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요트 이삭호 항로 따라 가보기 6

구름위 2013. 4. 23. 11:42
728x90

이삭 소식 제 8호

안녕하세요.  어쨌든 다시 소식을 전하게 됐군요.
그래 우리 정 여사, 이 장군부부 등 모두 잘 지내겠지요.  많이 보고 싶습니다.
저번 소식 전 한대로 우리는 대만 중동부에 위치한 '화련'에 입항하여 디젤, 물 등의 재보급을 한 후 28일 월요일 아침 11시 다시 출항하였습니다.  


기회가 되면 대만에서는 '키룽'항에 잠깐 머문 후 '화련'항에 조금 더 머무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키룽'에서 '화련'에 오기까지 쿠로시오(黑潮)로 애를 먹어(쿠로시오 본류의 유속이 2 - 2.5놋트까지 나오는 것 같은데 이삭호의 경우 막대한 지장이 있었음), 이번에는 조류의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해 해안에서 2마일 이상 벗어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연안에 바짝 붙어 항해하니 조류의 영향이 거의 없었습니다.  야간에는 조금 신경이 쓰였으나 배가 쑥쑥 빠져나가는 맛에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래 80마일을 하루만에 달려 당초 계획하였던 대만 남단의 '타이통' 항에 29일 아침 9시 경 입항하였습니다(당초 예상 했던 거 보단 항 시설이 괜찮았습니다.  


바로 앞 20마일 정도에 '란 유'라는 온천관광지 섬이 있어 관광객이 많고 섬과 연계되는 대형 파워보트가 여러 척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름을 다시 추가로 5말, 엔진 오일 4리터 짜리 2통을 구입하여 당일 오전 11시 재 출항하였습니다.



그래 그 날 밤 자정경 대만 남단의 꼬리에 도달하였습니다(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는데 대만에 꼬리가 달려 있습니다.  해도를 잘 확인해 보세요).  당시 풍속이 뷰포트 7에서 8정도 된 걸로 추측합니다.  처음에는 축범도 하지 않고 신나게 뒷바람을 받아 내려가다가 잠시 조는 바람에 역 자이빙이되며 붐가이(붐뱅은 붐을 상하로 조정하는 로프이지만, 붐가이는 붐을 좌우로 고정시키는 로프로 특히 러닝상태시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여 왔음)가 터 져버렸습니다.  

 

다시 어렵게 붐가이를 재 설치하고 1단 축범하였으나 다시 2번 더 터져버려습니다.  그리고 해도에 대만꼬리 부근에 파도가 이는 표시인 지렁이 기어가는 표시가 되어있어 사전에 집사람에게 아마 조금 꼴랑거릴거니 크게 걱정하지 말아라고 얘기했는데,  그곳에 진입해 보니 정말 놀랐습니다.


현재까지 겨울 강풍으로 경험한 어떤 파도보다 엄청남 파도를 만났습니다.  지금까지는 좀 고생은 스러웠어도 죽는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이걸로 끝장이 올 수도 있겠구나하는 단계에까지 가 보았습니다.  



파도가 한 방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좌, 우, 전, 후 아무 방향에서나 몰아 치는데 칵핏은 온통 물바다로 바닥 나무판이 둥둥 떠다니고 심지어 앞에 않아 있던 마누라가 파도에 쓸려 나한테 ?K아져 오곤 했습니다.  

 

파도 물이 선실로(GPS등 계기를 보기 위해 햇치를 아래만 닿아 놓을 수밖에 없었음) 쏟아져 들어가고 정말 대단했어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당시 메인쎄일만 2단 축범해 올린 상태인데 엔진을 훌 가동하며 뒷바람을 최대한 받도록 해도 배 앞머리가 파도에 이리저리 왔다갔다해 배가 전혀 앞으로 나가질 못하는 겁니다.  온 정신을 가다듬으며 어떻게 하면 이곳을 빠져나가느냐 하는 악전고투의 2시간을 지나 SW방향으로 진로를 잡으니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겁니다.  

아마 대만 남단에서 만나는 조류, 해저 지형 상태, 풍향 풍속에 따라 복잡한 유체운동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절대로 45-58 N, 120-52 E에서 반경 5마일 내는 절대로 들어가지 마세요.   아마 파고가 10미터는 족히 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피해 상황 : 아마츄어 햄 무전기 파도에 완전 고장, 수심계 원인 불명 작동 중단, 어탐기 키보드 작동상태 불량, 틸러 익스텐션 유실, 선수 항해등 파손,  HF 선 안테나 절단, 선실내 보관 중이던 쌀 및 주부식 해수 침투 사용 불가 등).  


이곳을 벗어나자 센 뒷바람에 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루존해협은 생각보다 빨리 넘어 왔습니다(그러나 파고는 3-4미터 이상으로 고생이 많았음).  

 

그래 처음에 계획하였던 필리핀 '루존'섬의 북단  Open Port인 '산 훼르난도'는 들리지 않고 '마닐라'로 직행키로 했습니다(센 뒷바람에 당초 예상했던 기름 소비량의 1/2도 소모치 않음).   



그 후 '루존'섬의 연안을 따라(연안에서 좀 떨어지면 약 1 놋트 정도의 쿠로시오 역류가 있음) '마닐라' 만 입구에 2 월 4일 새벽에 도착하였읍니다.  


대만 남단의 '타이통'을 떠난 후 약 6일만으로, 하루 100마일 정도씩 항해 한 겁니다.  다른 배의 경우 일/100마일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삭호의 경우 상당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필리핀의 해적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잖아요.  우리가 필리핀에 간다고 하면 어느 곳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이나 모두 열이면 열 다 '해적 조심해라' 였습니다.  미리 해적 깃발을 크고 무섭게 만들어 달고 가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국기를 달아라, 또는 무기를 사 가지고 가라는 등 겁을 많이 먹게 한게 사실입니다.  

 

이게 모두 헛소리입니다.  물론 옛날에 그런 일이 한두 번 있었는지 모르지만 크게 과장된 거 같아요.  겁을 잔뜩 먹은 상태에서 필리핀 해역에 처음 들어 왔을 때 깜짝 놀랐어요.  보이지도 않던 현지인 소형 Out-rigger(길이가 4-5미터의 전형적인 열대지방의 소형 Tri-marane)가 언제 나타났는지 바로 옆에 와 있는 겁니다.  

 

그리고 2명의 복장이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요.  처음에는 크게 놀랐어요.  마음을 진정하고 자세히 보니 아주 순박하고 가난한 시골 어부예요.  얼굴을 가린 두건은 단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한 겁니다.  

 

배 안에 놓인 스치로폴 상자에서 큰 삼치(길이가 1미터는 됨)를 끄네더니 사라는 겁니다.  사전에 얻어들은 정보대로 1차 우리는 배가 부르다는 몸짓을 하며 미안하다 하니 자기들도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흔들며 가버리는 겁니다.  

 

조금 있으니 이런 배가 계속 나타나는 거예요.  배가 작고 낮아 멀리서는 파도에 가려 보이지도 않다가 빠른 속도로 갑자기 다가옵니다.  절대 놀라지 마세요.  모두 착한 사람들이에요.  그래도 사전에 들은 얘기가 있어 돈은 없고 깡통 통조림이나 라면 같은걸 보여주며 교환하자고 하면 거래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루존'섬 북단에서 주로 많이 나타납니다.   남쪽으로 내려오면 옆으로 지나치며 서로 손짓 인사를 하며, 생선을 사라는 요구도 하지 않고 지나치게 됩니다.   하여간 이렇게 해 악명 높은 해적 얘기는 끝나 버린 겁니다.   

 

산호초가 올라와 수심이 좀 낮아진 곳에는 이런 어부들이 꼭 있으며,  그들이 위치를 알기 위해 드럼통, 땟목등을 앵커 시켜 놓고 그 위에 야자나무를 세워 놓아 멀리서 보면 꼭 윈드서퍼가 있는 거 같이 보입니다.  

 

하여간 서울이나 부산거리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걸 재삼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제 해적 얘기는 먼 옛날의 얘기로 자꾸 과장되어 전파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아직 해적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같은 조그만 돛단배를 건드려 봐야 돈 몇 푼 벌지 못하고, 언제 돛단배가 지나갈 줄 알고 그 넓은 바다를 항상 지키고 있겠습니까 ?  

 

아마 그들의 인건비는 고사하고 밥값도 못 버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 해적 얘기는 걱정을 마세요.  그리고 한가지 더.---  이곳 Coast Guard들도 어부들과 똑같이 생긴 아웃리거를 타고 다닙니다.  복장도 가지각색으로 우리가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단지 배 옆전에 조그맣게 필리핀 코스트 가드라고 써놓고 배 뒤에 조그만 국기를 달았을 뿐입니다.  총을 갖고 접근한다고 놀라지 말고 잘 보세요.  바로 필리핀 해안 경비대 요원 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드디어 마닐라 만을 오전내 달려(마닐라 만도 입구에서 클럽까지 30마일 거리로 굉장히 큰 만임) 요트 클럽에 2월 4일 오후 1시경 입항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사전 정보대로 12번 채널로 요트클럽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핸드헬드 VHF 성능이 약했던 걸로 생각됨) 그냥 입항하니 요트클럽 사무실에서 관련기관에 모든 연락을 다 취해 주는 겁니다.   이제부터 또 다른 필리핀의 실정을 파악하게 됩니다.  

 

검역( Quarantine)부터 와서 뇌물 신갱이를 하게 됩니다.  별것도 아닌(조잡한 복사 용지) 서류를 여러장 싸인해 주며 1500페소를 내라는 겁니다.  검역이 한 장이면 되지 뭐하러 5장씩이나 필요하냐, 그리고 1인당 200페소(사전 '오바다'상의 정보가 있었음) 이상을 못 내겠다 하며 무려 한시간을 싸우다 결국 1000 페소에 합의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음 세관, 출입국 모두 기본이 되 버리는 겁니다.  1000 페소 해봐야 우리 돈으로 약 27000원 정도 인데 한 부서에서 3명씩이나 나와 노나 먹으면 별것도 아니고 또 가난이 죄지 못 사는 사람들 좀 도와 준거로 치자하고 마무리를 짓고 말았습니다.(이곳 영어 발음이 알아먹기도 힘들고 대화가 좀 어려워 매우 피곤하였음.  오히려 미국이나 서양인들은 더 안 내는데 일본이나 다른 동양인들이 어쩔 수 없을 걸로 사료됨)   



마닐라 요트장 정보 : 마닐라 만은 큰 만으로 입구에서부터 요트장까지는 30마일 정도로 항상 만 입구 진입시 맞바람과 이에 따른 잔파도가 있으며, 수많은 소형 어선이 그물을 끌고 있어 이에 대한 주의가 요망됨.  


요트장 입구 좌표 : 14-33-90 N, 120-58-60 E
마닐라 요트클럽은 회원제로 폰툰이 있는 Berth는 방문객은 사용할 수 없고, 설치해 놓은 Mooring Bouy에 계류 시켜 놓은 후, 클럽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보트 써비스로 육지로 출입을 함(보트 써비스 호출은 VHF 16번 채널임).  

 

클럽에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고, 직원용 저렴한 식당도 있으며, 훌륭한 샤워시설이 무료임.  세탁은 외부의 세탁소를 이용해야 함.  근처의 5분 거리에 Harrison Plaza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어 모든 식생활용품을 입수 할 수 있음.  필리핀의 일반적인 경비원 체제와 같이 요트장도 삼엄한 자체 경비가 있어 맘 놓고 배를 앵커시켜 놓고 있을 수 있음.

배에 대한 하드웨어(샤클, 체인, 앵커 및 스텐리스 류 등)는 마닐라 북부의 챠이나타운에 가면 일반 선박용의 부품은 저렴한 가격에 구입이 가능함(부산에서 20만원 주고 구입한 스크류를 단돈 2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하였음).   

 

필리핀의 물가는 무척 저렴하여 처음에는 이해가 좀 어려울 정도임(예로 이발비가 우리돈 1500원 정도,  약 3000원 정도이면 고기류를 포함한 푸짐한 한끼의 식사가 해결됨.)    물론 아직 저개발국이기 때문에 요트장 바로 앞에 위치한 필리핀 중앙은행의 대형 건물 옆 골목에는 애들이 딸린 노숙자 가족들이 종이상자 하나 깔아 놓고 아무 살림살이 없이 살고 있으며, 공원이나 빈 공간이 있는 곳이면 아이들이 주렁주렁 달린 노숙자 가족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음.   

 

그리고 이들이 처음에는 겁도 났었으나 역시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우리의 1960년대 상황) 아주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 우리의 옛날 생각이 나서(내 기억으로는 우리도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이보다 더 못한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됨) 좀 안됐다 싶어 애들에게 사탕이라도 하나 주고 싶지만 잘못 그랬다간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몰려 올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못 본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그들이 볼 때는 나는 하늘에 사는 사람같이 보일 겁니다.  그러나 그들을 다 도울 수도 없고, 또 그게 잘하는 짓도 아니고, 결국 내 편리한데로 판단하여 모른 체 하기로 했습니다.    
마닐라 북부에 위치한 챠이나 타운(Binondo 지역의 Gandara 골목이나 T.Alonzo 골목 또는 Soler 거리등)에는 우리의 청계천, 동대문 시장 같은 곳이 있어 모든 공구, 부품, 특히 스텐리스 제품 등의 구입이 가능합니다(어탐기, 무전기 등의 전자제품은 구하기 어려움).  우리 시장처럼 몹시 붐비고 복잡하나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크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가격이 매우 저렴합니다.

우리는 이곳 마닐라에서  2월 10일 출항하여 '오바다', '카나다'상이 있는 '본보논'으로 갈예정입니다.

 

  이곳부터는 아마 시베리아 겨울 계절풍 영향이 적어 강풍을 만나기는 어렵고 주로 미풍을 따라(이삭호는 배가 무거워 오히려 강풍이 바람직함)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5 - 6일 만에 도착하면 다행이고 7 -8 일까지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재미있는 일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하지만 나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비행기타고 여행한다면 도저히 경험하지 못할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좋은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이곳 마닐라 요트클럽의 서양인들한테서도 많은 격려를 받고 있어요.

전형이 첨부해 보내준 메일 내용의 재미교포 윤씨에 대한 내용에 대해 더 이상의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나도 가능하면 무리한 항해는 하지 않기를, 특히 아무 것도 모르는 다른 젊은이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 사실 공개적으로 내 얘기가 나가는 거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입장입니다.  특히 내가 하는 짓은 절대 정상이 아니니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얼마 되지 않는 항해를 해오며 과연 진실은 어디까지 진실이며 또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또 누가 감히 그 진실을 얘기 할 수 있는지, 하여간 뭐하나 아직 뚜렷이 잡히지 않고 있어요.  그걸 알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당연한 건지 ? 모르겠어요.  이제 그만 잘랍니다.  좋은 밤 되세요.

                    2002 년 2 월 6 일  마닐라 요트 클럽에서  이 삭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