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의 그늘- 반역의 노래(3)
쿠데타의 나라, 타이의 대한 이야깁니다.
요번거는 중국잔여분자와 고산소수민족 출몰빈도가 무척떨어질겁니다.
타이의 쿠데타에 대한 얘기는 이번회처럼 독립된 한 덩어리로 가야할만큼
방대합니다.
왜 국왕의 권력이 에스컬레이션이 되어 부침하는가.....
왜 무력이나 조직력이 군대에 비해 미약한 경찰의 힘이 막강한가....
왜 마지막 쿠데타의 종말의 시기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왜 그들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가....
.....저도 잘모르니 같이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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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타이의 쿠데타는 최고 17번까지 발생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포맨은 그렇게까지는 보지 않지만 어쨌든 10번에는 근접하리라고는 본다.
왜.....쿠데타라는게 명확히 딱 떨어지지 않고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숫자조차 다른것일까.
이는 타이 국내정치의 혼미와도 맥을 같이한다.
쿠데타의 횟수마저 계산이 어려울만큼 잦은 쿠데타,
그것에 대한 반쿠데타, 친위쿠데타와 사이사이의 불발쿠데타...
말하자면 한 쿠데타가 점하는 피리어드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권력주체면에서도 군대, 그중에서도 로열가드라 할수있는 방콕방위군(제1군)과
야전군, 거기에 후에 비대해진 막강한 경찰군(軍)까지 끼어 그야말로 난맥상을 보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그것은 한 육군내에서의 파벌이라지만.
타이의 그것은 군종조차 다르니 얼마나 혼란스러웠을런지 짐작이 간다.
1932년 6월
타이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한 군부의 깃발에는 이런말이 쓰여있었다.
...[조국의 근대화]...
군부쿠데타라면 의례히 등장하는 [구국의 일념]의 시대상에 따른 버전일뿐이다.
이로서
타이의 절대왕정은...맨 머리에 내리쬐는 후광인 율브린너....그의 시대라 할수있는...
수쿰빗의 모 여행사의 간판인 '왕 과 나'를 내리고 입헌군주제의 길을 걷기시작한다.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은 당연히 철권으로 나가야한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독점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수없이 명멸한 무기의 역사중에서 이사람을 거론하고 넘어간다.
방콕수비군사령관 피븐이라는 사람은 당시 전세계에 광풍으로 내닫던
군국주의를 타이에 처음 선보인사람이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정치적성향의 대동아 공영권을 울부짖는, 일본도를 찬 박애주의자(?)들인
군국주의 국가인 일본에게 굴복해 우리식으로 말하면 [정명가도]를 내주고 만다.
우리는...쥐뿔, 준비도 없으면서 부산진부터 동래, 탄금대를 지나 평양너머까지 유린당했지만,
타이는...정명가도를...탕두언 톨비 5밧도 안받고 렌탈해주는 유연함을 보이면서.....
국내적으로는 반대파에게 뭇매를 맞는다.
(지나는 얘기지만...니뽄노무시키들은 때가 어느땐데 350년전 케케묵은 레파토리를 들고나와
타이에게 들이미는...아주 악질적인 고리타분한 놈들이다)
그러나 국민수준이 낮을수록 먹여주고 재위주는것만 어느정도 해결해주면
국민들은 [안분지족의 현인]이 되는 경향이 있다.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은 이점에 착안하여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쿠데타로 일어선 정권은 대부분 무능하거나 지들끼리 메뉴싸움 하다가 몰락한다.
하지만...일본군 패망시까지 그럭저럭 근대화정책이 먹혀들었고,
중국,말레이와 싱가폴의 참화를 보면서 그나마국토가 유린안된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수준의 민도를 가진 나라에서 피븐은 일본의 패망때까지 정권을 유지한다.
1946년,
올해 즉위 60주년이 되어...일부 사람들에게 가뜩이나 단타라서 억울한데
술집 문닫아 피해를 보게만드신.....
푸미폰 아둔야뎃국왕이 18세의 나이로 국왕이 되었다.
국왕께서는 미국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다 선왕이던 형의 암살로 귀국하여
왕위에 오른다.
45년에서 47년에 이르는 타이의 경제적 시기는 공황의 시기였다
국제수지의 빨간색 그래프는 도면 밑으로 뚫고 아래층까지 내려갈 지경이었고
인플레로 인한 타이밧(THB) 값어치는 10년만에 0.08배로 떨어졌다.
필연적으로 배고프고 일자리없는 국민들의 아우성이 시작되었고
이런와중에 즉위한 왕의 정치적 입지는 선왕의 암살충격과 더불어
좁을수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왕은 73년까지 정치에는 일절개입하지 않고 문맹과 빈곤퇴치를 기치로 삼고
농촌시찰 및 현장지도등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였다.
왕의 이런자세는 그의 높은 도덕성과 맞물려 지금의 신격화의 존재로까지
이어져오는것이다.
48년부터 51년사이에만 세번의 불발 쿠데타가 있었다.
그 와중에 포맨은 파오장군을 주목한다.
파오 스리야논다장군은 경찰군 사령관이고 50~60년대를 주름잡았던 사람이다.
이 시리즈의 앞글인 도이 메사롱 이야기중에
국민당 잔당이 메사롱에 거주하도록 허가해준 타이군부 권력자가 바로 이 파오장군이다.
물론 그는 엄청난 이익을 낳는 마약에 관여를 했고 그뿐만 아니라 개인기업들과 결탁하여
이권사업에 개입했다.
이는 비단 그만 해당된것은 아니다. 다른 군부권력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는 복잡한 커넥션의 산물인데
타이북부 골든트라이앵글의 마약을 독점하다시피한 국민당 잔여부대와...
미얀마와 라오스지역 마약의 대부 쿤사와는 처음에는 친밀한 협력자였다.
은퇴한(?) 국민당간부가 쿤사의 밑에서 재취업(?)을 할정도였으나 어차피 이익은 독점을
낳고 독점은 불화를 낳는다.
쿤사와 국민당간의 충돌은 타이군부의 개입을 낳고
이어서 이들에게 노무자로 양귀비밭에 취업하다가...
마약재배기술의 노하우(?)와 칼집내서 찌고말리면 돈 좀 만진다는 사실을 알고 반역의 노래를 부른
메오족과의 전투.
앞편의
중공과 미얀마,타이와 대만 그리고 미국이 연관된 인터펜타곤과....
국민당잔당과...쿤사와...타이, 국내적으로만 보면 트라이앵글...
복잡한 합종연횡 한가운데 파오장군이 서있었다.
타이의 군부는 다른나라와는 좀 다른 특이한 조직을 보이는데
국가안전기획사령부(ISOC)라는 간판길이 무지긴, 이름만큼이나 거창한 초법적인 기구가 있다.
어떠한 지휘체계보다 상위에 있는 조직인데 여기 구성원중 육해공군과 또 한가지....
경찰군이 있다.
노파심에서 말하는데.....쫄바지 관광경찰이 아니다...
경찰이 아니고 경찰군軍인 이유는
당시 냉전의 시작과...공산주의 도미노현상에서 단순히 치안유지성 경찰이 아닌,
공산주의자의 색출을 기반으로 필요에 따라서 시위와 폭동진압, 노동단체억압
나아가서 국내정치개입으로 이어지는 확대재상산의 결과물이었다.
마치 우리네 예전 국군,전투경찰,정보경찰,검찰,안기부가 하던 일을 집약시켜 놓은 그런 비대한기구로
발전되어 갔다는점이다.
타이의 경찰력이 현재까지 막강한이유가 여기부터 연원이 있는 것이다.
수많은 타이의 그늘 가운데 피부적으로 와닿는 것이 73년의 10월항쟁과 76년 그리고 92년의 쿠데타이다.
73년은 [타놈]정권에 부정부패의 불만은 품은 대중과 당시 대학가를 휩쓸던 좌파 이데올로기의 결합이었다
황색호랑이라고 부르던 극좌학생테러단체까지 나서서 방화와 관공서 습격을 하였고 이에 군부는
초강경진압을 부르짖으며 탱크의 악셀을 밟았다.
여러분이 잘아시는 카오산근처 방람푸 타마삿대학이 이 10월학생폭동의 근원지이다.
여기서 극렬학생운동이 시작되었고 나롱대령이라 불리던 수상의 아들이자 누구의 사위이던....
타이에서만 통용되는 요상한 족보를 가진....
정부의 어떤 얼간이가 발포명령을 했다.
결과는 77명의 학생이 사망하고 444명의 행불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보다 행불자가 많은 이유를 우리는 뻔히 안다
여기...지금은 자유분방함과 어떤면에선 방탕함의 극치인 방람푸 카오산지역은.....
한때 타이 민주화의 순교장이었음을....아무생각없이 거리를 오가는 레게머리 양놈들과
그들의 팔짱을 끼고 히히덕대는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가 금박영문으로 박힌....
티셔츠를 입은 아낙들은 알랑가 모르겠다.
가장 최근의.....
92년 쿠데타는 국왕의 원킹쇼나 다름없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던 잠롱스리무앙과 쿠데타군의 주동자 스친다장군(파사타이가 약해서....
수친다보다는 스친다가 발음이 더 맞을것 같네요...-_-)
하여간 두 거두를 불러 일단 긴장조성용으로 머리박아를 시키고 ...
좋은말로 타이른 다음에.....
"추우추우 트레인 어 트레킨 다운 어 트랙.... 원웨이 티켓 원웨이티켓, 원웨이 티켓, 원웨이티켓.....
우우우~ 갓어 원웨이 티켓 투더 블루스으~~~~"
이렇게....
청백리 잠롱시장이 옆에서 닐세다카의 원웨이 티켓을 깜찍한 율동과 더불어....
멋들어지게 코러스까지 넣어가며 부르고 있는 가운데....
장군에게 스웨덴행 원웨이 티켓을 조용히 쥐어주고는 문열어주는것으로 끝이났다.
아직까지 타이는 군부가 막강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때 GDP대비 17%까지 배정받은 국방비는 현재는 8.5%정도로 감축되었지만
특수환경인 한국의 GDP대비 2.8%, 나까소네 이후로 1%를 넘기려고 애쓰는 일본의
1%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은 점유율이다.
참고로 북한은 24%이다....가만보면 거의 전시국가나 다름없다.
이것은 효용을 떠나서 아직까지 군부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것이다.
하여간....92년이후.....
군부는 국왕의 높은벽을 실감했을것이고 지금은 비교적 조용히 지내고는 있다....
-가끔 스페인에서 경항모 들여와서 IMF두들겨 맞고 전시용으로 세워놓는 따위의 소소한 만행을 저지르고는 있지만-
그리고 이제는...이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뭔일나서 바트화 폭락하고...타이행 비행기가 텅텅비고 기름값도 안되는 덤핑가격이 쏟아진다면....
당장 보따리 싸서 날아갈... 포맨같은 사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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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올해에도 타이에는 쿠데타 설이 돌았습니다.
국가위기시(?)마다 소위 [구국의 일념]으로 매번 무장한 군부가 등장함으로서
또다시 이번에 불거진 탁신의 부정커넥션에 대응하리라는 추측이 돈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5월에 사라부리에서 병력이동이 감지되었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아직은 개발도상국 답게(?) 어딘가가 불안하다라는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단적으로....
스위스에서의 쿠데타라면 ....우리는...'그럴리가'.........라는 접속사로 끝나지만...
타이에서의 쿠데타라면...'그래서?....'라고 말할수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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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쿠데타 나기전에 기고한 글입니다.
타이의 쿠데타는 우리나라와 많이 다릅니다.
쿠데타의 본령은 권력이동은 기본이고 심하면 국가의 흥망과도 연관이 되지만
타이에서는 그렇질 않습니다. 위에 기술한데로 카운터 웨이브가 건실하기 때문이지요.
다만 타이에서만 발생하는 이 특이한 호조건도 현 국왕이 존재할때까지만 유효합니다.
비록 입헌군주지만 훌륭한 통치자 한사람이 5천만명에게 안정을 주고 있다는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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