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36. 타히티 파페에테항~ 아메리칸 사모아 파고파고항

구름위 2013. 4. 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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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선실 온도 34도까지, 동·북동풍 불 땐 '후끈'



아메리칸 사모아에 도착해 일리일리에 있는 한국인 교회를 찾아갔다. 예배가 끝나길 기다리며 꼬마들과 놀았다. 아이들은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는 내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4월 8일. 타히티 섬에서 서쪽으로 8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는 모네아 섬이 아침 햇살을 받아 점점 밝아졌다. 타히티에서 사모아까지는 1천232마일이다. 한국에서 필리핀까지의 거리와 맞먹을 정도로 먼 거리다. 엔진 스타터 모터가 고쳐져서 엔진을 가동하면 80A 고성능 발전기가 충전을 한다. 그래 봐야 스타터 모터가 고장 나기 전의 상황이나 달라진 것이 없지만, 한층 좋아진 느낌이 든다. 새 배를 타고 가는 기분이다. 낮에는 선실 선풍기를 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워졌다.

4월 10일. 비구름이 몰려오자 레이더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구름 더미 밑에 어선인 듯한 선박이 한 척 있었다. 사모아에 한국 어선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다. 혹시나 해서 한국말로 한번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모터 교체로 새 배 탄 느낌
사모아 교민들과 정 나눠

4월 12일. 한낮의 선실 온도가 34도까지 올라갔다. 남풍이 불 때는 좀 서늘하다가도 동풍이나 북동풍이 불면 열기가 바람을 타고 몰려왔다. 해가 지고 밤에는 배가 부르기 시작한 달이 중천에 떠 뱃길을 밝혀주었다.



4월 14일. 밤에는 바람이 완전히 사라져서 장판 같은 바다가 되었다. 아침이 되자 미약한 동풍이 불어 해면에 잔파도가 일었다.

4월 16일. 정오가 지나서 콕핏에 멍하니 앉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섬이 하나 보였다. 40마일 떨어진 타우 섬이었다. 타우 섬은 사모아 파고파고 항에서 70마일 동쪽에 있는 섬이다. 점점 파고파고 항에 가까워지고 있다.

4월 17일. 오전 9시께 아메리칸 사모아의 파고파고 항에 도착했다. 배를 세관 부두에 계류하고 입항 수속을 진행했다. 검역과 세관, 항만 관계자 등 모두 5명이 나와서 각각 '크루 리스트'를 한 장씩 요구하였다. 일요일 특별수당을 달라고 해서 90달러를 줬다. 수당은 공식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입항 허가를 받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여 계류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항만관리인의 허락으로 세관부두에 배를 대었다. 배를 대강 정리하고 세관부두 출입구 쪽으로 나왔다. 수소문 끝에 한국 사람이 운영한다는 상점을 찾아갔지만, 주인은 일리일리에 있는 교회에 가고 없었다. 교회에 가면 정보를 얻기가 수월할 것 같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일리일리는 섬 남서쪽에 있는 마을, 파고파고 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이다. 일요일은 버스가 다니지 않아 히치하이킹으로 트럭을 얻어 탔다. 사모아 한국인 교회에 가니 어른들은 예배를 드리고 있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친절한 아주머니 덕분에 오는 길에 한국 식품점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배로 돌아와서 산 식료품 중 냉장고에 넣을 것은 넣고 나머지는 수납장에 보관하였다. 다시 걸어서 마을을 다녀왔다. 한국 사람이 운영한다는 가게에도 가 볼 겸 다리 운동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몇 가지 식료품을 더 샀다. 젊은 주인이 고맙게도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주어 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사모아는 어선이 많다. 이 섬의 산업은 그 어선들이 잡아오는 참치로 통조림을 만드는 공장과 배 수리 공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관광지는 아닌 셈이다. 별로 갈 만한 곳도 없어서 내리쪼이는 햇볕을 받으며 터벅터벅 배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선착장에 들렀다. 어선들은 '청명', '미진박', '그로리 박' 등 한국식 선명이었다. 선원들은 통가나 필리핀, 중국인이지만 선장은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데 일요일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4월 18일. 점심 때 이곳에서 40년째 사는 김관숙(78) 사장이 운영하는 일식집 '숙스시'를 찾아갔다. 식사비를 받지 않았다. 내가 한국 섬 일주를 하고 출간한 책 '요트, 뱃길 지도를 그리다' 한 권을 드리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4월 19일. 내일이면 출항이다. 입출항 수속비로 모두 257달러가 들었다. 의외의 큰 지출이었지만 한국 사람을 만나고 또 한국 식품을 살 수 있는 그 행복에 비하겠는가? 아메리칸 사모아에서는 선장이 되려면 별도로 선장 면허가 없어도 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참치잡이 배'의 선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만 2천 마일에 달하는 긴 세계일주 항해도 아메리칸 사모아에 도착함으로써 4천500마일로 줄어들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고, 항해를 마치고 부산으로 향하는 그 가슴 벅찬 날이 올 것인지 정말 의문이 생길 때도 많았다. 비록 짧지 않은 거리를 남겨두고 있지만,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몇 번이고 중간에 중단할 뻔했지만, 그때마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동호인들의 응원이 있어 힘을 낼 수 있었다.

사모아를 출발하여 투발루, 나우루, 폼페이, 사이판, 일본을 거쳐 6월 초에 도착할 계획으로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항해의 끝을 향해 전진 중이다. 요트 속력은 시속 9㎞에 불과하지만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면 작은 지도에도 표시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되었다. 요트 항해를 통해서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언제가 꿈이 이루어진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몸소 느꼈다. 나는 행운아임이 틀림없다.

글·사진=윤태근(cafe.daum.net/yoontaegeun)
4월 8일. 타히티 섬에서 서쪽으로 8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는 모네아 섬이 아침 햇살을 받아 점점 밝아졌다. 타히티에서 사모아까지는 1천232마일이다. 한국에서 필리핀까지의 거리와 맞먹을 정도로 먼 거리다. 엔진 스타터 모터가 고쳐져서 엔진을 가동하면 80A 고성능 발전기가 충전을 한다. 그래 봐야 스타터 모터가 고장 나기 전의 상황이나 달라진 것이 없지만, 한층 좋아진 느낌이 든다. 새 배를 타고 가는 기분이다. 낮에는 선실 선풍기를 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워졌다.

4월 10일. 비구름이 몰려오자 레이더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구름 더미 밑에 어선인 듯한 선박이 한 척 있었다. 사모아에 한국 어선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다. 혹시나 해서 한국말로 한번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모터 교체로 새 배 탄 느낌
사모아 교민들과 정 나눠

4월 12일. 한낮의 선실 온도가 34도까지 올라갔다. 남풍이 불 때는 좀 서늘하다가도 동풍이나 북동풍이 불면 열기가 바람을 타고 몰려왔다. 해가 지고 밤에는 배가 부르기 시작한 달이 중천에 떠 뱃길을 밝혀주었다.



4월 14일. 밤에는 바람이 완전히 사라져서 장판 같은 바다가 되었다. 아침이 되자 미약한 동풍이 불어 해면에 잔파도가 일었다.

4월 16일. 정오가 지나서 콕핏에 멍하니 앉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섬이 하나 보였다. 40마일 떨어진 타우 섬이었다. 타우 섬은 사모아 파고파고 항에서 70마일 동쪽에 있는 섬이다. 점점 파고파고 항에 가까워지고 있다.

4월 17일. 오전 9시께 아메리칸 사모아의 파고파고 항에 도착했다. 배를 세관 부두에 계류하고 입항 수속을 진행했다. 검역과 세관, 항만 관계자 등 모두 5명이 나와서 각각 '크루 리스트'를 한 장씩 요구하였다. 일요일 특별수당을 달라고 해서 90달러를 줬다. 수당은 공식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입항 허가를 받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여 계류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항만관리인의 허락으로 세관부두에 배를 대었다. 배를 대강 정리하고 세관부두 출입구 쪽으로 나왔다. 수소문 끝에 한국 사람이 운영한다는 상점을 찾아갔지만, 주인은 일리일리에 있는 교회에 가고 없었다. 교회에 가면 정보를 얻기가 수월할 것 같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일리일리는 섬 남서쪽에 있는 마을, 파고파고 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이다. 일요일은 버스가 다니지 않아 히치하이킹으로 트럭을 얻어 탔다. 사모아 한국인 교회에 가니 어른들은 예배를 드리고 있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친절한 아주머니 덕분에 오는 길에 한국 식품점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배로 돌아와서 산 식료품 중 냉장고에 넣을 것은 넣고 나머지는 수납장에 보관하였다. 다시 걸어서 마을을 다녀왔다. 한국 사람이 운영한다는 가게에도 가 볼 겸 다리 운동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몇 가지 식료품을 더 샀다. 젊은 주인이 고맙게도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주어 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사모아는 어선이 많다. 이 섬의 산업은 그 어선들이 잡아오는 참치로 통조림을 만드는 공장과 배 수리 공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관광지는 아닌 셈이다. 별로 갈 만한 곳도 없어서 내리쪼이는 햇볕을 받으며 터벅터벅 배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선착장에 들렀다. 어선들은 '청명', '미진박', '그로리 박' 등 한국식 선명이었다. 선원들은 통가나 필리핀, 중국인이지만 선장은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데 일요일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4월 18일. 점심 때 이곳에서 40년째 사는 김관숙(78) 사장이 운영하는 일식집 '숙스시'를 찾아갔다. 식사비를 받지 않았다. 내가 한국 섬 일주를 하고 출간한 책 '요트, 뱃길 지도를 그리다' 한 권을 드리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4월 19일. 내일이면 출항이다. 입출항 수속비로 모두 257달러가 들었다. 의외의 큰 지출이었지만 한국 사람을 만나고 또 한국 식품을 살 수 있는 그 행복에 비하겠는가? 아메리칸 사모아에서는 선장이 되려면 별도로 선장 면허가 없어도 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참치잡이 배'의 선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만 2천 마일에 달하는 긴 세계일주 항해도 아메리칸 사모아에 도착함으로써 4천500마일로 줄어들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고, 항해를 마치고 부산으로 향하는 그 가슴 벅찬 날이 올 것인지 정말 의문이 생길 때도 많았다. 비록 짧지 않은 거리를 남겨두고 있지만,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몇 번이고 중간에 중단할 뻔했지만, 그때마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동호인들의 응원이 있어 힘을 낼 수 있었다.

사모아를 출발하여 투발루, 나우루, 폼페이, 사이판, 일본을 거쳐 6월 초에 도착할 계획으로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항해의 끝을 향해 전진 중이다. 요트 속력은 시속 9㎞에 불과하지만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면 작은 지도에도 표시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되었다. 요트 항해를 통해서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언제가 꿈이 이루어진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몸소 느꼈다. 나는 행운아임이 틀림없다.

글·사진=윤태근(cafe.daum.net/yoontaeg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