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그리스 기티온에서 지중해 몰타까지

구름위 2013. 4. 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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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16> 그리스 기티온에서 지중해 몰타까지 몰아치는 해풍에 선체 '기우뚱' 위기일발



머나먼 이국 땅 몰타에서 같은 한국인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인트레피드호를 방문한 한국어학연수생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몰타를 향해 힘차게 항해를 한다. 마지막 구간은 맞바람과 풍랑이 거세 속도를 내지 못해 애를 먹었다. 엔진의 힘을 빌렸다.
[윤택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16> 그리스 기티온에서 지중해 몰타까지



5월 10일. 세관에 가서 출항신청을 하고 9시 쯤 몰타를 향해 출발하였다. 총 항해할 거리는 420마일로 순조로운 항해라면 13일 오후 늦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15일부터 날씨가 나빠지고 특히 서풍이 강해진다고 하였다. 수시로 변하는 기상을 생각하면 가능한 한 빨리 도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13시에 만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바람은 서북서에서 불어왔고 가야할 몰타(이곳 사람들은 말타라고 해야 알아들었음:오리지널 영어권 사람들이 아닌 경우 스펠링 그대로 발음하는 편이 더 나았다)는 서쪽에 있다.

배가 파도를 타고 잘 나아갔다. 해가 서편으로 넘어가서 눈이 부셨다. 바람이 조금씩 강해지더니 이윽고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휘이이이잉!' 배가 많이 기울 때는 미처 생각지 못한 물건들이 떨어져 선실에서 뒹굴었다.




세일을 줄여야 했다. 하네스(몸에 착용하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갑판에 몸을 착 달라 붙여 마스트 쪽으로 다가갔다.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자칫 미끄러질 수도 있다. 몸을 마스트에 최대한 기대고 발끝에 힘을 주어서 버티었다. 돛을 2단계 줄였다. 속도가 5.5노트에서 4.5노트로 1노트 줄었다. 파도를 타고 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속도가 빨라졌다. 5노트였다.

21시가 조금 넘어서야 어둠이 깔렸다. 잠시 침상에 누웠다. 편안하다. 레이더를 믿고 선실에서 쉬는 것이 어떤 때에는 불안하다. 가끔씩 죽음의 세계가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많이 살아주어야 한다. 견시(항해 중 배나 기타 장애물을 살핌)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겠다.

5월 11일. 상선 한척과 0.8마일 거리로 교차했다. 새벽 3시였다. 오랜만에 AIS(선박위치자동표시시스템)을 켰다. 64마일까지 표시되는 화면에 40여 척의 상선이 항해 중이다. AIS를 켜둔 채 항해하였을 때 오히려 상선들이 근접하여 항해하는 경우가 많아 잘 켜두지 않고 있다. 눈에 배들이 보이지 않아 혼자이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배들이 많았다.

6시 30분에 일출이 시작되었다. 그보다도 1시간 전에 날이 새었다. 어제 저녁 9시 30분에 어두워졌으니 어두운 밤은 8시간이고 밝은 시간은 16시간이다. 낮이 두 배나 길다. 항해하기 좋은 조건이다.

멍하니 콕핏에 앉아서 코발트 빛 물빛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오징어 한 마리가 물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등의 색깔이 밤색이었다. '죽었겠지!' '그런데 등이 밤색이면 아직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뜰채를 찾아서 배를 돌렸다. 뱃길 자국을 따라 좌우를 살피며 오징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 수마일 동안 혹시 다른 오징어가 또 있나 싶어서 살폈지만 없었다. 오징어 말리는 냄새가 콧등을 간지른다. '어디서 마른 오징어를 한축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생 오징어라도 있으면 사서 배위에서 말려서 만들어 볼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봄날 오후의 나른한 바다다. 잉크를 뿌려놓은 듯 파란 바다는 하늘색을 반사한 걸까? 태양이 가득하게 배위로 내려쪼인다. 어젯밤에 차가워진 몸과 갑판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낮 동안 쉬었던 바람이 해질 무렵이 되면서 남쪽에서 불어왔다. 기상예보가 딱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맞힐 수 있다는 게 신통하다.

5월 12일. 새벽 3시쯤 바람이 더 뒤쪽으로 돌아섰다. 적당히 옆쪽에서 불어주어야 항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데 말이다.

몰타까지는 203마일 남았다. 레이더가 꺼져 있다. 이상한 일이다. 요즘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를 때가 가끔 있다. 이를 테면 지피에스 항로를 맞추다가 다 맞추었다고 생각하고 오케이하면서 레이더를 꺼버리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우연에 맡기지 말자!' 요즈음 들어 늘 상기하는 말이다.

돛을 조정하러 갑판 위에 나가다 보니 어제 저녁에 배 주위를 배회하던 새들 중 2마리가 죽어있었다. 저녁에 녀석들을 위해서 물에 적신 쌀을 갑판에 좀 뿌려두었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녁 무렵 한 무리의 제비들이 날아와서 왁자지껄했다. 녀석들을 위해서 쌀과 빵조각 그리고 물을 내어놓았다. 어제 그 녀석들도 물에 적신 쌀이 아니라 물에 불린 쌀이라면 혹시 먹고 힘을 내었을지 모를 일이다.

몰타까지는 정확히 100마일을 남겨두고 있다. 육지거리로 185.2㎞이다.

5월 13일. 새벽 1시께 바람이 앞으로 돌아섰다. 주 돛의 시트(돛을 조정하는 로프)를 잡아당겨 바람을 안게 하고 보조 돛도 타이트하게 당겼다. 그런 작업을 하느라 윈치를 돌려대는 데도 바로 옆에 잠들어 있는 제비 한 쌍은 잘도 잤다. 잠시 눈을 떴는가 싶었는데 그대로 앉아있었다. 제비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다른 새보다 높은 모양이다.

바람이 앞에서 불어오는데다 파도가 일어나니 배가 힘들어했다. 속도를 내지 못한다. 잘못하다간 저녁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엔진의 힘을 빌려서 배가 좀 더 잘 나아가게 돕도록 했다.

북서풍이 강해졌다. 남동쪽 섬 그늘로 들어가 다시 연안을 타고 마리나로 가기를 시도했다. 너무 섬 쪽으로 붙다가 어망에 가까이 접근하여 화들짝 놀라 다시 지그재그로 기다시피 올라갔다. 무려 7시간 걸려 오후 7시에 몰타 임시다(Msida) 마리나에 입구에 당도하였다. 항으로 얼마쯤 들어갔을 때 바람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따뜻한 봄볕이 배를 감쌌다. 항해하면서 고생한 기억들이 따뜻한 봄볕에 녹아 일시에 사라졌다. 마지막 7시간에 진이 다 빠졌다. 그러나 마리나 안은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했다.'아! 이게 사람 사는 동네이구나'!

글·사진=윤태근(cafe.daum.net/yoontaegeun)
5월 10일. 세관에 가서 출항신청을 하고 9시 쯤 몰타를 향해 출발하였다. 총 항해할 거리는 420마일로 순조로운 항해라면 13일 오후 늦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15일부터 날씨가 나빠지고 특히 서풍이 강해진다고 하였다. 수시로 변하는 기상을 생각하면 가능한 한 빨리 도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13시에 만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바람은 서북서에서 불어왔고 가야할 몰타(이곳 사람들은 말타라고 해야 알아들었음:오리지널 영어권 사람들이 아닌 경우 스펠링 그대로 발음하는 편이 더 나았다)는 서쪽에 있다.

배가 파도를 타고 잘 나아갔다. 해가 서편으로 넘어가서 눈이 부셨다. 바람이 조금씩 강해지더니 이윽고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휘이이이잉!' 배가 많이 기울 때는 미처 생각지 못한 물건들이 떨어져 선실에서 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