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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코틀랜드 전쟁(3-폴커크의 전투)

구름위 2012. 10. 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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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데 워렌과 그의 군대를 격파하고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이룩한 윌리엄 월리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악당 에드워드는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서 월리스를 공격하는데...

에드워드가 군대를 동원해 스코틀랜드를 칠 준비를 하는 동안, 월리스도 가만히 있는건 아니었어.
일단 스털링 다리의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은 격파했지만, 아직 스코틀랜드에는 적지 않은 잉글랜드 인들이 남아 있었거든.
월리스는 일단 스코틀랜드를 청소하고, 상황이 좀 안정되자 군대를 이끌고 컴벌랜드와 노섬브리아 일대를 공격해서 약탈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윌리엄 월리스의 군대는 브레이브 하트에 나오는 것처럼 정의롭기만 한 군대는 아니었지.
우선 월리스는 돈이 없었거든-_-;;
일단 잉글랜드 놈들을 몰아낸다는데 의기로 일어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지만, 아무 소득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잖아.
결국 윌리엄 월리스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잉글랜드 촌락을 약탈하는데 별다른 제제를 가할 수 없었어.
그래서 스코틀랜드 군사들이 스쳐지나간 잉글랜드 마을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
더군다나 월리스는 여자와 아이는 보호했을지 몰라도 무기를 든 남자는 사정없이 죽인다는 주의였거든.
특히 스코틀랜드 북쪽의 더노터 성에서 잉글랜드 군대와 싸울 때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났지.

 

 


월리스의 군대가 이 성을 점령했을 때 잉글랜드 병사들은 교회로 달아났지만, 월리스는 아예 교회를 불태워버렸어.
잉글랜드 군인들은 불에 타죽거나, 칼에 맞고 쓰러지거나, 혹은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절벽을 따라 헤엄치다가 갈매기처럼 소리치면서 자비와 도움을 청했지만' 전부 익사하고 말았지.
한편, 월리스와 스코틀랜드 군대는 이 광경을 보고 끔찍한 죄책감을 느꼈어.
이들은 성직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교회에서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데 참회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이 때 월리스는 군인들이 뉘우치는 모습을 보며 비웃었지.
"님들 모두 무죄3. 개념없는 잉빠 색히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짓에 비하면 이런건 아무 것도 아니3. 이런걸 가지고 머뭇거리는 ?O들이 더 ?抵볜?3. 그러고도 스코틀랜드 군대라고 할 수 있으3?"
더군다나 월리스는 낮은 출신 계급 때문에-비록 지주의 아들이라곤 해도-고위 귀족들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

 


한편, 플랑드르에서 군대를 정비한 에드쨩은 서서히 군대를 이끌며 스코틀랜드로 진군했지.
지금까지 있었던 전쟁을 통틀어 잉글랜드가 동원했던 군대들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해.
일단 에드는 2,400명의 갑옷 입은 기사와 2,900명의 보병을 이끌고 요크에 도착했지.
요크에서 여덟 명의 백작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에드워드의 군대와 합류했어.
백작들의 군대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단련된 최정예의 에드워드 군대만큼은 못해도 압도적인 숫자의 하급기사와 보병들로 이루어져 있었지.

 

 

(위풍당당 기사단...)

 


드디어 에드워드의 대규모 군대가 스코틀랜드의 국경을 넘어 월리스를 서서히 몰아가기 시작했어.
이 와중에 월리스는 고구려가 그랬듯 평야의 곡식들은 전부 수확하거나 불태워버렸지.
사실 보급이라곤 거의 현지 보급에 의존했던 중세 전쟁에서 에드워드의 군대는 장기전을 수행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했거든.

 

(밥이 없어요...)

 


마침내 에든버러에 도착했을 때 에드워드는 2주일이나 기다려야 했어.
그 동안 더럼(Durham)의 주교와 그 군대는 Dirleton과 근처 두 성을 함락시켰어.
그리고 나서야 잉글랜드 군대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병사들은 춥고 배고픈 불쌍한 몰골이었어.
이런식으로 사기가 뚝 떨어지면서 잉글랜드나 가스코뉴의 병사들과 웨일즈의 궁수들 사이에 자주 다툼이 벌어졌어.
사실 보병의 대부분은 웨일즈 인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롱보우로 무장하고 있었을 뿐더러 잉글랜드 인들과 사이가 지독하게 안좋았지.
한편, 잉글랜드 군대의 사기가 뚝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감지한 월리스와 그의 군대는 1298년 6월 21일 잉글랜드 군대와 맞부닥쳤지.
새벽 일찍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정찰대가 폴커크(Falkirk) 근처에서 만나 소규모 교전이 발생했지.

하지만 월리스는 잉글랜드 군대의 현 상황을 오판하고 있었어.
전날 웨일즈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긴 했지만 에드쨩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혼란 상태는 가라앉았을 뿐만 아니라 던바 백작 패트릭과 앵거스 백작 길버트라는 스코틀랜드 귀족이 에드워드에게 정보를 제공했지.
사실 저 둘은 작위만 스코틀랜드거였지 실제로는 잉글랜드 인이었다고 해.
그나마 월리스가 위안으로 삼을만한 것은, 에드워드의 말이 뭔가에 놀라서인지 갑자기, 그리고 감히 고귀한 주인에게 강력한 차지를 감행해서 갈비뼈 세 대를 부러트려 놓았다는 것 뿐이었지.(레...레이퍼!)

 


더군다나 치명적인 것은, 영국 군대의 신무기의 활용을 예측하지 못했다는고야.

비록 사기가 뚝 떨어지고 자주 싸움이 벌어졌어도, 에드워드의 크고 아름다운 군대는 아직도 스코틀랜드에 비하면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지.

 

 


물론 월리스도 최대한의 준비를 갖추어 진군했어.
월리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기병 돌격을 저지할만한 새로운 대형을 고안해냈지.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기병 돌격을 저지할 수 있는 진형을 만들어 냈어.
월리스는 그의 군대를 네 개의 단단한 밀집 대형을 만들고 싸우게 했어.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스킬트론", 혹은 "쉴트론"이지.
3m나 되는 장창 세줄이 앞쪽을 향해 이빨을 들어내고 있고, 가장 앞 열에 배치된 병사는 무릎을 꿇고 창을 들이 대고 있어.
이 직사각형 대열 주위에는 목책이나 밧줄을 둘러 주위를 보호하고, 각 대열 사이에는 궁수들이 대기 중이었어.
물론 스킬트론은 꼭 직사각형을 필요는 없었고, 방진, 원진같은 변형도 존재하지.
혹자는 폴커크 전투에서 이 것이 등장했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스털링 전투에서도 월리스가 이 전술을 사용했다고도 해.
어떤 사람은 16년 후의 배넉번 전투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어서, 스킬트론이 실제 사용된 시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어.
하지만 이와 유사한 장창 밀집 대형이 스코틀랜드 저지대 창병들 사이에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그런데, 영웅의 운명이란건 꼬일대로 꼬이기 마련이지.

 

 

(이것이 젊음인가-꼬일대로 꼬인 운명)

 


월리스도 마찬가지였어.
그는 잉글랜드의 주력을 완벽하게 분쇄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전장에 나섰지만, 에드워드는 또 이거에 딱 들어맞는 전술을 들고 나왔지.
지난 번 웨일즈 전투에서, 비록 에드워드는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남 웨일즈인의 기습적인 궁수 사격과 그 화력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어.
에드는 비록 돈이 많이 들고, 야만적이고 반항적인 짜증나는 웨일즈인들을 군대에 집어넣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궁수들을 활용하려고 했지.
비록 그동안 툭 하면 불평을 늘어놓고 싸움질이나 해대서 시꺼멓게 속을 태우긴 했지만, 10,500명의 웨일즈 궁수들이 스코틀랜드의 야만인들을 꼬챙이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리라 이를 갈고 있었어.

 

 

 

드디어 전투에 나섰을 때 스코틀랜드는 네 개 스킬트론을 이룬 창병 8,000명과 궁수 1,500명, 기병 500명으로 총 10,000명의 군대였지.
이에 반해 잉글랜드 군대는 최소한 보병만 12,900명에 달했고, 기사는 약 2,250명이나 되었다고 해.
물론 저 숫자 중 대부분은 보조 군대인 웨일즈 인이었으니까, 아마 다른 잉글랜드인 보병 부대까지 합하면 실제로는 저보다 더 많을꺼라고 추측해.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에드워드는 참을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혈기 넘치는 젊은 잉글랜드 기사들을 내세워 스코틀랜드의 창진에 돌격하도록 명령했어.
제 1열을 이끈 마샬 백작과 기병대가 진군했을 때 이들은 스킬트론 앞의 늪지대와 밧줄 때문에 진군을 멈췄어.
두 번째 열의 기사들을 이끈 더럼의 주교 안토니 백작도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혈기를 주체할 수 가 없던 드레이턴의 램프 바셋경은 경멸하는 태도로 주교를 질타했어.
"주교님, 가서 미사나 드리시지요."

 


그리고 전속력으로 스코틀랜드 군대를 향해 맹렬한 돌격을 감행했어.
말이 지축을 울리며 돌진을 가해왔지만 월리스와 스킬트론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지.
잉글랜드의 기사들은 그들이 돌격하는 정면에 뾰족한 창의 숲이 놓여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
하지만 그들은 멈출 수도, 그리고 멈출 마음도 없었지.
드디어 두 군대 사이에 충돌이 이루어졌지만 잉글랜드 기사들은 이 창날의 숲을 뚫을 돌격력도 부족했고, 역량도 모자랐지.

 


돌격을 시도한 바셋 경의 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스코틀랜드 스킬트론은 무너지지 않았어.
비록 잉글랜드쪽이 큰 손해를 보았지만 이득이 없었던 것도 아니야.
이 기사들 중 일부는 스킬트론 사이의 틈으로 파고들어 궁수들을 격퇴시켰거든.
이 때 에드워드는 웨일즈의 장궁 부대를 진군시켰어.
이 궁수 부대가 자리를 잡았을 때, 월리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지.
로버트 브루스-지난번 로버트 브루스의 손자-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왕권을 놓고 다투던 레드 커뮌-그의 친척인 "검은" 커뮌과 구분하기 위해 붙은 별칭-과 그의 기병대가 사라져버린고야.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깃발을 흔들며 애타게 기병대를 바라보던 깁슨아찌의 표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레드 커뮌과 그 기사들은 죽일놈이지만, 이들도 할 말은 있어.
바로 월리스에게 패해 이를 갈던 존 데 워렌과 그의 425명의 기사들이 소택지를 우회해서 스코틀랜드 기병들을 공격했거든.
비록 숫적으론 비슷했을지 몰라도 상대는 던바의 영웅 존 데 워렌이었고, 군마나 무기, 규율과 기량에서 스코틀랜드 기사들을 압도하고 있었지.
귀족 부대가 월리스에게 가진 반감이 어느 정도 작용해서 큰 저항 없이 물러났을지는 몰라도, 기병의 패퇴는 단순한 배신보다는 이 공격의 결과로 보는 편이 타당하겠지.

 


그리고 궁수와 기병이 격퇴된 스코틀랜드 창병들은 오로지 홀로 전장에 남겨지게 되었어.
이제 죽음의 이빨을 겨누는 웨일즈 장궁병들을 견제할 어떠한 수단도 남지 않았거든.
대응 사격을 할 궁수도, 웨일즈 궁수들을 쫓아낼 기병도 없었어.
더군다나 치명적으로 경장에 빽빽한 대열을 취한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어.
물론 "창의 숲"의 빽빽한 창대는 화살 공격에 의한 피해를 줄여주지만, 상대는 롱보우에다가 숫자도 압도적이었지.
일반적인 소규모 궁수 부대였다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쏟아지는 가공할만한 화살비에 스코틀랜드 군대는 쓰러지기 시작했어.
스코틀랜드 인들은 그 자리에서 버텨내려고 했지만 끝내 숱한 사상자를 내고 진형은 붕괴되고 말았지.
드디어 잉글랜드 기병대가 바람같이 돌격했고, 진형이 무너진 스킬트론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어.
월리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존 그레이엄경을 비롯해 수많은 스코틀랜드 인들이 이 전투의 결과 전사하고 말았어.
윌리엄 월리스와 소수의 생존자는 간신히 숲으로 달아나야 했어.
마침내 월리스는 패배하고, 그의 군대는 와해되었지.

 

 

폴커크 이후, 상당수의 귀족이 에드워드에게 굴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항복하기를 거부했지.
그는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7년 동안이나, 그리고 모든 이들이 에드워드에게 굴복한 이후 1년 동안 계속 숲과 산을 돌아다니면서 잉글랜드인들을 공격했지.
하지만 월리스를 사로잡은건 영국인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인이었어.
바로 존 멘티스라는 사람이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테이블 위에 있던 빵 한덩어리를 뒤집어 바닥이 올라오게 하는 것을 신호로 월리스를 잡았다고 해.
이 부끄러운 행동 이후, 멘티스 지방에서는 절대 빵을 뒤집으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
에드워드는 잔혹한 웃음을 지으며 월리스를 재판에 회부했지.

 


(도대체 몇 번째 울궈먹는거냐!)


잉글랜드인들은 그가 스코틀랜드 강도떼의 왕이었다는 뜻으로, 마치 봐이블의 한 인물처럼 가짜 왕관을 씌워주었어.
뭐, 가시나무는 아니고 나뭇잎으로 만든거라곤 하지만.
월리스는 반역자로 재판에 회부되었음에도 당당하게 변론했지.
"나는 에드워드에게 충성을 맹세한 적이 없기 때문에 반역자가 될 수 없다."
"내가 많은 잉글랜드 사람들을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그들이 먼저 쳐들어와 내 조국을 억압하고 정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더 많은 잉글랜드 인을 죽이지 못한것을 유감으로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형은 정해진 사항이었고, 잉글랜드 재판관들은 사형을 언도했지.
월리스는 사형장으로 옮겨져 목이 잘리고 몸체는 네토막으로 절단됐으며, 그 토막난 몸은 런던교에 전시되었지.

하지만 영웅의 최후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는 무너지지 않았어.
깁슨 아찌가 마지막에 자유를 외쳤듯, 자유를 향한 스코틀랜드인들의 정신은 꺾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월리스의 후계자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로버트 브루스라는 사람이었지.

 

P.S 여행갔다 옵니다...갔다 와서 하루 쉬고 재수학원...OTL

잘하면 배넉번 전투까지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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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게이볼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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