 이중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대원 여러 명이 6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에 키를 돌려 엘리베이터 전원을 껐고, 나머지는

계단을 통해 오르기 시작했다. 외곽 방어는 버려졌고 이제 시간에 대항해 경주

했다. 대원들은 대사관 계단을 통해 폭풍처럼 질주했다.

 

킨 소령은 계산했다.

해병대 60명과 다른 부대원 몇 명이 옥상에 흩어져 있었다.

“대원들을 3-4명 씩 무리를 지어 조를 짜라고 했다.”

 

카레이 준장은 블루 릿지 갑판으로 뛰어나왔다.

누군가 베리 대위의 믿을 수 없는 암호문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우리를 나왔다.”

 

마틴 대사가 탈출한 것 외에, 모든 사이공 미군 대원들이 퇴출되었다는 뜻인지

는 알 수 없었다. 하여간 모든 항공작전을 이제 중단을 고려해야 했다. 헬기들은

이제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광란의 상태에서 카레이 대령은 호놀룰루의 루 윌슨 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군님, 이제 명령권의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누구도 군법에 넘겨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계급에 상관없이. 이제 해병대의 모든

비행을 금지하겠습니다. 이제 장군님도 명확하십니까?”

 

분노에 찬 남베트남 사람들이 대사관 계단통으로 몰려든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정문의 쇠사들도 쇄도하는 사람들이 깨트렸다. 해병대원들은

정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고, 군중들 한 명씩 한 명씩 대사관 건물 외부

문을 통해 지붕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서 다가오는 헬기 로터 고동소리가 들렸다. 가련한 영혼들의 소리도

계단통에서 역시 들리고 있었다. 잠시 지옥의 아수라장이 연출되면서 문에 걸린

조임쇠가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려달라는 소리와 같았다.

 

결국 씨나이트(Sea Knight) 헬기 후방 바퀴가 헬리패드에 닿아 퉁 튕겼고, 하늘은

완전한 파란색 잉크색이었고 밤과 새벽의 중간이었다. 헬기 엔진 출력이 약해지고

베리 대위의 윙맨 샤거트 대위는 얼굴을 내밀고 씩 웃었다.

 

베리 대위는 바로 위 상공에 대기하면서 샤거트 뒤에 내려오려 하고 있었다. 베리

대위가 남동쪽을 응시하니 점차 여명이 터오면서 화난 벌떼 같은 검은 점들이 보였다.

그 ‘벌떼’들은 남베트남군 헬리콥터들 수 백 대가 해안에서 이륙해 함대처럼 형성되는

모습이었다. [탈출하는 헬기를 뜻함. 잇빨 주]

 

샤거트 대위의 헬기가 이륙하는 데 약 10분이 걸렸다.

그러자 베리 대위의 헬기가 밑으로 내려갔다.

킨 소령은 다시 속셈을 하고 발데즈 상사에게 얼굴을 돌렸다.

 

“모두 못 탑니다,” 발데즈 상사가 말했다.

 

킨 소령은 사방을 둘러봤다.

“Top, 나한테 아홉 명만 줘. 내 인생에 도박 한번 해보지 뭐.”

 

레이디 에이스 09호가 최대한 채우고 이륙할 준비를 했을 때, 베리 대위가

킨 소령을 향해 엄지를 들어올렸고, 다시 조종석 판넬을 확인할 때 소령이

조종석으로 걸어왔다. 베리 대위는 헤드셋을 머리에서 벗고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킨 소령이 말했다.

“자네가 우릴 데려다줄 것으로 믿는다. 우릴 놔두고 떠나지 마.”

 

워싱턴 D.C.에서는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마틴 대사의 탈출소식을 들었고,

마지막 미국 헬기가 사이공을 떠났다는 보고를 들었다. 마틴 대사가 7함대에

들어왔다는 말이었다.

 

이제 키신저는 마지막 일을 하나 했다:

언론 무리와의 인터뷰였고, 그는 아주 간결하게 말했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이었다.”

 

사실 키신저는 준비한 성명서가 있었으나 백악관에서 걸어 나오면서 분명한

문구로 말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베트남은 죽었다고. 그러나 대중은 이해하지

못 할 거였다. 그들은 피를 더 원했다. 키신저는 미국이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한 기자가 모든 사람 마음 속에 있던 질문을 했다.

 

“장관님,

 사이공 대사관에 아직도 미 해병대원이 있다고 들리는데,

 알고 계십니까? 정말로 남아 있나요?”

 

키신저는 어리둥절해 했고, 고개를 돌려 뒤를 응시했다. 그는 돌연히 뒤로 돈 다음

회견장소를 떠났다. 키신저는 비서에게 전화기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곧장 7

함대를 전화로 불렀고 그 실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키신저는 대통령

에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군들은 미군 포로들이 가게 될 북베트남의 포로수용소에 관해서 모두 들었다.

하노이 힐튼 혹은 ‘호랑이 우리’라고. 마이크 설리번 하사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마음 속이 복잡했다. 끝이 이럴 줄은 몰랐다. 베트남도 또다른 한국이 되어 나라의

중앙이 갈리고 남쪽은 정전협정으로 불안한 날을 보내야 했다. 바로 미국에 의해서.

하사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모두 들어오라고 해.”

 

한 두 명씩 해병이 들어오자 누가 물었다. 

“7함대가 앞바다에 아직 있는 거야?”

 

“물론 있어.” 설리반 하사가 말했다.

 

“난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을 거야.”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기관총을 잡았다. “난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

 

“우리 투표하자.” 설리반이 말했다.

 

결과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투표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명씩 표를 던졌다.

모두 싸우자는 쪽이었다.

 

킨 소령은 누벽을 통해 밖을 주시하면서 시계를 봤다. 마지막 헬기가 떠난 지 거의

한 시간이 흘렀다. 킨 소령 뒤에 테리 베닝톤 병장이 M-60 기관총을 잡고 웅크려

있었고 데이브 노먼 상병은 헬리패드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그때 이들 세 명은

동시에 무언가 남동쪽 동 트는 푸른 하늘에 비행운을 목격했다.

 

“킨 소령님!”

 

킨 소령은 쌍안경을 들었고, 안구에 CH-46 윤곽이 점차 보였다. 해병대 AH-Cobra

건쉽이 네 대 더 보였고, 그 아래 씨킹 헬기가 반 마일 거리에서 공격대형으로 오고

있었다. 지원헬기들이 탄막사격을 시작했고 마지막 헬기들이 오고 있었다. 결국 CH

-46의 육중한 검은 바퀴가 옥상 헬리패드에 닿았다. 승무원장이 후미문을 내렸다.

헬기 옆 창문을 총알에 박살 나 있었다.

 

킨 소령은 조종석으로 뛰어가 헬기 소음보다 더 큰 소리를 질렀다.

“기다렸다! 올 줄은 몰랐어!”

 

해병대 조종사 톰 홀벤은 씩 웃으면서 엄지를 들었다. 코브라가 기수를 내리면서

대사관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더 높은 곳에서는 미 해군 A-7 콜세어 제트기가

원을 그리며 비행운을 남기며 날고 있었다.

 

킨 소령이 해병대원들을 헬기 문으로 선도했다.

 

누군가 소리쳤다. “최루탄 투척!”

 

하사관 보비 슈라거가 안전핀을 뽑아 최루탄 두 개를 기총수 문으로 통해 밖으로

던졌다. 바닥에서 쉬-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게 실수였다는 걸 모두 깨달았다. 헬기 로터가 최루가스를 빨아들여 조종석

과 탑승칸에 밀려들었다.

 

조종사의 눈이 멀었다.

헬기가 들썩했고 스키드도 세 번이나  튕겼다.

 

그 연기 속에서 발데즈 상사는 내려가 옥상으로 올라오는 문을 잠갔다.

 

모두 숨이 막히고 눈이 부어올랐다.

 

조종사 홀벤과 부조종사의 눈이 최루가스 때문에 붉게 물들었다.

 

다행히 바람이 불어 최루가스는 날아갔지만 여전히 실눈을 뜨고 봐야 했다.

 

군중들이 엄청난 파도로 계단을 향해 휘몰아쳤고,

태양빛이 반사하지 못하게 검게 칠해진 옥상에서,

 

헬기는 이륙했다....

 

‘빈번한 바람' 작전 동안,

사람들은 이걸 미국의 덩케르크라고 생각했다.

 

미 해병대 헬기들은 사이공까지 총 682회를 출격했고, 총 미국인 395명과

베트남인과 제3국인 4,475명을 탈출시켰다. 공항의 DAO 사무실을 통해서는

미국인 978명과 베트남인 1,220명이 출국했고, 이 안에는 대사관 탈출인원도

포함된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들이 사이공을 접수하기 전에 총 7천 명이 탈출했다.

 

밥 드러리는 톰 클레이빈과 두 권의 책을 썼다. [(태풍, F중대의 사수]

 

 

1975년 3월 29일, 남베트남 다 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