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 아메리칸 사모아 파고파고항~ 미크로네시아 폰페이항

구름위 2013. 4. 1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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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아직 갈 길 2천300마일, 마음은 벌써 부산 앞바다"




푸나푸티에서 나우루를 향해 가는 도중 낚아올린 대물 참치. 길이 70㎝에 몸무게가 6㎏쯤 나갔다. 참치회와 구이를 안주로 위스키를 한잔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4월 20일. 출항하는 날에는 언제나 약간의 긴장이 따른다. 눈을 뜨니 오전 4시였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출발 준비를 했다. 오전 6시께 주위가 밝아왔다. 조용한 새벽 바다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아메리칸 사모아 파고파고 항을 빠져나왔다. 배웅을 받고 뒷모습을 보이며 출발하는 것보다는 이른 아침에 잠들어 있는 항구를 조용히 빠져나가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고 덜 쓸쓸하다. 폰페이까지는 투발루의 수도인 환초섬 푸타푸티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인 나우루를 거치는 2천286마일의 항해이다.

파고파고 항을 빠져나와 북동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섬에 가려 바람이 없어 해면은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배가 지나간 곳에 자국이 길게 따라왔다.


산호초 사이로 항해 장대비 만나
6㎏ 참치 잡아 성대한 저녁 식사


푸타푸티로 항해하는 도중에는 아메리칸 사모아에서 구입한 재첩국, 어묵, 냉면 등 한국음식 때문에 항해가 지겹지 않았다. 고향 먹을거리가 넉넉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4월 23일. 한국과 시간대가 3시간 차이 나는 지역대로 들어왔다. 아메리칸 사모아에서는 계산하기 편하게 4시간 차이가 나는 걸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한국보다 20시간이 늦은 지역이었다. 이제 날짜변경선을 지남에 따라 실제로 3시간 빠//르게 되었지만 4월 22일은 사라지고 4월 21일에서 바로 23일이 되었다.

4월 26일. 오전 7시께 푸나푸티에 접근하여 산호초 섬 사이의 수로를 따라 환초 안으로 들어갔다. 환초 안쪽의 수심은 충분했지만 중간 중간에 암초가 있어서 그 사이사이로 조심스레 나아갔다. 그때 검은 구름이 다가와 장대 같은 비를 뿌렸다. 배를 잠시 멈추고 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20분쯤 퍼붓던 비는 올 때처럼 느닷없이 사라졌다.

오전 8시 30분께 상선 2척, 어선 3척이 정박되어 있는 푸나푸티 부두에 접안하였다. 중국 어선이 2척, 피지 어선이 1척인데, 피지 어선은 국적만 피지이고 선주와 선장은 한국인이라고 하였다.

부두가 있는 곳은 땅의 폭이 특히 좁아서 바로 건너편의 동쪽 해변이 보였다. 하루만에 이곳저곳을 가 보려면 기동성이 좋아야 한다.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내려가서 10호주달러를 주고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렸지만 그다지 가볼 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푸나푸티는 한국에서 남서쪽으로 약 3천850마일 떨어진 투발루의 수도인 환초 섬이다. 푸나푸티 환초는 남북으로 21㎞, 동서로 17㎞로, 중앙에는 육지가 없고 환초가 빙 두른 작은 섬으로 가운데 호수를 안고 있는 형상이다. 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인 투발루는 인구는 1만 900명, 1인당 국민소득은 825달러로 아직은 가난한 나라다.

푸나푸티는 나처럼 갈 길이 바쁜 사람이 방문하기에는 적당한 섬이 아닌 것 같았다. 원시 그대로인 주변의 암초나 작은 섬으로 가서 낚시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면서 자유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섬이다.

4월 27일. 아침에 다음 목적지인 나우루를 향해 나섰다. 바람이 적당하고 방향도 좋아 며칠간 6∼7노트의 속도를 낼수 있었다.

4월 30일, 파고는 1.5∼2m이고 하늘은 맑았다. 낮 동안 88마일을 달렸으나 저녁부터 바람이 약해졌다. 나올 수 있는 별들은 모두 나와 반짝였다. 칠레를 떠나 태평양에 접어들었을 때 '태평양만 건너면 끝이다'라는 생각에 김칫국을 좀 마신 것 같다. 6천 마일을 달려오고도 아직 3천 마일이 남았으니 정말 끝없이 넓고 넓은 태평양이다. 기분은 태평양 진입 초기에 다 내버렸고, 이제 담담하게 하루하루 거리를 줄여가는 항해이다.

5월 1일. 길이가 70㎝에 몸무게가 6㎏쯤 나가는 참치 한 마리를 잡아올렸다. 저녁에는 참치회와 구이로 푸짐한 식사를 준비했다. 사모아에서 선물로 받은 위스키를 회와 함께 먹었다. 독한 알코올이 위장을 훑고 내려가면서 쓸데없는 생각들을 지워버린다.

혼자서 하는 항해는 특별히 그런 상황에 잘 견딜 수 있도록 타고난 인간이 아니라면 즐겁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쓸쓸하고 외로운, 그런 순간을 덜 느끼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제는 끝을 향해 시간과 거리를 줄여나간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격려하며 다독거린다.

5월 3일. 나우루 앞바다에 도착했지만 배를 정박할 만한 장소가 없어서 폰페이로 바로 가기로 하였다. 한국에서 남동쪽으로 3천 마일 떨어져 있는 나우루는 길이 6㎞, 너비 4㎞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나우루부터 폰페이까지는 적도 무풍지대에 속하는 곳이어서 바람이 미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바람이 아주 좋았다. 6일간의 항해 후 정박 장소가 없어 다시 5일을 더 가야 하는 상황은 단독항해자에게 당혹스러운 일이다.

5월 8일. 나우루에서 5일간 항해를 더하여 아침에 폰페이에 도착하였다. 해변에 있는 원주민들은 아주 친절하고 인심이 좋았다. 잘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풍족한 사람들이었다.

폰페이는 미크로네시아에 속하는 섬으로 인구가 3만 명 정도이며 이곳에 한국 참치잡이 어선들의 기지가 있다. 한국 교민은 얼마 안 되지만 앞으로 국적선이 취항하게 된다며 기대를 하고 있었다.

폰페이에서 3일간 머물면서 식료품을 구입하고 연료와 식수를 채웠다. 아직 갈 길이 2천300마일 남았지만 마음은 벌써 부산 앞바다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