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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⑥ 말레이시아 미리항에서 페낭까지

구름위 2013. 4. 1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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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⑥ 말레이시아 미리항에서 페낭까지
'스콜' 장대비 뚫고 '순조류' 만나 천만다행






[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⑥ 말레이시아 미리항에서 페낭까지

동말레이시아 미리항을 떠나 서말레이시아 세바나코브 마리나로 가는 첫날, 바다에서 장엄한 일몰을 맞았다.



[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⑥ 말레이시아 미리항에서 페낭까지

동말레이시아 미리항을 떠나 서말레이시아 세바나코브 마리나로 가는 첫날, 바다에서 장엄한 일몰을 맞았다.


2009년 12월 9일. 미리항을 출발하여 서말레이시아 세바나코브 마리나로 가는 날이다.

세바나코브는 싱가포르와는 아주 가깝다. 좁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세바나코브까지 거리를 재어보니 약 630마일. 인트레피드의 평균속도가 5.5노트이니까 115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침부터 하얀 구름대가 수평선을 둘러 깔려있었다. 가운데 하늘은 파랗게 우주 저편으로 열려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 바다 위에서 고기들이 사방으로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낚시를 풀어 내렸다. 60㎝ 쯤 되는 다랑어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 혼자서 먹기에는 좀 많은 양이었다.

길이 60cm 다랑어 낚시로 잡아
고독한 항해 한국 선박 반가워
적도 근처 집중 호우 견뎌내





12월 11일, 항해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 석 달째 되는 날이다. 푸껫에 도착할 때쯤 집사람과 막내가 와 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 기간에 막내의 자격시험이 하나 있고 둘째의 대학도 결정이 나 있지 않은 상태여서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혼자 고독한 항해를 하는 나처럼 애타는 마음은 없어 보였다. 맘이 조금 상했다가 반대로 내가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항해를 한다고 생각해 보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12월 13일. 자정을 지나면서 주변의 배들이 많이 늘어났다. 한국 배도 가끔씩 만날 수있었다. 군산으로 가는 상선과 항로가 겹쳐 무전으로 불러서 좌현 대 좌현으로 통과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무전기로 이런저런 대화도 하고 싶고 주변의 항해정보도 묻고 싶었지만 호의적이지 않아서 시도하기가 조금 민망했다. 싱가포르 앞쪽 섬 주변에 상선의 묘박지가 있었다. 아무래도 본선항로에는 날이 밝은 후 접근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세일을 줄였다. 동이 틀 무렵 본선항로에 접근하여 항로를 가로질러 말레이시아 본토 쪽으로 넘어갔다. 목적지인 세바나코브는 강 같은 수로를 1시간쯤 거슬러 올라가 오른쪽에 있었다.

12월 15일, 듬성듬성 붉게 물든 옅은 구름이 낮게 깔려있는 산 언덕으로부터 동이 트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아침이다. 마리나를 나와서 강을 따라 내려갔다. 정글을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물이 빠졌을 때 보였던 나무뿌리가 보이지 않았다. 만조인 모양이었다. 묘박지를 지나 본선항로 가까이로 접근하였다. 오른쪽으로 싱가포르 섬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GPS에 현재 포지션이 위도 1도 07분을 가리킨다. 적도와 불과 67마일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믈라카 해협은 폭이 좁은 곳은 20여마일 밖에 되지 않아 조류가 빠른 곳은 3~4노트라고 하였다. 뒤에 따라 오던 구름이 점점 색깔이 짙어지면서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묘박지에 도착했다.

12월 16일, 오후 5시경. 주변에 배가 없는데 레이더 경보가 울렸다. 스콜이었다. 장대처럼 퍼붓는 비로 인해 요트 양쪽 데크가 냇물을 이루었다. 강한 바람과 함께 쏟아부었기 때문에 자동조타장치에 부하가 걸려 제 역할을 못했다. 직접 조타를 했는데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아팠다. 믈라카 묘박지까지는 아직 20마일을 더 가야 한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배를 육지 쪽으로 몰아 수심 5m 지역에 닻을 내렸다. 주변에는 물살의 흐름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는 시설들이 있었는데 남해 죽방렴과 비슷했다. 금방 잠이 들었다.

12월 17일, 눈을 뜨니 새벽 2시였다.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주변을 빙 둘러 보니 조류의 방향이 바뀌었다. 순조류인 것이다. 닻을 끌어올리고 출발했다. 먼 곳에서는 아직 번개가 치고 있었다. 어두운 빗속을 항해하다 믈라카를 10마일쯤 남겨두고 배를 정지하여 2시간 정도 떠 있으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7시께 다시 항해를 계속했다. 간간이 번개가 치고 있었다. 전에 고장난 오토파일럿 없이 장시간 항해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배를 육지 쪽의 요트 쪽으로 가까이 몰았다. 오후 4시30분께 포터 딕슨의 어드미럴 마리나에 도착하였다.

12월 18일, 예전에 사용하던 것들을 끼워 맞추어 간신히 오토파일럿 하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오전 10시께였다. 마리나 사무실로 찾아가 하루분의 계류비를 내고 마리나를 빠져 나왔다. 항로로 접근하여 해협을 거슬러 올라갔다. 오토파일럿이 잘 작동하니 살 만하다.

저녁 무렵 클랭 부근에 도착했다. 클랭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가까운 항구이다. 한국으로 치면 인천쯤 될 것이다. 다음 목적지인 페낭까지 170여 마일이 남아있다.

12월 19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닻을 끌어올렸다. 어둠이 서서히 걷혀가려고 할 무렵이었다. 강을 내려가 항만수로를 따라 올라갔다. 항로표지를 따라 낮은 수심의 수로를 나아갔다. 복잡한 지형을 막 벗어날 무렵 억수 같은 비를 만났다. 2시간쯤 지나자 날씨가 점점 좋아졌다. 바람과 파도가 먼바다 쪽에서 인트레피드의 옆쪽으로 불어서 육지 쪽으로 갔다. 배의 속도가 좋았다. 정오를 넘어서면서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 편안한 항해였다. 밤 동안에도 기상이 좋았다.

12월 20일, 새벽부터 맞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속도가 뚝 떨어졌다. 조파 저항이 꽤 심했다. 1m 정도의 앞파도에도 배가 맥을 못춘다. 역풍을 뚫고 항해하기는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전 11시께 페낭섬에 도착했다.