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씨 요트 세계일주 -14 다음 목적지를 터키 피니케로

구름위 2013. 4. 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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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다음 목적지를 터키 피니케로 정했다. 오전 7시에 항을 빠져나와 한참을 가는데 이스라엘 해군 함정 한 척이 다가오더니 포와 기관총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레이더에 나타난 함정과에 거리는 불과 400m. 넓고 넓은게 바다인데 하필이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사격 연습을 하다니 참 이해못할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참 어려운 나라였다. 이스라엘 해역을 벗어나자 기분이 좋았다.



4월 10일. 키프로스섬 섬 왼쪽 끝단을 항해 선수를 조정해두었다. 그곳까지는 약 70마일이었고 항해해 온 거리는 120마일 정도였다. 피니케까지 가야할 거리는 약 210마일이다. 오후 7시께 키프로스 섬 서쪽 3마일 해상을 통과하며 선수를 터키 피니케 방향으로 향하게 했다. 키프로스 서부 해안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찰했다. 해변을 따라 항구가 몇 군데 불빛을 서서히 밝히고 있고 산 언덕에는 집들이 많이 있었다. 차를 타고 한 번 지나가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후 8시께, 키프로스 섬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4월 11일. 새벽녘에 바람이 강해졌다. 백파가 일고 허연 거품이 파도 산꼭대기에서 끓고 있었다. 2단 축범 되어 있는 메인세일의 리치(돛대 쪽과 반대 쪽 비스듬한 면)가 심하게 떨렸다. 돛에서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가슴을 파고 들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려 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돛대와 내 몸을 하네스(몸과 요트를 연결하는 일종의 안전벨트)로 연결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배를 바람따라 흘러가게 하고는 천천히 조금씩 돛을 끌어내려 부근에 밧줄로 챙챙 동여매었다. 겨우 작업을 마치고 콕핏으로 기어왔다. 돛의 아우성이 없어지고 속도가 줄어드니 더할 수없이 편안해졌다.



강한 바람 변덕스러운 날씨에 고생
요트 올라타려다 바다에 빠져 아찔

오후 7시께 해가 저물었다. 기분을 전환하려고 활짝 웃으며 셀프카메라를 찍었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얼굴에 그늘이 없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오후 9시께 피니케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변덕스럽고 거친 날씨를 경험한 항해였다. 마리나 샤워실로 가서 뜨거운 물을 한동안 뒤집어썼다. 찜질방이나 온천이 있다면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싶었다.

4월 12일. 해치를 열었더니 아침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다. 요트 돛대 위로 멀리 산이 보이는데 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사방으로 돛대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항구는 언제나 평화롭다. 햇살이 너무 따뜻했다. 피니케에 5일간 머물면서 배 갑판의 나무 부분에 니스를 다시 입혔다. 칠을 하고 나니 인물이 살아났다.



4월 17일. 잠이 깨어 밖을 보니 아직 밤이다. 어둠이 걷히려면 1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사방을 분간할 수 있을 때 쯤 계류줄을 풀고 요트장을 빠져나와 케코바 섬으로 항로를 정했다. 케코바 섬까지는 20마일 정도로 가는 방향에서 왼편은 바다이고 오른편은 터키의 산들이다. 바다도 잔잔하지만 산들도 아름답다. 산 아래 남쪽 바다를 향해 있는 집들은 대부분 빨간 지붕을 하고 있는데 유럽을 느끼게 하는 것들 중에 한 가지였다. 3시간가량 항해하여 케코바 섬 입구에 다다랐다. 육지 안쪽 깊은 만 안쪽으로 들어가 앵커를 내렸다.

4월 18일. 조용한 아침이었다. 만을 빠져나와 넓은 바다로 나갔다. 15마일쯤 서쪽으로 나아가 그리스 영토인 카스텔로리존 섬으로 들어갔다. 물이 맑아서 20여 m 수심 아래가 훤하게 보였다. 하루쯤 묵고 갈까 생각하고 왔지만 1시간쯤 둘러보고 사진에 담는 것으로 만족했다.

날씨가 좋아서 조금 더 항해해 오후 3시께 칼칸에 도착하였다. 칼칸도 역시 북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 남쪽으로 만이 형성되어 있다. 배의 선수를 포구 중앙으로 향하게 하고 후미를 선창에 가까이 붙였다. 선미와 선창의 거리가 1m쯤 떨어지게 했지만 배에 오르내리는 것이 좀 먼 듯했다.

저녁에는 걸어서 마을 중심지로 갔다가 오토바이를 빌려 2L들이 생수를 6개 사서 싣고 배로 돌아왔다. 물이 조금 빠져서 배가 아까보다 조금 더 멀었다. 1m가 조금 넘어 보였지만 평지에서는 별 것도 아닌 거리인데 막상 넘어 가려니 조심스럽다. 왼쪽 어깨에는 노트북이 걸려있고 손에는 헬멧을 들고 있었다. 위쪽의 솔라 패널을 오른손으로 잡고 발을 쭉 뻗어 윈드베인의 파이프에 디뎠는데 발이 미끄러졌다. 손으로 파이프를 잡았지만 미끄러져서 물에 빠졌다. "헬프 미, 헬프 미!"

낚시하던 젊은 사람이 팔을 뻗어 나를 끌어올려주었다. 올라와서는 제일 먼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노트북과 모든 항해 사진이 들어있는 대용량 저장 하드, 디지털카메라, 전화기 등이 들어있었다. 다행히 대부분이 무사했다. 노트북은 여기저기에서 바닷물이 흘러내려 분해해서 드라이기로 말렸다. 노트북과 대용량 하드에는 항해일지와 모든 사진들이 들어있어 정말 아찔했는데 모두 살려내었다.

그런 다음 젖은 옷을 벗고 몸을 살폈다. 팔꿈치 안쪽과 오른쪽 옆구리에 타박상과 긁힌 자국이 있었다. 오른쪽 정강이가 파이프와 정통으로 부딪힌 모양으로 가로 세로 7㎝에 5㎝ 쯤 부풀어올라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까 고통이 느껴졌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 입구에서도 이런 일이 한 번 있었는데 요즈음 들어 운동신경이 눈에 띄게 무디어졌다.

4월 20일. 여전히 부딪힌 곳이 욱신거리지만 행동하는데 불편한 것은 없다. 고장난 오토파일럿을 대신해서 윈드베인 날개에 틸러식 오토파일럿을 장착하기 위해 미국에다 주문을 했다. 일 주일 쯤 걸린다고 한다. 몸 상태도 좋지 않으니 칼칸에서 쉬면서 배를 정비하기로 했다.

4월 30일. 미국에 주문한 오토파일럿은 2일 전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는데 세관 수속 때문에 배달이 지연되고 있다고 하였다. 도착한 물품을 찾으려면 직접 이스탄불(버스로 14시간)로 가거나 통관회사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차라리 물품을 돌려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거의 보름 간을 이곳에서 허송한 것이다. 내일 칼칸을 떠나기로 했다. 소주 한 잔으로 허망한 마음을 달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