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우리 중대가 틀어막고 있는 ‘캇숀 ’ 계곡 지역에 적 활동이 활발하고 적정이 심상치 않았으므로 계곡 북쪽의 산악지역에 대한 사단작전이 시작되었다.
‘월계작전 ’으로 불렸던 이 작전이 사단 단위의 대규모 작전으로 전개되었던 이유는 그 동안 지역내의 적정과 월남군 및 민간인으로부터 얻은 첩보들의 영향도 컸지만 , 우리 중대가 주야간 매복에서 얻어낸 전과와 전과와 관측보고 사항이 작전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당시 내 목에는 월남돈 육십만 피아스터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 노획된 문서나 포로 및 지방인 첩자로부터 획득된 첩보에 의하여 적들은 목에 가시처럼 여겨진 우리 중대기지를 습격해서 싹 쓸어버리기 위해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과히 기분 좋은 소문은 아니었다 . 겉으로는 중대원들 앞에서 올 테면 와라, 한바탕 붙어보자고 큰소리 치면서 지냈지만 사실은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밤이면 적에게 중대가 습격받는 꿈도 꾸었다. 상급부대에서는 중대기지가 적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해주었다.
탄약이 추가 지급되고 불도저를 지원 받아 외곽 방호벽을 견고히 구축한 뒤 그 위에 호를 준비하고 철조망 보강작업까지 마쳤다 . 마치 옛 성처럼 외곽이 튼튼해졌고, 내부는 관측이나 직사화기로부터 보호 받게 되었다.
각종 예상되는 상황과 시간대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예측하면서 부단한 훈련을 하였고 , 포병 이용과 항공기 운용에 대해서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적이 중대기지를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린 것은 우리의 수색정찰이나 매복활동을 위축시키고 , 기지방어 때문에 병력이 기지 내에 묶여 있도록 하려는 심리전일 수도 있었다. 상급부대에서도 당분간은 기지방어 위주로 활동하면서 지나친 야외활동은 삼갈 것을 요구해 왔으나 나는 오히려 주간 수색과 야간매복을 더욱 강화했다.
중대기지를 습격할 것이라는 소문과 지대 내의 많은 적정들로 인하여 중대원들은 나를 중심으로 저절로 똘똘 뭉치게 되었다 .
‘철저하게 훈련하고 대비해야 우리가 산다 ’는 동기가 저절로 형성되어 중대원들은 밤낮으로 계속되는 반복훈련을 잘 견디어 주었다 .
우리 중대는 하루 전날 밤에 도보로 침투했다 . 중요한 고지 몇 군데를 야간에 장악하고 난 뒤, 다음날 주간에 헬기로 각 고지에 착륙하는 본대를 안전하게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야간침투라도 정확히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으나 도중에 적과 조우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
적들은 통상 우리가 깊은 밤만 되면 한곳에 있으면서 매복 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그래서 먼저 우리를 보았더라도 확인하기 전까지는 발포하지 않을 것이므로 과감하게 행동하든가 생포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예행연습까지 시켰다.
당시 연대나 사단급 제대의 작전은 헬기로 산의 고지에 착륙하여 능선을 따라 횡으로 전개하면서 , 인접지역에 착륙한 다른 대원들과 손을 잡아 연결하므로써 일단 포위권을 형성한다. 그 다음에 조직적으로 한발 한발 포위권을 좁혀가면서 정밀 수색하는 방법을 취했다.
따라서 고지에 착륙하는 시기가 가장 취약했으며 일단 착륙하여 병력을 전개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병력을 가득 태운 헬기가 착륙 직전에 적 지상화기에 맞아 적 지역에 불시착하거나 추락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헬기 안에 타고 있는 우리 같은 보병들은 미군 조종사와 언어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 불안함이란 이루 형언할 수가 없다 . 착륙할 때가 되면 발바닥이 간질간질하고 항문 근처가 쭈삣쭈삣했다. 적 지상화기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생기는 신체 이상반응이었다.
밤새 부지런히 걸었다 . 적의 소굴 지역에서 일개 중대 병력을 이끌고 조심조심 가다 보니 예상보다 늦었다.
내가 대대 전술지휘소 예정지역에 도착한 것은 해가 떠오른 이후였다 .
대대장님과 전방지휘소 요원이 탑승한 헬기가 이륙했다는 연락이 왔다 . 아직도 우리는 대대 지휘소가 위치할 산 능선의 작은 풀밭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군이나 미군이 근래에는 이곳에 와서 작전한 일이 전혀 없었는데도 풀 위에 C-레이션 박스가 놓여 있었다.
순간적으로 폭약이 담긴 부비츄 랩이 틀림없다고 판단한 뒤 살금살금 기어가 미리 준비한 철사고리를 걸고 잡아당기니 아니나 다를까 , 엄청난 화염과 함께 폭음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이때 병사 두 명이 엉덩이와 허리에 엄지손가락 만한 돌멩이가 박혀 뽑아냈으나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
적들이 언젠가 이런 평지에 헬기가 착륙할 것이라 판단하고 착륙하는 헬기를 화염으로 폭파시키려고 시도한 것이엇다 .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 또 하나가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진지나 호를 구축할 때 사용하는 마대(sand bag)에 무엇이 가득 든 것처럼 보였다.
‘틀림없이 저것도 가루 TNT 자루다 ’라고 생각하고 제거하려는데 공중에서 난데없이 대대장님을 태운 헬기가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
나는 무전기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다 .
“밑에는 부비츄랩 밭이니 착륙하지 말라 . 화염에 쌓여 헬기가 터진다. 착륙하면 다 죽으니 내리지 말라. ”
헬기는 공중을 한바퀴 돌더니 내가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
밑의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오히려 나를 보고 반갑다고 손까지 흔들었다 .
아무리 무전기에다 고함을 쳐도 막무가내로 계속 하강했다 . 무전기를 팽개치고 비행기 앞쪽으로 뛰어가 조종사가 보이는 데서 악을 쓰면서 손짓을 했다.
“야 ! 미친놈아 그냥 내리면 다 죽어 빨리 올라가. ”
미군 조종사가 알아 들을 리가 없었다 . 그래도 헬기는 계속 하강을 시도하기에 나와 병사 한 명이 조종사가 보는 앞쪽에서 그대로 헬기 밑바닥으로 뛰어들어가 총으로 헬기 바닥을 ‘꽝꽝 ’후려쳤다 .
이제는 헬기의 센 바람에 의해 인계 철선이 힘을 받아 마대 자루의 폭약이 터질 판이었다 .
그제서야 지상의 행동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착륙을 포기한 채 공중으로 올라갔다 . 우리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헬기 프로펠라 바람에 인계 철선이 압력을 받아 터질 것 같았다 . 다행히 터지지는 않았다. 헬기 승무원인 미군 조종사와 대대작전 장교 사이에 언어장벽으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3소대장 한중위를 시켜 제거 시켰더니 조금 전처럼 커다란 불기둥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헬기에 탔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 훗날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지만 아마도 지금쯤은 전부 잊었을지도 모른다.
우물우물하면서 헬기를 그대로 내리게 했다면 타고 잇던 대대장님과 본부요원이 어떻게 되었을까 , 지금도 돌이켜보면 아찔할 뿐이다.
중대는 당일 대대본부에 작전지역을 인계한 후 헬기를 타고 높은 산악 지대로 이동했다 .
첫날은 헬기로 각 고지에 착륙하여 능선을 따라 인접부대와 연결해서 포위권을 형성하는 것으로 임무가 끝났다 . 착륙한 당일은 전방에 대한 수색을 하는 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부대전체의 역량을 집중하여 우선 도망하는 적을 포위권 내에 가두어두기 위해서였다.
작전 첫날은 공중에서 많은 헬기가 적을 포위하기 위한 병력을 실어 나를 때 , 적과 교전이 생기면 헬기가 위험하므로 포병화력이나 무장헬기 지원을 적시에 받지 못한다.
화력지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병력 수송중인 헬기는 전부 착륙해야 되고 , 따라서 포위권 형성이 늦어지면 작전 전개에 큰 차질이 초래된다. 그러므로 지휘관들은 누구나 착륙 즉시 일어나는 교전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침 일찍 고지에 착륙한 중대는 몇 시간 만에 포위권 형성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늦게 작전 지역으로 투입된 부대 그리고 착륙 지역을 잘못 찾아 엉뚱한 곳에 착륙한 부대 등을 조정하느라 첫날은 혼잡하기 말할 수 없으며 밤늦게까지 포위권 형성이 안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 적은 수년간 우리와 싸우면서 이러한 작전 절차를 잘 알고 있었는지라 헬기가 날아오기 시작하면 느긋하게 서두르지 않고 지역 내에서 미리 준비해 둔 비밀 동굴 속으로 잠적을 하거나, 아군의 접근로와 자기들의 은거지 부근에다 지뢰나 부비츄랩을 설치하고 빠져나가 버리곤 했다.
적의 이런 수법을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
그래서 우리는 고지에 착륙하자마자 2소대장 임중위가 인솔하는 2개 분대를 뛰다시피 빠른 속도로 능선을 따라 계곡 쪽으로 내려보냈다.
적이 도망간다거나 부비츄랩이나 지뢰를 설치하기 전에 공격하여 기습을 달성하고 피해를 줄이려는 의도에서였다 . 처음 고지에 착륙했기 때문에 우리도 취약점이 많아 조직적이고 전체적인 작전은 할 수 없었지만 적은 우리보다 더 취약하고 어수선했다.
아니나 다를까 , 좌측 계곡으로 뛰어내려간 소대장 조에 의해서 포위망을 탈출하려는 일단의 적 무리가 포착되었다.
지금까지 만난 적은 교전이 붙으면 ,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접전을 단절하고 빠른 동작으로 도망가거나 교묘하게 파놓은 작은 굴 속으로 잠적했다. 그런데 이번에 부딪힌 적은 종전에 싸우던 적과는 달랐다. 수색해 내려가는 우리 병력과 소총 유효사거리 및 가시거리 내에서 우리를 물고 늘어지며 내려갔다.
굵은 나무가 빽빽히 들어차 있는 정글에서는 100m정도만 이격 되어도 보이지 않거니와 사격해도 나무에 박혀서 몇 미터 나아가지 못하고, 포를 쏴도 나무 위에서 터지므로 폭음 소리만 크지 파편 효과는 크게 감소된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면 적은 뒤로 물러나고 우리가 정지하면 적도 정지하여 나무 뒤에 숨어서 총을 쐈다 .
우리를 살상지대로 유인하기 위해서 또는 본대의 도주 시간을 벌기 위해서 지연전을 하는 것이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도 했다 .
총소리로 소대장조의 위치와 적의 위치를 확인한 후 선임 하사조 2개 분대를 현 접적지점보다 약 300m정도 아래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 있다가 적이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측방에서 공격토록 했다.
드디어 선임 하사조가 계곡에서 소대장조를 물고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는 적을 확인하고 공격을 개시하니 적은 완전히 옆구리에 기습을 당하여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
능선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기습을 받은 적의 무리는 그 근처에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
동굴의 맞은 편에서 동굴쪽을 향해 사격하면서 밑으로부터 기어 올라가 동굴 입구에 도착하여 소리를 질렀다 .
“손들고 나와 ! ”
“따다당 .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굴 안에서 적탄이 날아왔다 . 다행히 출입구는 단 하나뿐이었다. 입구는 이미 우리가 봉쇄했고, 다른 곳에 혹시 출구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동굴 입구 바로 위까지 접근하여 단단히 봉쇄했다 . 그리고 나서 긴 나뭇가지 끝에 수류탄을 매달아 입구에 집어 넣고 안전핀에 매달린 부비츄랩 제거기 줄을 잡아당겨 터뜨렸다. 크레모아도 같은 요령으로 사용했다.
이때 적들은 나무에 매달린 크레모아가 동굴 입구까지 들이 닥치자 크레모아를 향해 사격했다 . 투항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동굴 위에서 야전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
동굴천정 바위틈으로 크레모아와 수류탄이 터질 때 생긴 화약 연기가 새어 나오는 곳이 있었으므로 야전삽으로 조금 팠는데 곧 구멍이 약간 생겼다 .
우리는 그 구멍에다 수류탄을 수십 발 집어 넣었다 . 동굴 안에서는 계속 수류탄이 터졌다.
크레모아를 끈에다 매달아서 구멍 안에 넣고는 밑바닥에 닿기만 하면 터뜨리고 , 전후좌우로 방향을 조정하면서 떠뜨렸다. 소총을 구멍 안에 집어 넣고 총을 빙빙 돌려가며 연발로 쏴댔다.
“뜨르륵 드득 . ”
동굴이 얼마나 큰지 자세히 몰랐지만 이만하면 저항을 포기하고 손들고 나오겠지 생각하면서 안에다 대고 나오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아무 소식이 없었다 .
플래시를 켜서 안을 비추었으나 흙먼지와 화약연기 때문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
마침내 굴 안으로 병사들이 들어갔을 때는 발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일단의 적 무리가 뒤엉켜 있었다 .
오장육부가 다 터지고 , 똥 오줌이 뒤섞여 온통 범벅이 되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피비린내와 똥 오줌 구린내 그리고 화약 냄새가 뒤섞여 구역질이 나서 입을 틀어막았다.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 속에서도 살아 있는 적이 있었다 .
입구 반대쪽에 바닥보다 키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었는데 그 위에 남자와 여자가 벽 쪽에 바싹 붙어 엎드려 있다가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닫 .
우리 병사들이 안으로 들어가니 “따이한 , 따이한 ”하고 불렀다 . 그러나 그는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흔들었기 떄문에 이를 보고 놀란 병사의 총에 맞아 발목의 복숭아뼈가 부상당한 채 붙들렸다.
우리 병사들은 적이 투항할 때 손에 보따리 같은 것을 든 채 손을 들면 무조건 쏴 버리도록 교육 받아 왔다 . 왜냐하면 적들은 폭약 가루가 가득 찬 자루 비슷한 것을 들고 투항하는 척 하다가 우리가 안심하고 있는 사이에 집어 던져 터뜨리기 때문이었다. 적들은 ‘꽝 ’하고 폭발하는 사이에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총을 난사하고 도망가는 수법을 자주 썼다 .
월맹 정규군 18연대 중대장은 굴 안에서 처참하게 죽었고, 통신 대장은 생포됐다. 이 포로의 진술로 연대 본부 인원 1명이 폭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 연대장을 잡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이번 작전의 첫 전과로서는 충분히 만족할 만했다 .
산에 착륙하자마자 두세 시간 만에 세운 전과였다 .
잡힌 포로들은 전부 동굴 안에서 고막이 파열되어 제대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동문 서답만 했다 . 남자포로는 귀옆에다 총을 몇 발 쏘면서 위협하니 묻지 않은 사항도 줄줄 불어대는데, 여자포로는 얼마나 독한지 눈알을 뒤집어 뜨고는 모른다고 앙칼진 소리를 질렀다.
동굴에서 능선까지 업어주었더니 살려주어서 고맙다고 연신 엎드려 절하는 사내놈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
지금까지 적들은 포위되면 소수 인원으로 분산하여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려고 발버둥만 쳤다 . 그럴 때마다 적은 우리의 매복조에 발각되어 전멸 당하곤 했다.
우리는 삼삼오오로 분산되어 살금살금 기어오는 적을 잡는데 매우 숙달되어 있었고 , 늘 그렇게 오려니 하고 미리 대기하였다. 그런데 근자에 이르러 월맹 정규군이 나타난 뒤부터 그들의 전술이 소위 물소전술, 제파식 돌파 등 다양하게 구사되고 있었다.
1968년 3월 하순경으로 생각된다.
월맹 정규군 대대규모가 ‘안영’이라는 마을에 은거해 은거해 있다는 첩보를 갖고 우리 1연대가 투입하여 포위한 적이 있었다. 마을이래야 직경 1km 남짓하고 마을 외곽은 대나무가 무성하며 주변은 전부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적은 마을 외곽의 대나무숲 밑에 개인호를 구축해 있었고 , 우리는 펀펀한 논바닥에 논둑과 도랑을 따라 포위했다 견고한 진지가 있는지도 모르고 늘 하던대로 APC(병력 수송용 장갑차)를 타고 들어가다가 대전차화기공력을 받고 뒤로 물러났다.
미 공군 팬텀 전투기의 공중공격과 우리가 갖고 있는 곡사화기 사격을 병행하면서 공격했지만 또 실패했다. ‘그 수많은 화력을 퍼붓고도 왜 실패했을까?”
적은 마을 외곽을 따라 대나무 뿌리 밑에 유개호 진지를 구축하고 숨어 있다가 우군이 접근할 때 마다 기습사격을 가해왔다. 우리는 완전히 논바닥 개활지에 노출되어 있어서 접근 조차 하지 못했다. 공중공격과 포 사격은 피이가 근접해 있어서 마을 외곽의 적진지에는 사격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 마을 한가운데만 포격했으나 우리 공격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밤이 되어 야간 작전으로 전화했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APC궤도가 지나가며 파 놓은 논바닥의 골을 따라 두 명의 적이 우리 바로 옆 소대 쪽으로 기어가 오다가 사살당했다.
역시 같은 통로로 15분 정도 간격을 두고 5명이 나타났고, 이어서 7명이 더 기어 나왔지만 모두 사살되었다.
이들은 소리없이 기도비닉을 유지하고 , 조명지뢰 인계철선과 크레모아 도전선을 찾기 위해 팬티만 입은 발가벗은 채 였다. 옷을 입으면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피부감각을 최고도로 높이기 위해서 이처럼 옷을 벗고 덤벼들었다.
옆 소대원들은 이렇게 침투해 오는 적들을 잡느라고 매설된 크레모아를 모두 터뜨렸고 , 가지고 있던 수류탄과 실탄마저 거의 다 소모해 버렸다.
지금까지 적은 같은 통로에 수개의 제파로 시간간격을 두고 덤벼든 예가 한번도 없었다.
“와ㅡㅡㅡ, 호지민 만시”(호지명 만세).
소리를 지르면서 대대병력이 지금까지 동료들이 사살당한 바로 그 통로로, 어이없게도 와글와글 몰려서 포위망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탄약잉 다 떨어진 소대원들의 호 위를 그대로 밟고 지나가 버렸던 것이다. 비록 적 지휘관이었지만 매우 영리한 대대장인 것 같았다. 우리가 포위할 때 예비대나 종심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아는 놈이었다.
항공기 공격이나 포병사격을 피할 수 있도록 낮에는 마을 외곽 대숲속에 진지를 파고 우리의 주간공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했고 , 밤이 되자 한곳에 수개의 소수 제파를 차례대로 투입하여 탄약을 소모시키고는 전투력을 집중시켜 뚫고 나갔던 것이다.
전투력이 우세한 한국군은 연대가 겨우 개인화기 정도로 경무장한 적 대대규모를 포위했으나, 독안에 든 쥐가 분명했지만 한 곳으로 전투력을 집중하니 양상이 달라져 버렸다. 적 1개 대대와 탄약이 다 떨어진 반개 소대규모와의 싸움이 되어버렸던 셈이다.
마을을 빽빽하게 포위하고 있던 나머지 병력들은 탄약이 다 떨어진 전우들을 적이 일거에 밟고 지나갔지만 발을 동동 구르면서 구경만 하는 꼴이 되었다.
적 대대장은 전멸의 위기를,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전투력을 집중하므로써 호기로 전환시켜 전세를 역전시켰다. 소수의 병력만 잃고 대대 건재를 유지한 채 기세좋게 뚫고 나갔으니…….
적이 한꺼번에 몰려서 포위선을 돌파하려고 덤벼드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적들은 절대로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
수류탄이 폭발할 때 자기들 자신이 뛰어오다가 파편에 맞기 때문이다. 소총사격은 맨앞에 뛰어오는 적들만 쏠 수 있다. 뒤따라 뛰어오는 적들이 전방으로 사격하면 앞에 가는 자기 동료가 맞아 죽기 때문이다.
전부 공중에다 대고 총을 쏘며 소리를 지른다. 적들이 스스로 무서움을 제거하고, 우리에게는 두려움을 주어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다.
호 안에 있는 병사들은 겁낼 필요가 없다. 총소리가 요란해도 나를 향해 쏘는 총은 맨 앞에 오는 적들 뿐이고, 밤에 뛰면서 쏘는 총은 맞을 염려가 전혀 없다. 고함을 지르면서 덤벼 든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적이 더 취약하며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적들은 물소(Buffalo)전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지금까지 통상 포위되었을 때 우리와 교전을 하게 되면 접촉을 단절하고 도망갔지만, 이제는 소총 유효사거리와 가시거리 내에서 물고 늘어지는 전술을 개발해 사용했다.
우리와 부딪히면 총탄 세례를 받고 도망만 치다 보니 여기저기서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채 죽기만 했는데, 우리가 포위권을 형성할 때 몇 겹으로 둘러싸는 것이 아니라 종심없이 한 겹으로 포위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부터 적들은 일단 교전이 붙으면 우리를 물고 도망갔다. 우리는 계속 뒤따라가고…….
그러다가 우리에게 약점이 보이던가 포위망에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하면 사력을 다해 포위망을 빠져나가 버렸다. 이것이 적의 소위 ‘물소전술’이었다. 산에 사는 야생물소가 사람을 만나면 멀리 도망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슬금슬금 도망가는 것에서 지어진 전술명칭이었다.
이번에 적들이 우리에게 처참하게 당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적들은 우리와 마주치자 계곡으로만 도망하다가, 능선을 점령하고 측방에서 강타하는 우리측 공격을 받고 얼떨결에 동굴 속으로 숨어 들었다가 몰살당한 것이었다.
추격당할 때 동굴 속으로 숨는 것은 쥐가 독 안으로 뛰어드는 꼴이 된다. 아예 계속 도망가든지 미리 준비해 둔 은신처로 기가 막히게 잠적해야 한다. 따라서 잠적 기술은 필히 숙달되어야 한다.
또한 능선을 장악하지 않은 채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같다. 산에서의 작전은 반드시 능선과 계곡을 동시에 점령하고 활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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