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⑨ 오만 살랄라에서 예멘 아덴까지

구름위 2013. 4. 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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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해적?" 긴박한 해상추격전에 간담 서늘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⑨ 오만 살랄라에서 예멘 아덴까지

오만 살랄라에서 예멘 아덴항으로 6일간의 긴 항해. 해적 출몰 지역을 가슴 졸이며 컨보이 항해를 하던 지난달 20일 오후 장엄한 아프리카의 일몰을 맞았다.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⑨ 오만 살랄라에서 예멘 아덴까지

오만 살랄라에서 예멘 아덴항으로 6일간의 긴 항해. 해적 출몰 지역을 가슴 졸이며 컨보이 항해를 하던 지난달 20일 오후 장엄한 아프리카의 일몰을 맞았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아덴 만은 유명한 해적 출몰지역이다. 그래서 요트들이 선단을 지어 가기로 했다. 오만 살랄라에서 예멘 아덴항까지의 다국적 컨보이 항해는 모두 26척이 참가하였다. 나는 선단 뒤쪽에 따라가다 수상한 배가 접근하면 선단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 되었다.

피랍 위험에 선단 합류
삼엄한 해안경비대 감시
피 말리는 상황 계속돼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더니 오만항만사무소에서 보험증서를 첨부하라는 말이 나왔고 그것이 없으면 150달러 벌금을 물리겠다고 했다. 증서가 없는 4척은 한 네덜란드인이 가진 증서를 약간 수정해서 준비했다. 나도 파일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발각될 위험성이 있다며 거절 당했다. 금방까지는 즐겁게 떠들면서 가족이었고 친구였는데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너무 힘들고 피곤했다. 배로 돌아가서 가만히 몸을 눕혔다. 고향이 더욱 그리워졌다.

2월 18일. 우여곡절 끝에 보험증을 받아들었다. 자전거를 배에 싣고 항만사무소에 출항 통보를 했다. 오후 4시였다. 두어 시간 무리가 남긴 항적을 따라 항해했다. 살랄라의 황량한 산들이 기울어가는 태양빛을 받아 붉게 보였다. 초승달이 두어 시간 밤바다를 희미하게 비추더니 이내 사라지고 어둠 속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2월 19일. 해적 출몰이 빈번한 지역이다. 15분마다 한 번씩 위치 정보가 홈피에 올라가도록 스팟을 조정해두었다. 그리고 이 장비를 꼭꼭 숨겼다. 아내에게 혹시 웨이 포인트가 소말리아 쪽으로 이동하면 해적에게 납치된 것이니 한국 해군에 연락하라고 해두었다.

예멘 영해를 통과한 뒤 연안에서 5마일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앞서가는 무리들을 뒤?i았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먼 바다 쪽에 있는 항해 그룹을 보았다. 최대한 단거리로 따라잡다보니 오히려 인트레피드가 더 많이 온 것이다. 바로 방향을 꺾어서 접근하려다 그렇게 되면 소말리아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 혹시나 아내가 덜컥 신고를 할까봐 사선으로 접근하였다.

새벽 3시께 잠깐 선실에서 졸다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밖에 나가 보니 라이트를 켠 쾌속정이 배를 향해서 그대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 배는 매연을 내며 배 앞으로 확 지나갔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무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런데 괴선박이 다시 방향을 돌렸다. 나는 전속력으로 무리 쪽으로 도망갔다. 그 배는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추격해 오고 있었다.

'아! 이제 피랍 되는구나!' 얼른 위성전화를 한국 해군에 걸었다.

"여기 인트레피드인데 피랍된 것 같습니다. 지금 얘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스톱! 스톱!"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그들이 나에게 잘 보이는 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옆으로 나가 두 손을 벌렸다.

"이곳에서 뭐하나?" "오만 살라라에서 예멘 아덴항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몇 명이냐?" "혼자다." "정말이냐, 혼자서 밤중에 뭐하냐? 무기는 없느냐?" 질문이 조금 이상해서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냐?" "우리는 예멘 해안경비대다." 한숨 돌렸지만 예멘 해군은 큰 덩치로 요트에 근접하며 계속 질문을 해대었다. 그쪽에서는 스피커로 묻고 나는 육성으로 대답해야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배에 한국인이 타고 있었다. 사정을 얘기했다. 한국인은 함장과 논의한 후 염려하지 말라며 가도 좋다고 했다. 30여 분 피 말리는 상황이었다.

배의 선수를 돌려 항로를 바로 잡고 출발하였다. 그렇게 2분쯤 갔을까 뒤쪽에서 불빛 하나가 빠르게 접근했다. 이번엔 고무보트였는데 흰 옷을 입은 사람과 람보 조끼를 입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총을 메고 있어 해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람보 조끼를 입은 사람이 다행히 웃으면서 총은 보트에 두고 요트에 훌쩍 올라탔다. 요트를 점령하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요트 내부를 수색했다. 그리고 요트 무전기로 이상이 없음을 함정에 보고했다. 가도 좋다고 했다.

선단 쪽으로 가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함정은 오만 쪽으로 방향을 돌려 내려갔다. 선단과는 1마일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인데 그들은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1마일 거리에서 서치라이트 추격전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하지만 다들 조용했다. 그 많던 무전 교신은 그 순간 뚝 끊겼다. 내가 만약 저들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저 한 척만 끌고가 버리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다국적군 헬기가 10분 안에 도착하더라도 정말 해적이 나타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2월 20일. 낮에 스피드보트 한 척이 뒤쪽으로부터 접근하여 후미에 있던 배들이 놀라 그룹 안으로 들어가려고 속도를 높였다. 뒤처져 졸던 나도 무전을 받고 무리 속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그 모습이 사자의 습격의 받은 누(gnu) 떼 같았다. 스피드보트는 사자처럼 속력을 내며 제 덩치보다 몇 배나 큰 요트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보트는 접근을 몇 번 시도하다가 제풀에 떨어져 나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담배와 음료수를 원하는 예멘 어선이라고 하였다.

2월 21일. 찬란한 일출과 함께 4일째 항해가 시작되었다. 잠이 부족해서 힘이 들었다. 저녁 무렵 졸다가 배가 그룹과 가까이 붙자 옆에 있던 배가 화를 내었다. 소말리아 해적들만 아니라면 이들과 같이 갈 이유가 없는데 참 떠날 수도 없고 있으려니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자꾸 떨어져 나가라니 죽으라는 말이요?" "아아악~~~~" 바다에 대고 고함을 냅다 질렀다. 너무 화가 나고 힘이 들었다. 저녁 8시께 불을 모두 끈 요트 한 척이 살랄라로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 저렇게 혼자도 다니는데, 까짓것 떨어져서 가 주지 뭐!' 초저녁에는 1마일쯤 떨어져 항해하였는데 새벽녘에는 4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2월 23일. 이틀 째 조용한 밤이 지났다. 예멘 아덴항에는 오전 11시께 입항했다.

글·사진=윤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