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베트남 전쟁사

골든 트라이앵글의 그늘 -2- 머나먼 나라

구름위 2013. 11. 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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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국>...그 머나먼 나라로....



여러분은 혹시 미얀마 민국이란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역사엔 가정이 없지만 분명 한때....미얀마 동북부 샨주,그일대에서는 이...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같은 나라를 꿈꾸는 배고픈 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이상향이요 기나긴 전투후에...전우의 시체옆에서 울부짖으며....
찢어진 군복 부여잡고 오열할 영광과 애증의 땅이었다.

비록 소수였지만...그들은 꿈꾸었다.
자신들만의 나라를.....

50년대 초반....
8군과 26군의 두번에 걸친 대대적인 운남성 공략의 실패이후 그들의 본투수복의 꿈은 많이
사그러들었다.
파견나왔던 CIA앞잡이들조차도 운신의 폭이 줄어든 국민당잔여군을 걱정할 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버마군의 압박은 계속되었고 전병력이 달랑 2만명인 버마에서
만명을 동원한 엄청난(?) 토벌작전도 전개되지만 버마군은 나사가 빠진부대였으니 역전의 국민당군을 당할수는 없었다
한번은 버마군 총사령관이 탄 경비행기가 격추당해 포로로 잡힌일도 있는 아주 전통있는(?)군대였다.....

반면에
운남성에서 패퇴하기전의 8군과 26군은 전체 400만명이나 되지만
싸우면 지던(예를들어 중일전쟁의 시발,노구교에서 10분지1 일본군에게 신나게 깨지던...-_-) 약체 국민당군중에서도 몇 안되는,
미얀마전선에서의 일본군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한 정예병력이었다.  

이도저도 안되자 미얀마군은 잔인한 고산족인 친부족에,
사람을 잘린머리수로만 판단하는 인도용병까지 고용하여 국민당잔여부대를 뒤쫓는다.
이들은 머릿수하나에 얼마,간부하나에 얼마,행군하는데 얼마....

이때의 국민당잔여부대와 버마정부사이는 어디까지나 통속적인 힘의 역학관계가 존중(?)된 사회였다.
국민당잔여부대가 강하면 사이가 좋았고 약해보이면 통고도 없이 몰아쳤다.

그렇게 힘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왔다갔다하던 양군의 관계는 강대국,특히 미국의 사주를 받은
54년 4국회의(버마,태국,중화민국,중공)의 결과로 국민당군의 철수를 일차 합의보게된다.
그 유명한 8군 사령관겸 나중에 대만정부로부터 운남성주석으로 임명된 이미李美장군도
이때 철수를 한다.
여담이지만 이미장군은 철군을 반대했었다.
우리도 그렇지만.....장군쯤되면 작전말고도 신경쓸게 많다.  미얀마 변구의 국민당잔여부대는
자신의 정치기반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자신의 수입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대만으로 철수한 많은 국민당 노병들은 공산투쟁의 영웅들이 국수장사로....
벌목공으로....잡역부로 힘겹게 살아가는 반면....
이미장군은 아쉽지만(?) 장군에서 재벌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도이 메살롱에서는 이미장군을 변구의 위대한 장군으로 기억하는 늙수그레한
몸성치않은 노병들이 있지만...

여하튼....

이때 나온 잔여분자들의 희망이 바로 미얀마 민국이었다.
타이와 미얀마,중공사이의 힘의 공백지대에 우리들의 나라를 세우자.
바로 [중화민국 내륙지사]을 꿈꾸었던 장개석의 희망과는 배치되지만 어느정도 자신들의
생존을 감안한 합리적인 발상이라고 할수있었다.

친 대만 미얀마 민국이 세워 졌다면 동남아시아의 역학관계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것이다.
물론 본토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들이 친모국노선을 견지한 나라가 많지 않음을 우리는 방글라데시에서도
찾을수 있지만 당시의 역학관계상 그들은 그렇게 할 능력도,주변정세도,기대할수 있는 지원도, 자금도 있었다.
여기서 지원이란 미국이고, 냉전시대에 내륙깊숙이 친미 미얀마민국이 '저절로' 생겨난다면
공산주의 도미노현상에 골머리를 앓던 당시 미국이 환영 안했을리 없다
또 자금이란 말할것없이 아편이다.

처음의 발상은 이설이 많지만 전직 국민당 윈난성 부주석이었던 정작소에게서 나온것으로 포맨은 판단한다.
동조자도 있었지만 소수의견은 소수의견.....
(물론 포맨은 인도지나반도에서 방문할 나라가 하나 더 있을수도 있었다라는 아쉬움도 남는다...-_-)

이때부터 60년말 인민해방군이 미얀마 국경을 월경하여 한번 더 패퇴를 하게되고
61년 초반까지 한번 더 본국철수가 이뤄지지만 소수의 국민당잔여분자들은 미얀마-라오스국경지대로 이동하여
때를 기다리게된다.

61년 2차 본국송환이 이뤄지지만 일부 이를 거부한 국민당 잔여분자들은
미국의 사주를 받은 타이군부실력자의 암묵적인 승인하에 아예 타이 내륙으로 피신하여
살림을 차리게 된다. 그중 한곳이 여러분이 잘아시는 .....DOI MAE SALONG
즉....
도이 메살롱이다.

이 시점부터 대만정부와 국민당 잔여부대와의 연결고리는 끊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공식적인 단절은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장개석정부의 선언에 나왔지만
어차피 이용되고 버려지는 소모품이란걸 확인시켜주는 과정일 뿐이었다.


<고산족의 암暗영映>
몽(HMONG)족은 어찌보면 참 재밌는 부족이다.

베트남에서는 몬타나족이라고 불리고, 예전 식민지배프랑스인은 몬타냐드족이라고 부른다.
라오스에서는 몽족, 타이에서는 몽, 혹은 메오족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아는 고산족중 알록달록한 옷치장으로 유명한 그 메오족이 맞다.

이 각나라의 서로다른 부족명의 연관성을 규정짓는 어떠한 공식적인 문서는 없다.
포맨이 그동안 다니고 읽고...나름대로 판단했을뿐이다.

이 몽족이 리수(lisu) 아카(akha)등 다른 많은 고산족보다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베트남전에서 미군그린베레에게 교육받고 반 공산전선에 뛰어든 몬타나족,
라오스에서 미군에게 훈련받고 라오스 공산정부와 윈난성 중공군에 게릴라전을 펼친 몽족,
타이북부에서 아편재배에 종사하다가 타이정부에 반기를 든 레드메오(red meo)...즉 메오족...
위에도 밝혔지만 같은 민족이다.


한마디로 반골기질이 투철한 민족이다.
우리가 흔히아는... 고산마을에서 전통복장입고 사진찍는 댓가로 근근히 살아가는....
그런 말랑말랑한 부족이 아니다.

알고보면 무서운 민족인것이다.-_-

여러분들 본인스스로가 잘 밝히질 않지만 혹가다가 방콕에서 고산족 출신을 본다면 대부분 카리엔(카렌)족출신이 태반일것이고
그외 소수로 아카나 리수족등이 있을것이다. 물론 고산족중 비율이 가장높은게 카렌족이다. 70%정도 된다.
하지만,
메오족 출신 봤다는 분들 없을것이다.

그렇게 보면....더더욱 무서운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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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잔여부대와 고산족...특히 메오족과의 관계는  다음편에 써보겠습니다.
만리타향 객지에서 졸지에 아무런 원한도 없는 부족과의 전투에 투입된 기구한 버려진군대....
-그때쯤엔 이미 숭고한 본토수복의 이상을 잊었지만-

쓰다보니 자꾸 길어지는군요.
워낙에 이 시대에 이 암울한 지역에 신발하나 던져놓고 발걸친 인간들이 많아서입니다.

다음번엔 메오족 이야기뿐만아니라...
타이내륙으로 들어갈수 밖에 없습니다.

이거 쓰자면 타이군부얘기도 써야하고.....타이군부얘기 쓰자면
1932년이래로 7번의 쿠데타로 얼룩진, 동종기록보유자 베트남 찜쪄먹을... 타이랜드의 그늘도 써야하고....

여러분이 태국다니면서 느끼셨을지도 모르지만....타이에서는 왜 유독 경찰의 권한이 막강한가......
에 대한 기원이 1932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써야합니다.

재미없는 얘기 자꾸 늘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