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옛 우리 이야기

[스크랩] 조선의 만주 출병 - 명나라에 대한 후금의 도전

구름위 2012. 10. 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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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는 1616년에 홍경노성에서 나라 이름을 후금으로 하고, 칸의 지위에 올랐다.

나라 이름을 후금으로 한 것은 북송을 멸망시키고 화북지방을 차지한 금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겠다는 뜻이다.

명에 대한 대내외적인 선전포고다.

이때 후금은 일부 부족만 제외하고 여진을 통일한 상태라 마음놓고 명에 대해

전쟁을 할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는 2년 뒤 후금은 행동을 옮긴다.

후금군이 명나라 요동의 무순지역을 공격한 것이다. 이 공격으로 명나라와 여진족간의

장기간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17세기의 동아시아의 혼란을 알리는 서막이 되었다.

1618년 4월 누르하치는 명에 대해 7가지의 원한을 토로한 뒤, 군사 1만을 이끌고

무순성을 공격했다. 무순지역은 철를 많이 나는 지역이며, 후금과 명나라 사이의

교역의 중심지였다. 후금의 철기 기병 1만의 위용에 놀란 무순성의 성주 이영방은

저항을 포기하고, 순순히 항복했다. 후금군 1만은 무순성을 점령하자, 이곳의 재물이나

사람들을 만주 내지로 다 옮기고, 그 곳을 황폐화 시키고, 주변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이어, 후금군은 요동총병관 장승음(張承蔭)이 이끄는 구원군 1만이 근처에 도착하자,

쉴 기회도 주지않고 단번에 공격하여 대패시켰다.

그 열세를 몰아 후금군은 더욱 남하하여 주변 부락을 약탈하고는 점령한 지역을

포기하고 만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명나라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 이전부터 국경문제, 무역문제로 여진과

명은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충돌은 없었다. 누르하치의 성장이 우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동안의 상황은 그래도 참을 만 했다. 여진 내부의 전쟁이 발생했을 뿐

이지, 명나라를 직접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이 무순지역은 여진족들이 생필품을 구입하던 교역장소이기 때문에 이 곳을 누르하치가

쳤다는 것은 사생결단하고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뜻한다.

명나라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명의 조야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술렁거리면서 이 기회에 후금을 손봐줘야 한다고

한다는 내용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명나라는 누르하치를 응징하기 위한 원정군이 편성하였다.






출처 : 역사 속의 전쟁사
글쓴이 : mok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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