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베트남 전쟁사

적 게릴라본부 일망타진|베트남전쟁

구름위 2013. 11. 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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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록)

◎저명한 지형 지물은 피하라

◎포로의 말만 듣고 섣불리 수색에 나서지 말라. 오히려 당하는 수가 있다.

◎멋진 복수

◎준비된 호안의 나는 완전히 보호받고 있다. 겁내지 마라!

◎살아 남은 자의 배신

◎전리품을 탐내지 말고 부하에게 나누어 주어라

당시 적들은 그들의 게릴라 전략대로 약한 곳을 선별해 가면서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경계가 허술한 지방 관청이나 교량, 마을외곽을 경계하는 월남지방군이나 민병대, 또는 이동중인 차량 등이 자주 공격목표가 되었다. 또한 적들은 보급품 조달을 위해서 물품을 수송하는 차량이라면 군용차량이건 민간인 차량이건 가릴 것 없이 무차별한 공격을 자행해왔다.

월남에 진출해 있는 한진자동차가 보급품을 싣고 1번 도로를 따라 이동하던중 적으로부터 기습을 받아 자동차 여섯 대가 불타고 우리 운전사 및 차량호송 민간인이 적에게 사살당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 보고를 받은 사단에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히 응징할 것을 결정하고 적의 근거지를 소탕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연대 2대대가 출동하게 되었지만, 수색지역이 넓은 관계로 연대내에서 1개 중대를 더 배속받아 작전을 나가도록 지시받았는데, 2대대장님은 우리 중대를 지명하여 배속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다,

우리 대대장님과 2대대장님 두 분이 직접 중대를 방문하시어 우리 중대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시고 선전해줄 것을 굳게 당부하셨다. 우리 중대가 그동안 싸운 전공을 인정하시고 칭찬해 주신 두 분께 감사하면서 나와 중대원들은 신바람이 났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꼭 싸워 이겨서 불행히 전쟁터에서 유명을 달리한 동포들의 한을 풀어주고 성공적인 작전으로 중대의 명예를 빛내며, 다시는 적이 겁이 나서라도 그런 못된 짓을 감히 하지 못하도록 그 지역의 적을 모조리 섬멸해버릴 각오로 작전에 임했다. 중대가 맡은 책임지역은 ‘퀴논’반도의 우측으로, 예부터 이 지역은 염전이 발달되어 있었고 농토가 비옥하여 부농들이 살았던 지역이었다.

집들도 좋았고, 마당도 넓었으며 바다와 접해 있어 경치도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지도에 표기된 대로 수색대형으로 전개했다. 그 지역은 적의 출몰이 많아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미 소(疎開)되어 있었고, 지역일대가 무제한 사격구역 (Free Fire Zone)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무제한 사격구역이란 문자그대로 살아 and직이는 것은 선별없이 마음대로 사격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묘했던 것은 무제한 사격구역은 적이 많아서 위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대장인 나나 병사들은 이런 지역에서의 작전을 더 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무제한 사격구역이 아닌 곳은 민간인과 적이 겄여 있어서 자칫하면 죄없는 무고한 민간인을 다치거나 죽게 했고, 가축에게 피해를 입히기 쉬웠다. 민간인 속에서 적을 선별사격 한다는 것은 마을주민도 아닌 우리와 같은 이방인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출동전 계획 보고 장면>

중대가 수색해 들어갈 곳에는 군데군데 독립가옥이 있으면서 야자수 나무가 울창했고 집 주위에는 온통 대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집은 보통 농촌이었지만 여기저기 2층집이 산재해 있었으며, 마을 부위에는 염전이 바둑판처럼 보기좋게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주민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다에서부터 물골이 발달된 곳에는 둑이 잘 정리되어 있었고, 부호들이 살던 곳이라 집집마다 아름다운 월남 도자기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유리탕은 대부분 깨졌고 집안에 가재도구도 거의 없이 텅 비어 있는 폐허의 현장이었으나 주위의 경관만은 보기드물게 아름다웠다.

   나는 염전 옆 2층집에 중대본부를 정해놓고 그 집 지붕 위로 올라가 바다쪽 전방을 관측하면서 소대장을 무전기로 불러 작전을 지휘하기도 했다. 지붕 위에 관측병을 배치해 놓은 후, 나는 그 집 마당에 있는 시멘트 블록더미 위에 걸터앉아서 점심으로 C-레이션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주인이 집을 고치기 위해서 쌓아 두었으리라고만 생각했지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수색을 전개한 지 2시간 정도 지나자 이젠 마을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고, 바닷물이 더 들어오지 못하도록 넓적하게 쌓아놓은 제방에 도착했다. 제방 앞쪽은 바다 물골이 여기저기로 이어지고 관목이 우리 키 정도 높이로 자라 있었으며 푹푹 빠지는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이제부터 병사들이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나무밑의 갯벌속을 수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둑 옆에 위치한 2층집 지붕 위에 소대장들을 소집시킨 후 수렁지역에 대한 수색을 논의했다. 그리고 대대장님께 중간 상황보고를 드린 후 새로운 작전지시를 하달받았다.

“적이 분명히 중대지역에 은거해 있다는 정확한 첩보를 갖고 출동했으니, 적이 도주하더라도 그 갯벌 지대에 숨어 있을 것이므로 바닷가까지 계속 정밀 수색을 하라.”

또한 대대장님은 바닷가에는 사단 수색중대가 미해군 고속정에 탑승하여 차단하고 있으니 해안으로 접근시 고속정으로부터 오인사격을 받지 않도록 사전에 고속정과 무전기로 잘 협조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소대장들이 해안까지 약 2km를 수색하는 동안 나는 계속 2층집 지붕 위에서 전방을 관측하며 중대를 지휘하기로 결심하고, 그곳에 마대로 진지를 만들어 관측장교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소대장들이 갯벌속으로 들어가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 후, 한놈이 우측 염전지역에 돌출된 곳으로 뛰어와나와서 우리쪽으로 오고 있었다. 처음엔 무심코 우리 병사가 나오는 것으로 알았으나 총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 연락도 없었으므로, 적이 수색병력을 피해 달아나는 것으로 알고 쌍안경으로 관측하였다. 머리가 길고 군화도 신지 않았으며 X-반도도, 철모도 착용하지 않았고 몸집은 매우 호리호리했다.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적이 분명했다. 지붕 위에 엎드린 중대원들이 서로 쏘려고 하는 것을 혹시나 중대원이면 어쩌나 해서 조금 기다렸더니 이 놈이 둑 위에 있는 화기소대 병역을 보고는 오던 방향을 바꿔 달아났다.
다른 병사들은 쏘지 못하게 하고 측방에서 뛰는 놈의 허리 앞 한뼘 쯤에다 조준, 허리를 겨냥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염전 둑 밑으로 나가 자빠졌는데 맞아서 쓰러졌는지, 총소리에 놀라서 몸을 숨기로 둑 밑으로 엎드려서 도망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화기소대 병력으로 하여금 그곳에 가서 확인을 해보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확인 나갔던 병력들은 그 자리에 쓰러져 있는 적을 부비츄랩 제거기끈으로 질질 끌고 왔다. 내가 쏜 총알이 뛰는 놈 겨드랑이에 명중, 가슴밑으로 관통되서 즉사하였다.

◎저명한 지형 지물은 피하라

바닷가까지 수색하는 도중 아무 접촉도 없이 싱겁게 주간수색이 끝나고 중대본부가 있는 지역의 둑에 길게 전개하여 야간매복에 들어갔다.
그날 밤 인접 ‘퀴논’지역의 불빛도 있고, 해상에서 서치라이트로 계속 비춰주었기 때문에 야간 조준경을 통해 관목지대를 관측하기가 칠흑같은 어두운 밤보다는 훨씬 용이했다. 이럴 때는 반드시 공제선을 피하고 둑 앞쪽으로 경계병을 배치하고 호를 파야 한다.

밤 12시 전후로 기억된다.

주간에 적 한 명이 빠져나오다 사살당한 염전 국 후방에서 섬광이 번쩍하면서 “꽝”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쉬익,쌔앵”하고 무엇이 날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우리 뒤쪽 갯벌에서 “퍽”소리가 났고, 두 번째로 “꽝”하더니 내가 있는 2층집 우측 아래의 갯벌에서 무엇이 철썩하면서 ‘콱’박히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나는 적이 주간에 노출된 지붕 위에서의 우리 행동을 보고 나를 향해 B-40적탄통을 쏘고 있구나 판단했고, 즉시 뛰어내려 둑에 배치된 화기소대 호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뛰어내릴 때 충격으로 한참이 지나도록 엉덩이의 뻐근한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둑의 병사들은 즉시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엎드린 자세에서 M-79유탄발사기로 적의 적탄통이 발사된 지역으로 집중사격을 가했다. 무질서한 M16소총사격은 야간에 정확한 위치를 노출시켜 적으로 하여금 직사화기 조준사격을 허용하게 되므로 소총사격은 일체 못하게 했다.

약 300m정도의 거리에서 분명히 공제선상에 노출된 지붕을 보고 조준사격을 했을 텐데, 한 발은 지붕위로 지나가 내 뒤에 있는 갯벌에 떨어지고, 또 한 발은 재조준해서 쏜 것으로 너무 사거리를 줄여서인지 집 앞의 갯벌에 떨어졌다. 만약 제3탄이 발사되었다면 아마 집에 명중되어 안에 있던 나와 부하들은 전부 폭사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신속한 M79유탄발사기 사격으로 적은 제3탄의 사격 시기를 상실한 채 도망가 버렸다.

그 이후 아무리 관측이 중요하다 해도 공제선상에 선명히 투시되는 지역에 다시는 기어올라가지 않았고, 중대원에게도 단단히 교육을 시켰다. 혹시 그런 곳에 올라가거나 지나갈 때는 철처히 자기를 은폐하도록 강조했다.

한편으로 또 아무리 야간이긴 했지만 공제선상에 분명히 노출된 2층 집을 불과 몇 백 m거리에서도 명중시키지 못한 적들의 사격 실력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과 B-40적탄통은 단단한 곳에 맞아야 폭팔하지 갯벌에 떨어지면 터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낮에 분명히 전방의 갯벌을 수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으로 부터 사격을 받았다. 적들은 깊고 흐린 물속에 숨어 우리 병력이 지나갈 때까지 대나무 빨대를 이용하여 물속에서 숨을 쉬면서 나무뿌리 밑에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내일 재수색시는 깊은 곳은 전부 수류탄을 던져보고, 부비츄랩 제거기를 이용해서 물속을 세밀하게 다시 수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먼동이 트면서 어젯밤 적이 B-40적탄통을 발사했던 지점을 수색해보니 2~3명의 적이 사격한 흔적과 M79유탄발사기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린 흔적이 있었다.
어제늬 적들이 죽지는 않았으나 틀림없이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주간수색에 큰 기대를 걸었다.


< 우리 중대가 수색했던 갯벌 지역>

◎포로의 말만 듣고 섣불리 수색에 나서지 말라. 오히려 당하는 수가 있다.

날이 환히 밝고 주간수색을 준비하는 도중, 좌측에 위치한 8중대장으로부터 무전연락이 왔다. 8중대 정면에는 물이 깊어 배를 이용해야 도하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약 100m가량 되는 물골이 있었는데, 적 한 명이 물골 건너편에 손을 들고 서 있으나 8중대가 강을 건널 수단이 없으므로 육지로 연결된 지역에 있는 나더러 가서 잡으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과를 올리거나 적의 포로를 획득하면 제2, 제3의 또 다른 전과를 얻을 수 있고,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자기가 올릴 수 있는 전과나 잡을 수 있는 포로를 다른 중대에 양보한다는 것은 극히 보기드문 일이었다. 지금도 8중대장의 대범함과 군인다운 조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8중대장이 가리켜준 곳을 찾아가보니 과연 아래 위로 청색홑껍데기만 걸쳤으나 허우대는 멀쩡하게 잘 생긴 놈이 손을 들고 사시나무처럼 와들와들 떨면서 살려달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겁에도 질렸겠지만, 밤새 저 찬 바닷물 속에서 동료를 잃고 혼자 외톨이가 된 채 공포와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아침에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포로가 되었으니…….

포로를 앞세우고 그가 안내하는 대로 총을 찾으러 갔다. 총을 숨겨 둔 곳은 어제밤 포로가 숨어 있던 곳이었다. 사람의 키보다 큰 관목이 무성헤게 자라 있었고, 일대 전체가 푹푹 빠지는 수렁 비슷한 갯벌인데다가 나무뿌리가 뒤엉켜 거칠게 물 위로 노출되어 있었다.

전방 관측이 20~30m로 제한되어 도망가는 적이 은신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곳이었다. 만약 이런 곳에 적이 숨어서 집중사격을 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지역이었다.
나는 포로의 눈과 말하는 태도에서 속임수가 있는가 읽어보려고 세심히 관찰했다. 다른 적이 만일 총을 쏘고 덤비면 네놈부터 쏴죽여버린다는 위협도 주고, 그런 시늉도 하면서 늪속을 수색해 나갔다.

드디어 그가 안내한 지점에서 M16소총 한 정과 그의 개인 소지품이 든 비닐보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보따리 속에는 영어성경이 들어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8중대장에게 고맙다는 무전을 보냈다.

서투른 월남어 통역병이 떠듬거리며 주섬주섬 포로에게 “적이 어디 있느냐? 우리 한전 차량을 기습했느냐? 몇 명이 더 있느냐? 소속부대는 어디냐?”는 등 기본적인 질문을 했으나 별로 신통한 답변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퀴논’ 사범학교 영어선생으로 며칠 전 이곳에 붙들려 왔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엄살을 떨면서 나더러 유창한 영어로 “Commander, Captain?" (중대장, 대위)이냐고 물으면서 제네바 협정을 지켜달라고 애걸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적 게릴라 본부를 안내해 준 퀴논 사범학교 영어선생 최초 심문>

여하튼 한진 자동차를 습격한 일당이 이 지역에 잠적해 있다는 첩보가 사살이라면 이 친구한테서 아주 귀중한 자료를 입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즉시 헬기로 날아온 군사정보부대 요원에게 신병을 인계했다.

얼마 후 아침에 왔던 정보부대원이 그 포로를 헬기로 다시 데리고 와서 “자백에 의하면 이 지역에 적 게릴라 조직의 지하본부가 있으며, 그 적이 바로 우리 한진 차량을 습격했으며 이 포로가 적의 사령부로 안내하기로 했으니 함께 수색하라”는 것이었다.
포로를 소대장시절부터 여러 번 잡아보았으나 우리의 전문적인 심문요령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전문요원이 심문해서 데리고 오거나 심문한 결과를 토대로 찾아가보면 헛수고일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심지어 재수가 없으면 찾아간 곳에 숨어 있던 적에게 오히려 기습을 당하는 위험한 경우도 많이 겪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포로가 우선 살고보자는 생에 대한 애착심과 공포에 질려 묻는 말에 적당히 대답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로서 그것을 확인하려는 수색부대만 많은 골탕을 먹었다.

◎멋진 복수

반신반의하면서 1개 소대병력과 중대본부, 그리고 화기소대 일부 병력을 대동한 채 포로를 앞세우고 수색을 시작했다. 처음 안내한 곳은 다 허물어진 일층 독립가옥인데, 어제 주간에 수색한 곳으로서 그 집 마루 밑에 은거지가 파져있었고 그곳이 그들의 아지트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직감으로 ‘또 속았구나’ 싶었지만 사주경계를 하며 마루를 뜯어보고 보니 뜻밖에도 그 밑에는 나무판대기를 깔고 그 위에 흙을 뿌려놓아 마치 마루 밑바닥의 먼지 섞인 흙처럼 완벽하게 위장한 아주 넓직하고 안전한 은거지를 발견했다. 분명히 최근까지 사람이 있었던 흔적과 담배를 피운 꽁초가 아주 신선하고 산뜻한 채로 남아 있었다. ‘이놈 말이 사실이구나. 적이 이 일대에 은거해 있는가보다’ 라는 심증이 굳어지면서 차츰 긴장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지점으로 옮겨갔다.

나는 그 포로를 따라가면서 새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중대본부가 수색해 들어간 곳으로 가지 않는가! 더욱더 놀란 것은 도착하여 가리키는 곳이 바로 어제 우리가 도착한 후 중대의 일부가 수색하면서 지나간 곳이며 우리가 잠시 정지하여 전방을 확인하던 그 2층집이었다.

바로 그 마당에 1.5m×3m정도의 시멘트 블럭더미가 우리 허리 높이로 네 무더기 쌓여 있었다. 그 블럭더미 속이 마로 적 게릴라본부의 은거지라는 것이었다.

직감으로 폐허가 된 집마당에 아주 양질의, 그것도 최근에 만든 블록더미가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아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제 나는 저 블록더미 위에 걸터앉아 C-레이션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어제 저놈들 머리 위에 걸터앉아 아무것도 모르고 한참을 보냈구나’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는 전율을 느꼈다. 요소요소에 경계병력을 배치하고 허물어진 담벼락에 기대앉아 분대장과 부분대장을 불러 블럭더미를 위에서부터 한장 한장 조심해서 벗겨 나가도록 지시했다. 네 무더기를 동시에 수색하다가 적이 혹시 그 안에 있다면 지휘혼란을 초래해, 자칫하면 아군끼리의 교차사격으로 인하여 피해받을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한 무더기씩 걷어보도록 지시했다.

분대별로 경계할 블록더미와 사격구역 및 경계병 위치를 지정해 주었고 사격시 아군의 위치를 잘 확인하여 아군끼리의 교전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염전으로 통하는 문 입구에 있는 블록더미부터 걷기로 했다. 그들은 한 장 한 장 걷으면서 긴장하고 있었고, 나 자신도 M16소총의 자물쇠를 연발 위치로 돌려놓고 옆 창문 밑의 시멘트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주저앉았다.
블록 한 겹을 걷어내고 두겹째 걷어내던 분대장이 갑자기 소리쳤다.

“중대장님, 여기 국산 호랑이표 시멘트 포장지로 윗부분이 전부 덮여 있는데요!” 내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과연 시멘트 포장지가 보였다. 순간 비가 오면 물이 스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것을 깔았구나 싶었고, 금방 그 속에서 적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소리쳤다.
“그 안에 적이 틀림없이 들어있다. 빨리 수류탄을 까서 넣어라!”
바로 그 순간, 깔려 있던 포장지가 “푹” 찢어지면서 포장지 위로 시커먼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를 본 나는 무의식중에 소리쳤다.

“잡아라!”
내지르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그 자리에 서 있던 분대장이 수류탄을 잡은 적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일순간 두 손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분대장의 손은 어떻게든지 수류탄을 뺏거나 다시 블럭더미 속으로 밀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불쑥 튀어올라온 적의 손은 잡혀 있는 수류탄을 밖으로 던지려고 기를 쓰고…….

세상에 이럴 수가!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어이없어 멍하니 쳐다볼 뿐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적의 손을 잡은 분대장은 일그러진 얼굴로 옆에 서 있는 부분대장에서 소리쳤다.

“야, 이 자식아! 어떻게 좀 해봐라!”

그 순간 부분대장은 자신의 대검을 뽑아 수류탄을 쥔 적의 손목 안쪽을 향해 대검을 내리 꽂았다. 칼에 찔린 적의 손목 근육이 끊어지면서 피묻은 손목과 함께 수류탄이 블럭더미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나와 분대장은 “엎으려!” 라고 소리쳤고, 분대장은 부분대장과 함께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를 향해 쑤셔박히듯이 뛰어 넘었고, 경계를 하고 있던 병사들도 번개같이 대나무 울타리 둔덕 뒤로 몸을 숨긴 후 각자 블록더미의 책임지역으로 총구를 지향하고 있었다.

눈은 광채가 빛났고, 동작은 민첩했으며, 아차하는 순간이면 벌집이 될 판이었다. 굴러 들어갔던 수류탄이 터져야 하는데 그 짧은 몇 초의 시간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나는 피할 수 있는 장소도 없었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블록더미 속에서 벌떡 튀어나와 총으로 갈기면 5m도 안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우측 뒤쪽에 있는 아래층 창문으로 머리부터 쑤셔박고 박치기를 하면서 몸을 내던졌다. 철모가 덜그럭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떨어져 옆으로 뎅그르르 굴렀다.

총을 쥔 채로 바닥을 짚어서 우측 손가락이 몹시 아프고 저렸다. 철모가 벗겨져 이마부터 바닥에 그대로 쳐박혔는데 아프지도 않았다.
땅바닥에 나가 떨어지자마자 굴러 떨어진 철모를 다시 뒤집어 쓰고 창문 밖으로 총구를 들이대는 순간이었다. 수류탄이 굴러 들어간 블록담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그 속에서 AK소총을 난사하며 네 놈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쏴라!”

나도 모르게 고함을 버럭 질렀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탱자나무 울타리 뒤에 엎드려 있던 분대장, 부분대장, 울타리 대숲에 엎드려 있던 병사들로부터 집중사격이 날아갔다.

“땅땅땅! 드드륵!”

한 녀셕이 블럭담 바로 옆에 벌집이 되어 쓰러졌고, 실탄이 신체에 맞을 때마다 “퍽! 퍽! 퍽!” 살터지는 소리가 났다.

또 한 녀석은 집앞 문쪽 입구에 쓰러졌고, 그 총알 세례의 와중에서도 정통으로 맞지 않고 염전 속으로 뛰어든 두 녀석은 물이 무릎까지 올라오고 염전바닥이 푹푹 빠져 몇 발짝 뛰어보지도 못하고 등에 실탄을 맞고 물에 떠 버렸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눈깜짝할 몇초 사이에 일어났지만 말로, 글로 표현하려니까 너무나 길다.
그 사이에 굴러 떨어진 수류탄이 터졌다.

“꽝”

. 흙이 튀어나왔다. 시멘트 포장지도 수류탄 터지는 폭풍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갔고, 블록더미는 박살이 난 채 흙가루가 우수수 소리를 내면서 쏟아졌다. 다행히 수류탄 파편은 블록이 막아 주었다.

그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남아 있던 블록더미가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더니 그 속에서 무어라고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AK소총을 든 적이 튀어나오지 않는가! 블럭더미 속에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를 듣고 튀어나온 적들이었다. 내눈을 의심했고, 처음에는 총도 못 쐈다.

자그마치 그 집 작은 마당의 한 블록더미에 세명 내지 네명, 총 십여 명이 튀어나와 개뛰듯이 뛰면서 아무데나 대고 총을 쏘아댔다. 나도 신속하게 집안으로 들어와 내 곁에 있는 무전병과 함께 정신없이 쏴댔다. 도저히 조준할 수가 없었다. 그냥 연발로 적을 행해 갈겨댈 수 밖에…

적이 쏜 총알이 유리창을 통과하여 창문 반대편의 내 등 뒤 벽에 “퍽퍽” 박혀버렸다. 여기 저기서 적들이 쓰러졌다. 우리 병사는 제 숨을 자리를 찾아 은폐, 엄폐를 했다.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마치 비호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초원하는 것이 예사인가보다.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다급한 적들은 동료가 쓰러져 있는 염전 물쪽으로 뛰어갔다. 10여 명이 뛰는 것을 보고 삼 변에서 갈겨댔는데도 네 놈만 마당 가울데 쓰러지고, 여섯 놈은 염전으로, 소로로, 집뒤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나는 무전병에거 뒤쪽 창문으로 가서 쏘라고 소리를 질렀다.

무전병이 정신없이 쏴댔다.

“탕! 탕! 따다다다!”

작은 방안에는 사격으로 인하여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실내사격이라 소리가 너무 커서인지 정신이 없었다. 그저 머엉 하기만 했다. 무전병이 소리쳤다.

“중대장님! 두 놈 다 쓰러뜨렸습니다.”

나는 마당에 쓰러진 네 명의 적 머리를 정확히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확인사살을 위해서였다.

“꽝-퍽, 꽝-퍽, 꽝! 꽝! 퍽! 퍽!”

머리 터지는 소리가 나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총을 맞을 때 머리만 덜그럭, 덜그럭 튀면서 움직였다. 한편 문쪽으로 뛰어 달아난 적들은 평상시 낮이나 밤에 잘 돌아다니던 길쪽으로 뛰어 달아났다.

사람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죽는 줄 알면서도 평상시는 말 할 것도 없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평소 눈에 익고 잘 다니던 길로만 도망가기 때문이다. 마치 야산의 토끼가 제 다니던 길로만 다니다가 덫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다.

염전쪽만 개방시켜 놓고 소로 같은 길에는 은폐, 염폐된 각 요소마다 저격병과 경계병을 배치해 놓았었다.

달아나던 적은 야자수나무 뒤에 숨거나 집 모퉁이 등에 숨어 있던 우리 소대원들에게 집중사격을 받아 사살당했고, 그중 세명이 진로와 퇴로가 차단되자 염전 물속으로 들어가 첨벙대며 뛰어갔다.
그래도 우측 손엔 총은 들고 양팔을 허우적 허우적 휘저으면서 뛰어갔으나 모두 사살당했다.

내가 있던 방문 옆의 계단 밑에 AK소총을 쥔 적이 언제 총에 맞았는지 꼬꾸라져 있었다. 그놈도 어지간히 급했던지 내가 있던 방쪽으로 뛰어오다가 소대장 총에 쓰러졌던 것이다. 이제 죽을 사람은 죽었고 살 사람은 살아 있었다. 전장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시체를 한군데로 모아 놓고 주변수색조를 임명하여 주위의 대나무숲과 나무뿌리 밑에도 정밀수색을 하는 한편, 호주머니도 전부 뒤지고, 적이 은거해 있던 블럭더미도 전부 파헤쳐가며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속에서 나온 달러와 월남돈이 작은 잡낭으로 한 자루는 되었다, 그런데 우리를 이리로 데려 온 포로와 안내원이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병사를 시켜 큰 소리로 부르며 찾아보니 집 뒤에서 어슬렁 어슬렁 나왔다. 아수라장 속에서 죽는가 싶어서 숨어 있다가 기어나오는 모양이 얄밉기도 했지만 죽지않고 다시 나타난 것이 고맘고 다행스러웠다.

포로에게 시체를 전부 확인시키면서 신원을 물어보았더니, 이들이 전부 ‘퀴논’ 지역 게릴라본부 요원으로서 우리 한진 자동차를 기습한 장본임은 물론 지역사령관, 부사령관, 인민위원회 위원장 및 인사, 정보, 작전, 군수 등 주요 참모들이었다. 출동한 지 이틀만에 우리 중대가 단독으로 적 지역 게릴라 본부를 전체를 소탕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적을 마당 가운데 두고 얼마 안되는 집 입구쪽과 대숲만 제외하고는 거의 사면에서 쏴댔는데도 우리 병사들은 한 병도 다치지 않았다.

나와 무전병은 집 창문을 이용해서 사격했기 때문에 벽이 우리 몸을 보호해 주었고, 내가 있던 창에서 맞은 편과 우측은 대나무숲인 울타리인데 그곳은 지형이 조금 높아서 실탄이 둔덕에 박혔디 때문에 안전했던 것 같다.

탱자나무 뒤로 뛰어간 분대장과 부분대장은 최초 전투가 시작될 때는 블록더미 밑부분이 보호해 주었으며, 또한 모든 병사들도 적이 튀어나오기 전에 동료들이 자리잡은 것을 정확히 보고 그 와중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총을 쏘았기 때문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특히 탱자나무 울타리 뒤의 분대장과 부분대장의 경우, 첫 블럭더미가 무너질 때는 그곳에서 싸우다가 동작 빠르게 소로 건너편 염전 쪽으로 기어가면서 소대장에게 자기가 그리로 간다고 크게 외쳤으므로 소대장은 물론 다른 중대원들도 그쪽으로 총을 쏘지 않아 무사했다.

만일 먼저 있던 자리에서 신속히 피하지 않았거나, 이동하면서 소대장을 부르지 않았다면 대나무숲에 있던 동료들로부터 적으로 오인되어 하마터면 총을 맞을 뻔했는데 정말 잘 판단해서 스스로 조치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

그 후 대숲 속에 있던 병사에게 물었더니 분대장 목소리도 들었지만, 적은 평상시 철모를 착용하지 않았으므로 철로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아군인 줄 알고 피해서 사격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훌륭하고 영리한 부하들이었다.

◎준비된 호안의 나는 완전히 보호받고 있다. 겁내지 마라!

내가 처음 뛰어들어 정신없이 총을 쏘아댔던 방안의 벽을 보니 아찔하게도 적의 AK실탄이 납작하게 우그러져서 내가 앉아있던 바로 그 자리의 벽과 창문틀 주위에 박혀 있었다.

병력을 배치하고 이것 저것 지시하는 내 목소리를 들은 적이 블럭더미 안에서 튀어나오면서 나를 표적으로 해서 집중 사격을 퍼부었고, 창문을 의지해서 사격할 때도 나와 무전병을 향해 적들은 AK소총을 갈겨댔다.

창문에서 눈만 내놓고 쏘니까 머리부분은 철모가 보호하고, 눈, 코 아랫부분은 두꺼운 벽면에 의해 보호받았으므로, 당황해서 도망가기에 급급한 적들이 적당히 지향해서 쏴대는 총으로 내 눈 부위를 맞춘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호를 파고 싸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호 앞에서는 반드시 거총한 양팔과 어깨 부위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30m 정도 두께의 두터운 사대를 준비해야 한다. 소총 직격탄과 근거리에서 폭발하는 수류탄 파편을 막기 위해서이다.
수류탄 처치구도 마탄가지다.

dirks 근겁전투시 수류탄이 언제 호 속으로 날아와 떨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수류탄 처치구는 교범에 명시된 요령을 개선해서 호 안에 자루가 긴 방망이 수류탄이 떨어지든, 작은 어떤 종류의 수류탄이 떨어지든 발로 옆으로 툭 차기만 하면 굴러들어갈 수 있도록 호밑바닥을 돌아가면서 넓적하고 깊게 파주어야 한다. 이렇게 정성들여 준비한 호에서 거총을 하면 나의 신체 중 피탄 면적은 눈 주위 뿐, 몸은 완벽하게 보호받는다.

이처럼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막상 적이 자신을 향해 총을 쏘면 실탄이 주변에 박히거나, ‘피융’ 소리를 내면서 머리위로 지나가기 때문에 저것 맞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누구나 당황하고 떨리게 되는 것이다.
완전히 노출된 적이 나타나도 정확한 조준사격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평시훈련 때 호를 잘 파고, 떨지 말고 침착하게 급작사격을 하지 않도록 사격요령과 대답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살아 남은 자의 배신

포로를 시켜서 죽은 자들의 신원확인을 끝내고 야자수 아래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포로에게로 갔다. 그놈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도 그놈 곁에 털석 주저앉아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를 쳐다보고 절을 했다. 얼굴은 일그러져서 겁을 잔뜩 먹었고, 어제까지의 동료들이 다 죽어버린 것을 보고 괴로워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 같기도 했다.

내게는 아주 귀중한 손님이었지만, 이 놈의 배신으로 자기의 동료 전우들이 전부 죽어벼렸으니 천하에 이렇게 의리없는 놈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 구역질이 나고 그대로 쏴서 같이 죽여버릴까 하는 충동도 생겼다.

함께 작전하다가 적탄인지 아군의 오인인지 모르지만 죽어버렸다고 하면 이판에 나를 어찌하겠나!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했으나 참았다.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자기 스스로 겁에 질려 손들고 나온 놈, 얼마든지 도망갈 수도 있었고 더 버틸 수도 있었고 악착같이 싸울 수도 있었는데, 미리 전부 포기했구나 생각하니 비록 적이지만 인간적으로 아주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 포로에게 영어 반, 월남어 반으로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손들고 나오는 짓하지 말고 목숨걸고 동료와의 의리를 지켜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는 안내해 왔던 장교와 함께 돌아갔다. 아마 포로수용소로 갔을 것이고, 지금쯤은 다시 사범학교에 가서 유공자 대접을 받으면서 선생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배신을 증명해 줄 사람들은 모두 다 죽어 버렸으니까…….

나는 많은 포로를 잡아보았다. 여자가 연약하지만 공통적으로 입이 무겁고 정신력과 참을성이 남자보다 월등히 강했다.
모성애가 동료들에게도 적용되나 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의 독함을 따르지 못했다.

지식수준이 높고 비교적 외형적으로 잘 생긴 사람일수록 의지력이 약했다. 대체로 그런 녀석들은 몇대 얻어맞거나 총을 쏘면서 위협하면 죽을 걱정을 해서인지 묻지 않는 내용을 줄줄 불어댔다.

◎전리품을 탐내지 말고 부하에게 나누어 주어라

전장정리를 끝내고 상황을 종합해서 대대장님께 무선보고를 했다.

 처음 출동할 때 중대원과 약속한 것들이 모두 성취된 것이다. 대대장님과의 약속사항도 이행했고, 순직했던 한진 자동차의 우리 동포들 원한도 통쾌하게 갚아주었다.

 포로를 내게 인계해준 8중대장에게도 벗진 보답을 했다. 우리 중대는 사기가 더욱 새롭게 치솟았고 중대 명예도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중대전투 지역에 찾아오신 분들이 전부 떠나신 후, 배낭속에 넣어두었던 돈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중대원들에게 “여러분 스스로 양심에 따라 전공 순서대로 정열하라”고 지시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병사들이 수군수군 하더니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맨 앞에 수류탄을 주니 적의 손목을 대검으로 찌른 부분대장, 그 다음이 시멘트 포장지 위로 푹 튀어나온 적의 손을 곽 움켜 잡은 분대장, 다음으로 중대장 곁을 떠나지 않고 잽싸게 방안으로 찾아들어와 죽음을 무릅쓰고 내곁에서 나를 지켜준 무전병, 대숲에서, 길모퉁이에서 사격한 병사들도 줄을 섰다.

 돈자루를 꺼내 손을 넣어 휘휘 저어 달러와 월남지폐, 고액권과 저액권을 섞어서 분대장과 부분대장, 무전병, 이사람에게는 세지 않고 두 주먹씩, 그리고 기타 병사에게는 한 주먹씩 전부 나누어 주었다. 돈을 세서 주면 뒷말이 생기기 때문에 그 다음에도 돈을 노획하면 꼭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 나누어 주었다.

 바로 그날, 우리 대대장님 이취임식이 10시인가 11시에 있었고, 그 시간에 나는 적들과 사투를 하고 있었다. 가시는 분, 오시는 분에게 오래도록 인상에 남을 선물을 드린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