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단독세계일주 기록인정 못하는 이유를 밝혀주십시요....

구름위 2013. 4. 1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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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경 해양박물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세계일주를 한 인트레피드호를 박물관에 기증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현재 세계일주후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무상기증은
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산의 전우홍씨와도 유물매입을 의논하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같이 구입하여 전시하는 쪽으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저는 지인으로부터 전우홍씨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상을 받았다
사실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계일주성공자를 위한 선대를 제작하여 빈 자리를 놓아두자는
것이었지요.
저에게 해양박물관에 전시되는일은 사실 영광스러운 일이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는 차에 혹시 일이 잘못될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겠지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해양박물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역시나 전우홍씨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면서
저의 세계일주를 기록으로 인정할수 없다는 말을 한 상태여서
부서는 다르지만 구매가 어렵게 되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감정을 추스릴수가 없어 전우홍씨에게 전화를 하여
사연을 물었습니다.
‘항해중 배를 그대로 두고 한국에 왔다가면 안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한사람이 평생을 별러 완성한 세계일주를 기록으로 인정할수 없다면 본인의
생각이 아닌 어딘가 규정이 있었겠지요 그것을 알려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때 전우홍씨는 ‘그건 나의 사견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때 인터넷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국토해양부에 그렇게
말했다면 이미 사견의 경지를 넘어선 것입니다.

제가 계속 규정이 어디있나고 묻자
‘그럼 집에 와도 된다는 규정은 대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사람에 대해서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곳 사이트에서 최초 전우홍씨가 아래글을 올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통화도중 전화를 끊어버려 여기저기 그 규정에 대해서 알아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기항세계일주 도중 집 또는 타지로 여행을 가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없었습니다.
혹시 싶어 항해경험이 오래된 김현곤 선장께도 물어보았지만
그런 규정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규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출발지로 다시 돌아올것
2)전 경도를 항해할것(물론 이것은 세계를 한바퀴돌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21600마일을 초과할것
4)남반부에 출발하는 자는 북반부로 한번 올라올것(이것은 무기항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5)희망봉,케이프혼등 3곳을 돌아야할것(이것도 무기항에 해당합니다.)
6)혼자할것(네들란드 소녀가 80마일을 남겨두고 마중나온 친구를 태워 인정받지
못한일이있음)

세계일주는 기항세계일주와 무기항 세계일주가 있습니다.
얼마전 호주소년 제스마틴이 한것은 무기항무원조항해였고
지금 네들란드 14세소녀가 하고 있는 것은 기항세계일주입니다.
그 소녀는 대서양을 건너 파나마운하를 통과한뒤 태양을 건너
어딘가로 항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나라에서는 수십년전에 기항세계일주는 해내었고 무기항세계일주를 완성한
사람도 수백명에 달합니다.그런와중에 이런 것이 설왕설래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어서 처음 아래의 글을 박초풍의 바다이야기에 올렸을때
그냥 지나쳤더니 이제 개인의 사견을 훨씬넘어 관공서에도 그런
의견을 피력해 저의 명예에 흠집이 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혼자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한번 한다는 것이 쉬운일일까요
저는 규정을 어느정도 알고 갔기 때문에 몇 번인가 유혹이 있었지만
그것을 뿌리치고 결국 혼자서 해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공공연히 폄하하거나 부정하려면 개인적인 사견이나
추측만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우홍씨께서는 이것은 밝혀주시기바랍니다.

전우홍씨가 적은 글을 올립니다.
이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고 본사람도 수백명이 넘었습니다.

-아래-
요트 세계 일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한국인 요트 세계일주에 대하여 정확한 기록을 지켜 봐야하는 관찰자 입장에서 당사자로 부터 원성을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는 1997년 재미교포 강 동석님의 경우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미안한 일이였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사실의 기록을 위해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시 당사자인 강 동석님은 명예와 경제적인 손실도 적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감사를 받아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세계 일주를 했던 선구자2호는 14년 전 그의 배는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한다고 했으나 한국/부산의 실정으로 어쩌면 그 자체가 없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배였던 선구자 2호는 요트장 본관 대로변에 영구 전시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홈피 본문: 요트-요트여행기-요트잡문-선구자 참조)



1997년 강 동석님의 세계일주 기록에 대한 반박은 크게 2가지 이유였습니다. 첫째 이유는 요트를 포함한 모든 선박은 선미에 다는 국기(국적) 우선 주위로 선구자호는 미국선적이라 이유였고, 둘째 이유는 그의 세계일주 중에 남아프리카에 배를 계류하고, 즉 항해를 중단하고서 비행기로 미국에 돌아갔던 것(항해중단)을 개인적인 세계 일주는 모르지만 기록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여전히 개인적으로 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항해중단의 이유는 부친의 부고 소식을 듣고 미국을 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기록은 기록으로 남아야 했고, 당시 이를 지적 할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적 요트의 세계일주 성공 기록은 후배의 몫으로 공백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 시점 역시 한국인 요트세계일주 (무중단) 그 기록의 공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최근의 윤 태근 선장님의 요트 세계 일주에 대한 올바른 기록을 남겨야 할 시점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윤 선장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내용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모든 이에게 관심 없는 사항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강 동석님의 세계 일주에 대한 저의 소견을 피력했고 판단을 내렸기에 이번의 세계 일주에 대해서도 기록은 남겨져야 하고, 또한 세계 일주를 꿈꾸는 사람에게 기록도전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습니다.

크루져 요트를 하시는 분들은 크루징에서 기항하면서 세계일주하는 일들은 외국에서는
특별한 일(사건)이 아닌 일반적인 일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만의 왕소금 요티들은 기항 세계일주는 대부분 경험했거나 항해 중에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누가 요트로 일반적인 세계 일주를 하였다고 해서 개인적인 역사와 자랑... 혹은 지방신문의 기재는 몰라도 전국적인 기사거리는 아닙니다. 이는 개인적인 명예에 속하며 기록으로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어려운 요트 환경과 실정에서 이제 요트 크루징은 걸음마 단계로 신토불이 한국적 요트로서 기항-세계 일주를 했다는 것은 첫 계단을 올라 선 것입니다. 지금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윤 선장의 항해기록은 2009년 10월 11일 단독으로 한국 부산을 출항하여 쭉 기항항해를 하다가 2010년 5월 28일에 아프리카 튀지니 타발카항에 입항하였고, 그곳에서 비행기로 한국에 귀국하였다가 다시 그곳에서 8월8일에 세계일주 항해를 다시 시작되었고, 2011년 6월 7일 부산항에 입항하였습니다. 즉, 중간에 항해중단(약 70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한국 실정에서 요트 항해 무중단 기항 세계일주도 힘 든다는 역설적인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집트 옛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해답처럼,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에 4발로 기어다리고, 그 다음에 2발로 걸고, 그리고 지팡이(3발)에 의지하듯이 모든 것에 한 술에 배가 부르지 않듯이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한국 요트의 기록은 아주 정상적인 단계를 밟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으로 처음 독일교포 두 여성분이 1987년과 1991년에 시차를 두고서 독일배로 독일남편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하였고, 1997년 미국교포로서 강동석 선장님의 선구자2호는 단독으로 세계일주를 성공하였으나 중간에 항해중단(비행기로 미국귀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14년 후인 2011년 6월 7일에 신토불이(한국적 요트) 윤 태근 선장이 세계 일주를 성공하였으나 아쉽게도 피치 못 할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겠으나 위의 설명처럼 항해중단(1회)이 있었습니다.

이는 기록으로서는 한국에서는 아직 신토불이 세계일주 항해-무중단 기록이 공란(공백)으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그 상위 단계인 요트 무기항 세계일주의 기록도 공백으로 남아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이 모두 별 의미 없는 기록들이지만은 아직 한국 요트계에는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젊은 후배님들 그 명예의 자리는 바로 당신의 자리(기록)입니다.”

이 말은 14년 전, 저가 강 동석 선장의 기록을 논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후배들이여! 아직 당신들이 차지 할 두 자리의 명예가 남아 있습니다.

이는 명예라고 말했지만, 명예란 무의미 한 것이고...
그 길은 자신의 고통과 인내의 한계를 실험하는 인생 성찰의 길이 될 것입니다.

박초풍 정리하다,

P.S.:
1. 개인적인 시각에 따라 기록은 달리 정리 될 수 있고, 이는 단지 저의 생각입니다.
2. 올림픽의 금메달과 고산 등정의 성공은 종이 한 장의 차이입니다. 이들 두 분의 항해(세계일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기록과 별개의 사안입니다. 이는 실패라고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세계 일주에 대한 개인적인 자부심과 존중에는 변함없지만 기록은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강 동석 선장님에 이어 또 다시 기록을 위한 악역을 했다고 생각되어 지네요.
두 분 모두 넓은 세계 바다를 모두 구경했듯이 넓은 아량으로 이 알량한 ‘책상위의 항해자- Arm chair skipper’(기록자)를 용서하소서...

윤태근이 다시 씁니다.
내용이 아주 부드러운것같지만 저에게는 비수꼿히는 듯한 글이었습니다.
그때 반박하지 않았던게 실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요트란 바다를 재미나게 즐기려고 오는 사람들이 타는 것이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 염려해 갑논을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단지 개인적인 생각이었고 하지만 인터넷에 올려 수백명의 사람들이 보고
관공서에도 그렇게 피력하고 다니고 있는 지금 그건 이미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의 명예는 이미 실추되었고 매도 되었습니다.
그런 행동이 전우홍씨에게는 상이 되어 돌아왔지만 저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확실히 밝혀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11월4일

인트레피드호 선장 윤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