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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코틀랜드 전쟁(4-로버트 브루스)

구름위 2012. 10. 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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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브루스에게 이야기를 하기 전에 폴커크 전투 이후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아직 에드워드의 공격은 끝난게 아니었거든.
비록 폴커크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는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어.
1300년 봄, 이제 65세가 된 에드워드는 프랑스 공주님과 결혼에 골인하고(...), 동시에 신부와 해피한 나날을 보내기보다는 스코틀랜드를 네 번째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어.
이번 목표는 반란군이 모여 있는 칼라브록(Caerlaverock)을 공격하는 거였지.
이번 원정에서 에드워드의 군대는 Twynholm에서 스코틀랜드의 장관인 로버트 키스(Robert Keith)를 사로잡았고, 뷰캔 백작(Earl of Buchan)이 이끄는 스코틀랜드 군대를 격파하는데 성공했어.
하지만 잉글랜드 군대는 이런 괄목할만한 전과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의 저항을 분쇄하는데는 실패했고, 8월 끝무렵에는 칼라일(Carlisle)로 물러났지.

 

그리고 다음해인 1301년, 잉글랜드 군대는 군대를 둘로 나누어 다시 한 번 스코틀랜드 국경을 넘어 공격해왔어.
한 부대는 칼리일로 공격해 스코틀랜드의 유망한 왕위 계승자로 떠오른 로버트 브루스를 추격하는 것이었지만 별 효과는 보지 못했고, 스코틀랜드 군대는 달아나버렸지.
에드워드 자신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셀커크 숲을 지나 클라이데스데일(Clydesdale)과 린리스고우(Linlithgow)로 진군해 들어갔어.
이곳에서 에드워드는 왕비와 함께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스코틀랜드를 웨일즈와 같이 처리하려는 작전을 쌌지.
포스 남쪽에 성채가 세워지고 수비대가 배치되어 스코틀랜드인들의 공격을 대비했고, 각지에 관리들이 파견되었어.
에드워드는 그런 후에야 스코틀랜드를 떠났고, 프랑스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느라 바빴지.
또 여러 문제를 해결한 뒤, 1303년에야 에드워드는 다시 스코틀랜드로 들어왔고, 포스 강에 조립식 뜬다리를 놓은 후 스털링의 요새를 손에 넣었어.
그리고 곧장 퍼스(Perth)를 향해 거침없이 북쪽으로 공격해 들어갔지.
9월이 되자 에드워드의 군대는 머레이 어귀의 강둑에서 머물렀고, 다시 모든 저항을 분쇄하며 전진해 나갔어.
브레친(Brechin)성은 5주 동안 잉글랜드 군대에 저항했지만 마침내 함락되었고, 영주들은 에드워드에게 항복했지.
결국 그 결과는 월리스의 고립과 처형...이었지.

 

 

월리스가 처형된 후 6개월 후, 스코틀랜드에서부터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
1306년 2월 11일, 로버트 브루스가 스코틀랜드의 왕관을 두고 다투던 레드 커뮌을 살해한고야.
그리고 3월 25일(혹은 29일), 로버트 1세로 즉위했지.
하지만 그 소식은 헴프셔에 있던 에드워드의 귀에 들어갔어.
그는 즉시 잉글랜드의 북부군을 동원했고, 다시 한 번 스코틀랜드 전쟁을 준비했어.
엎친데 덮친격으로 교황님은 성스러운 교회당에서 커뮌을 살해했다는 죄목을 물어 로버트에게 무려 파문을 선고했어.

(넌 파문이야!-손가락에 주목-)


물론 교황님의 제의로 모든 카톨릭국가가 들고 일어나 우리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는 아니지만 로버트 브루스의 입지가 엄청나게 좁아진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지.
마침내 6월 19일, 펨브로크 백작(Earl of Pembroke)이 이끄는 잉글랜드 군대는 포스강을 건너 20일 메스벤(Methven)에서 브루스의 군대에게  맹공을 가했어.
브루스의 군대는 참패하고, 그 자신조차 말이 사망하고 포로가 되었지.
하지만 운이 좋게도, 그를 사로잡은 어느 스코틀랜드 기사는 자신이 비록 잉글랜드에서 일하고 있긴 했지만, 거만한 잉글랜드인에게 스코틀랜드의 신임 군주를 넘겨주는 짓은 하지 않고 왕을 풀어주었지.
하지만 그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고, 브루스의 친척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처형당했고, 심지어 여성들마저 던전에 처박혔지.

 

브루스에게 스코틀랜드 왕관을 씌워준 뷰캔의 백작부인은 심지어 쇠로 만든 새장에 갇혀 있게 되었어.
이런 식으로 브루스의 추종자들은 떨어져 나갔지만, 아직 후에 스코틀랜드의 명장으로 추앙받는 더글러스 경이나 브루스 자신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지.
그렇긴 해도 고지대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기도 하고, 주민들의 저항 때문에 쫓겨나기도 하는 등 비참한 상황에까지 이르렀지.

 

(비참한 상황...거기다 아처는 수란 말이다!?)


특히 론(Lorn)의 맥도걸 가문은 커뮌의 친척이었기 때문에 브루스를 매우 싫어했고, 이쪽으로 온 브루스와 일행을 공격해 쫓아내 버렸지.
브루스의 일행은 숫적으로 완전히 압도되었기 때문에 도망쳐야 했지만, 브루스는 끝까지 싸우고 있었어.
여기서 맨드로스(M'Androsser)가문의 세 남자-아버지와 두 아들-은 용맹히 싸우는 로버트 브루스를 사로잡기 위해 말을 달려 그에게 달려들었지.
스코틀랜드의 왕이 맨 앞에 달려오는 아들의 손목을 쳐 동맥을 끊어 버리는 사이 다른 형제가 로버트의 다리를 잡아 말에서 떨어트리려 했지.
이 때 브루스는 상대 말의 박차를 차버렸고, 그 사이에 상대가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순간을 노려 목을 뎅강 베어버렸어.
마지막으로 달려든 아버지는 칼의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어 망토를 잡았는데, 이 때 브루스는 폼멜로 그의 두개골을 부사버렸지만 워낙 망토가 세게 잡혔던 터라 할 수 없이 이걸 벗어버리고 탈출할 수 밖에 없었지.

 

이런 식으로 브루스는 계속 패하면서 상황은 어려워져만 갔어.
로버트는 이제 하나 남은 유일한 성인 킬드러미에 왕비와 막내 동생인 나이젤 브루스를 남겨 성을 지키라고 한 뒤, 아일랜드 해안의 라크린(Rachrin)섬으로 피해 세력을 기르려 했어.
하지만 킬드러미는 함락되었고, 왕비는 사로잡혔으며 동생은 처형되었지.

여기서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
아마 ?O들도 한 번씩은 들어 봤을텐데, 있음직한 사건이지만 실제 그랬는지는 모른다고 해.

성이 함락되고 처참한 소식을 듣자 브루스는 침울해져서 고민에 빠졌어.
이대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울까, 아니면 그냥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가 사라센과 싸우는게 더 나을까.

(너무 세력의 차이가 크잖아...)

 

어차피 조국이 독립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교황은 자신을 파문해 버리고...
차라리 사라센들과 싸우면 커뮌을 살해한 것이 용서가 될까...
하지만 조국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용서 받을 일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거미 한 마리가 이쪽 들보에서 저쪽 들보로 왔다갔다 하면서 거미집을 넓히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봤어.
하지만 그 거미는 계속 실패했고, 이러는 사이에 여섯 번이나 실패했지.
브루스는 그 여섯 번이나 실패한게 마치 자기가 여섯 번 패배한 것과 같이 느껴져 실소를 지었지.
이 상황에서 브루스는 중얼거렸어.
'그래, 다음 번 거미가 성공하는지를 보고 결정하자.'
결의를 다지기는 했지만 거미가 성공할 확률은 낮아보였지.
그러나 일곱 번째 도전에서 거미는 멋지게 성공했고, 브루스는 다시 한 번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우기를 결의했어.

일단 브루스는 클라이드 만 어귀의 애런 섬으로 이동했고, 여기서 친우이자 부하였던 더글러스 경이 잉글랜드 군대를 죽이고 섬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로버트 브루스는 특유의 방식으로 나팔을 불었고, 더글러스는 나팔 소리를 듣고 "왕께서 오셨다!"라고 크게 외쳤어.
브루스는 친우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본토에 봉화대를 설치해 충분한 기회가 되면 스코틀랜드로 공격해 들어가기로 했지.
스코틀랜드 독립군은 300명의 부하를 모아 훈련시키며 때를 기다렸지만 봉화는 오르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날 밤, 갑자기 오른 봉화를 보고 브루스와 그의 군대는 드디어 바다를 건너 본토에 도착했어.
그런데 봉화를 담당했던 쿠트버드 경이 본토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허겁지겁 브루스에게 달려갔어.
사실 그 봉화는 실화였었고, 아직 스코틀랜드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
실망한 브루스가 돌아가려고 했지만, 성질 급한 그의 아우였던 에드워드(-_-^)는 형을 말렸어.
차라리 스코틀랜드에서 뼈를 묻겠다는 거였고, 로버트 브루스도 이 무모한 계획에 찬성했어.
퍼시 경을 비롯한 잉글랜드 군대는 소규모지만 용맹하게 싸우는 스코틀랜드 군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캐릭에서 후퇴했어.
이 사이에 로버트의 휘하로 점차 스코틀랜드 인들이 결집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여전히 부하가 부족했고 은밀하게 행동해야 했기 때문에 브루스는 소규모 군사를 이끌고 다니거나 때로는 홀로 다닐 때도 있었어.
이 때문에 여러가지 일화가 남아 있어.
예를 들자면 친한 친척에게 배신당했는데 혼자서 세 전사를 쓰러트린 이야기나, 갤러웨이의 거센 여울목을 막고 홀로 200명의 전사들과 싸운 일, 암살자들 때문에 죽을 뻔한 일과 한 농가에서 여인에게 "스코틀랜드의 진정한 왕인 브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거나...창작된 부분도 있겠지만 월터 스콧경은 대부분 실화였다고 해.

 


 

 

하지만 이런 접전들을 거치면서 스코틀랜드의 왕은 서서히 지원을 얻기 시작했고,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했던 것에 못지 않은 무모한 작전은 성공의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었어.
마침내 1307년, 에드워드는 늙고 병든 몸을 억지로 일으켜 말에 올랐고, 대군을 동원해 스코틀랜드를 향해 진군했지만 그게 한계였지.
1307년 7월 6일, 한 시기를 풍미했던 위대한 왕은 마침내 컴벌랜드의 "모래 위의 도시"에서 겨우 3마일 떨어져 있는 스코틀랜드의 국경을 바라보다 숨을 거두었어.
죽기 전 에드워드는 그의 아들인 에드워드 2세에게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
전설에 따르면 그는 섬짓한 유언을 남겼는데, 자기가 죽으면 큰 무쇠솥에 시신을 넣어 뼈와 살이 분리될 때까지 푹 삶은 다음, 스코틀랜드와 싸울 때가 있으면 자신의 뼈를 들고 가서 그들을 무찌르라고 했다고 해.

 

(그런적 없어!)

 


하지만 에드워드 2세는 그런 덜덜덜한 짓을 하기엔 유약했고, 왕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지.
아직도 남아 있는 그의 무덤에는 "스코틀랜드의 망치"라고 적혀져 있다고 해.
그는 마치 토르가 거인들을 망치로 두들겨 패듯 수 차례 스코틀랜드를 박살냈지만, 이 위대한 망치도 스코틀랜드의 자유를 꺾을 수는 없었어.
더군다나 에드워드 2세는 아버지와는 완전히 달라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콤모두스가 그랬듯, 새로운 왕은 전쟁을 포기하고 잉글랜드로 돌아갔지.
이제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로버트 브루스를 관광보냈던 펨브로크 백작밖에 없었지.


 

에드워드 2세는 전사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용감하지도 않았고 왕의 의무 따위는 거들떠 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둘러쌓여 살았다고 해.
그는 비록 잔인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같이 생명력 넘치는 활동은 보여주지 못했어.
물론 농사 문제에는 조금 관심을 기울였다는 해(...스튜어드?)
하지만 아직 브루스의 세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아직 스코틀랜드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잉글랜드의 손에 있었고, 많은 스코틀랜드 영주들은 저항군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고 있었어-에서 공격을 감행했다면 브루스도 견디지 못했을텐데 이 때 물러나버린 결정은 두고두고 그를 괴롭히게 돼.
 

 

에드워드의 사후 스코틀랜드인들은 서서히 세력을 키웠어.
동생 에드워드는 크리(Cree)에서 작지만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몇 차례 전투 후 브루스는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서남부를 회복할 수 있었어.
더글러스 경도 자신의 성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잉글랜드 인들이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하는 더글러스성을 기습했어.
종려 주일(palm day)이라 교회까지 행진하던 잉글랜드 군대를 기습해 죽이고, 다시 성까지 공격해 보급품을 모조리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어.

(우리 모두 의외의 사태에 주의합시다.)

 


그리고 잉글랜드 장군인 클리퍼드(Clifford)와 썰월(Thirlwall)의 군대가 주둔하자 소떼를 이용해 다시 이들을 유인해서 대부분 전멸시켜버렸고, 이런식으로 계속되는 공격에 잉글랜드 인들은 점차 스코틀랜드에서 밀려났지.
10월 무렵엔 로스가 점령되었고, 브루스의 게릴라 부대는 계속해서 적을 기습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어.
마침내 1308년 끝무렵에 브루스는 테이(Tay) 북쪽의 고향을 대부분 회복했고, 1309년 초에는 파이프(Fife)를 회복했지.

 

결국 잉글랜드에서도 손을 쓰기로 결정했고 1310년 여름, 에드워드 2세는 엉덩이를 일으켜 트위드를 넘어 록스버그(Roxburgh)로 진군했어.
그와 잉글랜드 군대는 셀커크 숲과 래너크셔를 공격했지만 브루스는 예전에 월리스가 했던대로 청야 작전을 펼치며 후퇴했지.

 

(밥!!)


잠잘 곳과 보급할 곳이 없어지자 잉글랜드 군대는 할 수 없이 베릭으로 물러나야 했고, 두 번째 공격이 계획되었지만 실패했어.
이럭저럭 하는 사이 브루스는 스코틀랜드의 잉글랜드 군대를 격파하고, 맥더걸 가문에 복수했으며 커뮌의 일족에게도 치명타를 가했어.
여기에 로버트 브루스의 외조카인 랜돌프경이 항복하면서 다시 스코틀랜드의 군대는 커졌어.
특히 벤  크루아첸(Ben Creuachen)의 관문에서 양쪽으로 공격 받은 맥더걸의 군사들은 대패했고, 다시 자신감을 얻은 브루스는 잉글랜드 영토를 본격적으로 침공하기 시작했지..

 


큰 피해를 입은 노섬브리아 사람들은 2,000 파운드를 바친 뒤에야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1313년에 에드워드 브루스는 던디 성을 점령했어.
다시 브루스에 공격 받은 지방들은 10,000 파운드를 제공하고 나서야 일시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고, 이제 잉글랜드는 오로지 스털링의 요새를 제외하면 스코틀랜드에 남은 땅이 없었지.
그나마 스털링의 성도 에드워드 브루스가 봉쇄하고 있었는데, 이 때 영주였던 모브레이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어.
잉글랜드 왕이 한 여름까지 성을 구원하러 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성을 바치겠다는 거였지.
에드워드 브루스는 이 협정에 합의했고, 이 소식을 들은 로버트 브루스는 잉글랜드 군대가 공격해 올 것이라는데 불안해 했지.
그러나 이 무모한 남동생은 형에게 말했어.
"에드워드가 있는대로 군사들을 전부 데려오라고 하시오. 아무리 강력한 군대가 있더라도 우리는 맞서 싸울테니."
로버트 브루스도 고개를 끄덕였지.
"그렇다면 아우여, 남자답게 맞서 싸우기로 하고, 우리를 따르는 자들과 스코틀랜드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모든 이들에게 가진 병력을 전부 끌고 오도록 해서, 대군을 이끌고 스털링 성을 구하러 오는 에드워드 왕을 힘껏 대적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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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학원 일정이 앞당겨져서 여기까지로 끊을 수 밖에 없네 ㅇㅅㅇ;;

(지금 심정...)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history&page=2&sn1=&divpage=5&banner=&sn=on&ss=on&sc=off&keyword=게이볼그&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1499 <-배넉번 전투에 대해 참고하고 싶은 ?O들은 여길 보면 될거야;;
혹시라도 계속 읽던 ?O들이 있다면 정말 미안하구...이번 수능 끝나면 될 수 있다면 배넉번 전투부터 다시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해볼게.
그럼...

 

P.S 하나 더-대세는 고양이귀?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게이볼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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